[신자은] 살아있는 교회 The Living Church (by John R. W. Stott)

진정한 교회의 모습과 역할, 그리고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변화, 그러한 변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한 이 시대의 고민은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교회에게 제기하는 엄중한 물음이다. 

저자는 포스트모던 세계라는 시대적 환경에 대한 민감성과 성경적 원칙들이 갖는 절대성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을 이루는, 살아있는 교회의 특징들을 고찰하고 있다. 먼저 교회의 본질을, 배움, 돌봄, 예배, 그리고 전도라는 4가지 요소로 제시한 후, 이 비젼을 7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풀어나간다: 예배, 전도, 사역, 교제, 설교, 연보, 그리고 영향력. 
전통적인 교회의 핵심요소들의 중요성 (계시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예배, 회중예배, 지역교회를 통한 전도, 목사와 감독의 역할, 그리고 강해 설교)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이머징 교회들의 특성들 (영적 초월성과 올바른 삶이 수반되는 예배, 세상 속으로의 침투, 교회중심 활동 탈피, 소모임의 중요성, 성속의 분리 거부, 설교의 호소적 감성적 요소)이 교회에서 균형을 이루어가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교회가 실제로 교회 자신만을 위해, 즉 자신의 생존과 편의 그리고 특권 유지를 위해 조직되어 있는가? 아니면 하니님과 사회를 섬기기 위해 조직되어 있는가? 교회를 지역 사회로부터 불필요하게 분리시키는 교회의 전통과 관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교회의 건물, 예배 의식, 조직, 프로그램, 그리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점검하기를 촉구한다.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가운데 ‘시각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주장은, 화석화되고 시대와의 소통에 닫혀있으며 그래서 교회 자신을 섬기는 교회에 대한 냉엄한 비판이자, 포스트 모더니즘적 요구에 대한 교회의 시대적 적실성에 대한 촉구이다. 교회가 지녀야 할 문화적 민감성에 성경적 원칙을 결합한 탁월함이 엿보인다.
제 8장에서, 저자는 소금과 빛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를 권면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므로, 세상과 다르되 세상으로 스며들어서, 비기독교 세상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소금이 부패를 막고, 빛이 어둠을 밝히는 것처럼. 만약 사회가 부패하고 어둡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은 완전함을 목표로 하지 않고(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만 가능하므로), 개선에 머무르겠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우리가 헌신할 만한 목표이며 또한 성경적인 근거를 갖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변화를 이루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무기고를 열어보인다. 중보 기도, 복음 전도(사회적 양심을 개발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비젼과 용기를 얻는 것은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키실 때이므로), 모범, 고난(인기가 없는 그리스도의 복음과 도덕적 기준들을 위해 기꺼이 받는)과 같은 전통적인 무기에, 논쟁과 행동이라는 법제적 정치적 방법이 더해졌다. 법과 정치를 통한 사회변화는 통상 진보적인 성향을 띠며 종종 기도나 복음 전도에 중점을 두는 진영과 긴장을 이루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성향을 한데로 묶어서 서로의 보완성과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기도나 고난의 영향력에 대한 저자의 확신이 견고한 만큼이나 법과 정치를 통한 사회변화의 방법의 한계에 대한 저자의 보수적인 관점도 확고해 보인다.  
사회변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의 급진성은, 우리가 기독교적 독특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 두드러진다. 우리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면, 사회 속으로 침투할 뿐 아니라 사회에 순응하기를 거부해야 하고, 우리의 기독교적 확신,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기준, 그리고 생활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164쪽). 
200쪽에 조금 모자란 작은 책에 살아있는 교회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길 것을 기대할 수는 없고, 많은 부분은 독자인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채워가야 할 여백으로 남겨진 것이겠지만, 그래도 가려운 곳이 없지는 않다. 저자의 교단적 배경에서 비롯된, 교회력에 상응하는 성구집인 일과표를 매 주일 예배 마다 읽는 것에 대한 언급은 조금 낯설게 다가오고, 기독교의 연보가 균등화에 기여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다른 사람들과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피차 환대하는” 삶의 기준으로서의 균등화)은 적용에서 자의적일 수 있다는 면에서 아쉽다. 또 기독교적 독특성이 어디서 기인하는지에 대한 논증과 설명이 좀 더 깊이있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남는다. 
저자가 90세에 이르러, 이 시대와 교회를 바라보며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담긴 아래의 두 토막 글을 적어본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나는 무엇인가 할 수있다. 
내가 할 수있는 것을, 나는 해야만 한다
그리고,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할 것이다” (Edward Everett Hale의 글, 167쪽)
자신이 평생을 몸담아온 영국 성공회 교회에 대한 그의 태도, 순수성을 좇아 탈퇴하거나, 하나됨을 위해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타협하지 않는 포괄성’을 선택함. (문제가 많고 불완전한) 교회안에 머물면서 진리를 지키는 영속적인 긴장상태 가운데 살아왔음에 대한 그의 고백은 곧 이 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에게 저자가 보내는 초청장인 듯.   
(p.s.) 부록 II를 꼭 읽어볼 것. 1974년에 쓰여진, 존 스토트의 ‘살아있는 교회에 대한 꿈’인데 2011년에도 동일하게  유효하다.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3)

올 봄에 내 인생의 구체적인 목적과 소명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고민하며 여러 책들을 읽던 중에 <하나님의 뜻: 오늘 여기서 그분을 위해> 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소명에 대한 책을 더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10년 전에 씌여진 책인데, 왜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왔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문제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해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좀 찬찬히,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주시지 않아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저자는 책의 2부에서 소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른 책들에 비해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내용들이 많아서 구체적으로 와 닿는 점이 좋았다. 저자는 소명이라는 화두를 꺼내면서 가장 먼저 직업과 소명을 구분하고 있다. 




첫째, 소명은 직업을 초월한다. …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차적 소명은 능력과 지위와 기회와 배경과 무관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든 존재와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반응으로 그분을 섬기는 삶이며 특별한 헌신과 에너지와 방향으로 투자되는 것이다.”…
둘째, 소명이 결코 직업으로 격하돼서는 안되지만 종종 소명에는 직업이 사용된다. 인근 의대 레지던트 프로그램에서 병리학을 가르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직업 의사지만 그의 소명은 직업보다 크다. 의사라는 직업을 사용해 그는 세상 의사들이 대부분 간과하는 목표들을 이루고 있다. …

셋째, 소명은 전통적 직업이 가지 못하는 곳으로 우리를 보낼 수 있다. 최근 나는 친자녀 여섯에 입양 자녀 열 네명, 도합 스무 명의 자녀를 둔 분을 만났다. 집안이 난장판이 돼도 귀찮아하거나 짜증을 내기는 커녕 그녀의 말에는 침착함과 기쁨과 활력이 배어있다.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무희처럼 말이다. 스무 자녀의 어머니 노릇은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 그녀에겐 전통적 의미의 직업은 없었음에도 자신의 소명을 이루고 있었다.

끝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소명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그 단어의 사용에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의 소명은 단일 직무인 경우가 드물다. 그 직무가 수사의 직분 같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의 소명-경우에 따라 단수든 복수든-을 발견하는 길과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이루는 길은 깔끔하고 질서정연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인생 여정이 시작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pp. 90-92)


그리고나서도 부족함이 느껴졌던지, 저자는 다시 독자들이 소명과 직업을 분명히 구분하도록 돕기 위해 직업에 대해서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모든 소명이 다 구체적 직업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자신의 가장 깊은 관심이나 동기와 별 상관없는데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일하는 경우가 있다. … 보람이나 소명의식을 별로 못 느끼는 일을 평생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먹여 살릴 가족들과 다달이 갚아야 할 돈이 있기 때문이다. …

둘째, 때로는 직업이 오히려 소명의 발견이나 추구를 방해할 수 있다. … 직업은 협력보다는 경쟁을, 나눔보다는 부를, 봉사보다는 권력을, 진실보다는 이념을 강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직업은 사리사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

셋째, 어떤 소명은 결코 공식적 직업이 될 수 없다. 여기에 해당되는 이들은 때로 자신이 ‘한지로 밀려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현대 사회가 직업 특히 그 직업이 가져다주는 권력과 지위와 수입에 집착하다 보니 무직을 택하는 이들은 그만 주변으로 밀려나고 만다. (pp.98-101)


저자는 소명이 직업 이상이며 우리의 존재와 세계관과 인생 목표의 연장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명과 직업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인간은 직업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소명도 직업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을 규정하고 그 인간에게 소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럴 때 인간은 자유로이 직업을 사용해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룰 수 있다. (p. 104)

저자가 말하는 소명은 이런 것이다.

소명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뭔가 긍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그분을 높인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구원하려 일하고 계시고, 언젠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우실 때 세상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 소명이란 유독 종교적 직업을 가진 자들만의 몫은 아니다. … 이 원리는 그리스도인, 불신자 할 것 없이 의, 진, 선, 미를 창달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분은 세상을 위해 세상 속에서 유익한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부르심으로써 그 사랑을 표현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일을 사용하여 당신의 뜻 – 미를 창출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의미있는 일을 제공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깨어진 세상을 고치는 것-을 이루어 가신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에 기여하는 소명의 자리는 독특하다. 소명이 있는 이들은 더 높은 목표 의식을 갖고 더 큰 그림을 본다. (pp.102-103)

저자가 제안하는 대로 직업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세상의 필요를 보는 내 마음의 눈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갈 때 나의 소명이 발견되어지리라 기대한다. 소명에 이르는 여정 자체가 소명의 필수 부분이라고 강조한 저자 덕분에 나는 용기와 위로를 많이 얻었다.



5장에서 소명을 직업으로부터 구별해내는 데 애썼던 저자는 6장에서 소명을 발견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소명을 발견하는 것을 여정에 비유한다.

길가며 만나는 경험들의 효과가 누적되어 우리를 장래 일에 준비시켜 준다. .. 우리가 삶의 소명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은 경험 자체를 통해서다. … 시도와 실험과 실행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 경험은 우리를 가르치고 준비시키고 단련시켜 다가올 미래를 잘 맞이하게 해준다. 이 현 순간에 하나님께 귀기울일 때 그 영광스런 발견의 과정은 시작된다. 우리는 여정 중에 배워서 미래를 맞을 준비가 되어 간다. 성품과 신앙이 자라고,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며, 전체적으로 성숙해진다. 그러다 때가 되면 소명의식이 싹튼다. (p. 110)


…우리는 10년 전에 미리 인생을 계획함으로써가 아니라 현순간 당면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소명을 발견해 간다. 산길을 오르는 등산객에게 점차 경치가 펼쳐지듯, 시간이 가면서 우리의 소명의식은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앞에 뻗은 등산로를 단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때로는 다음 발을 내딛을 만큼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 틀림없이 도중에 아리송하고 모호하고 혼란스런 상황에 부딪칠 것이다. 그러나 계속 가야한다. 계속 가면서 계속 찾아야 한다. (pp.114-117)

소명을 발견하는 여정 중에 많은 시도와 숱한 실험들을 해보면서 실패도 하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상황에도 처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소명찾기의 일부이고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소명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해주는 저자의 격려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모른다.

저자는 그 다음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소명을 분별함에 있어 우리가 귀기울여할 하나님의 음성이 내면의 동기, 재능, 삶의 경험, 기회, 공동체, 마음의 기쁨을 통해 들려온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일종의 신호들이지 공식처럼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길 간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소명에 대해 또 다른 별개의 장을 할애하여 우리 인생에 단 하나의 소명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명이 있기 때문에 그 소명들 간의 충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얘기해주고 있다. 저자는 아버지로서의 소명을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이 장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소명이 단 하나뿐이고, 그것은 그의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네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이를 돌보는 책임은 아내에게 있다고 여겼고 아내가 요구하는 대로 따르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세 아이와 함께 남겨진 그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야심이 많았던 자신이 차츰 변하여 이젠 하루종일 아이들과 가정을 마음에 품고 다니며 아이들 얘기를 할 때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아버지가 되기까지 그 바탕에는 실패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했던 기도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아버지로서의 소명을 발견하면서 그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그는 현재 교수이면서 작가이기 때문에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정주부의 소명까지 감당하는 것이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분주함과 압박 속에서도 소명의 복수성에 잘 대처하기 위해 단순성, 균형, 유연성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래서, 그는 첫째 것을 첫째로 삼고 인생에 하나의 최고의 관심사-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 -를 잃지 말고 그 하나의 초점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매일 되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면서 내면의 단순성을 연습하고 실천할 것을 권하고 있다. 또,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느껴질 때, 가장 중요한 일을 구분해내고 자신이 가장 전념하는 것 중심으로 삶을 재편하는 연습에 힘씀으로써 선한 우선순위에 바탕을 둔 삶의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균형의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끝으로, 자신의 통제권 밖의 상황에 대해 유연하고 홀가분한 자세로 임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인생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그 실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바라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그가 소명의 복수성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긴장과 충돌이 오히려 건강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인상깊었다. 그때 야기되는 불안이 우리 자신의 한계와 하나님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겸손한 종과 청지기의 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끝)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1)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2)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2)

올 봄에 내 인생의 구체적인 목적과 소명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고민하며 여러 책들을 읽던 중에 <하나님의 뜻: 오늘 여기서 그분을 위해> 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소명에 대한 책을 더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10년 전에 씌여진 책인데, 왜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왔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문제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해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좀 찬찬히,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주시지 않아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의 2장에서는 우리가 행해야할 하나님의 뜻은 미래보다 현재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는 하나님께서 쥐고 계시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현 순간에 하나님께 충실하게 순종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특히, 우리가 매 순간 붙들어야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저자는 산상수훈 말씀을 짚어준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그분은 우리에게 현재의 상황이나 미래의 문제에 대해 불신자들처럼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대신 그분은 이렇게 명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선순위를 바로 하여 첫째 것을 첫째에 놓을 것을 요구하신다.
… 우리는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할지 그 선택 과정을 하나님이 정확히 일러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요구는 단순하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고 동기가 순수하며 기본 방향이 옳은지 – 즉 ‘하나님 나라’라는 ‘정북’을 가리키고 있는지 – 그것만 확인하면 된다. 여러 바람직한 대안들 중 선한 양심으로 아무 길을 선택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런 시각으로 보게 되면 놀라운 자유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우자도, 우리의 직업도 정해놓지 않으셨다. 나 자신 역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한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길들이 우리의 삶에 대한 그분의 뜻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풍성한 자유함을 누리는 동시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붙어있고자 애쓰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사는 게 진짜 재미있어졌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놀라운 자유를 사용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 궁리하고 하나씩 시도해보는 건 신나는 모험이다. 물론 나에게는 사랑과 지혜와 능력과 건강과 재화가 모두 부족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닮기 위해서, 나의 부족함을 아뢰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1)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1)

올 봄에 내 인생의 구체적인 목적과 소명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고민하며 여러 책들을 읽던 중에 <하나님의 뜻: 오늘 여기서 그분을 위해> 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소명에 대한 책을 더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10년 전에 씌여진 책인데, 왜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왔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문제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해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좀 찬찬히,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주시지 않아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Finding and Following the Will of God”이고 저자는 Gerald L. Sittser이다.  그는 49년의 인생을 돌아보며 수많은 중간 지점에서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의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목사가 되었고, 서른 살에는 목회의 길에 남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인 줄로만 알았던 길과는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미래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음주운전자의 중앙선 침범으로 한 순간에 어머니와 아내와 네 살난 딸을 잃는 비참한 고통을 겪으면서 그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현기증이 날 만큼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 치명적인 아픔 속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의미를 성경을 묵상하며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발견하여 따라야 하는 미래의 길’로 언급한 하나님의 뜻에 관한 말이 성경에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따랐던  ‘하나님의 뜻에 관한 전통적 접근’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통적 접근에서 보는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가 따라야 할 미래의 구체적 길로 규정된다. 하나님은 그 길을 아시며 우리가 따르도록 정해 놓으셨다. 우리의 책임은 그 길-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따를 수 있는 많은 길들 중 정작 따라야 할 한 길을 찾아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 놓으신 그 길을 말이다. … 그래서 우리는 갈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표징을 바라고, 조언을 구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성경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살핀다. 하나님이 분명한 신호를 보내주실 거라는 희망 속에 기다린다. 하늘에서 분명한 음성이 들려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침내 선택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 찾아온다. … 다른 모든 길을 거부한 채 유독 한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끈질기게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놓친다면? 내 선택이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끝난다면? 잘못된 결정의 결과에 갇혀 영원히 그 값을 치르며 살아야 한다면? (pp.21-22)

‘하나님의 뜻에 관한 전통적 접근’은 우리 대부분이 가진 통념이라 너무나 익숙한데, 저자는 이 전통적 접근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이 접근은 날마다 내리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결정 대신 미래의 중요해 보이는 결정에 마음을 쏟게 한다. … 하지만 날마다 내리는 작은 선택이 누적되면 이따금씩 미래에 대해 내리는 큰 선택의 의미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때가 종종 있다. …날마다 내리는 작은 선택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어느 길을 택하든 내가 내 삶에 진정 이루기 원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에는 이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미래에 관해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전혀 안달할 필요가 없다.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가능성 때문에 염려한 필요가 없다. 단순히 현재 이미 알고 있는 일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 반드시 분명히 밝혀야 할 부분에 관한 한 하나님은 이미 분명히 밝혀 놓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날마다 내리는 선택- 말다툼 후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 퉁명스런 직장 동료를 존중하면 대하는 것, 부엌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 기분 내키지 않을 때도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 -으로 결정된다. (pp.22-25)

미래에 관한 어려운 선택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소명을 찾는데 집착하여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면 결국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허송세월을 살게 될거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내가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은 미래에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룰 것인지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이 오늘 하루동안의 나의 삶을 어떻게 보실 것인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후 차분하고 정돈된 고요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비록 지금 내가 직장도 없이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어도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에 대한 전통적 접근에는 두 번째 문제가 있다. 하나님관이 잘못되어 있고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숨기시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다녀야 한다. … 하나님은 분명해야할 부분에서는 언제나 분명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 뜻을 행하도록 우리를 설득하시는 것만도 하나님께는 이미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 뜻을 숨기심으로 당신과 우리를 더 힘들게 하실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한번 ‘잘못’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당신의 선한 계획에서 끊으실 만큼 비정하신 분일까? … 난관과 고난에 부딪칠 때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는 남은 인생을 ‘그때 다른 길을 택했어야 되는데’하고 한탄하며 보낸다. 아이러니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그 상황이 아무리 힘겨운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세워나갈 기회를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통적 접근은 이런 어림짐작과 요행심리를 낳지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그분의 은혜에 어긋나는 태도다. (pp.25-27)

나를 자녀삼으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지금 내 삶 속에서 실습하며 배우는 중이다. 고통과 어려움이 계속되고, 힘든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처음엔 쉽지 않지만, 점점 쉬워진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상황에 따라 슬픔과 아픔은 느껴질지라도 두렵지는 않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또한 바라며 매순간 그분께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이것만을 나의 본분으로 알고 하나님을 꼭 붙들며 살아가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