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이시면서도 농사를 
좋아하시던 아버님께서는 어릴적 살던 
양옥집 옥상에 흙을 퍼다 올리셔서 
밭을 만드셨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옥상부터 올라가서 딸기와 참외, 토마토를 
따서 먹고, 저녁 반찬거리로 고추와 
가지 등을 따서 내려오곤 했다. 뿐만 
아니라 식구들이 겨우내 먹을 김장배추까지 
옥상 농장에서 재배했다. 교인들이 키우다가 
병이 들어 가져온 각종 실내 화초와 나무들이 입원해
있는 공간도 있었다. 

새벽 등산길에서 농사를
지으며 목회를 배운다
며 농부의 마음과 수고에 대해 설명해
주시던 아버님의 말씀을 그때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굳은 땅에 식물과 과실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땅을 경작해야 한다. 굳은 땅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물을 뿌려가며 개경(改耕)해야 할 뿐 아니라, 거름을
주어 마르고 굳은 땅을 옥토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긴 시간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아름다운 푸른 싹을 보게 된다.
이런 생명의 경이로움에 박수를 보내며 기뻐하는 농부의
심정, 그 수고와 사랑이 곧 영혼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것이어야 함을 열심히 설명해 주시던 아버님의 말씀을
이제는 그림자만큼이나마 깨달아 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변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설교말씀을 들을 때도, 성경공부를 할 
때도 이 말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생각난다. 어떤 분은 
큐티를 할 때도 오늘 하신 말씀이 꼭
필요한 사람이 생각나면, 그 날은 그 사람이 이 말씀을
받고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조금 일찍 큐티를
끝내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큐티를 하라고 당부하고 오후에
다시 전화해 큐티를 했는지 확인하고 무슨 감동을 받았는지
물어보기까지 한다고 한다. 가정의 리더인 부모님이나
교회의 영적 리더들도 따르는 이들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사역을 하신다.  

목사님과 소그룹 리더들을 
만나면 많은 분이
사람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말씀하신다. 이런 말도 해보고 저런 말도 해보고, 얼러도
보고 협박도 해보지만, 사람들을 변화시키기가 너무도
힘들다고 하신다. 소그룹 성경공부를 통해 삶이 변화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는다
부정적인 결론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인 듯하다. 내 경우에는 늘 내가
변화시키려고 애쓴 사람들보다 나를 먼저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자주 경험했다.  

가정과 교회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영적 리더들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투자한 후에 지치고 
절박한 심정으로 심각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사람들은 변화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누구의 역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역할과 다른 이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할
때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고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배소서 2장 말씀과 
로마서 12장 말씀을 보면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은혜로 살리시고,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여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지만, 육신도 영혼도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 그리고 영혼이 변화하고 새로워지게 
하는 힘도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부드러운 땅으로 만들기
위해 사랑과 이해로 후원해 주고 따뜻이 대해주어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 함께 학습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말씀의 씨앗에
물을 주고 햇볕과 폭우를 막아주는 그런 일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신다. 이런 역할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모두 골고루 행할 수 없는 일이기에
소그룹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그룹에만 존재하는 
네 가지 기능이 있다. 그것은 함께 
있기, 함께 배우기, 함께 돌보기, 함께 일하기이다.
소그룹의 아름다움은 함께하는 것이다. 

함께 
있기
를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우리들에게 올
유익함을 계산하는 마음과 우리가 정해둔 타이밍(timing)이라고
생각한다. 김혜자 님이 쓰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
두 소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자들이 준 사과 하나조차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형이 배고픔에 쓰러져
있는 동생에게 사과 반쪽을 들고 간다. 죽은 듯 누워
있던 동생은 형이 씹어서 넣어주는 사과를 받아먹는다.
그들은 이렇게 연명해 온 것이다. 두 소년을 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형이 늘 자신과 함께 있음을 믿고 지내온
동생은 기력을 회복한 반면, 형은 끝내 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도종환 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그 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에 등장하는 
도마뱀은 3년 전 목수들의 실수로 몸에 
못이 박힌 채 죽어가는 친구 도마뱀을 
위해 끼니 때마다 먹이를 물고 나타난다.
그리고 해가 지면 함께 얼굴을 맞대고 함께 두려움을
견뎌낸다. 그 도마뱀의 사랑으로 못이 박힌 도마뱀은
3년의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난다. 그 도마뱀들이 어떤
관계인지 무척 궁금했다. 단순한 친구인지, 모자간인지,
부부인지……. 아줌마들에게 물어보면 남편은 절대로
아니라고 확신하셨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어느 부분엔가 
못이 박힌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재물이, 병약한 사람에게는 
아픈 몸이 못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공부 자체가 순순한 배움으로 여겨지기보다
자신을 꼼짝 못하게 억누르고 있는 못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죄의 못이 그들을
늘 누르고 있을 수 있다. 가정에서나 소그룹에서 우리는
모두 못박혀 사는 서로를 위해 필요를 채워주고, 두렵고
힘든 기다림의 시간에 함께 있어 주어야 한다. 서로가
그 못에서 자유롭게 될 때까지 격려해 주고,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게 해주며, 위로와 기쁨을 주어 소망을
주는 것이 함께 있기이다. 이때 이미 박혀 있는 못을
더욱 두들겨서 더 깊이 박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시간을
독촉하며 협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해둔 타이밍에
그들의 못이 떨어지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만 우리의 타이밍은 그들의 시간과,
아니 하나님의 타이밍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빨리빨리
못에서 나와서 살아나고 변화되어서 우리의 계획대로
진행하고 싶은 욕심이 모든 리더에게 있는데, 많은
경우 그것이 못을 더욱 깊이 박아버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함께 
배우기
를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sins of power 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강의식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고, 발견한 것을
스스로 삶에 적용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가장 효과적인 배움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배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그룹을 인도하는 리더나
구성원들이 나눔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로 함께 배울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다가 
리더라는 위치가 주어지면 그 욕구에 
힘이 실리게 되어 열심히 강의하고 
주입하게 되며,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시간보다 자신이 말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항상 진리인 
것처럼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모든 빈 공간을 자신이 
채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sins of power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나눔을 위해서는
일단 리더가 힘을 빼고 본문에 근거한 개방식 질문을
통해 그룹원들에게 발견의 창을 열어주어야 한다.  

5년 전, 교회에서 유년 
주일학교 사역을 맡았다. 미국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발견학습법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설교도 되도록이면 각자가 관찰하고 
해석하고 발견하도록 준비했다. 어느 주일,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며 대학생들에게 간단한 
연극을 하게 하여 읽은 본문의 내용을
눈으로 보며 관찰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작은아들 그룹, 한 그룹은
큰아들 그룹, 나머지는 아버지 그룹이었다. 각 그룹들에게
만약 그 사람이라면 어떤 감정을 느끼겠냐고 질문했다.
작은아들 그룹의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하고, 목욕을
안 해서 몸이 가려울 거라고 하고, 부끄러울 것 같다고
했다. 큰아들 그룹 아이들은 질투와 분노와 억울함을
얘기했다. 아버지 그룹은 용서의 기쁨과 아들들에 대한
사랑을 얘기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니?
그러자 아버지 그룹에 있던 3학년
남자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나님께 늘 거짓말하는 우리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하세요.
어떤 여자아이는 하나님께 늘 고함을 질러대는 우리
엄마를 용서하라고 하세요.
몇 가지 질문들을 더 던져보니 아이들
집안 사정이 다 쏟아져 나왔다. 내가 만약 그 본문으로
강의식 설교를 준비했다면 감히 부모님께 품은 마음을
쏟아 놓게 하고, 그 아이들의 가장 아픈 부분이 부모들이라는
사실을 과연 알 수 있었을까? 그 아이들은 그날 자신들에게
실망과 아픔을 준 부모님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아주
진지하게 드리고 돌아갔다.  

질문으로 그룹을 인도하는 
것은 성령님께 각 사람의 마음을 
열고 역사하실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드리는 것이다. 질문은 마음의 
밭을 경작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함께 
돌보기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한 관계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어린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과
소망을 소유하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다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겨 잘 심겨진 씨앗과 새싹들이 된서리를
맞고 폭우를 맞아 다시 긴 시간이 흐르도록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몇 년 전, 세미나 
인도를 위해 하와이를 방문한 적이 
있다. 행사가 끝나면 바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라 몇 시간 정도 빨리 
도착해서 택시로 하와이 섬의 힐로(Hilo)를 
혼자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만난 택시 운전사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내가 미국
장로교단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절박한
삶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린 아내가 도박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주 가산을 탕진하고도
헤어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 아내를 데리고 교회를
찾아 말씀으로 희망을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도움을 바라고 나눈 얘기들이 온 동네에 돌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아 이제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눈시울을 적시며 내게 부탁했다. 병원처럼
자신들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좋은 교회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빌 하이버스(Bill Hybus) 목사님은 
『진정한 크리스천(Authentic Christian)』이라는 
책을 통해 관계 형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품성으로 진실함(Authenticity)과 긍휼(Compassionate),
희생(Sacrifice)을 꼽았다. 많은 사람이 진실치 
못한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도 주님께서 그러하듯
긍휼한 마음으로 돌보고,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며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도록 그들을 따뜻이 돌보는
힘은 정죄하고 교육하는 말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에,
깊이 안아주는 넓은 팔에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기
의 단계는 말씀의 씨앗이 새싹이 되어 돋아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는
기쁨을 주어 더욱 깊은 변화와 성장을 줄 수 있는 단계인데,
이 작업을 위해서는 기존 리더들이 리더십 개발을 위한
열린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도록 기회를
주고, 최선을 다했을 때 결과에 상관없이 칭찬해 주어
자신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동참하게 하면, 건강하고
유능한 새로운 리더를 개발할 수 있다. 많은 리더가
이 단계에서 상대를 지배하려고 하거나 경쟁하려고
하여 새로운 리더들을 개발할 기회를 잃곤 하는데,
무척 슬픈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지배하려는 
리더보다 연약함을 나누고, 도움을 구하고,
함께 일을 하자고 초대하는 리더들을 
따르게 마련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나누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고자 하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모든 소그룹은 예수님의 
생명 때문에 유기체이다.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 소그룹도 생명주기를 거치게 된다. 탄생하고,
성장하며, 침체되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고, 때가
되면 분리되기도 한다. 위에서 소개한 소그룹의 아름다운
네 가지 기능들이 소그룹이 생명주기를 지날 때마다
지혜로운 리더십으로 인해 잘 활용되었을 때,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소그룹
가운데 고요하지만 확실하게 일어나리라고 믿는다.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손과 발을 
빌어 돌 같은 마음의 땅을 부드럽게 
개경시키시고, 때에 맞춰 사랑의 비로 적셔주고, 햇볕이
너무 셀 때는 그늘도 만들어 주고, 잡초도 뽑아주게
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짓는 농사는 늘 풍년가를 부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