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수영을 배우면서 느낀 것이 있다. 수영을 하는데 있어서 숨쉬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다른 것을 잘하여도 숨쉬기를 잘 할 수가 없다면 우리가 멀리 수영하여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수영을 하러 가면 다른 사람들이 수영하는 것을 관심 있게 본다. 한 건장하게 생긴 청년이 몸에는 많은 문신을 새기고 수영을 한다. 너무 힘이 좋아서 무척 잘 할 것 같다. 그러나 막상 그는 멀리 수영하지 못한다. 근육질의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멀리 나갈 수가 없다. 곧 지쳐버린다. 그런데 연약하게 생긴 아주머니 한 분이 수영을 하는데 힘이 없어 보이는 분이다. 그러나 그 분은 지속적으로 수영을 잘한다. 그 차이는 한 사람은 숨쉬기를 잘하고 다른 사람은 숨쉬기를 잘 못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하는데 있어서도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쉼표에서 잘 쉴 줄 알아야 하고 아름다운 동양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여백을 남길 줄 알아야 한다. 위대한 연설가가 되기 위해서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침묵의 시간 말이 없는 순간을 통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깊이 있는 곳으로 생각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으로 暈遠岵隔?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 가운데 휴식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사실상 신앙적으로도 휴식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안식의 시간을 가졌고 그의 백성들에게 삶의 지침으로써 율법을 주실 때 안식을 명하셨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까지도 안식을 갖도록 명하셨다. 신약의 예수님께서도 그의 삶과 사역가운데 수시로 안식의 시간을 가졌고 우리를 그의 안식으로 초대해 주셨고 그가 주시는 안식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의 나라를 약속해 주셨다.
그러면 바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삶 가운데 어떻게 휴식을 가질 수가 있을까?
첫째, 휴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휴식의 시간을 가지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가 할일 없어서 쉬는 것이 아니다. 일들은 우리 앞에 수없이 많이 놓여있고 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을 다하고 쉬겠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쉴 수가 없을 것이다. 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 삶의 스케줄에서 휴식을 위한 시간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우리 삶 가운데 틈틈히 휴식의 시간을 갖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학교에서 행정을 하면서 교수를 하고 있다. 그런데 행정을 하면서 교수를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다가 보니까 행정 일을 꽉 채워서 하고 강의시간이 되면 허겁지겁 강의실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한번 세미나에 참석하였는데 노 교수님이 행정가이시면서 교수인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셨다. “여러분! 강의 전에는 반드시 10분-15분 정도 휴식을 반드시 취하십시오. 행정 일을 하다가 강의 시간이 되어서 달려가면 효과적인 강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10분 가량은 쉬면서 강의를 위하여 숨을 조절해야 합니다.” 참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다. 또 어떤 사람이 조언하기를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는 꼭 10분 가량 휴식을 취하고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지쳐서 집에 돌아가면 배우자에게 짐이 되기가 쉽다. 그러면 서로에게 지쳐서 도움을 바라게 되고 둘 사이가 좋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러지 말고 10분 가량 숨을 고르고 들어가라는 것이다.
셋째, 우리 삶 가운데 가끔은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 자주는 할 수 없지만 가끔은 우리의 몸과 영혼과 정신을 푹 휴식가운데 잠기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절대 휴식”이라고 부른다. 마치 무덤 속에 누워있는 죽은 자처럼 모든 생각과 걱정과 근심과 창조성까지도 모두 포기하고 푹 쉬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은 삶에 스트레스로 피곤할 때에 가끔 묘지를 찾아가서 미리 사둔 묘자리에 누워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고 한다. “곧 이렇게 누울텐데 내가 왜 이렇게 욕심을 내고 바쁘고 힘들게 사는가” 생각하면서 삶을 바로 잡는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삶의 속도를 줄이고 이렇게 깊이 자신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람마다 휴식을 취하는 방식과 패턴이 다양하다. 방법에 있어서 율법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절대적인 사실이다. 나는 그까짓 휴식이 없는 사람이라는 잘못된 초인 의식은 버려야 한다. 네째, 우리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휴식과 안식의 차원을 넘어서 영적인 차원에서의 안식이 필요하다.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무거운 짐, 욕망이라는 짐, 그리고 걱정이라는 짐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식을 취하여도 영적인 차원에서의 안식이 없다면 우리는 피곤하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이 깊은 영적인 안식으로 초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28-30) 오직 예수 앞에 나아갈 때에 우리는 깊은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써 승리롭게 살아갈 힘이 있다.
앞에 수영이야기를 하였었는데 수영을 배우면서 어떻게 하면 숨쉬기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연구를 하였다. 팔을 잘 휘젓고 다리를 열심히 구르는 등 열심히 배워서 최선을 다해도 숨쉬기가 힘이 들고 곧 지쳐 버렸다. 근본적으로 나는 내가 물위에 떠있어야 숨쉬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열심히 수영을 연습하다가 한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숨쉬기를 잘하려면 물로부터 열심히 도망쳐서 숨쉬기를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물에다가 내 몸을 맡겨야 한다. 물에서 내 힘으로 뜨려고 하지말고 물에 내 몸을 맡겨 물이 나를 뜨게 해야 되겠다 생각하였다. 힘을 빼고 물에 내 몸을 맡겼다. 그리고 머리까지 푹 물에 담갔다. 그랬더니 내 몸이 물에 뜨는 것이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속력도 붙고 물의 띄워주는 힘 때문에 숨쉬기도 쉬워지고 많이 수영을 할 수가 있었다. 아무리 힘이 좋아도 자기의 힘으로 물에 떠 있으려고 하면 사람은 물위에 오랫동안 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없고 연약하여도 물에다가 내 몸을 맡기고 머리를 넣으면 물이 나를 띄워 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을 한다. 우리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면 머리가 좋고 힘이 좋아도 곧 지친다. 인생은 아무리 강한 자라도 결코 이길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나의 힘이 아니라 주님께 나아가서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그에게 나의 삶을 맡기면 평안과 안식이 있고 우리가 성공적으로 지속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생활이 아닐까? 주님께 나아가서 그에게 나의 죄의 짐과 욕심과 염려를 다 맡기고 힘을 얻어서 하루하루를 승리롭게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