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과 인간이해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의 기초


1. 문화(culture)와 세계관(worldview)


인류학(anthropology)에서는 ‘사람이 살아나가는 삶의 총체’를 가리켜서 ‘문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람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사회에 유리하게 이용함으로써 험한 세상에서 생존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과 그 결과들을 가리켜서 우리는 ‘문화’라고 말한다. 따라서 집단을 이루고 사는 모든 인간 사회는 문화를 형성하게 되어 있다. 문화가 없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는 또한 그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정신 및 물질 세계를 다 포함한다. 문화를 장기 게임에 비교해 보자. 장기를 두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장기라고 하는 게임의 내용들, 그리고 이 게임에 부수되는 모든 것들을 문화의 내용들이라고 말한다면, 이 장기 게임의 규칙은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삶의 규칙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지키며 사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 삶의 규칙은 문화권들마다 다르고 또 세분하면 사회마다 다른데, 그 이유는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민족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같은 말을 사용하고 같은 관습 속에서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살도록 만들어주는 어떤 정신적인 힘과 그 구조를 가리켜 문화인류학에서는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이 세계관의 내용들을 이해할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와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온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 이해’란 ‘세계관의 이해’와 다름 아닌 것이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요, 한 문화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문화권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세계관의 내용과 구조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또 서로 다른 문화권의 세계관을 어떻게 발견하고 이해할 것인가? 본 소고가 계속 다루고자 하는 주요 관심이 바로 이러한 질문들이다. 세계관의 개념이 비록 전문적이고 기술적이기는 하지만, 이 개념에 익숙해지게 되면 다양한 문화권에 노출되어 살며 사역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인간의 다름과 다양함이 문화적 세계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는 데에 큰 힘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세계관의 이해를 추구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하여서이다. 참 인간애(人間愛, the loving of people)는 진정한 인간 이해(人間理解, the understanding of people)에서 온다고 나는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의 절정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 닿아 있음을 잘 증명해 주는 사건이다. 바로 이러한 종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이러한 삶이 기독교 선교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사랑과 선교의 실천을 위하여서 그리스도인들은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2. 세계관이란?


세계관이란 사람들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실재(reality)에 대한 인식(perception)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철학이나 역사학에서 이야기하는, 지성인들이 고민하면서 얻어낸 그러한 종류의 철학적 세계관과 다른 개념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은 어느 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으며, 구태여 증명하고자 하지 않고, 늘 믿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이해들을 가리킨다.


Piaget나 그의 영향을 받고 세계관의 개념을 발전시킨 Kearney와 같은 학자들은 세계관을 형성해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환경을 꼽는다. 이에 대하여 나 자신도 실제 사역과 현장 연구 등을 통하여 동일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람들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인은 환경이라고 하는 실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변 환경을 통하여 자기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면서 형성된 믿음의 전제들(assumptions)과 가치들(values)과 감정들(emotions)을 포함하는 사고의 구조를 세계관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환경은 특별히 물리적인 환경과 사회적 환경과 정신적(혹은 영적) 환경의 셋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리적 환경은 그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적 환경, 즉 지형이나 기후 및 동식물 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환경은 어느 한 집단이 계속 관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다른 집단들을 가리킨다. 자신들이 속한 사회 역시 사회적 환경에 포함된다. 따라서 정치적 내지 외교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환경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 환경에 대하여서 일반 문화인류학자들은 거의 동의한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의 정신적 혹은 영적 환경은 많은 경우에 무시되거나 간과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진화론에 입각하거나 실증주의와 이성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정신적 혹은 영적 세계는 사람들의 환경이기보다는 하나의 내면의 현상 혹은 자연에 대한 반응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서구 세계에 속한 대다수의 사회는 영적 세계와 여기에 속한 영적인 존재들을 자신들의 주변 환경으로 믿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사역하고 또 현장 리서치를 하였던 아프리카 동해안의 스와힐리(Swahili) 무슬림들은 이슬람에서 말하는 진(jinn)이라고 하는 영들과 또 아프리카 전통인 미지무(mizimu) 영들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며 이 영적 환경을 극복하기 위하여 온갖 종교 의식들을 만들어낸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이 이처럼 영들을 다루는 종교 의식들을 발달시킨 것은 이들의 세계관 때문이다. 이들이 역사 속에서 계속 경험하여 온 영적 환경에 대한 인식이 이들의 세계관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 세계관은 계속해서 자손들에게 전수된 것이다.


이처럼 세계관은 물리적인 환경에 대한 이해, 사람들이라고 하는 환경에 대한 이해, 그리고 우주 및 영적 환경에 대한 이해들로 구성되어 있다. Redfield나 Kearney 등의 학자들에 의하면 이러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보편적인 인간의 인식 범주들이다 – 이에 대하여서는 차후에 언급하기로 하겠다. 인간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이러한 환경들을 어느 한 사회가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들과의 만남 가운데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문화를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그 문화권의 세계관을 이해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모든 문화의 부산물들과 제도 및 관습들은, 주위 환경들을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하는 그 문화권 사람들의 세계관의 반영이기 때문에, 문화적 형식들을 깊이 연구하게 되면 그들의 세계관이 보이게 된다.


문화 충격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세계관의 충돌이다. 그러므로 사람들과 관계할 때에 상대방의 세계관을 이해하게 되면 문화 충격을 훨씬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의 기술도 성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더 진실하게 사랑하기를 원한다. 이 사랑을 가능하게 해 주는 힘은 진실한 인간 이해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이러한 인격적 성숙을 도모하기 위하여서 많은 독자들이 세계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 다음 호에서는 한 개인의 세계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하여, 즉 문화화(文化化) 과정이라고 하는 enculturation에 대하여, 그리고 그 결과 형성된 세계관의 구조와 기능들에 대하여, 예를 통해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