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원] 유진 피터슨 읽기 (3) – 유진 피터슨과 번역

이 글은 지난 6월에 청어람에서 했던 유진 피터슨 읽기에 대한 강의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14년째 기독교 서적을 전문으로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 양혜원입니다. 제가 번역한 유진 피터슨의 책은 공역을 포함해서 총 8권입니다. 나열해 보면,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The Wisdom of Each Other),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Like Dew Your Youth-Growing up with your Teenager), 「현실, 하나님의 세계」(Christ Plays in Ten Thousand Places)(공역), 「이 책을 먹으라」(Eat This Book), 「그 길을 걸으라」(The Jesus Way), 「비유로 말하라」(Tell It Slant), 「부활을 살라」(Practise Resurrection)(공역), 그리고 가장 최근작으로 「유진 피터슨: 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The Pastor: A Memoir)입니다. 저는 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그냥 번역가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한 저자의 글을 자신의 모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각하게 되는 몇 가지의 것들을 번역가 입장에서 다루어 본 것입니다.

3. 유진 피터슨과 번역

아시다시피 유진 피터슨을 유명하게 해준 것은 ‘현대 미국어로 번역한’「메시지」성경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성경을 번역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번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번역은 목회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고대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본이 가지고 있는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의미를 우리 교인들이 평생을 사용해온 미국어의 어휘와 은유와 통사로 전달하기 위한 현장의 목회 활동”(「유진 피터슨」, 475쪽)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번역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메시지는 30년간의 목회 토양에서 자랐다.…나는 두 언어의 세계에서 살았다.성경 언어의 세계와 현대 언어의 세계다. 나는 언제나 그것이 같은 세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회중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그래서 나는 필요에 의해 ‘번역가’가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번역가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날마다 두 언어의 경계에 서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치유하시고 축복하시고, 심판하시고 다스리시는 데 쓰시는 성경의 언어를, 우리가 잡담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길을 안내하고 사업을 하고, 노래를 하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데 쓰는 오늘의 언어로 번역했다.”(「유진 피터슨」, 476-477쪽)
여기에서 피터슨은 ‘오늘의 언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쓰는 일상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피터슨은 “진정한 번역은 그 쓰인 글, 전해진 말에 대해, 눈물과 웃음, 가슴과 영혼으로 전인을 참여시키는 이해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먹으

라」, 207쪽) 그렇게 눈물과 웃음, 가슴과 영혼으로 전인을 참여시키려면 듣는 사람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려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데에 쓰는 일상적인 언어를 써야 합니다. 피터슨은 「메시지」를 번역할 때,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하박국 2:2) 하기 위해서 번역했다고 합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으려면 말이 쉬워야 하고 바로바로 와 닿아야 합니다.

피터슨에게 일상 언어는 중요합니다. 아니, 기독교인에게 일상 언어는 중요합니다. ‘단절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그러한 삶을 살려면 우리의 언어도 일상과 유리되지 않은 언어여야 합니다. 성경도 일상의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우리는 언어를 ‘상향 모독’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상향 모독은 “언어가 추상적으로 부풀려지거나 레이스처럼 엮인 거미집처럼 비실체적인 것이 될 때 일어난다.”고 피터슨은 말합니다(「이 책을 먹으라」229쪽). 이것은 곧 언어를 인격적 관계와 구체적 맥락을 떠나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인데, 성경과 관련해서는 하향 모독 보다는 이러한 상향 모독의 위험이 큽니다. 왜냐하면 상향 모독이 간파하기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서 ‘빌어먹을 하나님!’(God dammit!)하고 내뱉는 말과 같은 공공연한 신성모독은, 예를 들어 떨리는 목소리로 ‘존귀하고 높으시며, 거룩하고 비길 데 없는 전능의 하나님…’이라고 읊조리는 아첨 떠는 경건보다 훨씬 더
이목을 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후자가 오히려 전자보다 더 심하게 언어를 모독하는 것일 수 있다.”(「이 책을 먹으라」, 230쪽)
설교할 때나 대표 기도를 할 때 그리고 교회 사람들과 대화할 때, 우리는 얼마든지 이러한 상향 모독의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거룩해 보일 거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터슨은 말합니다. 상향으로 부풀려진 말은 “마음에 뿌리를 두지 못한다. 인간의 일상성에 기초하지 못한다. 그런 말은 더 이상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데 유익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번역은 “상향 모독에 대항하는, 그러니까 우리의 평범한 삶을 표현하는 방식과 더 이상 맞지 않는 과정과 술책으로 언어가 부풀려지는 것에 대항하는 최우선 방어 중 하나다. 그리고 과장은 언제나‘ 틈을 노리며’ 언어의 문 앞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에 번역가들은 그들의 언어가 우리가 자녀들이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일상어의 울림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이 책을 먹으라」, 232-233쪽)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전하는 설교자들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과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해내는 하나님의 번역가들입니다. 따라서 부풀려지지 않고 일상어의 울림을 잃지 않는 번역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