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1년 11월호

소설가 서영은씨의 초기 작품 중에 한 여인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제목은 잊었지만 내용이나 서술이 기억에 남는 그런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별로 자신감이 없는 수수한 여인, 다른 이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며, 스스로를 가꾸지도 않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어느날 사랑에 빠집니다. 축복 받을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이었지만,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힘겹고 지고지순하게, 어쩌면 목숨을 건듯이 처절하게 그 사랑을 지켜 나갑니다. 자기를 이용만 하려 하는 남자에게 그토록 성실하게, 사회적 지탄도 외면하며 사랑에 매달립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자의 변화입니다. 평소처럼 부스스한 차림으로 시장에 가려던 그녀는 아, 우연히 그를 마주치면, 하는 생각에 다시 들어와 단장을 하고 나가지요. 장에서 물건 값을 깍으려다 그가 보면, 하면서 너그럽게 행상 노인에게 값을 치릅니다. 그녀의 모든 행동과 차림새에 그를 떠올리며 점점 나은 여인의 모습이 되어 갑니다. 언제나 그녀의 내부에는 그가 의식되어지기 때문에 그녀는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고, 그녀가 치르는 헌신적인 사랑이 기쁨이 됩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강한 구속이며, 삶을 지탱하는 끈이 되어 갑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욕의 원천이 되어 줍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속성, 이기심 때문에 그 사랑은 짓밟히게 되어 버리지요. 소설에서는 표현되지 않은 뒷부분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사랑의 구속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직접적이지 않고 강제적이지도 않은 이 구속감! 사랑의 기대감 같은 것. 혼자 있을 때에도 수 없이 자신에게 말을 걸며 자신을 되돌아 보게하는 이 구속감을 힘겹게 생각하거나 불행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생기찬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얼마 전 먼 곳을 여행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리며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막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얌전하게 달리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마구 속도를 내며 이리 저리 주행선을 바꿔 댑니다. 바로 레이져 감시 탐지기를 전후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감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무심한 것일까 하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존재를 얼마나 자주 망각하고 있는지, 나를 사랑의 기대감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속에 대하여 얼마나 자유(?)로운지. 보이지도 않는 그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분의 현존을 그렇게도 확신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모순.


아무도 보는 이 없이 홀로 그와 대면하고 있는 고요한 순간, 나는 마치 벌거벗은 아이와 같은 데도 감추려 하는 것이 많고 심지어 속이려 하고…. 지금 이곳에서 그가 나를 보고 있다면, 나는 분명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더 온유하고 단정하고 밝아지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가 귀 기울이고 있다면, 성내고 비판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겁니다.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온갖 사악한 생각과 행위의 그릇됨이 부끄러워 차마 계속 죄를 저지를 수 없겠지요. 내가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그를 찾듯이 순간 순간 그를 발견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품어야 하겠지요. 나의 한 없는 사랑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며 그 또한 무한한 사랑을 내게 주기를 약속하였기에 나는 기쁨의 구속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이고 인위적인 감시망 보다 내 안에 있는 빛을 두려워 하며, 그 빛에 이끌려 밝은 곳으로 가는 아름다운 영혼. 바로 이 순간 나를 변화시키며 아름다운 우정을 쌓기를 바라시는 그분,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시며,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내 존재의 중심이 되시는 그분, 내가 만난 그분을 나는 사모합니다. 그 사랑의 간절함으로 그를 찾고 부르며, 내가 나 아닌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 나길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