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탄의 소리


섬기는 기독교사


글로리아, 요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어때? 많이 힘들지 않아? 요즘 애들이 워낙 말을 안 들어. 정상인 아이들도 그런데, 장애 아이들이야 오죽하겠어? 쯧쯧…. 이렇게 어떤 분들은 혀를 차신다. 사실 이 말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요즘은 교사의 권위가 몇년 전에 비해서 많이 상실되었다. 교육대학을 지원하는 학생수가 해마다 주는 실태이고 여름방학 동안에 빈 학급의 교사를 채용하느라 교육청에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심지어,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교사를 찾지 못한 학급에서는 교육경험이 전혀 없는, 소위 임시교사라 불리는 Substitute 밑에서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교사의 이직률은 해마다 늘고 있고 – 보통 5년에서 7년이 한계라고 한다 –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돈이 비싼 사립학교만을 보낼 수는 없지 않는가?


조지아주의 한 공립학교에서 내가 교직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5 년째 들어간다. 나는 학습장애, 정서장애, 그리고 정신지체 장애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서 장애가 심한 아이들은 특수 학급에서만 수업을 받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는 비장애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하기 때문에 나는 일반교사들과의 접촉이 많은 편이다. 아이들의 장애와는 상관 없이 미국의 학교는 심한 장애를 갖고 있다는 점을 나는 그 동안의 교사생활을 통해서 발견했다. 교사의 이직률이 많은 이유와 많은 부모님들이 사립학교를 선호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것은 바로 사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가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서 친엄마 친아빠와 함께 한 집에서 사는 학생을 거의 찾아 보기가 힘들다. 계부(Step father), 계모(Step mother) 혹은 조부모님들과 함께 사는 아이들, 그리고 편부모(single parent) 밑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마땅히 배워야 할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학교에 오는 경우가 많은데, 늘 정서불안으로 행동에 문제가 있게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 자란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사회의 중심인 가정의 무너짐은 곧 하나님이라는 분이 가정 속에서 점점 그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매주 월요일 수업 시간 전에 아이들이 주말을 어떻게 지냈는지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주일에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거나 주일학교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은 1달에 2-3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아이의 취침시간 전에 베드타임 스토리(bed time story)로 성경을 읽어 주는 부모님들도 찾아 보기가 힘들고 취침시간 전에 축복기도를 해주는 부모님들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보다 더 슬픈 일은 미국의 공립학교에서는 정교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의 원칙을 이유로, 개인기도는 할 수 있지만 공식적인 기도는 할 수가 없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부활절과 성탄절에 대해서 가르칠 때도 종교적인 내용들을 다룰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성탄절에 대해 가르친다면,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는 가르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고, 또 부활절에 대해 가르친다면 이스터 버니(Easter Bunny)에 대해서는 가르쳐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가르칠 수 없게 되어 있다. 진정한 성탄과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가? 진정한 성탄과 부활의 의미도 모른 채 우리 아이들은 이 날만 되면 공휴일로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독교적인 교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록 성경을 가르칠 수는 없지만, “teaching”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간 한 시간 영어, 산수, 사회, 과학 등을 가르칠 때 정성껏 수업계획(lesson plan)을 세우고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해야 한다. 즉, 전문성을 갖고 지도하는 일이다. 둘째, 아이들의 문제점을 귀 담아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심어주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사 자신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학생들을 섬겨야 한다. 예수님께서 친히 낮아지셔서 다른 사람들을 섬겼던 것처럼 기독교적인 교사 역시 겸손한 마음으로 학생들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