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십 년만이다. 친정어머니, 언니, 그리고 조카와 함께 온 가족이 한 달 반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남편이 유학길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그래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내가 미국길에 오를 때 갓 태어나 두 주밖에 안 된 조카를 헤어지고서 가까이서 함께 생활을 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힘겨울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다른 모습으로 자라왔다는 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삶의 이런저런 모습 속에 배어 있는 가치기준이나, 어린이로서의 관심 영역, 어른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며 이해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자란 탓일까, 늘 경쟁의식 속에서 자란 탓일까, 아니면 유복한 환경에서 독자로 자라왔기 때문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치고 들어오는 이 어린 조카를 파악하며 연구하는 데에 근 두어 주를 보내야 했다.


제일 먼저 부딪힌 어려움은 어른으로서 주의를 주는 것에 아주 불쾌해 하는 것이었다. 잘못을 바로잡아 주려는 조언에 대한 거부감이 아이를 통해 느껴질 때면 난감해지곤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주의를 주며 지내왔어도 아이들을 통해서 그렇게 불손한 모습을 본 일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또 다른 큰 어려움은 순식간에 자신의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정서적인 급변이었다.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듯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쉽게 버럭 화를 내고, 우리 아이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아이를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오, 주님,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어려움이 오게 된 것일까요? 너무도 사랑스럽기만 해야할 조카를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함께 지내야 하는 것일까요? 밤마다 남편과 함께 아이의 천하무적같은 일과를 나누며 지나간 10년의 세월을 통해 접해온 환경의 차이를 절감해야만 했다. 더 어려운 점은 아들의 모난 부분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생각이었다. 30년 가까이를 함께 자라온 언니인데도 아이를 키우는 태도가 어떻게 이토록 다른 것인지, 한국의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을 기죽지 않게 키운다더니 정말 우리 언니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인지, 이토록 서로가 너무 힘겨워 한다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좋으신 분이시기에 우리 자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서로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어떻게 다듬어가야 할 지에 대해 지혜를 주셨다. 언니 입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 기준으로는 매사가 고쳐야할 투성이인 조카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름만 이모인 사람이 느닷없이 자신의 살아온 틀을 바꾸려고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으리란 생각에 미치자, 내가 또 다시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는 강박관념 때문에 사랑을 느끼게 하지 못한 우를 범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를 인내하시고, 믿어주시고, 마음의 평안을 회복시켜주시며, 깊은 상처까지도 어루만져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시는데, 나는 환경과 말과 모든 것이 어설프기 만한 이곳 생활을 하는 조카가 빨리 다듬어지기 만을 조급하게 바랬던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무조건 틀리다는 것으로 간주되었었고, 어린 시절 다른 사람 손에서 자란 깊은 상처가 어떤 것인지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조카를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언니와의 대화가 진지하게 이루어진 세째주가 되어서였다. 갓 태어나서부터 다른 사람 손에서 자라온 조카는 자기를 돌봐준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을 배워간 것 같았다.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자신이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해 먼저 터득한 것은 아닌지… 정서적인 기복이 큰 것이나, 쉽게 놀라고 불쾌해 하는 것, 자동차에 대해 심하게 애정을 보이는 것, 자기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판이하게 다른 것, 등등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아이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알아가면서 그 근본 원인를 깨닫게 되었고, 아이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 그럴수록 나는 그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하는 진짜 이모임을 알게 되었다.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어떻게 자라왔는지조차 몰랐던 무심한 이모가 이제야 제대로 조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황야의 무법자처럼 우리 집안을 휩쓸고 다니는 그 아이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안게 된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피해자로 바라보지 않고 이것도 가족이 되어가는 귀한 과정임을 주님께 고백하며 감사하게 되었다.


어느덧 일주일 후면 조카와 친정 가족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삶의 곳곳에서 아이는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제는 이모가 야단치는 이모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이모임을 알아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 또 언니도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감사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어린 나이에 억울한 상황을 수시로 부딪히면서도 조용히 견뎌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그런 모습을 함께 지켜보면서도 조카를 사랑해주는 남편을 나의 가족으로 허락하신 주님이 감사하다. 십 년을 떨어져 지낸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보다 삶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태도의 거리감이 더 큰 관문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 지난 시간들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