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느 신학교의 제자훈련관련 세미나에서 일어난 일이다.
학생들은 제자훈련을 하면서 겪는 다양한 고민들을 교수에게 질문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의 질문이 다음과 같았다.
“제가 제자훈련을 해주고 있는 학생이 있는데, 이 친구가 마약중독이 있고 열네살 소녀에게 마약을 팔고 있다는 것을 고백했어요. 저는 이 청년을 정말로 사랑하는데 제가 한번 더 기다려 주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이 학생이 열네살짜리 소녀를 성폭행 했다는 고백을 했다면 또 어떻게 하겠는가?
정의라는 단어는 너무나 버겁고,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면 안된다는 묘한 합리화 뒤에 혹은 자비와 사랑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명분뒤에 숨거나, 종종 나나 잘하고 살자라는 자조섞인 비관에 머물고 마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결국 하나님의 정의도 사라지고 사랑도 희미해진다.
신학교 교수의 답은 의외로 간결했다. “경찰에 전화하세요. 그게 열네살 소녀를 사랑하고 그 청년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공원에서 당신이 가족들과 피크닉을 하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라. 일단의 깡패들이 와서 당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괴롭히고 있다. 당신은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의는 어쩌면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들이 상처받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싸우는것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정의(Justice)”에 대한 많은 정의(definition)가 존재한다. 굳이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찾아 듣지 않더라도 단어만 떠올려도 이미 머리가 복잡해 지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정의는 의외로 참 간단해 보인다. 많은 이들의 죄를 한사람이 대신 짊어지는 것,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그들을 신원하여 주는 것, 힘이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사랑인 것 같다. 혹은 하나님에게 있어 정의는 사랑의 또다른 이름은 아닐지.
유다의 번영과 평안 가운데 그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이로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다가왔을때, 하나님은 그분의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1:16-17]
스스로 씻으며 깨끗이 하라고 하시면서 실천해야 하는 항목들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여 주라는 것이다.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의에 대해서 너무나 어렵게만 생각하며 살아가는건 아닐까? 사랑에 대해 너무 감상적으로만 생각하는건 아닐까?
필자는 현대판 노예제라 불리는 인신매매 성매매 폐지를 위해 헌신되어져 있는 한 선교단체에서 사소한 일들을 돕고 있다. 5년전 단체의 대표가 노예제의 피해자 여성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큰 부담을 주셨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그저 한 젊은 중보자였던 이분은 간단한 관련 비디오를 만들어서 세상에 알려야 되겠다는 마음의 부담으로 이 사역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4년여를 걸쳐 전세계를 다니며 실태조사로 이어졌고 이제 그것이 “네파리어스: 영혼의 상인(Nefarious: Merchant of souls) ”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세상에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영화의 말미에 어떤 매춘현장에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포주였던 한 남성의 인터뷰가 나온다.
“제가 했던일들을 후회합니다. 제 스스로를 정말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요. 그 여성들은 포로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저 또한 어떤것에 포로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한가지 깨달았던 것은 하나님은 내 죄악보다 훨씬 크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무엇에 포로가 되어있었던 걸까? 이 남성은 정말 가해자이기만 했을까?
현재 이 남성은 결혼을 했고, 청소년들이 성매매에 팔려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 공간을 통하여 의외로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인신매매 성매매라는 불의를 코스탄과 함께 들여다 보고자 한다. 정의라는 커다란 주제를 다룰 철학적 통찰도 없고, 쌈박한 신학적 지식도 없지만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만은 없는 이러한 숨겨진 불의를 들여다 보고 피해자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우리가 함께 기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서 말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풀어지기를 갈망하며-
조윤이
Eunice Cho
eunicecho@exoduscry.com
엑소더스 크라이
현대판 노예제 폐지를 위한 기도운동
Exodus Cry
A Prayer Movement to End Modern Slavery
www.exodusc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