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유례없는 경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실물경제는 바닥을 경험한지 오래다. 노재현은 기성세대의 바닥을 이렇게 평했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Been there, done that’ 세대다. 현장을 가보았고 온 몸으로 겪어 보았다는 뜻이다. 식민지에, 전쟁에, 산업화 시대 일중독에, 민주화 열망에, 게다가 10년 전 혹독한 외환위기까지 현장마다 가 있었고 빠지지 않고 체험한 세대다. 만만치 않은 내공이 몸에 배어 있다. 문화재급 유물에서 시작해 첨단 제품까지 잘 적응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바닥도 두렵지 않다.”
바닥은 끝이다. 끝의 다른 의미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표현으로 이제 시작할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바닥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래서 슬픈 일이 아니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이상 그런 실패는 겪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에 대한 굶주림은 영혼의 바닥에서 시작된다. 그곳에 간절함이 있고, 갈망이 있다. 이 굶주림이 예배의 강력한 기대감이다.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 63:1)
굶주림은 배고플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영적 굶주림은 영적 양식에 대한 갈급함이다. 성경은 회중예배가 세상에서 채워질 수 없는 하늘 양식이 채워지는 원색적인 현장임을 뒷받침 해준다. 바울은 헛된 것에서 만족을 찾던 영적 거지인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된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의 충만을 채우신다고 증거한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3) 여기에서 fills everything in every way라는 표현을 주시하라. 예수는 모든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도 채우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자신의 몸인 교회라는 유기적인 몸을 통해 채우신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몸은 예수의 충만(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이다. 그러므로 회중예배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부요함이 깨어진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채워지고 회복되는 위대한 현장이다.
문제는 예배드리면서 나 자신이 깨어진 존재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다. 영적인 굶주림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다. 내 안의 죄, 상처, 아픔,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하나님께 나아가라. 남들보다 떨어지는 IQ, 배경, 재력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고, 학벌, 실력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차별 때문에 상처입고, 사춘기 자녀들이 무시해서 온통 썩어버린 가슴, 그 모든 ‘내 정직한 모습’을 쓸어안고 하나님께 그 모습 그대로 나아가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하나님께 활짝 열라.
“하나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욕심, 욕망, 야망, 비교의식, 경쟁의식을 제 의지로 다스릴 수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에 찌들은 저를 주의 형상으로 빚어 주옵소서.” 이것이 굶주림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기대감이다. 시편 42편은 이 굶주림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 42:1,2)
하나님을 갈망함으로 일주일을 집중해서 살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된다. 주일 예배를 향하는 발걸음에 간절한 기대감이 살아 있을 때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게 된다.
– 이유정(예배사역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