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멕시코 휴양지인 캔쿤 인근의 리비에라 마야를 다녀왔다. 섬기는 교회의 평신도 워십리더들과 후배 가족이 9년 동안 수고했다며 모든 비용을 지원해서 함께 휴가로 다녀온 것이다. 10여년 만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인터넷도, 전화도, 시계도 없이 4박 5일을 지냈다. 처음엔 적응이 안 되었지만 차츰 이 원시적인(?) 삶에 익숙해졌다. 핸드폰이 없으니 오히려 상대방을 더 생각하고 미리 챙기고 묵묵히 기다리기도 한다. 인터넷이 없으니 세상사는 어둡지만 눈앞의 사람과 관계에 더 집중한다. 시계가 없으니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하루가 더 여유롭다.
돌이켜보면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빠른 정보소통은 없어도 느긋한 여유로움에 사는 맛이 있었다. 그러 요즘은 이 편안함이 문명의 편리함에 의해 제거 당하고 있다. 어른들이 대화하는 한켠에 자녀들이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는 모습은 흔한 일이다. 저녁 식사 마치고 가족이 함께 대화할 시간에 각자 자기 방에 들어가서 인터넷 서칭과 페이스북 하는 모습은 일상사이다. 그래서 필자는 아이들 방에서는 TV, 컴퓨터를 아예 못쓰도록 못 박았다.
최근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게임 그리고 텍스팅(texting) 같이 점차 그 양이 늘어나는 테크놀로지의 자극이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테크놀로지 세대의 산물 가운데 하나가 멀티족(multi-tasker)이다. 이들은 노트북에서 영화를 보며 공부하고, 인터넷 서치하며 커피를 마시고 텍스팅 하는 등 동시에 두세 가지 행동에 능숙하다. 요즘 청소년, 젊은 세대의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멀티태스커들이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2009년 뉴욕타임즈에 보도된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는 이 상식을 뒤집는다. 이 자료에 의하면 멀티태스커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산만한 사람들”이었다. 즉 멀티태스킹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주위가 산만하고 맡겨진 일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가설을 뒤엎는 충격적인 결과이다.
UC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한 연구 결과도 멀티태스킹의 해악성을 지적했다. 스마트폰이나 쇼셜 네트워크에 의한 주의산만이 두뇌활동과 장, 단기기억(long-term, short-term memory)에 장애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빈번한 자극과 멀티태스킹은 우리의 두뇌를 손상시키며, 더 나아가 다양한 최신 테크놀로지의 유혹에 저항할 힘을 잃게 만든다. 그 결과는 테크놀로지 중독이다. 그래서인가? 최근 테크놀로지 다이어트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휴가 마지막 날 이른 아침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몸은 피곤했지만 내 발걸음은 바닷가를 향하고 있었다. 나무 그늘 밑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수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소리도 귀에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박한 문명에 짜든 영혼에 안식을 주었다. 그 자연의 소리들이 내 심장에 그림을 그렸다. 이때 떠오른 시상이다.
“이른 아침 넘실대는 파도 소리 / 지저귀는 열대 새소리 / 귓가에 오가는 바람의 여유로움 /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속삭임 / 파라솔에 홀로 누워 / 흐르는 소리에 심취한다 / 아무런 조직도 프로그램도 / 편곡 악보도 없이 / 다양한 피조물이 저마다 노래하지만 / 불협화음 하나 없는 자연의 향연 / 그 신비에 묻어있는 / 창조의 DNA가 보이듯 하다 / 그 노래에 실려 있는 / 태초의 소리가 들리듯 하다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훌륭한 시는 아니더라도 등 떠밀려 떠난 이번 휴가의 가장 값진 깨달음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소리까지 들었으니 테크놀로지 다이어트 4일의 효과가 대단하다. 제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테크놀로지가 진화해도 인간의 행복은 결국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친밀함에 있다. 올 여름, 휴가를 계획할 때 ‘테크놀로지 다이어트’ 해봄 직하지 않겠는가? 혹 휴가를 꿈꿀 처지가 못 되더라도 이 새로운 다이어트로 단절된 가족 간의 대화를 회복해보길 강력 추천한다.
– 이유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