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2월


찬 양이 찬양되게 하는 것은 찬양 안에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전에 나누었던 것처럼 물론 예배를 준비하는 찬양인도자의 준비가 중요하지만 예배에 참석하는 회중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찬양으로 표현하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찬양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을 다른 이유로 말하기도 한다. 즉 전통적으로 예배와 찬양을 드리거나 드리지 않거나 하는 문제와 또한 그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부분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다 예배와 찬양을 드리는 사람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실 요즘 우리가 드리고 있는 찬양 대 부분은 몇 년 전만 해도 사실 교회에서 불려지기 어려운 곡들이 많다. 장르 역시 다양해져서 이전에는 발라드와 칼립소의 빠른 비트(찬송가의 빠른 곡들)를 가진 것이 전부였었지만, 이제는 세상음악과 경쟁이 가능하게 된 것이 현대 찬양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지금 우리가 많이 부르는 찬송가 역시 과거에는 그러한 대접들을 받아 왔다.


과 연 이렇게 뭔가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찬양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 만일까? 솔직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음악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여졌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 갈급한 마음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찬양인도자로서 그리고 예배자로서 하나님 앞에 있었던 사람 다윗의 고백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배의 마음이 어떤가에 대해서 잘 나타내고 있다. 고라자손의 그 유명한 시편 42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같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이다.


오 래 전에 부산에서 찬양인도를 하고 있었을 때의 일은 나에게 아직도 예배인도자로서 가져야 할 태도를 기억나게 한다. 한 번은 일주일 내내 찬양인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같이 찬양인도를 담당한 형제가 갑자기 불평 아닌 불평처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일주일 내내 첫 찬양이 목마른 사슴인데 이제는 너무 지겨워서 하기가 싫다고 말이다. 그 말을 하기까지 나 역시 몰랐었지만 일주일 내내 첫 찬양을 아니면 중간에라도 목마른 사슴이라는 찬양을 했었던 것이다. 그 때 후배에게 해 주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목마른 사슴이라는 노래를 부르지 말고, 네가 목마른 사슴이 되도록 노력해 봐라. 그러면 찬양의 지겨움이 없어질 것이라고. 사실 그렇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은 노래로 표현한다면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계속해서 새로 나오는 찬양들이 어떨 때에는 은혜 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 요즘의 찬양을 듣고 있으면 음악적인 센스는 뛰어나지만 오히려 뭔가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찬양에 대한 편협 적인 생각들 역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찬양이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고 있기에 단순한 노래하는 것으로 묶어 버린다면 아쉬운 일이다. 우리는 찬양하면서 기도할 수 있고, 또한 찬양하면서 영적인 전쟁을 할 수도 있다. 모르는 노래가 나오기 때문에 찬양하지 못한다고 하지말고,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 역시 요즘 영어권 Youth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시험거리이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사랑한다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찬양은 하나님이 대상이지만 그 대상을 향하는 우리 역시 중요한 것이다.


찬 양의 다른 표현은 묵상이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 분이 하신 일을 생각하는 것이 찬양의 또 다른 방법이다. 때로는 침묵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조용히 듣는 것 역시 찬양의 한 방법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연 묵상이다. 석양의 지는 해를 보고 있을 때에는 이 세상 최고의 아티스트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바다에 출렁이는 소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어떤 오케스트라도 표현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늘을 나는 새들 역시 지저귀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이고 있다. 우리가 소리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번에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로 사역지를 옮기면서 24시간이라는 거리를 운전하면서 가는 동안 지나면서 각양 각색의 바위들과 돌을 보면서 하나님의 섬세하심, 그리고 광대하심을 경험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 오랜 거리를 지나는 동안(물론 하나님께는 짧지만) 하나도 똑같지 않는 모양의 바위들, 풍경들이 나로 하여금 절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었다.


그 러나 역시 하나님은 우리의 직접적인 찬양을 원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한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사랑의 고백, 갈급함을 원하신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하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혹시 여러분은 오늘 찬양을 대할 때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들을 따라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필요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를 지으시고 만드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