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세미나는 전체 집회 참석자 천여 명 중 아주 제한된 수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중요한 내용이 모든 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STA VOICE에서는 코스타 기간에 열리는 세미나 중 다섯 분의 세미나 강사님들을 인터뷰하여 전체의 참석자이 지면을 통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만날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김범석 목사 – 와우! 북한 탈북자 현장 바로 보기
1. 김범석 목사님, 안녕하세요, 올해 다시 코스타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코스탄 여러분 안녕하세요.여러분들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열매나눔재단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무총장 김범석 목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년 목회에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저만 주장하지 하나님과 다른 분들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저의 자리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인 탈북자와 빈곤 여성들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 코스타를 통해 우리 청년들도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를 찾아가고 그 귀한 달란트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2.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신앙간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모든 사람은 그냥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태어나서 그냥 살다 갔다면 너무 허무 하지 않습니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보면 결론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無(무) 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을 살아 가라고 하면 참 가치 없는 인생 같습니다. 그러면 정말 가치 없게 살고 말 것 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無(무)’가 아닙니다. ‘有(유)’ 입니다. 분명 어떤 목적이 각자에게 주어 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정해집니다.그 정해진 목적 즉 각자의 그릇,달란트를 빨리 발견하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이것을 몰랐습니다. 1997년 IMF 당시 집이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부도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다니는 중간 이였는데 학비와 차비가 없을 정도로 망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과일 장사를 4년간 했습니다. 하나님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신학 대학원을 가야 하는데 저는 유학을 가서 신학 교수가 되어야 하는데, 장사를 하게 되니 제 꿈이 완전히 틀어진 줄 알고 하나님에 대해 원망을 참 많이 했습니다. 돈으로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한 저는 그 뒤 저의 삶의 목표는 돈이 되었습니다. 즉 저의 삶의 목적은 잘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잘 사는 것이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 열심히 죽도록 일했습니다. 시장에서 과일 도매업을 했는데 그때 참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생기면 잘사는 줄 알았는데 잘 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마음에 돈만 있지 평안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장사를 끝나고 아내에게 적금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 요즘 돈만 이야기해’‘ 난 당신이 돈만 이야기 하는게 싫어’ 그 한마디는 저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그 뒤 일주일 만에 저는 모든 사업을 접고 쪽방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돈이 있었던 시절 보다 쪽방에서 가난한 분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던 지난 10년이 더 잘살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창조주 하나님이 저를 창조한 목적을 발견하였고 그 목적대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돈은 없지만 지금 참 행복합니다. 돈이 있어 평안이 없던 때 보다 돈은 없지만 평안한 지금이 너무 좋습니다.저는 지금 너무 너무 잘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세계관을 받는 것은 바로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삶은 참 행복하고 즐거운 삶입니다.평안한 삶입니다. 고난과 고통도 우리의 이 행복은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코스탄 여러분 모두가 이번 집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평안과 비젼을 발견하길 기원합니다.
3. 요즘 열매나눔재단이라는 곳에서 일하시고 계신데요, 하시는 일과 재단의 비젼이라든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의 영문 명칭은 Merry Year Foundation 입니다. Merry Year 라는 뜻은 기쁜 해,즉 희년이란 뜻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희년이란 기독교의 50년제를 기념하여 수고하고
축 적된 부의 재분배를 통한 빈부의 재편,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는 구제의 관습이었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은 이러한 희년의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 사회에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여 이 시대 속에 잃어버린 기독교 신뢰를 회복하고자 만들어 졌습니다. 빈부의 재편을 통한 희년 정신의 실천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은 그 출발부터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즉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선 설립 주최가 된 교회부터 가진 자의 권리를 포기하길 하나님은 원하셨던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많은 기독교가 선 성장 후 복지 선교를 외치며 가난한 이웃들에게 전도와 선교를 포기 하고 모두가‘보이는 성전 건축’에 수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매달렸을 때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하나님은 높은뜻 교회에 진정한 성전의 개념을 알려 주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이 가있는 곳 그곳은 먼 예루살렘이 아닌 가까운 우리 이웃들이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있었던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린 이를‘보이지 않는 성전’이라 칭하여‘보이는 성전 건축’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웃을 자활 자립 시키기 위해 재단을 건축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재단의 비전은 잃어버린 한국 교회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회복하며 이를 통해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모두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며 목표입니다.
4. 노숙자라든지, 새터민(탈북자)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 해오시고 계시는데요, 이런 활동 속에 기독교 신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성경을 보면 두 가지 종이 있습니다.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입니다. 이중 충성된 종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있습니다. 바로 순종입니다.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 주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어디서 받을까요.기도를 통해서도 받고,자연 계시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가장 큰 말씀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다 짜 보니 그게 바로 마 22장 34-40의 ‘사랑’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여기서 내 이웃은 우리 가족도 포함되지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소외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우리 사회에 고아와 과부 나그네가 누구일까요? 그분들이 바로 저에게 있어서는 노숙자와
독거노인과 탈북자 들이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그 명령을 잘 따르는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기독교인 이라고 하면 그 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이 충성된 종의 역할이라 생각하기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5. 이런 활동 중에 인본주의적인 접근보다 기독교적인 통전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이런 다양한 활동 가운데 기독교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경험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보고 측은한 마음을 담아 구제하는 사역은 어느 종교도 다 하고 있습니다.아니 사실 우리 기독교 보다 더 잘하는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종교와 우리의 사역을 비교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출발이 다르기때문입니다. for(위하여) 과 with(함께) 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가난한 지역에서 노숙자와 쪽방 주민을 섬기다 보니 참 어려운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수년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프로포절을 넣어 설날에 쪽방 주님들에게 모두
5만원권 상품권을 나누어 준 적이 있습니다. 사전에 쪽방 주민을 조사하여 총 2천 700장을 받아 2,700명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설날이 끝나고 상품권 사업을 종결할 시점에 상품권을 받지 못한 몇 사람들이 찾아와서 상품권 달라고 횡포를 부리며 저희 센터의 유리 창을 깨고 석유를 붓고 불을 지른 적이 있습니다.그 때 참 죽을 뻔 하다 살아 났습니다. 또 한 번은 상품권을 주지 않는다고 제가 퇴근할 때 골목에서 각목으로 저의 머리를 쳐서 머리가 깨진 적이 있습니다.그 때도 이제 죽는 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너무 화가 났고 가난한 분들이 너무 증오스러웠습니다. 나는 자기들을 돕기 위하여(for) 왔는데 .. 나는 지들을 살리기 위하여(for) 왔는데… 라며 원망하고 쪽방 사역을 그만두고 싶어 몇 번을 고민한적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왜냐하면 그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저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예수님은 죄인된 저를 위하여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함께(with) 하기 위해 오셨는데…. 십자가를 생각하며 무섭고 떨리지만 사역을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우리의 사역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니 그 무섭고 힘들게 했던 그분들이 지금은 나의 친구 나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저를 통해 쪽방에 들어온 숭의교회 청년들은 쪽방 사역을 누구 누구를 위하여 봉사하지 않습니다. 우린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 분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자 이 일을 합니다. 이와 같이 불쌍해서 봉사하는 다른 종교와 그 근본이 틀린 출발점(With)을 우리 기독교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의 마음.우리와 함께 하셨던 그분의 마음. 그것이 다른 출발점입니다.
6. 한국이나 미국이나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삶의 불일치, 신앙과 사회적 책임의 불일치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같습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사회적 책임을 좀더 하기 위해서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회개 입니다. 구원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는 개인적 회개가 필요 하듯이 우리 기독교도 사회에 침묵하고 무관심한 일에 대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란 틀에서 사회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달려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책임은 사회 전반에 책임적 존재로서 기독교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고 함께 하는 것은 기독교의 책임적 사명이였습니다. 우린 선 성장 후 선교 논리에 매달려 그 들을 외면했습니다. 경제적 논리 속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묵인 되었습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이웃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에 대하여 기독교는 침묵하였습니다.
이제 이런 것들을 기독교 공동체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으로 이웃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개인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회개 없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봅니다. 각 공동체의 깊이 있는 회개만이 우리를 온전한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7. 진로를 계획하고 고민하는 코스탄들이 많습니다. 사회적 선교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강한 도전 한번 해주시죠.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을 변화 시킬 한 사람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체 속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 한사람이 될 순 없습니다만 부분으로는 각자 역할에서 충분히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엔진입니다. 그러나 엔진만 있다고 자동차가 가진 않습니다. 엔진을 받쳐 주는 수천 가지 . 부속의 결합이 있어야 그 엔진의 역할이 엔진다워 집니다. 성경을 보니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금 그릇의 달란트 어떤 사람은 은 그릇의 달란트 어떤 사람은 질 그릇의 달란트를 가집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금 그릇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 그릇이 최고다 라는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모두가 다 금 그릇이 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선 그 각자의 역할이 틀린 것이지 모두 한 그릇으로 소중한 그릇입니다. 우리 코스탄들이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그릇의 역할을 다 한다면 그게 바로 그 세계 속에 하나님이 찾는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회선교를 너무 크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잘하는 공부 접어 두고 투쟁가나 선교사가가 되면 세상은 참 힘든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저는 개인 적으로 코스탄 여러분들이 현재 있는 각자의 위치에서 소외된 우리 이웃들을 돌보고.세상의 거짓에 대해 아닌 것은 당당하게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그것이 바로 사회선교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두가 다 금 그릇은 될 수 없지만 모두 사회 선교사는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진로를 결정할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진로의 결정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는 금 그릇과 질 그릇 모두다 소중한 그릇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 앞에선 그게 바로 금 그릇이며 또 그게 바로 사회선교사 입니다. 세상 속에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는 사회선교사가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