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집회 간증
2008년 7월 2일 >  

– 옥수정 – 

제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지 이제 여섯 해가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무려
30년 동안 소위 ‘모태 신앙인’으로, 특히 목사의 딸로
자라면서 교회에서 시키는 것은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교인으로 살았지만, 사실 제 속사람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순종적이어서 부모님께서 시키시는 일들을 기꺼이
다 하려고 했습니다. 골수 고신파답게 저희 부모님의
요구 사항 일순위는 주일 성수였습니다. 시험 기간이라도
주일날에는 절대로 공부하면 안되고, 쇼핑하거나 음식을
사먹어도 안되고, 심하게 아픈 게 아닌 이상 주일 예배를
빠져도 안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요구들을 아무
문제 없이 만족시켰던 저는 부모님과 교회 어른들께
칭찬받는 ‘타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이후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질문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창조자, 절대 초월자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왜 그 신은 기독교의 하나님이어야만 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단지 기독교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등등. 부모님께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간이 지나면 그런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의심과 회의는 어리석은 것이다’라는
식의 무관심에 가까운 부정적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항아가 되기를 포기하고 어떻게든 그런 고민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부
시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을 대했을 때, 제
자신이 믿는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게
당연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무엇을 믿는지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제가 구원받은 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제 삶에 성령의 열매가
맺힐 리 없었습니다. ‘전도’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친구들에게 예수님
믿으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힘들어하면서
겨우 순종하는데 남들에게 어떻게 이 짐을 지라고 하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크리스챤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일쑤였습니다. 각종 자격증 시험이 주일에
치뤄지기 때문에 손해보는 것이 많다고 느꼈고, 그
억울한 마음 때문에 엄격하게 규율을 지키지 않는 다른
크리스챤들을 보면 ‘가짜’라고 비난하는 가시돋힌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입시에서
실패했고, 집안의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 재수하겠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님이 가르치신 종말론
때문에 10년 이상의 먼 미래를 구상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라 아버님이 권유하신 전문대 야간부를 다니며 낮에는
유치원 보조 교사로 일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렸지만, 저는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희생을 요구하셔도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길이 인정받지 못하는 낮은
자리라고 생각해서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은근한 자부심마저 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
그 결정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이 종말론을
통해 줄곧 강조하셨던 것처럼92년에 등장하게 된다던
적그리스도의 앞잡이, 유럽 연합대통령이 결국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제 마음 속엔 쓰디쓴 원망감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의 종말론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아버지는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 가르침에 제 인생을, 창창한 청년의 미래를
전부 걸었는데 말입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진저리나게 싫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자리에 앉아도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설교하시는 아버지 얼굴을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잘못 들어선 제 인생길이 한탄스러워서, 겉으로 내색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 때문에 속앓이하면서,
아무도 없을 때면 골목길을 걷다가도 눈물을 쏟곤 했습니다.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며 반 년을 보낸 후, 아버님 말씀대로가 아니라, 제
자신이 바라는 꿈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민 끝에 유아교육과 다닐 때 접했던 아동 심리학이
제 인생을 걸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금 벌어놓은 돈으로 재수를 해서 목표했던 심리학과에
들어갔습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게 되어 너무나
감격스러웠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과외를 하면서 점점 지쳐갔고, 인생살이의 고달픔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대했던 장학금 심사에서 밀려났을 때, 선배들이
나이많은 후배인 저를 대하기 어려워한다고 느꼈을
때, 과외하느라 학과 공부할 시간마저 부족했을 때,
그 모든 원망의 화살들은 어김없이 ‘아버지’라는
표적으로 날아가 꽂혔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이 꼬이게
된 것이 모두 아버지의 탓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꾸려가는 것이 너무 버거워
마지못해 사는 심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가슴 속에 담은 채로 유학을 준비하기까지
이르렀고, 그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갈수록 더 웃음을
잃고 찡그린 표정만 짓는 살벌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제 동생이
다른 교회에 나가 그토록 찾고 찾았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제 동생은 그 기쁨과 감격을 혼자만 누릴 수 없어서
내켜하지 않는 저를 설득하여 그 교회로 초청했습니다.
너무나 낯설게도 그 교회 분들은 신앙 생활의 감격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밤새는 것을 예사로 여길
만큼 헌신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신앙의 원동력이 어디있는지 궁금해졌고, 결국 한 양육자
언니와 일대일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되는 만남을
통해 제가 평생동안 큰 희생을 감수해가며 지켜온 신앙이
실상은 맹목적 신념일 뿐, 어떤 근거나 토대에 바탕을
둔 확신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수도 없이 읽고, 셀 수 없이 많은 설교를 들어왔지만,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의 실재성, 그중에서도 특히 예수님의
부활이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실제 사건이었음에
한번도 주의를 기울여 본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절대 일으킬 수 없는 그 부활 사건이 하나님의
실재하심,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 그리고 그분이
하셨던 모든 말씀을 신뢰할 수 있음의 확실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후 저는 마치 부러지기
일보 직전의 비틀거리는 의자에 엉거주춤 걸터앉아있다가
넓은 침대 위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쉴 수 있게 된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고 정말 기뻤습니다.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언니가 저에게 요한복음을 읽어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2천년 전에 이스라엘 땅을 돌아다니시며
사람들을 만나실 때 무엇을 느끼셨을지,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발견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 예로 요한복음
8장에 기록된 사건이 바로 제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게 묘사해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에게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시던 그 현장에 같이 동참하여
예수님 바로 옆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몰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려보내신 예수님께서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시며 뭐라 하시는지 말해보라고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진지한 언니의 기대를 무시할 수가 없어
답을 대충 만들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쓸 만한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고,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된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쩔쩔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
그렇게 텅빈 스크린 같았던 제 마음에 마치 타이프라이터가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를 투둑 쳐서 새기는 것처럼
딱 하나의 문장이 튀어나왔습니다. “수정아,
내가 너를 위해 죽었다.”

그 대답을 언니에게 말해주는데, 왜 그런지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 제가 예수님의 생생한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도 아니지만, 그
일 이후로는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은 셀 수 없이 많이 들어왔고
그런 가사의 찬송을 수도 없이 불러왔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옥수정이라는 이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온통 쏟아부으시는 분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십자가의 죽음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가슴아픈 사랑의 고백임을 모른 채,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로 30년을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저 온 인류 중의 한 사람, 수 백억 분의
일이라는 미미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로지
저를 위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실 만큼 소중한
그 한 사람임을 깨닫고 나서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행복한
사람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 제 자신의
힘으로 꾸려가야 한다고 믿으며 꾸역꾸역 짊어졌던
고달픈 인생의 무게, 그리고 어둡게만 보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유와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아버님의 얼굴조차 쳐다보기 싫을 만큼
지독하던 그 원망과 미움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샌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미움이 모두 사라진
마음이 얼마나 가볍고 자유롭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남에게는 별 관심도 없이
제 자신의 일만 생각하며 전전긍긍 살았던 저의 좁은
시야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부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로
이 세상이 가득하구나! 그리고, 제 남은 삶을 드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시는 일에 쓰임받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처럼 놀랍고 감사한
새생명의 축복들을 맛보기 시작한 다음 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미국에 오긴 왔는데, 막상 하나님께서
왜 이 길을 허락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하나님께서 박사과정 그만 두고 한국으로
돌아가 시장에서 생선팔아라 하셔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종 ‘살기 힘든 이 땅에서 굳이 더 살 필요가 뭐 있나?
하나님 곁으로 빨리 불러주시면 그게 제일 좋겠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기쁨만으로
너무 만족스러워서 이 땅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제게 이 땅에서 살
시간을 더 주시는 이유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잃어버린
영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가 누리게 된 은혜와
축복에 동참하도록 돕는 것임을 알았지만, 제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굳이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은 곧바로
제게 한 영혼을 맡겨주셨습니다.
 

입학하자마자 나가기
시작한 대학원생 성경공부 모임에서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갖는 질문을 계속하는 신입생
한 명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던 중 그 친구가 우울증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왔고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이 학교에 보내신 이유는 그
친구가 온전한 생명을 되찾도록 돕는 데 있다고 생각했고,
그 확신만을 붙들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한동안은 연구와 수업을 완전히 접고 그 친구에게 붙어
있기도 했고, 지금은 룸메이트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난 2년 간 많은 위기가 있었고,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는
과정 속에서 결국 제가 그 친구를 돕는데 철저히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년 전 처음으로 그런 무력감과
절망을 경험했을 때, 너무나 힘들고 답답해서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연일 통곡하며 기도하던 중 에스겔이
본 마른 뼈 환상이 생각났습니다. 집에 와서 성경을
찾아보니 에스겔 37장이었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4-5절)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 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3-14절)
이 약속의 말씀이 저를 붙들어주는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몸은 살아있어도 죽음의
나날을 보내는 그 친구에게 기적처럼 생기 넘치는 삶을
되찾아 주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된 후로 지금까지
그 친구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담대할 수 있는
평안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를 알아온 5년
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스케일로 일을 해나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제가 아무리 원해도 제 힘으로는 그 친구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시편 46편
10절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Cease striving and
know that I am God; I will be exalted among the nations, I will be exalted
in the earth.”(NASB)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어려운
일을 앞에 놓고 생각해야 할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임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불안과 절망 속에 빠져있는 그 친구를 돕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고민이 들 때마다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너는 도울 능력도 없으면서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거니? 그럴 게 아니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봐야지! 네가 해야할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꼭 알려주실거야. 걱정마…’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가슴아픈 것인가였습니다.
한동안 그 친구의 상태가 좋아졌을 때, 다른 친구들과는
즐겁게 어울리면서 정작 저를 멀리했기 때문에 제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어째서 자신을 도우려 애쓰는
저를 무시하고 거부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때때로 서러울 정도로 속상하고 슬펐지만, 결국은 그런
고통의 경험이 제 안에 사랑없음을 깨닫게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는 유익이 되었습니다. 나를 반겨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만, 나를 무시하고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날카로운 가시를 삼키는 것처럼 아프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 손에 의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닮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며 저도 그 사랑을 품을 수
있게 되길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이후 4년간 확신과
도전, 응답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는 남부러울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확신, 감격, 기쁨, 감사, 평안,
열정…30년을 껍데기 크리스챤으로 살면서 절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다 얻고 나니 그 희열에 들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룸메이트를 돕는 일로 때론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항상 제 편이셨고
또 제 기도에 즉각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만만한 마음을 품고 있던 저를 하나님께서 크게
치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작년 1월, 운전시작하지
얼마 안되서 갑자기 폭우를 만났고, 당황한 마음에
앞차를 들이받아 크게 부서진 그 차가 견인되고 등이
아프다는 운전자는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전혀 기도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고가 날 때 하나님은
도대체 뭘하고 계셨단 말인가? 전지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그 사고가 나는 걸 막지 않으셨나?
이런 회의와 의심이 석 달 넘게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 부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보험회사에서 모든 걸 처리해주길 노심초사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협상에 쉽게 동의하지 않아서 제가
고소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는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돈도 한푼 없는데 어떻게 재판을 치루나, 피해보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면 학업을 중단해야하겠지 등등, 끝도 없는
고민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너무나 막막했고 사람들에게는
말하기조차 싫어서 할 수 없이 하나님께 따져보기라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
 

그래서 새벽기도를 다시
나간 그날의 본문이 스가랴 13장이었습니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스가랴 13장9절) 이 말씀 앞에서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다 저멀리에서 빛이 들어오는 출구를
본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제 믿음이 얼마나 연약하고
얕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어려움이 닥치자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의심하고, 그동안 누렸던
기쁨과 감사를 모두 잃어버릴 정도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실 것이라는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상황의 끝에는 제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
보여주는 결과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나타날 것이고,
결국 ‘나의 하나님’이 그 어둠의 골짜기를 통과하도록
인도하셨노라고 자랑하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넉 달이 흘러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답답해하던 중 다시 피해자가 고소할 것 같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최종
결과까지 기다려 보기로 마음을 다잡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이시니
두려워말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해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 말씀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그 힘든 나날을 버틸 수 있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고가 난 후로 열 달을
채우고 나서야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연단받아야할
만큼 저의 믿음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고, 저의
교만함은 하나님 앞에 심히 가증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그 일을 통해 제 믿음이 조금이라도
더 든든해졌기 때문에, 제 교만함이 조금이라도 허물어져서
제가 가야할 낮은 자리에 좀더 가까와졌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해지기 위해 얼마나
더 배워야하고, 변화되어야하는지, 제가 앞으로 가야할
그 먼 길을 흘낏 본 것처럼 조금은 감잡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6년 전 여름, 저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놀라운 빛으로’ (벧전2:9)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 인생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요5:24) 옮겨주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제 안에 일으키신 변화는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의 저로 바꾸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여섯 해를 보낸
지금도 아직 변방에 있는 것 같아 쉬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더 가까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의 변화가 너무나 기대됩니다. 비록
지금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절감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셔서 이루시려는 일이 있다면 제게 이 땅에서
살아갈 날을 더 허락하시고 또 감당할 힘과 능력도
주시리라 믿고 바라며 하루하루 하나님만 의지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