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10월호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 대 (마태복음 19장 16 27절)


과거에 마태복음의 부자청년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 청년,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냥 순종하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했을까 말이다. 그런데, 부자청년의 고민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속에서 내가 바로 고민하는 부자청년이 되어 버렸다.


두 가지 사건
(1).1995년, 1996년
포기할 때 채워주시는 은혜. 그 감격을 누린 적이 있었다. 대학교 2학년 2학기. 경영학도인 나는 2학년이 끝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이 선배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최고의 코스였다. 대학2년, 군대, 어학연수, 나머지 2년, 취직… 이렇듯 빈틈 없이 준비했다. 편하게 가고 싶어서 카투사 준비도 해서 시험도 보았고, 서클활동을 하며 배운 악기실력을 가지고 군악대 시험도 보았다. 두 가지가 다 안 되도 군대에 갈 수 있도록 입영 원도 일찌감치 내 놓았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군대를 가야 했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러한 철저한 계획에 틈새를 가게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교회 대학부 임원이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대학교 3학년의 나이가 되는 형제, 자매들을 대학부 임원으로 선출하였다. 당시 찬양 팀에서 섬기고 있던 나에게 형, 누나들은 찬양팀 장으로 섬기라고 섭외를 하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 인생의 계획을 찬양팀 1년 섬기는 것 때문에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95년 가을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믿었던 카투사와 군악대 시험에서 난 낙방을 하고 말았다. 큰 두개의 시험 사이로 3번 정도 보았던 운전면허 시험에서조차 난 떨어졌다. 뭐 대단한 실패는 아니었지만, 이제껏 낙방에 익숙하지 않던 나에게 짧은 시간동안 발생한 연속적인 실패의 충격은 컸다. 임원총회가 있는 11월 중순이 다가오면서 이전의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군대 1년 미룰까?


내 계획에 없던 대학교 3학년은 쉽지 않았다. 돌아온 복학생들의 공부하는 모습에 나 스스로 메뚜기처럼 느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부족함 가운데 자연스럽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고, 주님은 이제 막 첫 포기를 한 나에게 기적과 같은 성적을 거두게 해 주셨다. 내가 포기한 작은 것에 넘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96년 한 해 가운데 하나님은 성적, 친구, 사역, 선교여행 등등 세상 누구도 부러워 할 것들로 가득 채워 주셨다.


(2). 2002년, 2003년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미국경기, 대학원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금새 마지막 학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나 다 하게되는 진로문제.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결정은 한국에 가느냐 미국에 좀 더 있느냐에 있었다. 졸업을 하게 되면 반드시 사회에 나가서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 오랫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낭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용서될 수 없었다. 그것은 숨가쁘게 진행되는 경쟁사회에서 낙오를 뜻하는 것이었다. 예전대로라면, 직장을 따라 어디로든 가야 했다. 하지만,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이 있었다. 대학원 2학년 들어오면서 시작한 Campus Bible Study 간사의 사역이었다. 내가 맡고 있던 그룹은 82년부터 84년 사이에 태어난 학부 1학년, 2학년 학생들이었다. 말씀을 준비하고 가르치는 가운데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셨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고통 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그 은혜와 사랑이 감격스러워 “예수님 사랑합니다” 라는 고백을 진심으로 할 수 있었고, 요한복음 21장의 예수님의 말씀인 “나의 양을 치라”.는 나를 향한 개인적인 명령으로 다가왔다.


중대한 결정 앞에 한 영혼은 진정 크게 다가왔다. 영혼과 나의 확실한 미래를 사이에 두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정을 앞두고 교포친구에게 물어보았다.“”Bible Study때문에 미국에 더 있는다는 것이 이해가 되니?“ 친구의 답은”It does not make sense.“ 였다. 그렇지만, 확실한 미래를 나는 어렵지 않게 포기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주신 영혼을 섬길 수 있는 기회에 나의 마음이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영혼에 대한 소중함과 더불어, 예전에 경험했던 포기에 대한 채워짐의 확신 또한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졸업후의 현실은 정말로 만만하지 않았다. 분명 신앙의 연륜은 깊어졌는데,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진 것 같은데, 96년에 있었던 것과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Bank account에 날마다 돈이 줄어들고, 어렵사리 하게 된 인터뷰를 통과하는 건 더 어려웠다. 눈에 보이는 기적 없이 3달이 지나가니 자연스럽게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고, 나의 결정에 대한 후회마저 들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기는 하신 걸까? 포기는 분명히 했는데, 하나님은 왜 안 채워주시나?


축복과 형통에 대한 탐구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지나온 3개월을 돌아보니 하나님은 어느 때보다 더 신실하게 내 삶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걸 깨닫게 된다. 물질적인 채우심보다 더 크고 중요한 영적인 채우심을 진행하고 계셨다. 어려움 덕분에 기도의 시간과 말씀 보는 시간이 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은 다시 한번 십자가의 사건을 더 분명히 깨닫게 하셨다. 이미 주신 그 사랑, 그 크신 사랑이 나를 채우니 나는 부자가 되었다. 간구하기가 어려웠다. 그 은혜와 사랑은 나의 낮아진 맘 가운데 더 강하게 더 깊게 부어졌고,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더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나의 물질 관과 성공 관이 변화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소유와 성공에서 자유하지 못하면 예수님 따라가는 삶이 얼마나 온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세상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며, 고통과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고난과 고통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일일이 구체적인 해결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올 천국에 대한 확실한 그리고 진실한 소망을 갖는 것이다.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 그리고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 하나님이 주신 너무도 놀라운 채움 앞에 신실하게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