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리더는 자기관리 계획을 통해 성장하라.


21세기에 사회와 교회에 요청되는 리더십의 대표적인 유형은 섬기는 리더 (servant leadership) 이다. 아마도 근대 시대에 공동체와 리더, 권위 중심의 시대에서 근대 후기의 개인, 서비스 중심의 시대로 사회와 문화의 흐름이 변화된데 그 연유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더십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00년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시고 실로 본을 보여주신 성경적 리더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 10:44) 가르치셨고,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막 10:45) 라고 말씀 하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 자신도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까지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삶을 사셨다 (요 13장):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 요13:15)


예수님은 이미 이 시대를 향해 무엇이 참된 리더십이고, 무엇이 우리의 형제자매를 구원할 수 있는지를 2000년 전부터 가르쳐 주셨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 역시 이미 2000년 전부터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가르쳐 주어 왔다. 물론 기독교 리더십에 있어서 중세의 십자군 전쟁과 같은 부끄러운 부분의 굴곡의 역사가 있기도 하였지만 그런 가운데도 끊임없이 기독교 내에서의 리더십 갱신과 섬기는 종의 리더십 정신 회복의 노력은 이 역사를 주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인이든, 단체장이든 누구든지 선거에 나갈 땐 이 예수님의 리더십 원리를 적용시키지 않으면 나올 수도 당선될 수도 없는 역사 이지 않은가!! 물론 당선 후 왜곡되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또 다시 선거에 나오려면 그 후보의 섬김의 리더십이 그 후보의 재출마에 있어 유권자 판단의 큰 잣대가 되는 이유를 보아도 이 역사의 리더십은 여전히 예수님의 섬김의 리더십에 의하여 인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성서에 나타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성서에서 ‘섬기는 삶’을 뜻하는 단어는 ‘아바드(abad)’ 라는 히브리어 단어로 , 그 뜻은 “섬기다 (serve)” “복종하다 (obey God: 아람어에서 주로 사용)” “노동하다(do work for others)” “예배하다(worship)” 등등의 뜻이다. 이러한 다양한 측면의 역할과 모습가운데 공통되는 분명한 기초 두 가지는 첫째, 성서에 나타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은 ‘ 남을 높이고 세우기 위해 내가 도와주는 삶’ 이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초점 하나는 이 섬긴다는 성서의 단어 뜻 속에 ‘섬김을 통해 내 것을 챙긴다’ ‘보상 받는다’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섬기는 이의 자세는 내가 이것을 하면 저 사람이 이것을 주겠지 라는 보상 심리 (give and take)의 원리를 가져지는 것은 잘못된 섬김의 자세인 것이다. 이것은 뒤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리더를 지치게 만들고 오히려 영적 시험에 빠지게 하는 바이러스가 된다. 나를 통해 다른 형제자매가 살아나고 그의 필요가 채워지고 회복되는 것 자체를 위해 섬기는 리더의 모습이 성서에서 의미하는 섬기는 리더의 자세인 것이다. 둘째는, “남을 높이고 세우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힘, 지혜, 의지, 능력, 재물 ― 등등의 것을 ‘ 나누는 삶’ 이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초점 하나는 섬기는 리더의 자세는 내가 가지고 있는 주님이 주신 은사(gift)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 것은 놓아두고 다른 사람의 것을 가지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런 면에서 섬기는 리더의 모습은 주로 내 것을 재생산 해 내기 보다는 어떤 면에서는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지도록 도와주고 내 것을 나누는 삶, ‘퍼 주는 삶’ 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자신에게 있는 것을 퍼 주다 보니 어느 순간 리더에게 더 이상 퍼 줄 것이 없어지면서 리더십에 감기 바이러스가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는 지치게 만들고, 섬기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 리더가 섬김을 위해 더 이상 퍼 줄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 하나님은 인간을 성장하도록 만드셨다. 이것은 육체적인 면에서, 심리적인 면에서,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 모두 똑같이 성장하도록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다. 따라서 인간이 시간이 가면서 이 세 가지 모두 성장하지 않으면 문제가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어린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의 육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육체적 나이가 든다고 성장이 멈추었다고 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깊은 삶의 연륜이 자녀를 양육하고, 이 시대의 삶의 지혜를, 그리고 원숙한 미를 창조한다.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면에서도 육체가 자라면서 더욱 안정되고 성숙해지게 되어 있다.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차원도 어린아이와 같은 미숙한 모습에서 장성한 어른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사도는 에베소에 있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여러분들이 더욱 하나님의 부르신 소망이 무엇이고,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허락될 하나님 나라의 유산이 얼마나 풍성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도록 마음의 눈이(the eyes of your heart) 열려 지기를 기도한다고 (빌 1: 15-19) 편지를 쓰고 있다. 오늘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은혜를 받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영적으로 눈을 뜨고, 성장(spiritual growth)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이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만드셨다. 이 성장이 늘 인간을 새롭게 하고 새 힘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소그룹 리더가 섬김을 위해 더 이상 퍼 줄 것이 없다는 것은 그의 삶에 무엇인가 재생산의 작업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산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공급하는 사람이 재생산해 내지 못하면 공급할 수 없고 기업이 파업 되듯이 리더에게 있어서 이 세 가지 창조의 영역에 재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리더십에 이상 신호가 오고, 공급이 중단되며, 섬김이 지치고, 고역스러워지며, 결국에는 파산 신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리더의 재생산을 위한 관리와 공급은 섬김의 필수적 요소요, 리더의 지침을 방지하는 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리더의 지침을 방지하고 지속적 섬김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도록 재생산 공급을 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리더의 자기 관리 계획을 통해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