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법


시민 단체들의 공익적 행동 한계


대법원은 지난 7월 13일 시민 단체 등의 공익 목적 수행을 위한 활동의 한계를 정하는 판결(98다51091)을 하나 내렸다. 그 판결 요지는 시민 단체 등의 공익목적수행을 위한 활동은 바람직하고 장려되어야 할 것이나 그러한 목적 수행을 위한 활동이라 하더라도 법령에 의한 제한이나 그러한 활동의 자유에 내재하는 제한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곧 비록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시민 단체등의 활동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다는 내용인 것이다. 지난 1996년 10월 당시 미국인 팝 가수 마이클 잭슨이 내한하여 공연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이를 반대하던 시민 단체가 내한 공연을 개최한 공연 기획사와 공연입장권 판매 계약을 맺은 은행들에 대해 공연 협력을 중지하지 않으면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는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 대법원은 이 시민 운동을 입장권 판매 대행 계약과 관련한 공연 기획사(원고)의 채권등을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며 그 목적에 공공성이 있다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당시 시민 단체들의 활동을 약간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마이클 잭슨의 내한 공연을 반대하던 시민 단체들은 위 공연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다수의 시민 단체 회원을 동원하여 문화 체육부 장관실, 문화 체육부 공연 예술과, 한국 관광공사 사장실 및 업계 지원부 국장실, 서울방송 문화 사업부 등을 상대로 위 공연 개최에 대한 항의 전화 걸기를 하고, 주식회사 금강기획과 현대그룹 본사 앞으로 위 회사가 공연 기획사와 위 공연에 공동 주관사로 참여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에 항의하여 위 공연에 대한 후원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위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문화 체육부는 조건을 붙여 공연을 허가하였고 시민 단체들은 계속하여 공연 허가에 대한 비난 성명을 발표하고 위 공연의 중계가 예상되는 방송사에 대해 항의하고 시청 거부 운동을 벌이겠다는 취지의 서한을 보냈으며, 위와 같이 입장권 판매 대행 계약을 체결한 은행들에 대해 입장권 판매를 즉각 취하할 것을 요청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권 판매를 계속할 경우 전 국민 차원에서 은행의 전 상품 불매 운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서한을 은행 측에 보냈다. 이와 같은 시민 단체들의 서한을 받은 은행 측에서는 입장권 판매 대행 계약을 취소하였고 공연 기획사는 임시 직원을 직접 고용하는 등으로 입장권을 판매함으로써 공연은 예정 대로 개최되었다. 그리고 공연 이후 기획사는 시민 단체의 위와 같은 행위로 손해를 보았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래 이 사건에 대하여 고등법원은 원고 패소의 판결을 내려 시민 단체의 그러한 운동이 위법성을 띠지 않았다고 판결하였다. 즉, 시민 단체들의 이와 같은 행위는 통상 시민 단체가 취할 수 있는 전형적인 운동 방법의 하나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그러한 행위로 인하여 위 각 은행의 의사 결정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 당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일반적으로 허용될 수 있으며, 이는 시민 단체의 행위 범위 안에 속하거나 적어도 상대방의 수인 범위 안에 속하므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고등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위 각 은행이 공연 기획사와의 계약을 취소하기로 한 것은 시민 단체들이 보낸 서한에 의하여 불가피하게 내린 결정이었다기 보다는 독자적인 영업 판단에 따라 선택했다는 것에 근거한다. 즉, 스스로 입장권 판매 대행에 의한 이익과 시민 단체의 불매 운동으로 인한 영업 손실을 비교 교량하여 판단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이를 뒤엎고 위 각 은행이 독자적으로 영업적 판단을 한 것인지 시민 단체로부터 서한을 받고 불가피하게 취소 결정을 한 것인지 심리를 더 하라며 고동법원으로 돌려 보낸 것이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위 각 은행이 시민 단체가 보낸 서한에 따라 불가피하게 취소 결정을 내렸다면 시민 단체의 행위는 위법하다는 판단이다. 생각컨대, 대법원은 각 은행이 시민 단체로부터 불매 운동을 할 것이라는 서한을 받은 후 불가피하게 취소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것 같다. 위 각 은행들이 불가피하게 취소 결정을 내렸건 자발적으로 내렸던 간에,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공익을 위한 것이라도 시민 단체의 행동에서 위법성이 인정될 경우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판결로 말미암아 시민 단체들의 공익적 활동도 상당히 위축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통상 시민 단체들의 공익적 행동은 불매 운동, 시청 거부 운동, 항의 서한 발송, 항의 전화걸기, 항의 이메일 보내기 등 비폭력, 불복종의 방법으로 전개되는 것이 보통이고 이와 같은 행위는 일반적으로 위법하지 않은 행동으로 용인되어 왔다. 기독교인들도 이 정도의 행동은 불의에 대해 항의하는 최소한의 의로운 행동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위와 같은 행동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위법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시민 단체등의 공익 목적 수행을 위한 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건전한 공익 목적 수행의 운동이 위축될 수 밖에는 없다. 하지만 근래에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건전한 시민 단체들의 공익 활동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시민 단체들의 활동이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자 악한 의도를 가지고 건전치 못한 시민 단체를 만들어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런 경우까지 그들의 활동을 보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건전한 시민 단체로 보편적으로 평가받은 단체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법적인 보장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번 판결로 인해 건전한 시민 단체들의 공익 목적 수행을 위한 활동들이 크게 위축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더구나 기독교인들 중에는 사회 참여의 방법으로 시민 단체에 참여하여 공익적 활동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이 판결을 주의 깊게 숙지하여 공익적 활동을 하면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지 아니 하도록 지혜롭게 행동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