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5월


미 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스위트 홈을 꾸려 보려는 알뜰한 욕심을 주께서 아셨는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간 그렇게 닫혀있던 한국 행 문을 열어 주셨다. 그 동안 아내와 아이는 물론 부모님과도 오래 떨어져 지냈었는데, 주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장소에 직장을 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내도 양가 부모님도 모두 기뻐하시며 가족이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귀 국하자마자 직장에 출퇴근하는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직장 근처에 사시는 부모님께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아니 어머니의 강력한 엄포에 눌려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은 지난 몇 년 동안 어머니께서 무릎 신경통, 허리 디스크로 많이 편찮으시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살면서 주중에 들러 보살펴 드리려고 했는데, 자식의 생각과는 달리 당신께서 힘드시더라도 밥 한 끼라도 손수 차려주고 싶으시다는 사랑의 명령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 댁에서 걸어서 약 25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직장이 있고, 오가는 길에 나무도 많이 있어 학교를 걸어 다니기에 안성맞춤이다. 주로 월요일 아침에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금요일까지 있다가 오후에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에 가서 주말 내내 아이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곤 한다.

주 중에 저녁 또는 아침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하면서 눈에 띄게 두 분의 기력이 쇠하신 모습을 발견한다. 건장하시던 아버지도 이제 키가 많이 작아지셨고 얼굴에 주름이 많이 생기셨다. 어머니께서도 발목 부분과 무릎 관절과 허리의 통증으로 많이 괴로워하신다. 25년 전 필자가 고등학생으로 식물 인간이 되어 병원을 전전하던 시절에, 누워 지내던 자식을 붙들고 하염없이 우시며 어떻게든 살길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더욱 더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 당신께서 그렇게 아프고 힘드시면서도 다 큰 자식이 2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이제 함께 살게 되니, 한 편으로는 너무나 기뻐하시며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괴로워하신다. 왜냐하면 이제 당신의 몸이 힘들어서 자식에게 주고 싶고 먹이고 싶은 것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눈물짓곤 하신다. 아,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그 깊은 사랑을 이해할 수가 있을까? 주께서 주신 아이를 키워가면서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조금이라도 만져 볼 수는 있을까?


부 모님과 함께 살면서 어머니의 생활 속에 환경을 생각하고 아끼시는 모습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 생활, 특히 가정 생활 속에 환경을 보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로 외치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안타까움을 지난 호에 고백한 적이 있는 필자에게, 어머니의 생활은 좋은 본보기가 될 듯하여 외람되지만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어머니께서는 학벌이나 학식 면에서 내세울 것이 없는 아주 평범한 가정 주부이시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어머니는 늘 청결하고 근면하고 검소하신 분이셨다. 지금도 그 때나 다름없이 그 모습 그대로인 것에 놀라곤 한다. 너무 깔끔하고 단정하셔서 자랄 때는 조금만 옷을 더럽히거나 집을 어지럽히면 야단을 맞은 적이 많이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도 그 깔끔함이 옛날 그대로인 것 같아 어머니의 건재하심을 느끼고 새삼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다. 그러나 원래 깔끔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필자로서는 그런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한 편으로 힘든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머니의 사랑에 듬뿍 젖어보며 어리광도 부리곤 한다.

어 머니의 하루 일과는 아주 단순하다. 무릎과 허리가 아프셔서 운동을 많이 하지 못하시는 관계로, 체중을 줄일 목적으로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반신욕 (욕조에 더운 물을 받아놓고 가슴 위는 내놓고 하반신을 물속에 담그는 목욕)을 하시면서 그 시간 동안 기도도 하신단다. 30분 정도 반신욕을 마치시면 받아놓은 물로 목욕을 하시고 그 물로 바닥과 변기를 닦으신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한 샴푸로 머리를 감으셨는데 환경을 공부하는 아들이 샴푸를 쓰면 물이 많이 오염되니 그 대신 비누로 머리를 감고 식초를 약하게 물에 타서 머리를 헹구면 머리도 부드럽고 비듬도 잘 안 생기게 된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그대로 실천하고 계시다. 사실 이 부분이 필자가 꾸준히 실천해 오는 환경보호 중의 하나이기에 자신 있게 권해드린 것인데 아들보다 더 열심히 실천하고 계신다.




아침이 되어 필자가 동네 야산으로 운동을 나가고 나면, 어머니께서는 간밤에 방에 두었던 요강을 씻으신다. 필자는 그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인데 이제껏 부모님께서는 밤에 요강을 이용하고 계신다. 아들이 학교에서 퇴근하던 첫 날 저녁, 어머니께서는 요강을 방에 들여 놓으시면서 밤 중에 화장실에 가지 말고 요강을 이용하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는데 어머니의 하시는 말씀이 너무 일리가 있어서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소변을 볼 경우 수세식 변기의 물을 여러 번 틀게 되는데 물 낭비가 너무 심하니까 요강을 이용해서 나중에 한 번에 물을 조금 이용해서 씻자”고 하시는 말씀이 그냥 물이 아까워서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뒤통수를 크게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현대인들의 첫 번째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편리함’의 추구라고 할 수 있는데, 어머니는 분명 세상의 덕목과는 반대로 사시는 것 같이 느껴졌다. 두 분께서 삼십 년이 넘게 사시던 단독 주택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옮기신 것은 물론 편리함을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오히려 기력이 쇠잔해지셨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어머니의 그러한 자세를 통해 더더욱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아 주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을 먹으며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의 건강이 빨리 회복되길 기도하고 있다. 아침을 먹는 시간 동안 어머니께서는 사십이 넘은 아들에게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시면서, 가끔씩 빨래하는 것이라든지, 설거지 하는 것이라든지, 설거지 하고 남은 쓰레기 처리하는 것이라든지, 폐식용유를 처리하는 것이라든지, 집 안 청소하는 것이라든지, 에너지 사용하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곤 하신다. 여쭤보지도 않은 것들이지만 자식이 밥 먹는 동안에 심심하지 않도록 배려하시는 어머니의 사랑의 표현이리라. 들은 말씀들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빨래는 아직도 손빨래를 하고 계시는데 폐식용유로 손수 만든 비누를 사용하신다. 빨래하고 남은 물은 화장실 변기를 청소할 때나 바닥을 청소할 때 사용하시고, 헹군 물은 화분에 주신다. 그리고 이제 연세가 드셔서 짜는 힘이 부족한 탓에 짤순이를 이용하여 물만 빼신다. 세탁기를 사용하면 전기도 많이 소비될 뿐만 아니라 빨래가 깨끗하게 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굳이 손빨래를 고집하고 계신다.

둘 째로, 설거지 하실 때는 싱크대에서 하수구로 가는 구멍에 신문지 같은 것을 군데군데 잘라 넣고 음식 찌꺼기를 거르게 한 다음 설거지가 끝나면, 신문지를 펴서 말린 후에 쓰레기를 배출하신다. 아파트로 이사하시기 전에는 단독 주택에 사셨는데 태울 만한 쓰레기를 옥상에서 태우시다가 주위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있어 혼이 나기도 하셨다고 한다. 말씀을 듣고 왜 그러셨냐고 했더니 쓰레기를 너무 많이 내보내는 것 같아서 쓰레기 양을 줄이려는 맘에 그러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께 아무런 조치 없이 쓰레기를 태우면 공기도 오염되고 나쁜 화학 물질이 공기 중에 나와서 안 좋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어머니께서 아직 부엌세제를 사용하신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루나 쌀뜨물이나 비누로 만든 환경 친화적인 부엌세제를 소개해 드리고 사용을 권해 드렸더니 그렇게 해 보겠다고 하신다.




셋째로, 집안 청소를 할 때는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주로 비누를 사용하고 전기 진공 청소기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걸레와 빗자루를 이용하고 계신다. 살면서 여러 집을 다녀 보았지만 어머니의 깨끗함에 견줄만한 집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어쩌면 괴벽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물 사용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였기에 가족의 건강을 이만큼 지키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젠 무릎도 아프시고 허리도 아프시니 그만 쉬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신 청소라도 할라치면 손도 못 대게 하신다. 아들을 생각하는 것도 있지만 두 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주된 이유이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이 어머니의 높은 기준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신단다. 함께 살면서 이젠 자식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도 좋으련만 그런 것은 말도 못 꺼내게 하신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끔씩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넷 째로, 새벽에 일어나서 문안 인사를 드리면 어느새 두 분은 청소도 하시고 아침 식사 준비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모든 일들을 어둠 속에서 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제 함께 산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 새벽이나 밤중에 거실이나 방이 환하게 밝혀진 것을 본 적이 없다. 거실에서도 형광등을 다 돌려놓으시고 한 개만 불이 들어오도록 하신다. 여쭤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 번 그 이유를 여쭤보니 먼저는 전기 세를 아끼기 위함이고 그 다음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에너지 현실을 인식하여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혹시라도 전열기를 사용하고 나면 반드시 코드를 뽑으시는 어머니의 삶의 지혜에서 경외감마저 들기도 한다.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작은 원칙을 실천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곤 한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아팠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를 믿게 된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고쳐 주신 하나님에 대한 의리로라도 교회에 꾸준히 다니신다. 속칭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당신께서 신앙이 좋지 못하다는 말씀을 하시기에,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곤 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배워 온 일면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평가되고 자책하는 모습이 안타까운 뿐이다. 사실상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상의 일들을 사명감을 가지고 주님의 뜻에 맞게 잘 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사랑과 희생과 순종과 정의의 정신을 가지고 가정과 직장과 여러 공동체에서 구성원들과 화목하며 서로 존경하며, 수행하는 일들을 공평하고 정의롭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주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닐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환경을 생각하며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필자의 어머니께서 그저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상관하지 않고 환경을 생각하는 삶의 원칙을 꾸준히 지켜가시듯이……

어머니,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건강하게 사시길 기도합니다. 어머니의 삶에서 좀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어머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