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4월호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지던 겨울도 시간의 흐름처럼 슬며시 사라져갑니다. 이른 아침에도 환하게 창을 밝히는 햇빛과 부드럽게 살에 부딪치는 바람, 먼 풍경 위로 번져 오르는 아지랑이가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겨우내 땅 속에서 얼어죽은 줄만 알았던 알뿌리들은 여리고 푸른 잎새들을 힘껏 내밀고, 여윈 나뭇가지들에서는 새 눈 터지는 소리들이 들리는 것만 같아 슬며시 다가가 귀를 기울여 봅니다.


두터운 눈 더미 아래 어둡고 차가운 땅 속에서 그 작은 뿌리가 어떻게 생명을 지키고 있었던 것인지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얼마 후면 제가 사는 동네에는 화사한 벚꽃으로 온 천지가 물들 것입니다. 벚꽃이 가득한 마당이나 거리에 서 있으면 내가 꽃나무의 한 부분이 되어 가는 것 같이 느껴져서 조용히 팔을 들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메마른 가지들의 어느 한곳에 그리 화려한 꽃이 숨어 있던 것이고, 작은 씨앗들 속엔 봄날의 훈풍이 숨어 있던 것인지. 마술사가 빈 보자기에서 비둘기와 꽃을 꺼내어 내듯이 문득 다가온 봄의 모든 징조들이 놀라운 선물로 느껴집니다.


어느 봄날 밤에 무심히 집 앞에 들어서다가 마주친 목련 꽃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서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득해지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비어있는 줄 알았던 뜰에 어느 날 갑자기 여러 색의 작은 꽃들이나 튜울립이 가득 피어 있어서 혹시 조화가 아닐까 의심하며 만져본 경험도 봄에 대한 작은 추억을 만들어 줍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 봄날의 특권이자 축복인 것 같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들뜨고 무언가 발산하고 싶어지는 힘을 느끼게 되는 순간 경쾌한 봄의 왈츠가 가슴에서 연주되곤 합니다. 얼음이 녹아내려 풍만해진 강물도 그 왈츠 리듬에 합세하여 박자를 맞추고 있는 동안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집니다. 이런 날에는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특정한 대상 없이 사랑의 예감이 벅차 오르는 신비한 힘이 봄의 기운 속에 숨어 있기 때문이지요.


캄캄한 어둠 속에 비추는 한줄기 빛이 일순간 어둠을 지워 버리고 얼었던 대지를 촉촉하게 녹여 버리는 것을 보며 결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곤 합니다. 숨어 있던 작은 동물들이 활개치며 분주하게 양식을 찾아 뛰어 다니는 것을 보며 생명의 힘은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에 감격 하게 됩니다. 겨울의 어둠과 추위가 없었다면 봄의 화려함이 그다지 빛나고 감격스러운 것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삶의 역경과 고난 뒤에 찾아오는 성취가 더욱 감사하고 소중한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실 때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하고 어둡고 절망적이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가 웃으며 십자가를 부수고 내려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바라고 기대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슈퍼맨처럼 지구의 회전을 되 돌이켜 시간을 뒤집어 주길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나약하게도 피를 흘렸고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 인간들처럼 말입니다. 누군가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조롱하며 등을 돌렸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가 약속한 일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아무도 그의 말속에 숨어 있던 의미를 이해하거나 진심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분이 다시 나타나 손의 못 자국을 보여 주었을 때의 광경을 상상해 봅니다. 놀라움과 의심과 두려움이 엄습했겠지요. 그리고 진정으로 사실을 이해하고 믿었을 때 비로소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기쁨과 경이에 젖어 뛰어 오르며 춤추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감격과 환희에 젖어 그들이 외쳤을 함성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 그가 다시 사셨다. 죽음도 물리치고”.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던, 믿을 수 없었던 일을 목격한 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 부활의 축제에 우리도 초대 받았다는 약속을 생각하면 내 자신이 어느 날 문득 피어난 목련 꽃이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겨울의 지루함과 추위, 모든 것이 잠들어 버린 막막함, 그러나 그 뒤에 찾아오는 봄날에 대한 기다림이 있기에 눈송이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듯이, 삶의 고난과 상처들,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길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그의 약속이 있기에 기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희망이 없는 공허하고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주님이 보여주신 고난과 순종의 길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였음을 확신할 수도 없었겠지요. 세상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새로운 길을 바라보는 밝은 눈을 얻을 수도 없었겠지요.


바울의 고백을 바꾸어 봅니다. 나는 매일 매순간 죽노라. 그리하여 나는 매일 매순간 다시 태어나노라. 그와 함께 죽은 나를 버리고 그와 함께 다시 태어난 나로 사노라. 꽃잎이 땅에 떨어져 썩지만 이듬해가 되면 더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태어나 향기를 가득 품는 것을 벚꽃 나무 아래 서서 깨닫곤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 나의 그릇됨과 죄로 가득 찬 옛사람을 함께 죽이며, 그가 부활하실 때 새롭게 그를 닮은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