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9월호



올 여름 많은 시간을 저는 바다에서 보냈습니다. 낚시에 재미를 붙여서 어쩌다 시간이 나면 선택의 망설임도 없이 간단한 도구를 챙겨서 바다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무척 더운 날 대낮에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서있기도 했고, 갑작스런 폭우를 만나 물고기처럼 젖은 채 낚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곳을 다니다보니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도 얻게 되더군요. 이를테면 가는 장소에 따라 잡히는 물고기의 종류가 다른 것과 물고기가 몰려드는 시간을 맞추는 것, 특정한 종류의 물고기가 좋아하는 미끼, 바다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시간과 고기떼의 움직임으로 그 깊이를 가늠하는 것까지 익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손길이 분주할 정도로 물고기를 많이 잡기도하고, 어떤 날은 종일 허탕을 치면서 깜찍하게 미끼만 먹고 달아나는 피라미나 게 때문에 미끼 끼우기만 바쁜 날도 있고, 엄청난 대어를 만나 흥분하여 힘을 쏟으며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낚시 줄을 끊고 달아나는 놈의 꼬리를 바라보며 허탈해지는 경험도 몇 번했습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자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바다에 자주 나가게 되면서 점점 낚시하는 일, 고기를 잡는 일보다는 다른 것에 마음과 눈길을 빼앗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낚시 대를 던지기 위해 바람의 방향을 잡다가 바람의 부드러운 살결을 느끼며 할 일을 잊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시간마다 변하는 바다의 색과 물결의 모양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이 더 많아졌지요.



넓은 평면의 바다는 자칫 단순한 경치 때문에 지루할 것 같이 생각되어지지만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바다는 얼마나 다른 얼굴과 표정을 보여 주는지 모릅니다. 해가 떠오르는 새벽 바다의 붉은 수면과 해가 지는 저녁의 붉은 수면이 얼마나 다른 색조와 분위기를 그려내는지, 가슴 벅참과 어떤 애상, 희망과 애잔함, 신비함, 쓸쓸함.. 큰 감정의 기복을 일으키게 합니다. 해가 뜨거운 날 일수록 잔잔한 바다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혀주기도 합니다. 더위로 인한 짜증이나 불쾌감이 부끄러워지는 것이지요.



깊은 밤이 되면 낚시하는 사람들의 수런거림이 물결 소리와 뒤섞여 묘한 화음을 이룹니다.



조명등의 빛을 받아 윤곽을 드러내는 물결의 하얀 포말의 움직임이 마치 살아있는 동물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바다와 맞닿은 하늘엔 얼마나 많은 별들이 다투어 신호를 보내듯이 반짝이는지요 ! 하늘의 별들과 바다의 생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음성으로 들은 자는 얼마나 행복하고 가슴이 벅찼을지, 밤바다를 지키고 있는 제 자신이 최초의 인간이 되어 그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오랫동안 전해오는 바다의 전설 중에 싸이렌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끝없는 바다의 지루함과 오랜 항해로 지친 어부들을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혹하여 배를 암초에 부딪치게 하는 아름다운 인어 아가씨들의 전설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로 이끌어 줍니다. 망망한 바다를 지도도 없이 별빛에 의존하여 길고 긴 길을 가는 어부들의 불안하고 지친 마음에 섬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모든 것을 잊고 홀려 따라갈 정도였나 봅니다. 지혜로운 어부들은 싸이렌의 섬을 지날 때 귀를 막았고, 율리시즈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밧줄로 묶게 함으로써 무사히 섬을 지나쳤다는 전설을 기억합니다.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그 변화와 느낌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있다보면 우리의 삶이 긴 항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내면서 때로는 잔잔하고 지루한 노젓기를 계속해야하고 때로는 거친 풍랑과 어둠을 견디어 내면서 자신이 가는 길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수없이 자문해야 하는 항해 말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자연의 섭리에 이끌려 가듯 운명의 행로에 순응해야하기도 하고, 순간마다 판단과 결단을 내리며 모든 상황을 극복하여야 하는 선장의 역할을 감당하며 내 삶의 배를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야 하기도 합니다. 때론 지치고 절망하며 노 젓는 손길을 멈추고도 싶고 난데없는 풍랑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수고를 멈추! ! ! 고 평안의 섬에서 쉬어 가라는 유혹이 나를 흔든다면, 그 아름다운 노래 속에 숨어 있는 쾌락과 죽음의 검은 유혹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 소리를 향해 가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막막한 바다를 건너는 우리에게 다행히도 지도 대신 빛나는 별빛이 있기에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담대하게 목표를 향해 먼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폭풍우에 별빛이 가리워도 우리 마음 속에 등대가 되어주는 그 빛은 변함이 없습니다. 싸이렌의 노래에 귀를 막은 어부처럼 자신의 몸을 기둥에 묶은 율리시즈처럼 말씀에 귀를 집중하고 십자가에 나를 묶는다면 어떤 세상의 유혹도 그릇된 가치도 초연하게 지나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배가 영원히 귀착할 그곳을 향해 가는 동안 돛대가 되어주시는 분, 그 분을 믿고 평안한 마음으로 향해할 수 있으니 우린 얼마나 즐거운 여행을 하는 것인 지요.



거대한 바다 속의 작은 물고기처럼 힘없고 보잘것없는 제 자신을 느끼면서 이렇게 작은 존재가 바다와 땅의 주권을 가졌다는 사실에 감격을 하곤 합니다. 그 넘치는 사랑이 물결처럼 내게 다가오기도 하고 바람결처럼 나를 어루만지기도 합니다. 깊고 아름다운 무한의 사랑의 바다에서 한껏 헤엄치는 은빛 물고기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