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는 하나님의 것
웬만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정도는 머리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삶 가운데 “하나님, 이 아이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인정하는 경우는 몇몇 상황일 뿐이다. 자녀가 심각한 병에 걸려 많이 아파할 때 “이 아이는 당신의 것이오니 고쳐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수능을 앞두고 새벽기도하며 “이 아이는 당신의 것이오니 머리가 되게 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하옵시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당신의 귀한 종 되게 하옵소서.” 외친다.
그런데 우리들의 자녀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때에만 부르짖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자녀가 나의 소유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귀한 손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동시에 그분이 아이를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두기를 원하시든 그대로 내어드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부모 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분명히 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를 향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양육하겠다는 결단과 순종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결단한다고 해도 저절로 순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의 소유권에 대한 인식과 자녀를 향한 욕심으로 인한 끊임없는 갈등을 경험하면서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후10장5절).
나의 경우 이런 결단을 연습하는데 도움을 준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아들 진호를 출산할 때의 일이다. 분만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듯한 통증과 의사선생님의 수고에도 아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님들도 숨 가쁘게 움직이다 결국 과장 선생님을 부르게 되었다. 다행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아이는 출산하였으나 도무지 울지 않는 것이다. 산소 호흡기를 낀 채 여러 생각이 오갔다. 한참 만에 아이가 겨우 숨을 쉬기는 했다. 그러나 동생이 중증 뇌성마비였고 특수교육을 전공했고 특수학교 교사를 하고 있던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 아이의 뇌에 산소공급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길지 가늠할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낙심이나 절망감이 아닌 이상한 소명감이 생기는 것이다. ‘주님,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저에게는 동생을 돌보며 겪었던 경험과 특수교육을 전공한 지식이 있습니다. 또 특수학교 교사로서의 경력도 있습니다. 열심히 키우겠습니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다만 또다시 아픔을 겪게 되는 불쌍한 저의 친정 부모님은 당신이 위로하셔야 합니다…’ 그 당시 내 판단과는 달리 아이는 다행히도 건강하게 자랐다.
이런 적도 있었다. 아이가 5살 쯤 되었을 때다. 그 당시 우리는 Southwestern 침례신학교에 유학중이었는데 학교 기숙사에 아들 또래가 많이 있었다. 한번은 최 목사님 딸 효영이가 나에게 다가와 “사모님, 저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암송할 수 있어요. 사랑은 오래참고…” 너무나 기특하고 부러웠다. 그날 밤 성경책을 들고 진호에게 말했다.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에 대한 너무너무 좋은 구절들이 있는데 우리 한번 읽어볼까?” “싫어싫어 너무 어려워, 그냥 그림 성경 읽을래~” 그런데 그 순간 그림이 하나 떠올랐다. 아들이 기술고등학교 제복을 입고 씩씩한 얼굴로 땀을 흘리며 기계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마 속으로 ‘이 녀석은 그리 똑똑한 것 같지도 않은데 책도 잘 안 읽고… 게다가 친구와 놀 때도 남자로서의 리더십도 없이 그저 친구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하는 편이고 욕심도 없으니, 어디 대학이라도 가겠어?’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그림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성격 착한 마음이어도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눌려 지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아들이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같은 기술고등학교 다니는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가치를 일깨워 주며 새로운 소망과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면 너무나 의미 있고 귀한 일이었다. 물론 좋은 대학 나와 남들 부러워하는 사회적 지위에 있으면서 영향 미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지독히 경쟁적이고 사람을 학벌로 판단하는 사회에서는 이 또한 너무나 중요한 사역이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님, 그것 참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하시기 원하신다면 마음껏 진호를 사용하시옵소서. 그러면 저는 진호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나요?’ 그때부터 성경적인 자녀교육에 대해 구체적으로 관심 가지게 되었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결혼 문제, 직장 및 장래 문제, 자녀의 문제, 경제 및 건강 문제 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여러 문제들을 들고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기도하며 그 응답을 체험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신앙 좋은 사람하면 먼저 떠오르는 특징이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물론 기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기도가 우리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것들을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으로 자녀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가치로 돈을 평가하며, 하나님의 눈으로 장래와 직장을 생각하는 것이다.
가치관의 변화, 관점의 변화, 그리고 변화된 가치관과 관점이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중에서 가장 어렵지만 기본적인 것이 바로 ‘자녀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