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정도 여러 명의 개척교회 목사님 자녀들에게 영어공부를 가르친 적이 있다. 개척교회 목사님들의 빠듯한 재정으로는 남들 다하는 영어 과외공부 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를 가르친 아이 중 특별히 기억나는 재미난 아이가 있었는데 바로 성환(가명)이다. 성환이는 성격이 배우 밝고 귀여운 아이였지만 공부 중에도 일어나 여기저기 움직이고 숙제도 자꾸만 잊어버리곤 했다. 여러 말로 타일러 보지만 잘 먹히지 않아 좋은 방도를 궁리하였다. 그것은 성환이가 바람직한 행동을 할 때마다 그것을 포착하여 마음껏 칭찬하며 숙제 해 올 때마다 예쁜 스티커를 공책에 붙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티커가 20개가 모이면 문방구에 가서 평소에 사고 싶었던 3천 원 정도의 물건을 사 주는 것이었다.

성환이는 이런 방법을 너무 좋아했고 덕분에 숙제도 열심히 했는데, 어느 날 스티커 19개 모은 공책을 잊어버렸다며 마구 우는 것이었다. 나는 성환이 말을 그대로 다 믿어주고 새로운 공책에 해 온 숙제를 점검한 후 예쁘고 큰 스티커 하나를 공책에 ‘꽝’ 붙여주었다. 바로 20번 째 스티커였다. 그리고 우리는 신나게 곧바로 문방구로 갔다. 속상한 얼굴에서 환한 밝은 모습으로 바뀐 성환이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후에 성환이는 공부도 잘하고 착한 어린이로 칭찬도 많이 받았는데 어느 날 엄마에게 그 이유를 “영어 선생님이 나를 잘 가르쳐 줘서 그래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 말 그대로 나 때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성환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겨우 일주일에 한번 하는 영어 공부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작은 섬김을 큰 열매로 이루셨다.

 
김 집사님은 모시고 살고 있는 시어머니와 관계가 매우 좋지 못하였다. 양쪽 모두 피해의식과 억울함으로 서로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안타깝게도 시어머니가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런 엄청난 통보 앞에서도 두 사람의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 관계를 도와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일주일에 한번 씩 김 집사님의 시어머니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매주 금요일 오후 구역 예배를 마친 후 발걸음을 김 집사님 집으로 향하였다. 누워 계신 할머니에게는 주로 과거에 있었던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회상하는 질문들을 하였다. 예쁘셨을 젊은 시절 이야기, 학창 시절의 추억, 잘 자라주는 손자들 이야기, 신앙을 가지게 된 계기, 하나님 이야기… 뼈만 남은 앙상한 얼굴이셨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행복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며느리 김 집사님에게는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매일 시어머니에게 두세 번만 말을 건네라고 하였다. 예문까지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 날씨가 참 화창한데 거실에 나오실래요?” “오늘은 밖에 비가 오네요.” “특별히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세요? 만들어 드릴께요.” “이번 주는 아이들 시험 기간이에요.”…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김 집사님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어머니께서 소천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천하시기 전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에게 전화하여 귀한 딸 데리고 와서 너무 고생시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며느리 김 집사님에게도 “고마웠다.”며 마음을 전하셨다 했다. 그동안 가졌던 서로에 대한 앙금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훈훈한 정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장례식장을 향하는 나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위에 소개한 성환이나 김 집사님 경우 모두 큰 희생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그저 일주일에 한 두 시간 정도 소요될 뿐이다. 다만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기며 살고 싶은 소망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이런 작은 섬김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그 섬김을 기쁘게 받으시고 큰 열매로 되돌려 주신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가장 큰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