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의 편지


어머니를 닮은 딸내미


미국에 살다보니… 한국의 명절이나 공휴일은 잠시 방심하면 지나쳐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나마 교회에서 떡이나 맛난 음식들이 풍성하게 등장하면 설인지 추석인지 알 수 있지만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삼일절이나 식목일과 같은 매우 심심한(?) 공휴일의 경우, 지나갔다는 사실 조차 뒤늦게 아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식목일이 공휴일이었는데 요즘도 그런가요?!?!
믿을 수 없는 제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식목일엔 흐리거나 비가 내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나무 잘 자라라고 그런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붙였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식목일 하면… 저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봄철이면 어머니는 화원에서 한바탕 봄꽃들을 사다가 베란다 가득 꾸며놓곤 하셨어요. 꽃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고, 죽어가는 식물도 다시 살리는 마애스터 울엄니. ^^ (물론 그 열심이 아버지께로 전염이라도 되었는지 근래에 들어서 아침에 물주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 되었습니다만…)


가까스로 살려놓은 식물을 딸래미에게 맡겨놓고 여행이라도 며칠 다녀오시면 저는 그 잠깐 사이에 그 풀들로 하여금 다시 사경을 헤매게 만들어 놓곤했습니다만… 베란다인지 식물원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화초들을 골고루 채워놓고 자식키우 듯 아니 때로는 자식보다 더 정성껏 키우시는 울엄니를 저는 꽤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거의 화초없이 지낸 적이 없다는 사실.
봄철이면 어김없이 좋아하는 하얀 데이지 한 묶음을 사다가 화병에 꽂아두는 게 연례행사가 되었고 방학이면 집에 다녀오는 친구들의 온갖 화초를 맡아서 키워주는 이른바 plant sitter가 되었죠. 수퍼마켓에 가도 제일 먼저 눈길을 주는 곳은 구석에 있는 꽃과 화분 코너이고, 특히 야외 꽃시장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제 방엔 대개 꽃이든 풀이든 식물이 하나쯤은 꼭 있곤합니다.


제가 그렇게 나무를 좋아하는지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나무 냄새, 풀 냄새, 꽃 냄새…
오늘도 캠퍼스를 오가며 킁킁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심지않고 지나쳐 버린 식목일이 어쩐지 자꾸만 마음에 걸리네요.
나도 모르는 사이 울엄니의 화초사랑하는 마음이 전염이라도 된 건지…


사실 어디 이것 뿐이겠어요. 저도 모르게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들, 닮은 것들… 끄적끄적 글쓰기 좋아하는 것, 비평하기 좋아하는 것,
구경하기 좋아하는 것, 음악 좋아하는 것, 커피 좋아하는 것,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새 친해지기, 남의 이야기 들어주기, 속눈썹 짧은 것도 닮고, 눈물 많은 것도 닮고, 웃는 모습도 닮고, 합창을 하면 알토 음을 내는 것도 닮고, 화장 진하게 하는 걸 싫어하는 것도 닮고, 이것저것 죄~ 다 닮고, 닮고, 닮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도 닮은 것들,
나도 모르게 어머니 품 안에서 자라며 저절로 배운 것들이죠.


그래요.
어머니 품안에 있으면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들, 저절로 따라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군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익힌 것들.


음…


문득 하나님의 품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머물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그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모습을 어느 새 닮게 된 것 처럼
그 분의 마음을 나도 모르게 닮게 되면 좋겠습니다.
일부러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술술 흘러나가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분의 품안에 거하는 삶으로 인해…


주 안에서 행복~*


sAN frANcIsCO,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