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사역 Q&A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면
우리는 단순한 “들러리”입니까?


성경은 (예: 이사야 43:7절, 골로새서1:16)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어느 정도 윤택한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이 크게 거침돌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수월함이 이런 사실을 크게 문제로 삼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힘들거나 특정한 목적이나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자신이 극복해야 하는 현존의 고통과 이에 따른 노력과 인내가 결국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위한 들러리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연히 생겼다가 없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자체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부여해 주기 때문 입니다. 이런 양면성에 자신이 어느쪽에 속하든지 관계없이 위의 질문에 대한 올바를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1)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2)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1.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인식


인간의 가치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는 가치가 부여됩니다. 그러나 현존 그 자체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 용도에 의하여 가치가 부여됩니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의 용도는 인간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모든 창조물 위에 창조하셨고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위하여 인간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되어 집니다.


그러나 인간인 우리는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하는 인간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결정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잘못된 자아상을 심어 줍니다. 우리는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에 대한 가치부여의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의 영역인 인간의 가치부여까지 침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도를 얼마만큼 충족시키느냐의 기준이 아닌 인간 자신들의 용도의 가치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즉 능력 없이 세상을 가난하게 살기 위하여 창조 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서 “열심히” 살았다면 하나님께는 A 학점의 가치를 부여받게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가치기준으로 그런 사람에게 F 학점의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A 학점의 가치를 부여받은 사람이 사람에 의하여 F학점의 가치로 대우를 받아 스스로 F학점의 가치를 가진자라고 인식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인간이 세상의 기준으로 이웃을 판단하며 그렇게 사람을 대하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5:22; 약4:11-12).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주의 중심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가치가 하나님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 독립적 가치의 역량이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사실이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자기 자신이 타인에 자신을 억지로 높이려는 노력없이 하나님으로 부터 가치를 부여받게 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교만한자,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에게는 큰 거침돌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중요성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기 힘듦니다.


2.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해


하나님께서 실질적으로 인간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살펴볼때 자신을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ㄱ.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자율적으로 활동하게 하셨습니다.무엇보다도 바로 이 선택권의 최고의 표현은 바로 하나님을 선택하거나 거절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이 권한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ㄴ. 하나님은 인간을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시편8편에세 사람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합니다. 즉 존귀한 존재로서 비천하게 서로 미워하고 저주하고 시기하지 않는, 자신의 본능에 사로잡힌 동물과 같이 않게, 존귀하게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하나님께서 권고하신다고 하십니다. 즉 계속적으로 관심을 가지시고 방문하신다는 뜻입니다.


ㄷ. 우리의 뒤를 쫓아오셔서 자신의 생명으로 값을 치루셨습니다. 바로 타락한 인간의 육신의 모습까지 (요1:14) 우리를 쫓아 오셨습니다. 우리의 차원까지 낮아지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과 바꾸셨습니다 (요3:16).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인간을 지으시는 어떤 “신”의 모습과는 도저히 일치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ㄹ. 영원한 삶을 예비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직접적인 영역의 가장 깊은 곳으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태양이 필요 없음은 하나님 스스로가 태양이 되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계21:23). 태양이 상징하는 것은 인간의 육신을 가능케 하는 Framework 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이 이 Framework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해 질 때, 인간이 원래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와 같이 회복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 어떠한 인류의 창조에 대한 이유도 그가 인간에게 부어주신 사랑을 합리화 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식을 낳지만 일단 낳고 나면 자식을 위하여 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려고 생각하시는 그 순간부터 인간과 사랑에 빠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은 바로 인간이 자신과 같이 왕 노릇하게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치는 세상의 기준으로 도저히 측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예술품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까지 사랑하시고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기울였을 정성과 섬세함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 우리의 눈, 눈매, 손, 손톱하나 하나 까지 정성 드려 창조하신 예술품입니다 (엡2:10). 이런 예술품을 우리의 타락한 가치관과 용도에 의하여 계속 평가한다면 그 죄를 어떻게 용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외모, 능력, 그리고 한 사람을 둘러쌓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한 사람을 대하고 속으로 판단하는 행위는 무서운 죄 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을 이러한 기준으로 스스로 평가하고 괴로워하고 낙심한다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뜻을 이해하게 될 때 이 뜻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 들러리가 아니라 우주 한 복판에 세워진 하나님의 예술품, 즉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이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