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을 이야기 하자


소담한 찬양이 울려 퍼질 2003년 코스타를 꿈꾼다


2003년 코스타가 어느덧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2002년 7월, 위튼 칼리지 에드만 채플에서 울려 퍼지던 찬양의 벅찬 함성 소리와 도전적인 메시지들의 파릇파릇함, 채플을 가득 채우며 수많은 이들에게 찾아가 만지시던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감동이 나의 영혼 깊숙이 또 다시 이번 코스타를 기다려지게 한다.


모두에게 마찬가지이겠지만, 바쁜 매일 매일의 수많은 사역들을 감당하면서 보내는 나로서는 코스타와 같은 집회는 지친 나의 영혼을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재 충전시키시며 억수로 쏟아 붓는 폭포수와도 같은 시간들이다. 찬양 사역을 맡게 된 지난 3년 동안은 아무래도 받을 은혜보다는 해야 할 일과 사역에 집중하다 보니 그럴 기회를 많이 놓치긴 했지만, 어쨌든 코스타를 통해서 내 영혼에 채워진 감동과 결심들은 오랜 시간동안 나를 붙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이제는 미국 코스타에 참석하는 것도 햇수로 7년째가 되어가면서 집회에 참석하는 나의 마음 자세도 많이 타성에 젖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늘 다시 기억하고 다짐하는 것은 코스타를 처음 경험하면서 내 영혼에 채워졌던 숨 막힐 듯한 그 감동의 시간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또 수많은 새내기 코스탄들에게 새겨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그것뿐이다.


바쁜 일상생활에 묻혀 살던 얼마 전 나는 무작정 웹 서핑을 하던 중에 어느 한국에 있는 교회의 웹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중보기도 게시판에서 ‘우리 딸이 이번 여름에 시카고 코스타에 참석하는데 거기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라는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제목을 보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 내 등뒤에 흐르던 소름 끼치는 듯한 감동과 한줄기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곳곳에 숨어 있을 기도의 제목들은 ‘그냥 어쩌다 보니 말씀이 좋은 사역자들과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찬양 팀을 구성해서 집회를 진행하기 때문에 집회에 감동이 있는 것이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들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 어머니와 같은 이들의 땀과 눈물의 범벅으로 드려진 기도들이 하늘의 보좌를 열며 집회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원천적인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단순히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삶으로 인정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나는 그만 그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참 부끄럽고 쑥스럽지만, 코스타의 찬양 팀을 기획하고 팀을 구성하는 것도 어찌 보면 권력이요 특권이다. 코스타라는 집회의 성격이 전국에서 모이는 각 지역교회에 속한 학생들의 수련회이기 때문에, 그 집회의 찬양팀을 맡게 된다는 사실은 일종의 ‘국가대표 선수단’이라는 헛된 환상을 심어 줄 사탄의 공격이 늘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집회 시간 중에서 자주 눈에 띄고 조명을 많이 받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는 그런 사역이다. 자연히 우리의 영원한 ‘자칼 형사’인 사탄은 늘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유혹과 달콤한 무기를 가지고 찬양 사역자들의 영혼을 삼켜버릴 심정으로 덤벼들고 있는 것 역시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찬양 사역 팀에서 3년째 이름을 드러내고 사역하다 보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나의 이름 석자가 알려지게 되고, 또 그렇게 알려지는 것을 즐기게 되고, 나에게 찾아오는 유혹들과 도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생각하기에는 이제는 코스타의 ‘꽃봉오리’와도 같은 이 사역에서 물러나서 어디론 가 옮겨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올해 역시 ‘이번 코스타에서 찬양 팀으로 같이 섬기고 싶다’는 적잖은 형제/자매들의 연락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순수한 이들의 마음 마저도 괜스레 오해하고 있는 것 같고 있는 내가 싫어진다. 생각해 보면, 그냥 낫 놓고 ‘아 그게 기역자구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해 2001년 찬양 팀의 기억들과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멋진 주제와 어우러졌던 그 모든 감동의 순간 속에 경험했던 섬김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다시금 첫 마음으로, 새해 첫날 찬물로 세수하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음악성과 인기와 그 모든 아지랑이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기로 작정했던 내 삶의 그 모든 첫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소담한 마음으로 다시금 찬양을 준비하며 그 분께 올려 드릴 때 흥건히 받아주실 아버지의 품을 다시금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