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3월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이 승연과 네티앙엔터테인먼트의 기획 작품이었던 이른바 위안부 누드 파문이 기획사 본인들에 의해 원본 필름과 동영상이 불태워 지면서 일단 가라앉은 듯 하다. 네티앙엔터테인먼트 측에서 가졌던 지난 몇주 전의 기자회견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진행되어 왔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눈앞에서 전쟁이라도 한 판 치루어 졌던 것 같은 느낌이다. 공연히 우리 아픔 많은 할머니들 가슴에만 대못을 박을 일들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편으론 네티앙 가입 탈퇴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던 네티즌들의 들끓은 반란으로 인해 영문도 모르고 고생도 많이 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갑자기 자다가 두들기는 봉창소리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이야기를 찬양을 이야기하자 칼럼에 쓰는 이유는?


이 번 이승연 파문을 지켜보면서 나는 나 자신의 내면 세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한가지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네티즌이라는 존재를 가볍게 여겼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교훈이고, 다른 한가지는 줏대 없이 이른바 여론의 물결에 휩쓸리다가는 정말 나의 내면 세계에 더 큰 코를 다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자 본주의와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가 빚어낸 불행한 만남이었던 이번 사건에 대해 나는 조금이라도 옹호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사태가 해결되고 마무리 된 지금, 이 사건을 지켜보는 입장에 있었던 나의 삶을 돌이켜 보니, 거기에는 깊은 공허만 남고 있음을 본다. 왜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왜 공허함만 남는 것일까? 정의를 실현시키고 옳은 일을 행했다고 하는 의협심이 깃드는 것이 아니라 괜한 훔쳐보기와 엿보기를 했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나 는 클릭으로만 정의를 행하고 있었다! 웹 서핑을 즐기며 클릭하면서 보았던 모든 기사들이 나의 정의로움과 연결된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이런저런 게시판에 올라온 다양한 사람들의 분노와 질책과 야유와 독려를 보면서 나는 잠시라도 깊이 그렇다면 내가 살아가는 나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나타나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그저 웹 서핑을 즐기고만 있었던 것이다.


인 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나의 삶에 줄어든 결과가 있다면 바로 책을 읽는 시간이었다. 나는 정보와 지식과 교양과 심지어는 영성마저도 인터넷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단단히 믿고 있었고 그 결과는 공허함이었다. 그것은 거짓이었던 것이다.


웹 서핑이 왜 책읽기를 대체할 수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나는 이렇게 내렸다. 웹 서핑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기 기호에 따라 보고 싶은 것만 클릭 한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단번에 Backspace를 눌러 버린다. 깊이 있는 사고와 되새김질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책읽기에는 깊이 있는 생각과 되새김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책을 한번 잡았으면 어느 정도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 나는 웹 서핑을 하면서 오락 정도로 즐기고 있었지 삶의 깊은 공부와 생각하기는 하고 있지를 못했던 것이다.


내 마음을 관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마음 상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생각하는 이른바 큐티일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우리의 영성은? 정답은 오프 라인에 있다.


예 배를 인터넷으로 드리면 안 되는 것일까? 정답은 오프 라인에 있다. 삶의 현장에서 회중과 함께 드리는 예배의 현장성을 경험하고 함께 교제하며 그 안에서 함께 호흡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예배할 장소가 없는 고립된 곳에 있다든지 하는) 예배와 찬양하는 삶에 관한 한 온라인에서 영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사역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라는 뜻의 논지를 독자들께서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어 쨌든 중요한 것은 이승연 파문 이 마녀사냥이었던, 공의를 행했던 네티즌들의 운동이었던 간에 이 사건을 멀리서 지켜보는 나의 내면의 삶에는 씁쓸한 오락으로 남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의로운 일을 행할 때는 오프 라인에서 행해야 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