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 12:25)

그리스 전설 가운데 자신의 미모에 너무 반한 나머지 매일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결국 못에 빠져 익사하고 마는 나르키소스 여신 이야기가 나온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Alchemist는 나르키소스보다 더 한 강적을 보여준다.

오스카 와일드의 나르키소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여신들이 호숫가에 왔다. 그들은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여신들이 물었다.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호수가 답했다.

“하긴 그렇겠네요. 우리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에 반해 숲에서 그를 쫓아다녔지만, 사실 그대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놀란 여신들은 호수의 반문을 의아해 했다.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호수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울고 있는 거예요.”

우리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세속화의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나르시즘이 주는 마취제에 도취되어 상처 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추구하는 가치도 이웃과 함께 하는 삶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가꾸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자기밖에 모르는 어른의 특징을 한 마디로 ‘자기중심성egocentrism이라고 한다. 자기중심성은 아동심리학 용어로서 아이들이 무슨 일이든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삶의 책임을 지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영위해야 할 성인이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 같은 어른으로 사는 모습이 늘어가고 있다.

지난 4월, 타이거 우즈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하는 장면을 애틀랜타 공항의 TV 스크린에서 보았다. 깜짝 놀랄 섹스 스캔들로 때문에 세상을 실망시켰던 그가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자리였다. 그는 부적절하고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고백했다.

그때 내 귀를 사로잡은 한마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통을 준 사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 대신 나 자신만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충분히 헌신했고, 이루었으며, 그래서 그 만큼 내가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성의 위험성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인기로 인해 얻은 돈과 명예로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의 육체적인 향락에 쏟아 부은 것이다. 자기가 돌보아야 할 아내와 가족, 후원자, 주니어 하이 골프 학교, 친구들, 업계 종사자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니 얼마나 이기적인 삶인가? 이것이 바로 세상문화가 “자신을 기쁘게 하라”고 가르치는 삶의 결과 아닌가? 현대인은 언뜻 보면 정상인 것 같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온통 자기 관심사에 빠져있다. 이것이 바로 ‘나르시즘’Narcissism 콤플렉스에 절어있는 21세기 문화의 단면이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였던 프리츠 쿵켈은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병든 4가지 비극적 자아중 하나를 ‘스타형 이상성격’이라 했다. 이들은 어떠한 대화나 만남이든지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고 찬사를 끌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예배는 이처럼 세속화에 물든 이기적인 본성, 메뚜기 신드롬, 나르시즘, 자아도취, 자기중심적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고 있거나, 무력하게 무릎 꿇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력 있고, 매력적이며 패기에 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도전하는 현장이다. 그 결과 자기중심성에 물든 우리의 자아가 하나님 나라의 건강하고 강인한 영적 존재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돈 많이 벌어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인생역전은 바로 자기중심적 자아가 이타적인 희생적 자아로 변화되는 것이다.

– 이유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