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 10:4)

예배는 드리는 자보다 드릴 대상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 날 많은 예배가 ‘드리는 자’의 경험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에 대해 소홀히 할 때 두 가지 위험이 생긴다. 하나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예배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무신론적 공격에 대해 아무런 변증도 못하는 무력한 감상주의에 빠지고 만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에서부터 하나님은 없다는 무신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반 기독교적 운동과 학문이 일어났고 최근 그 양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현대 과학자 가운데 기독교 신에 대해 가장 신랄하게 공격한 자가 있다. 진화 생물학자로서 옥스퍼드대 석좌교수인 리처드 도킨스이다. 그의 2006년도 저작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은 만감을 교차하게 하는 책이다. 《이기적 유전자》로 전 세계 과학과 종교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도킨스의 신작인 이 책은 뉴욕타임즈 연속 베스트셀러로 세간에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일면 의미 있는 도서이다. 무신론자인 저자는 기독교의 치부를 기독교인 대신 파헤쳐 주었다. 돈 주고도 못할 대단한 과업을 엄청난 시간을 들여 헌신적으로 연구해주었고, 문학적으로 나름 가치 있는 글로 남겨주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기독교인들이 깊은 반성과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친절하게 제공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은 이 책을 빌려서라도(?) 읽을 필요가 있다. 책이 두꺼워 불편하긴 하지만….

다른 한 편, 이 책은 3가지 의미에서 슬픈 책이다. 기독교의 환부가 생각보다 심하게 곪은 것을 보여준다. 고름이 터져 다른 이에게 악취를 풍긴다. 만용을 넘어 자만에 빠져있다. 그래서 오늘의 기독교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 고인물이 썩는 것처럼 어떤 종교라도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갱신을 추구하지 않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슬픔은 기독교 환부에 대한 그의 전투적 태도가 어딘가 어설프다. 옥스퍼드 대 역사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도킨스의 신》에서 밝혔듯이 도킨스는 이미 《이기적 유전자》때부터 뛰어난 과학의 보급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벗어났다. 그는 난폭한 반종교적 논객이 되어 자신의 입장을 논증하기보다는 설교하고 있다.1)

즉 도킨스는 진화 생물학 분야에서는 지적으로 활기 넘치는 무신론자이지만 기독교에 대해 논의하면서는 갑자기 전면전을 치루기 위해 과장, 단순화, 허위진술까지 일삼는 학생 토론클럽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맥그라스의 《도킨스의 신》은 사실《만들어진 신》이전의 책들인 《이기적 유전자》와 《눈먼 시계공》에 대한 맹점을 차분하게 지적해 준 대단한 역작이다.

또 하나의 슬픔은 이토록 남의 종교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 대단한 헌신과 노력을 기울인 도킨스에게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는 기독교의 음지에는 박식하지만 양지에 대해서는 심하게 무식하다. 평생 남의 뒷얘기나 가십거리를 들춰내는데 열심인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인생의 환희와 기쁨, 감사와 행복은 쓰레기 같은 단어들이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그가 왜 굳이 이렇게 어두운 그늘과 냄새나는 썩은 고깃덩어리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실재로 그가 다룬 기독교의 치부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쉽게도 가십성 기사요, 인터넷에 떠다니는 싸구려 재료들에다 과거의 케케묵은 논쟁이 상당수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체험해보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귤의 생김새, 색깔의 종류, 원산지, 재배방법, 유통과정, 그리고 귤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요리에 대해 얼마든지 연구하고, 책도 쓸 수 있다. 그러나 직접 그 귤을 먹어보기 전에는 결코 귤의 맛을 알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종교, 체험하지 않은 기독교에 대해 제아무리 많은 객관적인 자료와 주관적인 느낌을 논해도 결국 그는 기독교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래서 수사학적인 기교와 문장의 전개방식은 현란할지 모르나 그 말에 힘이 없다. 가슴에 남는 감동과 삶을 움직이는 지혜가 없다.

참으로 아쉽다. 남의 집 쓰레기나 뒤지며 더러운 냄새에 인상 찌푸리고 격분하는 지성이 아니라 인류의 희망과 꿈, 헌신과 평화, 화목과 하나 됨, 희생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의 머리보다 가슴을 움직이는 감성과 지성을 조화한 창조적인 지성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언젠가 그가 기독교의 진수를 제대로 경험하고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 후속 탄으로 책 한 권 써주었으면 참 고맙겠다. 《구속하는 신 the God Deliverer》이란 제목으로 말이다.

– 이유정 목사(한빛지구촌교회 예배디렉터)

 

1) 알리스터 맥그라스, 리처드 도킨스 뒤집기 – 도킨스의 신 (서울 : SFC, 2007), p.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