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에서 깊이로
 

현대인은 편리함이 편안함보다 우선하는 문화에 젖어 산다. 그 중의 하나가 인스턴트 문화이다. 리처드 포스터는 현대 사회의 가장 큰 세 가지 적을 소음, 성급함 그리고 번잡함으로 보았다. 정신의학자 칼 융 (Carl Gustav Jung)은 바쁜 것은 사단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단 바로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공격하는 바쁜 도시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악질이다.

이런 초고속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도시인에게는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이 그만이다. 그뿐인가? 사람들은 편지보다 이메일을 선호한다. 미국은 해마다 줄어드는 우편물 때문에 수백 년 역사의 우체국이 위기를 맞고 있다. 사람들과의 의사소통도 사이월드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온라인을 통한 인스턴트 대화로 변하고 있다.

요즘 한국의 1318세대[footnote]대흥기획이 만들어 낸 용어로써 13~18세에 해당하는 세대를 지칭한다. 대홍기획에서는 1318세대를 WANT(Wide Active New Teenager)세대로 명명했다. 1993년 이후 출생자로 현재 13∼18세의 중·고등학생이 여기에 해당한다. WANT세대란 명칭은 이들 1318세대가 다수 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고(Wide),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자유롭게, 열정적으로 행동하며(Active), 새로움과 다양함을 열망하는 새로운 십대(New Teenager)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 광고기획사에서 1318세대, 1924세대 같은 조어를 만드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경향.com 기사 ‘문자에 살고 메신저에 죽는다.(2006. 5. 23자) 참조.[/footnote]는 ‘문자’에 살고 ‘메신저’에 죽는다. 한 통계[footnote]대홍기획이 2005년 10월부터 2006년 3월까지 6개월간 서울에 거주하는 13~29세의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 조사한 결과이다.[/footnote]에 의하면 이들은 단 1초의 기다림도 지겨워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한다. 조사 결과 청소년의 평균 텍스팅(texting) 시간이 하루 네다섯 시간이 넘는다. 인터뷰한 중학생은 “하루 종일 문자 안 보내고 수다 안 떨고 메시지 안 보내는 시간은 2시간도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단다.

오늘의 대중문화는 깊이보다 인스턴트에 열광한다. 데이비드 웰스의 언급처럼 현대의 신기술이 기존의 기술을 점차 빠른 속도로 대체하면서 제품 수명의 주기가 급속히 짧아졌을 뿐 아니라 삶 속에서 영원함의 자취도 대부분 사라졌다.[footnote]데이비드 웰스, 윤리실종 (부흥과개혁사, 2007) p. 47.[/footnote] 이제 빨리빨리 문화를 한국병으로만 치부하기[footnote]민경배 교수는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인의 공통된 특성이지만 기성세대가 성과에 집착한 ‘빨리빨리’라면 10대들의 성향은 반응을 빨리한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했다. 경향.com 기사 참조[/footnote]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사물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파악하고 존재를 지엽적이 아닌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 능력을 무너뜨렸다. 리처드 포스터는 이를 피상성의 수치라고 통렬하게 지적했다. 즉각적인 만족을 누리고자 하는 사상은 근본적인 영적 문제이다. 그래서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는 사람은 지능이 높거나 혹은 재능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사람이다.”[footnote]피처드 포스터, 영적훈련과 성장 (생명의 말씀사, 1986) p. 13.[/footnote]

세상은 감각을 터치해줄 사람을 찾지만 오늘 우리는 깊이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요즘 기독교 출판도 깊이 보다는 감성터치 작가가 인기이다. 목회자의 설교도 깊은 복음의 진수보다는 감성을 터치해야 인기가 있다. 신앙도 인스턴트 신앙을 추구한다. 영적 성숙도 3개월 숙성반처럼 단기에 드러나는 실적이 나와야 한다. 교회도 초고속 성장이라야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기독교가 거꾸로 가고 있다.

거꾸로 가도 근성이 필요하다. 한번은 연어 떼의 일생을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본 일이 있다. 수천, 수만 킬로미터의 바다 여행 끝에 세차게 흘러내리는 민물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죽는 거대한 연어 떼의 본능을 보면서 비록 동물이지만 그 근성 만큼은 인간보다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연어들처럼 오늘 우리 시대는 거친 세파를 거슬러 올라가는 근성과 다음 세대를 위해 수만 킬로를 준비하는 깊이를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

영적성숙의 동의어는 깊은 영성이다. 성숙은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인생 전체의 여정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인스턴트 성숙이란 있을 수 없다. 오늘의 예배 문화도 인스턴트에 절어 있다. 단 한 번의 예배로 최고의 예배자가 탄생해야 할 것처럼 몰아간다. 물론 한 번의 예배가 중요하다. 사울은 한 번의 예배 실패로 하나님의 축복의 대열에서 낙오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예배로 신앙의 전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장차 망하게 될 죄악의 도성을 떠나 천성을 향하여 떠나는 한 순례자의 여로를 장엄한 서사시처럼 그려낸다. 한 사람의 크리스천이 그의 인생 마지막까지 가는 길목마다 고뇌, 회심, 전도, 박해 등 다양한 국면을 경험한다. 이것이 신앙의 여정이다. 예배는 이러한 인생여정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일 뿐이다.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삶의 깊이와 여백을 누리며, 예배를 축으로 인생 전체를 관망할 줄 아는 깊이 있는 기독교인, 깊이 있는 목회자, 깊이 있는 예배인도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 20:27)

이유정 목사 / 한빛지구촌교회 예배디렉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오직 주 만이’ 작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