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성탄 시즌이 오면 늘 동방박사를 묵상하곤 한다. 주인공인 아기 예수가 탄생한 바로 그날, 이 지구상에는 오직 두 부류의 조연이 있었다.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이다. 그 가운데 후자는 독특하다. 이들은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서 먼 동방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향해 긴 여행길을 떠났다. 동방박사를 뜻하는 영어 매기(Mage)는 먼 옛날 바사와 메대 나라의 제사장을 의미한다. 이들은 백성들 가운데 가장 높은 교양을 지닌 천문학자였고, 왕실에서 왕의 고문, 또는 왕자들의 선생이기도 했다.

어느 날 박사들은 이상한 한 별을 발견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이 별을 예수 탄생과 연계 해석했을까? 고대 근동 아시아에는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점성술과 천문학이 상당한 과학적 수준에 이르렀다. 이들은 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었기에 당시의 모든 문헌들 속에서 별에 관한 자료를 모두 수집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 이스라엘 근동 아시아 지방에 퍼져서 디아스포라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이들의 특징은 가는 동네마다 회당을 지어 놓고 예배를 드렸다. 박사들은 이 회당을 통해 다니엘의 예언이나 메시아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을 쉽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천문학과 유대 자료를 통해 이들 마음에 모종의 감동을 주셨다. 이방나라의 점성술가인 이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종종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을 통해 자신의 일을 이루신다. 발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당시 국제적으로 알려진 점술가였다. 그도 한때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나중에 사이비 점술가가 되었다.(신명기23:4,5) 구약성경에 발람이 하나님의 신을 받아서 예언한 내용이 나온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민수기 24:17) 학자들은 이 구절을 예수 탄생으로 본다.

그러나 발람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돈에 의해 움직였던 거짓 선지자였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쓰임 받는 축복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기 길’로 갔다.(민 24:25) 그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죄 가운데 빠뜨렸고, 그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때때로 우리도 하나님께로부터 큰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기 길로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놀라운 사인을 보고 이를 자신들의 명예나 부의 기회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도 모르게 그 별을 좇아 외롭고 긴 여행을 떠났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예루살렘 성에 있던 사람들은 목동 외에는 아무도 그 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왕은 물론 성경학자, 제사장,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다른 별에 비해 밝았고 움직이는 별이었기에 조금만 신경 쓰면 볼 수 있었다. 그 뿐인가? 이스라엘에 도착한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을 찾고 있습니다. 동방에서부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공공연하게 묻는 바람에 당시 정계와 예루살렘 성은 발칵 뒤집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 외에는 그 누구도 별에 대해 관심 없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곳을 찾는 자도 없었다. 참으로 대조적이다. 먼 이방나라에서 온 학자들의 수고와 열정에 비해 정작 메시야를 그토록 열망하던 유대 종교지도자들, 백성들은 이상하리만치 철저하게 무관심했으니 말이다. 만일 크리스마스 아카데미 영화제 같은 것이 있었다면 이 동방박사들에게 최우수 조연상이 돌아갔을 것이 틀림없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는가? 아무런 이득이 없다 해도 그분께 경배하고자 하는 그 마음 하나로 세상 명예와 유혹을 얼마나 포기했는가? 별 하나에 목숨을 걸고 먼 이방 땅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처럼, 우리에게 다가온 크고 작은 하나님의 사인이나 주의 음성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가? 성탄의 계절, 휘황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의 별에 흥청대기보다 동방박사의 별을 찾아보지 않겠는가?

– 이유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