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4




바쁘게 보냈던 3월. 그래도 5권의 책을 가까스로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비교적 최근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가볍게 나누고자 한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쟈크 엘룰, 대장간, 1992
작년 규장출판사에서 나온 “존재의 이유”라는 전도서에 관한 책을 통해, 쟈크 엘룰이란 인물이 좀 더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 덕분에,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쟈크 엘룰의 책들이 속속 재판되어 구입 가능하게 되었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이냐 돈이냐”같은 책들이다. 그간 꼭 읽어야 할 책 중에서 구할 수가 없어 늘 아쉬웠던 책 –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접했다. “뒤틀려진 기독교”의 서문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엘룰의 사상은 어렵다. 그래서 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한다. 사실 그의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쟈크 엘룰의 전반적인 사상에 심하게 반발할 만한 보수적 신학 색깔을 가지신 분들 조차, 주일 예배 시간에 쟈크 엘룰의 말들을 별 생각없이 인용하시는 것만 보아도 쉽게 찾을 수 있겠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엘룰의 사상을 내 나름대로의 버전으로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아직 공부도 덜했을 뿐더러, 더 공부한다고 해도 잘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우 리는 세상 속에 있다. 우리는 세상의 죄를 감소시킬 능력이 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한편으?죄된 현실을 묵인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엘룰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적이고 윤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항함으로 기독교는 늘 혁명적일 수 밖에 없음을, 그래서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가치, 즉 ‘무엇이든지 성공하는 것, 효과적인 것, 능률적인 것은 정당하다’는 가치에 대항하여 존재 그 자체의 변화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정치 경제 등 사회의 문제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 이 현대 문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직접적 공격이나 거대한 변화를 위한 노력이나, 세계 전체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는 소용이 없다. 즉 이 전체주의적 사회 속에 살면서, 그것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메세지를 삶의 현장 속에서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라는 2007 KOSTA/USA의 주제도서로 선정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한다.


 “Battling Unbelief: Defeating Sin with Superior Pleasure”, John Piper, Multnomah, 2007
Preorder – 아직 출판되지 않은 책을 Amazon.com을 통해 밀 주문해 놓고 받아 보았다. John Piper는 Christian hedonism으로 우리에게 널려 알려진 저자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이유이며, 믿음이란 ‘하나님인 우리에게 하신 모든 일,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일에 대해 기뻐하는 것이다.”遮?Christian Hedonism은, 현대의 자아 중심의 왜곡된 복음에 신선한 깨우침을 주지 않았나 싶다. John Piper의 책들은 읽으면서 거의 많은 부분 공감하고 도전 받는다. 딱 한 권의 예외가 있었는데, “하나님의 숨겨진 미소”라는 고통의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책으로, 나는 여전히 John Piper가 설명하는 고통의 이유에 대해 잘 동의가 되지 않는다. 아직 고민해야 할 숙제만을 남겨 주었다고 할까.


“Batting unbelief”는 저자가 이야기 하듯이, “Future Grace”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을 신뢰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가진 많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상황이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기뻐한다면 말이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 죄이다.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죄된 모습의 예로, 걱정, 교만, 낮은 자존감, 조급함, 탐욕, 우울, 정욕 등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왜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는 결과로써의 죄인지를 조목 조목 다룬다.


앞 에서도 이야기했지만, John Piper의 책은 읽어서 별 손해 볼 것이 없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흘러서, Piper의 hedonisim이 인간의 책임을 소홀히 한 극단적 이론이라고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기독교의 자아 중심적 모습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기독교의 미래”, 이문장, 앤드류 윌즈 외, 청림출판사, 2006
‘기독교의 미래’라고 하면 사실 Alister McGrath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McGrath의 최근 작 “기독교의 미래”가 있고, 또 약 10년 전의 역작인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문장 교수 외 6명의 저자에 의해 쓰여진 이 “기독교의 미래”는 McGrath의 접근과는 사뭇 다르다. McGrath가 그의 책에서, 서구 기독교의 전체적인 흐름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단하고 있다면, 이문장 교수의 이 책은 세 삼 세계의 기독교에 대한 전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즉, 기독교의 중심 축이 이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남미로 이동할 수 있다고 진단하고,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 아시아, 아프리카 등은 기독교 신앙을 탈서구화하여,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신학뿐 아니라, 기독교 문화도 건강한 토착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함을 역설한다.


나 는 아직, 기독교와 민족이라는 개념을 정리하지 못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민족이라는 개념이 과연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걸까? 여기 저기서 들은 이야기로는, 정리되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다. 나의 고민에 또 다른 한 방향을 제시해 준 고마운 책. 얼마 후에는 기독교와 민족이라는 개념이 조금 더 정리될 날을 기대해 본다.


 “속 빈 설교, 꽉찬 설교”, 정용섭, 대한기독교서회, 2006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신앙적으로는 나보다 훨씬 성숙해 있어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한 후배와 통화를 했다. 그 후배가 정용섭 목사의 설교비평 사이트에 대해 알려주었고, 인터넷에서 글을 읽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곧 그 분의 책 “속 빈 설교, 꽉찬 설교”를 구입했다. 임영수, 이재철 목사로 부터, 김진홍 하용조 조용기 목사, 그리고 박옥수 김기동 목사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목사들의 설교를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비평한 책이다.


우 선, 이 책이 목사의 설교가 신성화되어 있는 우스운 한국교회의 상황 속에서, 용기있게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에 대한 비평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을 계기로, 목사의 설교가 신성화되는 오류가 조금이라도 시정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려고 애쓰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저 자의 설교 비평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특히 임영수, 하용조, 조용기 목사 등의 설교에 대한 비평은 탁월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첫째, 그의 설교 비평에 대한 기준이 좀 더 명확히 설명되었어야 했다. 물론 편집자적 의도에 근거한 성경해석을 선호하고, 교회력에 따른 균형 잡힌 설교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둘째, 박영선 김동호 목사의 설교에 대한 비평은, 저자의 연구부족이 눈에 띤다. 예를 들어 박영선 목사의 설교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최근 저작까지 모두 읽고 생각의 변화까지 읽어 내야했는데, 저자는 박 목사의 바뀐 생각까지는 인식하지 못한 채 비평을 한 점이 아쉽다. 또한 김동호 목사의 경우도, 몇 편의 설교로 비평하면서 생긴 많은 오류들이 보인다. 김동호 목사의 설교 비평은 결국 본질을 벗어났다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정용섭 목사의 두번째 책도 구입했다. 한국 교회에 불어올 신선한 바람을 기대하면서…


 “교회 DNA”, Howard Snyder, IVP, 2006
하워드 스나이더의 최신작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의 표적”, “참으로 해방된 교회” 등의 그의 저작에서 볼 수 있듯이, 하워드 스나이더는 교회 갱신에 관한 전문가이다. 이번 책 “교회 DNA”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분명이 그리스도의 형질, 즉 DNA를 가졌을 것이고, 그 DNA는 과연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다룬다. 하워드 스나이더의 초창기 저작들을 보면, ‘공동체로써의 소그룹’에 대한 강조가 많이 나온다. 교회 갱신의 부분으로 소그룹을 분명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중기의 저작을 보면, ‘생태학’에 대한 관심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역시 ‘소그룹’과 ‘생태학’에 대한 이야기는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덧붙여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사실로 대표되는 사회참여에 대한 강조이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예수님의 DNA를 지닌 교회의 모습으로써, 대형교회도 될 수 없고, 초소형교회도 될 수 없다고 전제함으로써, 메노나이트 신학자로써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들게 하는 부분도 있어 흥미로웠다. 그의 다음 저작을 무척이나 기다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