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 서평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필 립 얀시의 책을 소개하기로 작년부터 마음먹었다가 이제서야 소개하게 되었다. 그의 여러 저작들 중에서 두 가지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를 놓고 어떤 책을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실망”보다 “은혜”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번 달에 소개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거나, 아니면 이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의 영문 판 제목 “What so amazing about grace?”가 말해주듯 은혜가 왜 놀라운지 묻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은혜가 빠진 기독교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 생활 중 은혜는 실종되기도 한다. 처음 믿기 시작해서 믿음이 새록새록 자라는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믿음의 선배들이 종종 하는 말들이 있다. “처음에는 다 그래.” “꽃 믿음이야, 조금만 지나봐.” 얀시는 믿음의 선배나 후배나 동일하게 은혜의 바다로 들어 갈 것을 권유한다.


영국에서 열린 비교 종교학 회의에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을 찾아 토론에 들어갔다. 그들은 여러가지 답을 하나 씩 지워나갔다. 성육신?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이야기는 타종교에도 있다. 부활? 사자의 환생기사 역시 타종교에 있는 것이다. 토론이 길어지고 있는데 C.S. 루이스가 방을 잘못 찾아 들어 왔다. “토론의 주제가 뭡니까?” 그의 질문에 동료들이 전세계 종교중 기독교만이 기여 할 수 있는 바를 찾는 중이라고 말하자 루이스가 답했다. “그거야 쉽죠. 은혜아닙니까?” (P49)


불교도, 힌두교도, 이슬람교도 모두 인간의 노력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가 없이 얻는다는 개념은 인간의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 은혜는 우리에게 어색하다. 은혜로 구원 얻고서도 본능적으로 우리는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의식에 시달린다. 은혜가 빠진 신앙생활은 재미가 없을 뿐 아니라 피곤하다. 내 힘으로 하는 신앙 생활의 피곤함, 이것의 정체는 무얼까?


내 생각에 위선의 해결방안은 완벽 아니면 정직 두 가지 뿐이다. 그러나 주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며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본적이 없기에 완벽은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일한 해결방안은 회개에 이르는 정직이다. 성경이 말하듯 하나님의 은혜는 살인, 외도, 배반 등 어떤 죄든 다 덮을 수 있다. 정의 상 은혜란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선은 은혜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가면이 떨어지면 위선이 은혜를 기피하기 위한 정교한 책략이었음이 밝혀진다. (P242)


얀시의 글의 특징은 ‘설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들이 가지는 문제점들을 꼼꼼히 나열한 뒤 하나하나 독자와 함께 풀어 나간다. 자신의 경험과 간증을 등장 시킴으로 독자의 마음을 열곤 하는데 이 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헤럴드 형의 이야기는 은혜를 외면한 사람의 말로를 극명히 보여준다. 헤럴드 형은 얀시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동네에서 알게된 사람이다. 그는 도덕과 정치에 강박 관념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의 개방 풍조로 인해 심판이 임한다고 믿었고 인종차별 개선정책에 불만을 품고 남아공화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얀시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평신도 설교자로 주일마다 심판과 정죄를 선포하던 그는 그의 집에서 포르노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세상을 순수세력과 불순세력으로 양분하다가 그 반경을 좁히기 시작했고 결국 자기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다 자기마저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책의 맨 끝에 얀시의 결론이 나와 있다. “세상은 은혜에 목말라 있다. 은혜가 임할때 세상은 그앞에서 침묵에 잠긴다.” (P333)


사족: 얀시의 또다른 책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역시 한번쯤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이 책은 부르짖으나 들으시는 것 같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듯한 하나님께 실망한 사람들과의 인터뷰와 저자의 욥기에 대한 단상, 그리고 그의 간증이 어울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