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ones suffer mortal agony as my foes taunt me, saying to me all day long, “Where is your God?”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d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Psalm 42:10-11)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전 우주에 미친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온 시간을 규율하신다고 우리들은 믿는다.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세상의 나라의 질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주권이 적용된다면 의로운 사람이 당하는 고통, 고난을 하나님은 왜 허용하시는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신다면 왜 세상의 나라가 번창하며 이 우주에는 왜 죄와 악이 번성하는가? 이 세상의 수많은 악과 무질서, 그리고 세상 나라가 번창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세상 나라의 질서, 그리고 악의 주권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그 질서를 유지하는 분(sustainer)이라는 믿음, 역사를 전지와 전능 그리고 전적인 선하심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나 자주 우리들은 심각한 악의 존재에 이런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분이라는 믿음을 버리거나,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거나, 그분의 전적인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든 것 같다. 성경에서도 이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욥,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
욥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전제되어 있다. 심지어 사탄의 어떤 행동이 하나님의 계획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욥은 하나님께 항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대답한다. 욥의 항의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기다렸다가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대답은 그에게 닥쳤던 일들에 대한 설명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대답은 욥과의 관계에서 과거에 있었던 많은 일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형성되었던 믿음과 신뢰에 대해 지적하신다. 우주와 세상의 운행은 욥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들을 알려주시고 과거에 그에게 쌓인 믿음과 신뢰를 다시 되살아나게 하신다. 지적인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고통 당하신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세상의 악과 그 악의 결과에 의한 고통에 대하여 무관심한 하나님이신가. 세상에서 생기는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인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죽음을 경험하실 때 예수님 뿐 아니라 그와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계시던 성부 하나님도 죽음을 경험하신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은 성부 하나님에게도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 자신이 모든 악의 결과인 죽음을 스스로 감당한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당하신, 고통을 직접 경험하시는 하니님이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주권
하나님 나라의 운행의 구체적인 원리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들의 지적인 한계로 역사와 사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발전되어 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것은 지적인 동의가 아니고 영적인 결단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에 관심이 있으신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이 그런 믿음의 근거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고 그 승리를 향한 역사의 발전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하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는 그 믿음으로 산다. 그 믿음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