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KOSTA/USA 스크랜튼 집회에서 있었던, 김정아 교수님의 ‘치유의 길: 용서 (The way to healing: Forgiveness)’ 세미나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왜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지, 용서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왜 용서가 힘든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서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내는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과연 용서하기는  쉬운가?
1. 매우 쉽다
2. 쉽다
3. 어렵다
4. 매우 어렵다
5. 하기 싫다
6. 요나처럼 Just kill me.

답은 6번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면  여러분 상처의 정도에 따라 다를 수가 있습니다. 친구가 펜을 하나 훔쳤다고 하면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를 줬다면 요나가 힘들었던 것처럼 굉장히 힘든 일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상처를 많이 안 받아보신 분은 1, 2, 3 중 하나라고 답하실 수 있지만, 여러분이 상처를 많이 받으셨다면 4, 5, 6중 하나라고 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상처를 안 받으셨다면 굉장한 축복인데, 제가 예언을 할 텐데 여러분은 앞으로 살면서 반드시 상처를 받으실 겁니다. 이것은 저주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모두 연약한 인간이고 나도 실수를 하고 남들도 실수를 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받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난이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기정 사실입니다. 상처를 안 받아보신 분은 내가 왜 이 세미나를 듣나 생각하실 수 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시던지 남을 돕기 위해서 이것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C.S. Lewis가 말하기를 용서하기가 쉽고 아름답다고 하는 분들, 본인이 용서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정말 용서할 상황이 될 때까지는 참 아름다운데 내가 직접 하게 되면 정말 죽기까지 싫다는 말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믿을지 모르겠지만 ‘복수 가이드’라는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복수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들어있는 시디를  팝니다. 이런데 은혜 받고 찾으시면 안 됩니다. 가짜 티켓을 판다든가, 차 옆에 생선을 넣어 놓는다든가, 칫솔을 변기에 담갔다가 다시 놓는다든가 하는 방법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마음이 아프게 되면 그것을 갚아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런 복수 대행 웹사이트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용서가 힘들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용서를 하기 힘든 이유 중에 복수를 하면 속이 시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수는 참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달콤해서 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용서가 가장 힘든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은 부모님, 친구, 애인을 통해서 상처받은 부분을 해결하지 못해서 여기 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크리스천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는데 왜 용서하지 못할까 자문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안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용서는 해 본 사람은 알지만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죽기보다 힘든 일입니다. 압사당한 개미 보이죠? 아픈 사람들은 어둠에 눌리듯이, 압사당한 사람처럼 아주 힘듭니다. 용서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고 아주 정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기억하실  것은 제가 상담을 하면 “어쩌면 제 친구가 이럴 수 있어요”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용서는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괴롭히는 것은 금방 잊혀집니다. 그런데 용서가 필요한 사람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상처를 주지 못합니다.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필요한 사람들은 교회 안이나 가족 안이나 나를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들, 나와 친한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나를 사랑해 줘야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하는 것입니다. 윌리엄 블레이크가 이야기 한 것처럼 적보다 친구를 용서하는 것이 훨씬 힘듭니다. 그래서 용서가 힘든 것 같습니다. 용서가 필요한 사람은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의 교회 안에 있거나 가정 안에서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친한 사람만이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든데 여러분이 용서를 진짜 실천하려고 하실 때 큰 돌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프고 당한 것도 어려운데 왜 하나님이 용서하기를  원하시는지 굉장히 의문이 생길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 기억하셔야  할 것은 용서는 보통 우리가 남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앞으로 한 시간 반 동안  설명을 드릴텐데 용서는 정말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걸 기억하시면서 이 세미나를 듣는 것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결국에는 여러분을 돕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원하실 때는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가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단 용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믿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용서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고통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고 아파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용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정말 하고 싶지 않은데 정상적으로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참 힘든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닮기 원합니다”라는 내용의 찬양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찬양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쁜 찬양이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다는 것인데 기억하셔야 할 것은 예수님의 성품 자체가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다른 도덕성이 아니라 내 자녀가 나를 닮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힘들어도 용서를 실행하셔야 합니다. 근데 제가 느끼는 것은 용서가 진리라는 것을 알고 나니 죽기만큼 싫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제가 상처를 받으면서 배운 것들이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기억할 실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라는 점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대하고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라고 하면 친절하게 웃어주는  것 정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랑은 희생입니다. 내가 편하고 싶고 더워서 에어컨 앞에 앉고 싶은데 친절하기 때문에 더운 곳에 앉는 마음과 내가 용서하겠다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크리스천으로 모인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닮기도 해야 하겠지만 또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용서하신 것과 같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겠다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은 결국 죄이거든요. 크리스천이라면 죄짓고 싶지 않잖아요. 성경에서는 남을 용서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 마음에 당한 것도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여러분 조금 더 생각을 잡아 두시고 저와 함께 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용서하지 않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죄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야한 생각을 하는 것과 같이 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픈데 내 일 아니라고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제일 어려운 게 이 말씀일 것 같은데요. 하나님이 조건을 다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거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의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에서도 반복하셨습니다. 반복하실 때에는 중요하다는 말씀인데, 내가 안하는 것은 괜찮은데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보니 그림이 확 달라보이죠. 함정에 빠졌다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말씀이 다음 생각과 갈등이 됩니다.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았는데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죄가 되는지 헷갈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미 죄인되었을 때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럼 이 두 말씀이 갈등관계가 되는데 잘 생각을 해보면 이게 그 뜻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이 남이 싫은 마음을 꽉 잡고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선물을 드리려고 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런데 여러분이 상처와 아픔을 잔뜩 들고 있으면 아무리 드리려고 해도 받을 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도 용서 받을 수 없겠다”는 말씀은 너희가 받을 손이 없다는 것이지, 하나님이 조건으로 두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손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날 위한 것이고, 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도 해야 하지만 그 외에도 다른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