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KOSTA/USA Youth Conference에서 있었던, 채영광 박사의 선교적 삶(Living out The Dream) 세미나입니다.

채영광 (youngkwang.chae@gmail.com)

우리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그런 삶이 있습니다. 그 꿈이 실현되는 그 날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며 우리의 삶은 성공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나의 것인지 하나님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정확히 말해, 내가 무엇을 위하여 공부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이 번 세미나를 통해, 학교에서, 교실에서, 지금 이 시간 내가 딛고 있는 이 곳 미국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멋진 Missionary로 살아갈 수 있는지 다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꿈이 비로서 내 꿈이 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땅끝의 선교사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공고히 해야 할 우리의 정체성

그런데, 사람의 정체성은 자신이 받은 사랑만큼 뚜렷해진다. 어릴 적에 누구의 지극한 사랑을 한 몸에 받아본 적이 있는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끔찍히 예뻐해주시고, 사랑해주셨는가? 내가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셨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은 받은 사랑만큼 공고하다. 나도 어렸을 때 시골에 갔을 때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께 이것 저것 사달라 조르고, 늘 할머니 할아버지와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나의 사랑스러운 딸 린아가 우리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모습을 보고 있다. 부모인 나보다 할머니를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흐뭇하다. 가족들의 사랑 안에 흠뻑 젖는 만큼 린아의 기억 속에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각인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가 안에 사랑이 충만할 때, 그 사랑이 린아로부터 또 다른 이들에게 흘러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이 인생이 파국으로 치닫을 때,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내가 죽으면 가장 슬퍼할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려보자. 나의 외삼촌은 힘들 때, 우리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실망하시고, 슬퍼하실까 하는 그 생각 하나로 험난한 인생 여정을 걸어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너무나 힘들면, 자살 충동이 생기게 되어 있다. 그 때, 어릴 때 우리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셨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그 할머니의 사랑이 나를 살릴 것이다.  할머니가 부어 주신 사랑만큼 내가 나의 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자살을 통해 할머니의 사랑을 헛되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할머니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준 것처럼, 나 역시 그 사랑을 나의 자녀, 손자, 손녀에게 전할 수 있게 된다.
거꾸로 사랑이 없다면, 정체성은 흔들린다. 나에게 가치를 부여해준 사람이 없다면, 내가 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때, 내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어 있다. 내가 대한민국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국가로부터 받은 것보다 빼앗긴 것이, 당한 것이 많다고 느낀다면, 나도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 없다. 

정체성에서 꿈으로

내 안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 내가 가장 존경하는 우리 부모님의 귀한 아들과 딸이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면, 우리의 관심은 자연히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부모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귀결된다. 그런데 조국을 사랑하면 현재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 고민하게 되고,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조국을 위해 조그마한 것이라도 할 일이 없는지 찾아 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을 사랑하면, 지금 부모님이 무엇을 가장 기뻐하실지 생각하고, 또 여쭈어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그 일을 하게 된다. 
아내와 내가 우리 딸 린아를 기르면서 가지게 된 것이 ‘부모’라는 정체성이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린아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아이가 아프면, 내 맘이 찢어지고, 아이가 아빠 하고 내 품에 앉기면, 아무리 피곤한 날이어도 모든 피로가 다 한 순간에 사라진다.  부모의 입장에서, 나는 내 딸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한지에 가장 관심이 가고, 그 것들을 해주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 것은 지극 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나를 똑같이 고생하시면서 키우셨을 나의 부모님을 생각하니, 부모님께 앞으로 더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이렇듯, 우리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우리가 해야 할 일들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성경에서 발견하는 우리의 정체성

그런데, 성경에 놀라운 말씀이 쓰여져 있다는 것을 아는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주셨다고 말씀하신다. 창조주 하나님 당신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라고 허락해주셨다.  우리의 친구 되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어머니 뱃 속에서 잉태되기 이전부터, 아니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우리를 알고 계셨다고 말씀하신다. 믿겨지는가? 우리의 이름을 아시며, 머리카락 수까지 아신단다. 그 뿐 만이 아니다. 우리와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신다. 깜짝 놀랄 말이다. 가장 신기한 일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에서 증거하듯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내어주셨다는 것이다. 그로써 우리를 사망으로 이끄는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잘 믿겨지지 않는 말씀이다. 그런데, 단순히 믿기만 하면, 이 복음을 내 삶의 진리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과 죄의 용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질 것이라 하신다. 이 복음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값을 지불할 것은 하나도 없다. 예수님께서 대신 모든 대가를 지불하셨기에 우리는 공짜로 받는 선물이다. 우리는 받기만 하면 되는, 말 그대로 free gift이다. 무언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당연시되는 세상의 이치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복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

자, 이제 정체성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리들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 것이 가장 중요한 우리들의 정체성(Identity)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 그 분은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셨다. 그것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가치 없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만큼의 가치를 부여해주신 분이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은 아무리 우리를 사랑해주신다고 해도, 나와 평생 매 순간 함께 하실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이기에 실수가 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다. 또한 사랑이 잘못된 방향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실수가 없으시고, 약속을 식언치 않으시며, 우리에게 조건 없이 사랑해주시는 분이시다. 항상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God is good all the time). 무엇보다, 우리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으신 분이다. 우리와 늘 동행해주시며, 보호해주시는 분이시다. 그 우리가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실감이 가는가? 하나님 나라, 천국을 우리가 유업으로 물려 받을 것을 믿는가? 
내 딸 린아가 아빠를 부르면, 나는 내 방에서 아무리 바쁜 일을 하고 있더라도 린아에게 달려간다. 또 우리 집과 집안의 물건 모두 다 린아 것이 된다. 교회에서 우리 가정을 부를 때, ‘린아 엄마 아빠네 ‘라고 하지 않는다. ‘린아네 가정’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자녀된 권세로 언제든지 아버지 하나님과 친밀히 소통할 수 있으며, 천국을 기업으로 물려 받을 정당한 법적 상속자들이다. 가슴으로 느껴지는가? 하나님 자녀됨의 권세, 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지만 모두 다 가진 자이다. 이 조건 없는 사랑 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거하자.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히 샘솟는 샘물과 같다. 그 생명수가 나를 적시고 흘러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부어 주시는 그 사랑 안에 거하고 있는가? 이 사랑이 우리를 살리는 힘이고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깨닫고 온전히 누려야 한다. 먼저 진정한 자녀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꿈을, 사명을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의 하나님 자녀됨을 묵상하자. To do보다 to be가 먼저 이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무조건적 사랑 안에 흠뻑 젖어야 한다. 그 사랑에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듯이 ‘사랑 절임’을 당해야 한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하나님 자녀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준다.
얼굴에 큰 화상을 입은 어머니가 있었다. 아들은 괴물처럼 꺼멓고 흉측하게 생긴 자기 어머니가 참 부끄러웠다. 되도록이면 그런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 어머니가 시키는 것은 다 하기 싫었고, 엄마를 무시하면서 반항적인 아이로 커갔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은 어머니 얼굴의 비밀을 이웃 사람들에게서 듣게 되었다.  어릴 때 자신이 몰래 부엌에 들어가 이것 저것 만지다 끊는 물이 들어있는 주전자가 어린 아들에게 쏟아지는 것을 보고 엄마가 달려들어 그 뜨거운 물을 주전자째 받아서 얼굴이 그렇게 된 것이라고.  아들은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엄마 얼굴만 보면 눈물이 났다. 아들은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했다.  엄마가 심부름 시켜주시길 기다리는 아이로 변하게 되었다. 먼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눈이 바뀐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위 이야기 속 어머니 얼굴의 화상이 우리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요, 그 분 손과 발의 못자국이다.  그 당시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 그 고통과 수치, 모욕을 나의 죄 때문에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을 묵상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 안에 거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너를 죽기까지 사랑하여 구원하신 너의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건강, 물질, 직업은 우리의 정체성과 무관하다.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내 딸 린아를 보면서, 아프지 않고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린아가 자기가 즐거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고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린아가 가난하게 살던지, 부자로 살든지 그 마음에 기쁨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모로서 가장 기쁠 때는 그냥 아빠, 엄마를 아빠, 엄마로 불러주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린아가 태어나기 전부터 뱃 속의 아기와 이야기하며, 기도해주고, 아기 옷을, 장난감을, 우유 병을 사며 기다리다, 드디어 분만실에서 응애 소리를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릴 때, 우리 하나님이 그러셨구나. 세상을 열심히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 아담에게, 너를 위해 이렇게 준비했다라고 하시며 기쁨과 감격으로 아담과 교통하셨을 우리 하나님이 떠올랐다. 린아가 나를 아빠라 불러주며 내 품에 앉길 때, 그렇구나, 우리 하나님도 내가 하나님을 찾을 때, 주님의 품 안으로 나아갈 때 가장 기뻐하시겠구나 생각했다. 린아가 다른 아이보다 걷는 것을, 말하는 것을, 한글책과 영어책을 늦게 읽게 되더라도, 내가 린아를 사랑하는 정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 가운데, 내가 이 세상에서 물질적으로, 학문적으로 얼마나 성공하든지에 무관하게 우리 주님은 나를 변함 없이 사랑하시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우리가 건강하든지 장애가 있든지, 돈이 있든지 없든지, 화려한 직업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 가치는 내 소유에 있지 않고, 내가 온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는 신분에서 나온다. 내 가치는 내 능력과 배경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내 가치는 현재 내 상황이 어렵다고, 힘들다고 바뀌지 않는다. 만 원짜리 지폐를 발로 밟아 더럽게 한다고 해서, 만 원 지폐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자, 이제 자유하자. 내가 만든 기준, 주변의 기대가 충족될 때, 내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유하자. 더 많은 이들이 나의 가치를 인정해줄 때, 내게 인기가 더 생길 때, 더 좋은 성적을 얻을 때, 더 전도유망한 직업을 가지게 될 때, 내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나의 가치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나를 지금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에게서부터 나온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 미국 시민이 된 사람이 있다. 신체 장애자라고,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특정 직업을 가졌다고 미국 시민이라는 그의 신분은 바뀌지 않는다. 그는 시민권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 사전 절차를 거친 후 미국 시민권 선서를 하면 된다. 복음은 사실 더 간단하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천국 시민권을 받게 된다. 이 땅에서 우리의 지위의 높고 낮음이 천국 시민이라는 우리의 신분에 결코 영향을 줄 수 없다. 항상 찬송을 부르고 기쁘게 살아가는 한 파출부 아줌마에게는 그녀가 일하는 저택에 사는 재벌가 가족이 부럽지 않다. 자신이 파출부라는 자격지심도 없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직도 모르고, 가족 경영권 다툼으로 마음이 피폐해진 가족들을 불쌍히 여길 뿐이다. 김우현 감독의 ‘팔복: 최춘선 할아버지’ 동영상을 보면, 할아버지께서 이 세상 최고의 권세는 ‘부러운 자가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하나님 자녀인데,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이 배짱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 시편 23편의 고백이 우리들의 고백이 되기를 바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