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부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총독 구레뇨는 명을 내려 인구조사를 실시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을 등록해야 했기에 요셉과 마리아도 유대의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로 올라갔다. 갑작스레 방문한 수많은 여행자들 때문에 숙소를 찾다 못해 결국 마구간에 기거해야 했다. 그 초라한 말구유에서 인류를 구원하실 왕 예수가 탄생한 것이다. 왕의 탄생 치고는 외로움 그 자체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선지자 없이 400년을 지내던 때라 메시아 대망사상(Messianic Expectation)이 그 어느 때보다 강세였다. 한 예로 메시아의 탄생지가 다윗의 동네라는 예언 때문에 베들레헴에는 결혼하지 않고 메시아를 낳겠다는 처녀가 수백 명이었다는 전례도 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메시아 대망 기운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이던 사회 분위기에 비해 정작 아기예수 탄생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참담할 정도로 외면 일색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네 종류의 반응을 발견한다. 첫째, 매우 적대적인 경배자 헤롯왕이다. 헤롯왕은 박사들에게 말했다. “아기를 찾거든 내게도 알려 주시오, 그러면 나도 가서 그분께 경배하겠오.” 그러나 헤롯의 속셈은 다른데 있었다. 아기가 발견되자마자 죽일 계획이었다. 그분께 경배하겠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에 불과했다. 헤롯은 다윗 왕 이래 가장 강력한 왕이었지만 당대에 가장 악독한 왕이었다. 자기 지위를 넘보는 자들은 가차 없이 죽였다. 탱크로 시위대를 깔아 뭉게고, 그들에게 로켓을 발사했던 루마니아의 차우체스쿠 같은 사람이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명예와 권력 때문에 예수를 핍박하는 자들이 있다.

둘째, 자신의 지위 때문에 회피한 경배자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 해박한 자들이다. 메시아가 태어날 장소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헤롯왕이 질문했을 때 일말의 지체 없이 관련 성구(미가 5장 2절)를 언급하며 베들레헴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과 부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예수를 경쟁상대로 삼았다. 한해를 살면서 자신의 기득권과 욕심에 눈이 멀어서 예수를 부인하고 외면한 한 일은 없었는가?

셋째, 무관심으로 회피한 유대 백성들이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새로 태어난 유대의 왕께 경배하러 왔다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다. 그렇지 않아도 메시아 기대감으로 들떠있던 백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헤롯왕의 시기심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박해와 손해를 두려워했기 때문일까? 정작 메시아 예수를 찾아 경배하는 일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동방박사들은 최고의 경배자들이다. 먼 나라에서 별 하나 의지해 갖은 고생 끝에 메시아를 찾았다. 아기 예수께 드린 예물도 아무런 대가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더욱이 황금, 유향, 몰약은 범상치 않은 선물이다. 황금은 가장 귀중한 가치를 의미한다. 이것은 왕에게 적합한 예물이다. 유향은 아라비아나 아프리카에 있는 유향나무의 분비액을 말려서 만든 향으로 향료나 제사 때 사용되었다. 이것은 제사장에게 적합한 예물이다. 몰약은 시체에 바르거나 사형수들의 마취제로 사용되었다. 이는 예수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선물이다. 이 예물들은 각각 그리스도의 왕권과 제사장직과 죽으심을 상징한다. 어떻게 동방박사들이 이런 예물을 준비했는지 놀랍기만 하다. 성령의 감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배를 마치고 이들이 한 일은 헤롯의 부탁을 무시하고 꿈속에서 본 지시대로 몰래 유대를 빠져나갔다. 참으로 사심 없는 진정한 경배자들이었다.

오늘의 크리스마스는 아기예수에 대한 경배보다는 목적과 대상도 없이 떠들고 흥청거리는 즐거움과 쾌락이 주를 이룬다. 사람들은 자신의 바쁜 일 때문에, 자신의 안락과 쾌락 때문에 예수 경배를 뒷전으로 미룬다. 동방박사들과 같은 참 경배자보다 헤롯이나 유대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백성들 같은 거짓 경배자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성탄이 3일 남았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의 마음을 더 이상 외롭게 하지 말자. 아무런 사심 없이 경배의 최고봉을 보여준 동방박사를 본받아 아기 예수께 가장 귀한 예물을 준비하자.

– 이유정 (한빛지구촌교회 예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