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KOSTA 2018 수양회 시작되었습니다.

김도현 교수님의 환영사에 이어 김영봉 목사님께서 “은혜의 자리에 서다” 라는 제목으로 로마서 5:1-11 말씀을 중심으로 특강을 해주셨습니다.

은혜?

(아~) 은혜.

(그래 맞어) 은혜!

(특강 내용의 일부를 아래에 올립니다.)
은혜를 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며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속성이며, 그 은혜의 속성은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진노하실 때 조차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진노하시는 것이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그 이유가 은혜로 인함 입니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조건 악을 참고 살아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애초에 우리는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인지해야 합니다. 선악과를 선택함으로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보다 주어지지 않은 것을 쟁취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서로를 신뢰하기보다 서로를 비교하며 경쟁하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것이 오늘날 사회가 말하는 “정의”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악한 본성이 만들어낸 정의는 점점 왜곡되어 끝없는 경쟁과 지나치게 과열된 교육열로 나타납니다. “나의 몫”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는 우리의 “정의”는, 지키는 못한 자에게 피해의식을, 서로에게는 생존 경쟁으로 몰고가 경쟁에서 발생한 차이는 대물림됩니다. 결국 각자가 추구하는 정의가 대립되어 만인의 투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give and take의 원리가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사 인간을 창조의 꽃으로 만드시고, 인간이 죄를 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사 이스라엘을 택하심으로 구원계획을 시작하였으며 예수로 말미암아 그 계획을 완성하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살게 하시며 결국엔 새하늘 새 땅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할 수 없을까요?

  1. 우리가 정의의 시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 전체를 압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교회는 율법주의로 빠지고는 합니다.
  2.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에 맞게 작게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작아지면 우리 스스로는 한없이 커지게 됩니다. 이것이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어제 만난 하나님을 오늘도 믿고 있다면, 내가 박제한 우상의 하나님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커지는 이유는 다시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쨰 , 인간의 능력에 대한 과시입니다. 두번 째, 죄성에 대한 망각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장 큰 문제는 죄를 부정하고 죄를 자랑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인간의 욕망에서 나오는 모든 행동이 정당화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크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감탄하며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눈 뜨지 못하면 나를 바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망각한다는 것은 나를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하나님 앞에서도 우리를 적당한 정도의 은혜만을 구하게 합니다. 구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은혜를 받은 인생에 하나님이 어떠한 처분을 내리든 우리에겐 어떠한 권리도 없습니다. 죄인에게 지옥은 당연한 것이요, 천국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의 진실은 세상의 적자생존, 약육강식, 경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눈뜬 자에게는 현실은 하나님의 잔치요, 우리는 하나님의 그 한없는 사랑을 받는 자요, 크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작은 자인지 깨닫는 시간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은혜에 눈뜨고, 은혜에 머무르고,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에 가려졌던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이 은헤로 택하사 사랑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십자가로 증거하셨습니다. 직접 독생자 예수를 통해 그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 은혜가 전부임을 깨닫고 나면 내 삶의 그 모든 것이 은혜의 섭리안에 있음을, 은혜 없이는 나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어제의 은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늘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내가 된 것이 감사하게 되는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