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엔지니어
중학교 때 읽었던, 상대성 이론을 쉽게 설명한 교양서적 한 권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아주 짧고 쉬운 책이었는데 저는 그 책을 몇 번씩 다시 읽으며 흥분했었습니다.
사물의 근본을,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는 물리학에 저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제가 제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저는 의사가 아닌 이공계를 택했습니다.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졸업했던 대학은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때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하는 시스템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제가 원하는 전공을 제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물리학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꿈꾸었던, 세상의 근본적인 원리를 파헤치는 그런 위대한 학자가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했던 제 모든 생각이 참 미숙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엔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나마 물리학과 매우 가까워 보이는, 그러나 ‘순수과학’이 아닌 ‘공학’의 범주에 드는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공학을 선택하면, 꼭 최고가 되지 않더라도, 밥을 먹고 살 것 같다는 생각해서 결정한 나름의 타협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재료공학은 제게 매우 재미있는 학문 분야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제겐, ‘순수과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그런 것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사 과정 지도교수를 정할 때도 지나치게 실용적인 연구를 하는 실험실보다는 더 자연과학적 원리를 파헤치는 실험실을 택했습니다. 박사과정을 하는 중에도 그 원리를 파헤치는 것에 대한 강박은 계속 되었습니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내용으로 박사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중간에 논문 주제를 바꾸어 가면서까지 ‘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몰입했으니까요. 제게 있어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것은, 안정적인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순수과학을 하는 적절한 타협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 생각은 실리콘 밸리에서 하드코어 엔지니어들을 만나면서 철저하게 깨어졌습니다.
제가 일하는 그룹의 랩 디렉터는 미국의 탑 스쿨 박사입니다. 이 사람의 주도 아래, DVD+RW 기술이 개발되었습니다.
학력으로나 경력으로나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이지요. 랩 디렉터인만큼, 아무래도 행정적인 일들을 많이 다루어야 합니다. 높은 사람들과 회의도 많이 있고요. 어느 날 퇴근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 실험실에 들어가 보니 이 사람이 열심히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열중해서 여러 샘플들을 측정하고 있는 그에게 제가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오늘 온종일 높은 양반들과 회의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다 피곤해. 정말 지루한 회의를 하느라 지겨워서 혼났어. 그래서,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다가 집에 가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아서 말이야. 참, 아까 네가 이야기했던 고장 난 실험장비 있지? 내가 그거 좀 손봤어. 이제 잘 될 거야.”
이 사람에게 있어 실험은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즐거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저희 그룹에는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 돈으로 몇백 불 하는 새 전자제품을 사서 분해를 한 후에 새롭게 알아낸 것을 나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학 때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전기 자동차를 자기 손으로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어본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집에 공작실(machine
shop)을 두고 필요한 샘플을 자기 돈으로 만들어와서 회사에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 정말 뼛속 깊숙이 공돌이들/공순이들 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열정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고 신나게 일하는 우리 그룹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고 물어보면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세상에서 쓰이는 게 신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물론 여러 가지 필요 때문에, 논문을 쓰는 일을 하기도 하고, 학회에 참석도 합니다. 저희 그룹에도 학계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도 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 일하는 가장 커다란 동기는 발명(invention)입니다. 발명 자체가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열심히 배우고 다른 이들과 나누었던, 창세기의 문화명령에 근거한, 소위 ‘기독교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는 일 가운데 많은 일은 하나님의 창조활동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피조세계를 다스리라는 명령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류에게 피조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대리자(agent)가 되어 창조활동을 하라는 의미를 담으셨다는 것입니다. 가령,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 자유롭게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세상에 만들고자 하는 하나님의 창조의지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여 발명하고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저와 같은 엔지니어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학 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기독교 세계관 스터디도 하고, 책도 읽고, 친구들과 열띠게 토론도 하고, 그렇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었는데, 막상 크리스천 엔지니어로 사는 제가 그것을 제 삶의 현장에서 충분히 깨닫고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순수과학에 대한 막연한 헛된 동경에 사로잡혀, 그리고 기술을 개발해서 세상에서 쓰이게 하는 것이라는 공학의 원래 의미를 잊어버려, 그저 논문 쓰고 학회 가서 발표하고, 내 이름 내고 유명해지는 것에 목매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논문 쓰고 학회 가서 발표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적어도 엔지니어 대다수가 직업활동의 핵심과 목표로 삼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재발견한 이후, 저는 더 열심히 일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마음에 두셨던, 전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가득 차게 되는 일, 그리고 예수의 삶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구체화한 새 창조(new creation)를 이 땅에 구현하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저 자신을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제가 제 직장 생활 속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구현해나가는 일에는 많은 실제적 어려움도 있고, 여러 가지 유혹도 있습니다. 회의가 있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아 보일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직장 생활 속에서 그것을 더 배워가며, 지금 이 시점에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그리스도인 엔지니어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흥분되도록 신나는 일입니다!
이 시대에 엔지니어로 열심히 일한다는 것
이들은 자신을 스스로 ‘미싱공’이라고 칭합니다. 그 논리는, 60-7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이 ‘미싱공 언니’들의 노동착취를 통해 이루어졌다면, 21세기 초반 한국의 경제 성장은 현대판 미싱공인 엔지니어들의 노동착취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45세면 다니고 있던 회사 나와서 뭐 하며 살지 막막해지는 현실은 40년 전 미싱공 언니들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푸념입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이겨보겠다고, 동생들 학교 보내겠다고 시골집을 나와서 상경, 공장에 들어가 하루 15시간씩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예전의 ‘미싱공 언니’들에 비하면 물론 지금 엔지니어들은 여러 가지 처우가 훨씬 좋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엔지니어들이 느끼는 박탈감이랄까요 그런 것이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저는 수년 전 KOSTA/USA 집회에서 손봉호 교수님께서 하셨던 한마디를 잊지 못합니다. 제가 그때까지 씨름했던 학문/직업세계와 신앙의 통합에 관하여 가장 명쾌한 그림을 그려주는 말이었습니다. 손봉호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을 그분의 주권 아래 회복하시는 그때가 되면 (하늘나라에 가면), 그곳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열심히 땀을 흘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동의 기쁨이 그때는 회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올 세상의 삶 (life to come)의 가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삶과 사역과 선포와 죽음과 부활로 선포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 새 창조가 이제 이 땅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고 그 가치대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사는, 전혀 다른 세계관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월화수목금금금’을 하며,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는 21세기 초반의 엔지니어들에게, 예수께서 선언하신 이 새로운 세상, 새 창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 고민을 가지고 실제 삶을 살아내는 일은 이론적으로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제가 대학생 때, 대학원생일 때 열심히 배웠던, 창조-타락-구속의 소위 ‘기독교 세계관’의 틀은 현실에서 적용하는 것이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적용 가능한 이야기이긴 한 걸까 하는 좌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결국, 그 세계관을 이야기했던 이들은 다들 교수님이 아니었던가. 정말 ‘세상’에서 뒹구는 공돌이-미싱공들의 현실에는 그저 맛있어 보이는 자린고비의 굴비는 아닐까.
제 나름대로 1980년대 후반 소위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것을 접하면서 그야말로 가슴이 벅차게 뛰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이원론의 극복이라는 가치를 끄집어내서 살다 보니 심하게 세속화되어버린 저 자신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소위 ‘빡센’ 세상을 접하면서 그 기독교 세계관(혹은 개혁주의 세계관)의 프레임워크가 정말 유효하긴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하였고요.
물론 제 나름대로 이에 대하여 정리해가는 생각이 있긴 합니다만, 그리고 기회가 되면 이곳 eKOSTA 에서도 그런 내용을 나누며 많은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기도 합니다만, 오늘의 글은 이 정도에서 애매하게 맺어보려고 합니다. (혹시 댓글 등으로 제 생각에 ‘딴죽’을 거시거나 추가 설명을 요구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렇게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회복된 그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즐겁게 노동할 것이다.’라는 그 그림입니다. 도대체 지금 이 시점에 엔지니어로 열심히 사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어떤 분들이 제게 물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살면서도 저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저 영원한 나라가 품는 가치 가운데에는 온전하게 회복된 노동도 있다고, 그리고 비록 여러 가지 현실이 여전히 어그러진 모습 속에 있지만, 나는 그 속에서 그 회복된 가치가 마치 지금 현재의 가치인 것 같이 살아내는 특권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고 그렇게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작년이었던가요, 제가 어떤 지방에 가서 다른 교회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gpKOSTA를 마치고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담임목사님으로 계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제게 주일 예배에서 간증해 달라고 하셨는데, 저는 제 간증을 하는 것을 늘 불편하게 생각할 뿐 아니라 간증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께서 워낙 완강하게 말씀하셔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형편없는 간증 동영상이 제 아내에게 입수된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그 간증을 듣더니 다시는 다른 곳에 가서 이렇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도 듣기 어려웠다나요.
그 간증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다.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공허함이 있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 공허함이 해결되었다.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잘했던 공부를 어렵게 하심으로써 내가 하나님 나라 백성다움을 갖추어나갈 수 있게 해 주셨다.’
제 아내가 문제로 삼은 것은 간증의 전반부였습니다. 소위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식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반감만 주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 아내의 생각이 맞습니다.
eKOSTA에서 제게 ‘직장생활’에 관한 글을 써 보라고 권유했을 때, 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는 여러 가지 고민과 기쁨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이야기가 마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와 같은 식으로 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깊이 하지 않은 채 글쓰기를 허락한 것 같다는 우려가 그 후에 닥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미국에서 소위 ‘명문학교’로 일컬어지는 곳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직장’으로 여겨지는 곳에서 일하였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실리콘 밸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직장의 안정성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시대를 사는 다른 분들에 비하면 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하는 내용도 소위 ‘첨단’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에서의 만족도도 매우 높습니다.
그런 제가 제 사는 이야기를 쓴다면 여러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이렇게 미리 언급해둠으로써, 제가 엘리티시즘을 추구하는 것이라든지, 혹은 제 자랑을 하려고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것인데, 제대로 전달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런 자기소개와 변명이 뒤섞인 애매한 글로 제 eKOSTA 글쓰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제 직장생활에 대한 글을 쓰면서, 제 스스로 제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를 얻기 원함도 있으나, 무엇보다 다른 분들의 충고와 조언, 질책과 코멘트를 듣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인터렉티브한 대화가 오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