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길] 자신감이 아니라 겸손으로 Part I


얼마전 한 청년과 상담하며 귀한 시간 가졌다. 많은 이야기를 주안에서 나누다가 형제가 조심스레 묻는다. “교수님,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사 너무 자신이 없어요.” 자신감이 없는 나에게 자신감을 물어 오다니남들이 보면 나는 몹시 자신있는 사람같아 보인다. 많은 사람앞에서 설교도 하고, 학회에서 편안히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한다. 어떤 발제자들는 내가 나타나면 공연히 긴장마져 된다고도 한다.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이 볼때는 백과사전같이 모든것을 다 알고 있는 교수같아보인다. 허긴 많은 논문도 쓰고, 잘팔리는 책도 쓰고, 또 많이 읽히는 책의 챕터 (Chapter)도 집필했다. 그러나 강의실 들어가며 마음이 쿵쾅거리는 조그만 긴장감을 그들이 어찌 알랴.  

분명 나도 그형제 처럼 자신있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많은 청년들이 자신감이 없어서 힘들어 한다. 그래서 형제의 질문은 내게 생소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나의 대답이 형제가 기대하던것은 분명 아니었다. 나의 대답은 그형제에게 있어서 너무 엉뚱하였는지도 모른다. “형제님, 자신감을 가지려 애쓰지 마시고, 겸손하려 애써보세요.!” 나의 상담은 그날도 여지없이 상담을 받고 있던 형제의 기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미국에 유학와서 느낀 미국인에대한 인상중 하나가 그들의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미국문화는 자신없어 보이면 마치 바보인냥 취급하는 괴상한 문화라고 보았다. 잘 몰라도 아는체 해야 토론점수를 따내고, 박사과정 오랄시험에서도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또한 자신의 조그만 업적도 자신의 이력서에 그럴싸하게 잘 꾸며서 집어넣은 PR지향적 민족으로 보여졌다. 그러니 겸손이 미덕인 대한민국에서온 유학생인 나에게 그것은 흉내내기가 좀처럼 어려운 행동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그랬듯이 오른손이 머리로 가서 머리를 극적거리며 띄엄띄엄, 불안하리 만치 조심스레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머리가 가렵지도 않은데 왜 으레 손이 그리로 가는지 모른다. 학생때 나도 그랬지만, 교수가 되어 한국학생이 다른 미국 교수와 그렇게 대화나누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며 나는 조용히 미소짓는다. 나의 옛모습을 바라보기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교수가 되어 강의실에서나 학회에서 토론에 참여할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있다. 별 알맹이가 없는 내용을 열심히 유창한 영어로 침을 튀며 이야기 하는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을 바라본다. 물론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알찬내용의 것을 이야기 하여 나의속을 시원하게 하고, 또 도전을 줄때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미국인들은 싱거운 내용의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고 자신있게 이야기 한다.

자신감은 흔히 머뭇거림없이 행동할 수 있는 어떤 능력 혹은 에너지라고도 얼른 정의내릴 수 있다. 또한 자신감은 또한 어떤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여러 행위를 조직하고 실행할 있는 개인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라고 조금 딱딱한 정의를 내려볼 수 도 있다.  어찌했던 자신감은 일련의 성공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해 보니 되더라, 그래서 또 다시 하게 되면 별 문제 없이 할 수 있을것 같다”라는 일종의 믿음 같은것이다.

반면 심리학에서는 “무력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실패를 반복할 경우,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 보았지만 그같은 실패가 자신에게서 기인했다고 믿는 신념에서 무력감이 생겨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번의 성공을 위해 99번의 실패를 해야한다는 에디슨의 충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감의 다른 얼굴인가? 보통 몇번만 실패해도 자신감을 잃어 버리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무력감을 갖는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이 아닐까?  

실패를 반복하고도 지속적으로 같은일을 시도할 수 있는 힘은 자신감에 있지 않고 겸손함에 있다고 본다.  [강의준비가 있어서 우선 여기서 멈추고 나중에 계속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 윗 사진은 Google Image Search (http://images.google.com/)에서 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