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NW gpKOSTA 를 마치면서


지난 8월 25일부터 27일 아이오와 시티에 위치한 한인 침례 교회에서 노스 웨스트 지역 – 아이오와, 미네소타, 네브라스카, 위스콘신 – 을 대상으로 열린 NW gpKOSTA가 은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노 스 웨스트 지역에 속해 있는 학원촌 교회에서 현재 리더로 섬기는 이들과 앞으로 리더로 양육하고자 하는 전략적인 대상 약 36명의 등록자와 5명의 풀타임 강사들과 4명의 파트타임 그룹 토의 강사들이 함께 2박 3일 동안 300명의 기드온 용사들을 세우듯, 제자 삶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집중 양육에 임했다.


25 일 목요일 오후 아이오와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청년 사역을 섬겨온 김 종필 권사는 ‘쓰임받는 청년 리더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리더들이 예수님을 담은 그릇이 어떻게 될 수 있는가를 도전하면서 개회 예배를 시작. 2박 3일간의 총 9개의 제자 삼는 삶에 대한 집중 양육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첫강의로 장 이규 목사의 ‘spiritual transformation & lordship’ 세미나는 그리스도의 주권되심이 그리스도인의 개인적인 영적인 삶의 영역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까지 점진적으로 확대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consumer Christian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consuming Christian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선포하였다. 이어서 둘째 강의로 강 동인 강사는 ‘성경적 세계관’ 강의를 통해 타락된 세계관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제자로의 참된 회복은, 우리들의 본질적인 인식의 변화와 지속적인 내적 죄성에 대한 지속적 인식에서부터 이루어진 세계관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오직 말씀으로만 가능함을 선포하였다.


26 일 금요일 둘째날은, 새벽 요한복음 큐티를 시작으로 이어서 셋째 강의로 강 동인 강사의 ‘성경적 직업관’이 이어졌다. 인간의 타락은 노동과 제사의 조화 파괴를 가져왔고 그 결과 인간의 삶은 삶의 의미 결여와 생계의 문제, 그리고 상대적인 가치관에 의한 위축과 의욕상실, 그리고 노예의 삶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인 삶을 살게 이끌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삶의 의미는 거룩한 예배로, 생계의 문제는 일의 열매 보장으로, 위축과 의욕 상실의 삶은 소망의 삶으로, 노예의 삶은 자유의 삶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이 회복되면서 진정한 예배의 삶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선포하였다.


넷 째와 다섯째 강의로 이어진 유 남호 강사의 ‘귀납법적 성경 연구방법’ 과 ‘원투원 성경 공부’는 제자 삼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성경 말씀을 읽을 수 있는 그 방법론과 실제적 훈련을 제공 하였다. 이를 통해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와 간증, 그리고 개인적인 신앙의 경험의 영역에서 찾을 수밖에 없던 말씀의 능력을 이제는 구체적으로 리더의 개인적 삶에서 말씀의 묵상과 연구를 통해 생수를 퍼낼 뿐 아니라 그 생수가 강같이 흘러낼 수 있도록 하는 그 기초를 제공하였다. 더 나아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일이 곧 전도임을 강조하면서 이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에 붙들려 살려는 자가 할 수 있으며, 평생 전도자의 삶을 살고 싶은 제자들의 첫 발걸음을 떼는 소중한 일이 바로 원투원 성경 공부임을 역설했다.


이 후 오후에는 여섯번째 세션으로 그룹 토의가 진행되었는데,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5명의 강사를 통해 각 그룹으로 나누어져 리더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와 신앙의 연결을 위한 전문 그룹 상담이 이어졌다. 이 원찬 강사의 ‘평신도 사역과 소그룹’, 최 원영 강사의 ‘진로와 직장, 그리고 현장 사역’. 송 용억 목사의 ‘리더쉽 컴뮤니케이션: Happy Meeting Culture’, 송 광석 목사의 ‘리더의 영적 자기관리’, 이 종구 목사의 ‘유학생, 이민자로서의 Christian Identity’, 유 남호 강사의 ‘귀납법적 성경 연구 실습’을 통해 쉽지 않은 우리의 현실과 제자로서의 삶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결하여 제자의 삶이 나누어질 수 있는지를 깊게 고민하고 그 방안을 모색하는 실제적인 시간을 가졌다.


금 요일 저녁에는 강 동인 강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이 이어지면서 제자의 삶은 구체적으로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것이 제자의 삶이며, 이 말씀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말씀이 로고스가 되어 선포되어지는 말씀 레마(Rhema)가 되었을 때 사건으로 나타나면서 제자가 삼아지고 주님과의 우리 자신의 동역이 이루어짐을 선포 하였다.


이 후 강동인 강사는 이번 NW gpKOSTA에 참석한 모두를 향해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는 삶으로의 결단의 도전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제자를 삼는 삶으로의 헌신을 도전하였다. 놀랍게도 이에 참석자 대다수가 하나님의 말씀에 날마다의 헌신을 결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참석자의 2/3가 나아가 다른 사람을 제자로 삼으러 나아가겠다는 의지적 결단을 하였다. 이 도전에 이어 김 소연 간사의 인도로 이어진 기도의 밤은 제자의 삶을 살 뿐만 아니라 제자를 삼겠다는 결단에 주님의 거룩하심과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가득한 은혜와 능력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마 지막 날인 27일 토요일 오전 역시 요한복음 큐티로 시작되어 이어진 유 남호 강사의 캠퍼스 사역의 노하우와 장 이규 목사의 ‘역동적 소그룹 운영을 위한 8가지 시스템’ 은 우리들이 제자 삼는 삶의 구제적 현장이 어딘가? 그리고 그 현장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를 분석하고, 그 현장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다가가는 그 전략적 노하우를 제공하였다. 이를 통해 캠퍼스 전도 사역방법, 동시에 특별히 교회나 캠퍼스에서 섬기는 소그룹 내에서 어떻게 역동적으로 이룰 수 있는 가에 대한 다양한 방법과 전략이 제공 되었다.

[김유진] 할렐루야, 아멘!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유타 (UT) 지역에 gpKOSTA 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가슴이 무척이나 벅차 올랐습니다. 나의 삶의 이유와 목적과 목표를 심어준 코스타 !!!!!!


생 각하고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어찌보면 엉겹결에 준비 위원회에서 홍보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등록 원서를 만들고, 포스터를 만들어야 했던 홍보부였는데, 컴퓨터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제가 어찌… 부담감이 확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이 앞서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준비 기간 동안 하나님이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 주셨던 은혜로웠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준비 기간 동안 써놓았던 일기 두 편을 소개합니다.


10.16.2004
“오늘은 로간에 올라갔다 왔습니다. 왕복 4시간이라는 시간을 무릎쓰고 주님이 가라는 곳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생각 외로 몸이 지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고 주님의 아들 딸로서 서로 나눔으로써 돌아오는 길이 오히려 감사함으로 돌아왔습니다. 할 일이 산더미지만 더 힘이 났습니다.


집 에 돌아왔습니다. 바로 다음 주 월/화에 있을 시험들을 준비할 생각이었는데 나로 인해 늦춰지는 하나님의 일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도 내가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도… 모든 것을 부어주시는 분이 아버지이신데, 분명 반드시 아버지의 일이 나의 삶의 최우선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 실 앞이 깜깜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놈의 컴맹… 오늘은 그 어느때보다도 답답하네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 당장은 더 절실히 느껴지기만 합니다. 멀리 있는 지훈이가 흔쾌히 도와주었습니다. 고비가 넘어갔습니다. 휴우 역시 아버지는 사람을 붙여주시는구나. 다시 한 번 아버지가 날 돕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헌데,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진짜 모르겠습니다. 경은 언니한테 전화도 해보고 또, 민 집사님께도 밤 늦게 죄송스럽지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어느 정도 완성은 되어가는데 갑자기 마음이 답답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일을 하면서 힘들다고 원망하지 않을까 하며 순간 두려워졌습니다. 내안의 죄성으로인해 아버지를 욕되게 할까? 어제 묵상한 욥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원망하지 않던 욥의 품성
또, 엊그제 묵상했던 요나서
아버지의 명을 받고도 나 몰라라 선박 밑에서 달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요나 모든 것이 내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답답한 심정이지만 또 다시 아버지의 말씀을 붙들고자 성경책을 펼칩니다. 분명,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또 내게 능력이 없을 때, 감당할 수 없을 때엔 사람을 붙여주심을 내가 아니까…


아버지!!!!!!
어찌나 이리두 감사한지요. 어찌나 이리도 신기하기만 한지요. 내게 말씀하신 것들이 다 맞아 떨어져만 가니까 놀랍기도 하고, 약하고 부족한 저로서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버지,
제게 말씀하셨죠??? 절 뉴욕까지 보내셨던 그 이유를 알게하셨죠??? 그 곳에서 무엇을 깨닫게 하셨고, 이 유타 땅에 돌아와서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하나하나 정말 놀라운 섭리로써 제가 깨닫게 하시는데, 저는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 감사함에 눈물이 나옵니다.


절, 준비시키신다던 아버지…
단련시키시겠다던 아버지…
제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게 하소서. 내가 힘들어 답답해서 넘어지려 할 때 나를 붙들어 일으키소서.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도록 나를 붙드소서.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 부족하고 연약하기만 한 저를 택하시고 훈련시키시는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이런 한없는 사랑에 오늘도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흐릅니다.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그 비젼들을 죽을 때까지 제 마음에 품으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소서.


우리 대학촌 청년부를,
우리 유타땅을,
그리고 더 큰 아버지의 비젼의 땅들을
죽도록 마음에 품게 하소서!!!!!!!!”


10.30.2004
“작은 것에 충성할 때, 큰 것을 맡기시는 주님…
아직, 작은 것에도 힘들어하며 허덕거리며 허우적거리며 갈팡질팡…
어찌해야 할 지 모르는 일 투성이지만, 아버지…!!!
더 이상 나 몰라라 뒤로 물러가는 겁쟁이가 되지 않으렵니다.


아버지,
내가 감당할수 없는 일들을 절대 맡기시지 않으시는 아버지!!!
내게 이 일들을 맡기셨을때엔 분명 아버지의 놀라운 섭리와 계획들 속에 나를 이끄심을 압니다. 내게 맡기시는 일들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아버지께서 나를 더욱 갈고 닦으심을, 나를 아버지의 기쁘신 그릇으로 만들어 가심을..
더욱 아버지께 전적으로 의지하며 아버지만을 바라볼수 있게 하심을..


아버지!!!
감당할수 있게 하소서. 아버지만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온전히 아버지 안에서만 이룰 수 있도록..


아버지가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실 수 있는 내가 되도록..


아버지,
온전한 아버지의 사람으로, 아버지의 자녀로, 아버지의 종으로 나를 이끄소서 나를 만드소서.
모든 것에 감사가 넘칠 수 있는 삶으로 변화되도록 구원하여 주신 것에도 너무 감사해서 눈물밖에 안 나오는데 이렇게도 부족하고 하찮다고 느끼는 나를 그 놀라운 아버지의 섭리와 계획을 위해 나를 택하셔서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셔서 아버지의 세상을 역사하시는 아버지…


아버지, 찬양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나는 온전한 아버지의 사람입니다.


나를 이 모습 이대로 다 받아주시옵소서.
부족한 이 몸이지만, 아버지 써 주시옵소서.
아버지여, 아버지께 쓰임 받는 아버지 딸 되게 해주소서…. ”


밤 정각 10시가 되면 준비 위원들은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고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gpKOSTA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찬양팀 연습, 기도 모임과 회의가 있었고, 매주 수요일마다 밤 11시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기도 모임과 회의가 있었습니다. 밤잠을 설쳐가며 황금같은 주말을 아버지께 온전히 드리며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고 함께 기도하며 고민하던 그 시간들은 참으로 축복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는 이번 gpKOSTA를 통해서 처음으로 리더라는 위치에 섰습니다. 항상 리더가 아닌 자리에서 느꼈던 마음과 생각과는 달리, 쉽게만 보였던 그 자리가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참으로 준비되어야 하는 자리라는 사실과 책임이 부여된 위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야 하며, 더욱이 내 자신이 먼저 기도하며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위치였습니다. 뒤돌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하기만 했던 조장이였던 것 같습니다.


“네가 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느냐? 왜 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느냐?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너의 욕망을 위한 것이냐?”


마지막 저녁 찬양을 시작하면서 내게 물어오시던 주님…


“제자가 됨은 순종인데, 너는 과연 나에게 순종하였느냐?” 거만하고 교만하기 짝이 없는 제 자신의 대답은 나름대로의 yes 였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반문까지 해가며…


또 한 나의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비밀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좋은 것도 힘든 것도 살짝만 나타내기 좋아합니다. 특히나 좋은 것이 생기면 그것을 나눔으로써 그 좋은 것이 다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굉장합니다. 나의 욕심이 무엇인지 또 그 욕심으로 인한 약함을 보여주시는데, 그것에 대한 처음의 제 반응은, ‘싫습니다. 그것이 뭐가 어떻다구요???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싫습니다. 다 없어져 버릴까봐 두렵습니다. 못 버립니다. 그것을 꼭 버려야 합니까? 아니… 버리더라두 시간을 주세요….’ 어처구니 없이 하나님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 욕심은 나를 ‘썩은 웅덩이’ 로 변질되게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 동인 강사님의 말씀가운데에도 ‘input & output’ 의 말씀이 들어 가 있었습니다. 받은 것을 나눌 줄 아는 것, 그래야 더욱 더 새로운 것들로 나를 채워주신다는 주님이십니다. 이제껏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면의 주님을 보여주시고 전보다 더 풍성히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아 직도 부족하고 연약한 믿음이기에, 하나님과 타협하려 하는 마음이 듭니다. 해보겠다고 다짐해 놓고도 그래서 시도는 해보지만, 뒤돌아선 후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봅니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서 완전히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항상 내가 생각하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것으로 채우시는 또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에 또 한 번 놀라하며 감사할 수 있었던,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일깨워 주셨던 집회, 또, 그렇게 살아가기로 다시 한 번 다짐하고 돌아온 집회였습니다.


온전하고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으며 살아가는 리더로 키우시기 위해서, 이 유타 땅에 gpKOSTA를 예비해 놓으신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아 직도 아버지의 그 놀랍고 경이로운 섭리와 계획하심은 모르지만, 이 집회가 정녕 아버지께서 뿌리시는 씨앗이라 믿습니다. 작은 씨앗이지만 뿌려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라는 물과 거름으로, 수 천 그루의 나무를 마음에 품습니다. 온전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꿈꿉니다. 유타를 사랑하시고, 청년들을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 이 곳 집회를 통하여서 더욱 아버지께 한 걸을 한 걸음 걸어 나갈 수 있는 우리들 되기 원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함께 하실 우리의 아버지를 우리가 높이 찬양합니다!

[신나미]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만나를 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Gp kosta 전야, New Year’s Eve.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그 첫 순간만큼은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새해 첫 순간의 문턱을 넘어 내딛는 나의 첫걸음을 무슨 말씀으로 인도해주시려나 하는 기대를 갖고 하나님께 얼굴 도장도 찍을 겸 해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던 기억이, 그것도 가족이 함께 섬기던 Northern Virginia의 워싱턴 중앙 장로교회에서 온가족이 매년 송구영신 예배를 다같이 드리던 기억이, 가족들과 뚝 떨어져서 혼자 연말연시를 보내는 이번 겨울엔 더욱 새삼스러울 만치 그립다. 그 시절을 그리움으로 돌아보노라니, 해마다 설날이 시작됨과 동시에 시작되곤 하던 12일의 전교인 신년 금식 기도회에 가기 위해서 차를 몰고 속속 수양관으로 올라가던 낯익은 성도들의 무리들 속에 한데 묻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가던 나의 모습도 언뜻 보인다. 마음에 받아올 하나님의 말씀을 고대하고 그분께 올릴 나의 기도 제목을 하나하나 가다듬어 보던 표정이 떠올라 공연히 마음만 아련해진다. 내게는 제 2의 고향인 정든 버지니아의 집과 교회를 떠나 이 곳 미시간까지 온 게 벌써 5년째. 그래도, 올해는 GP KOSTA11일부터 23일간 열리니까, 오랜만에 신년 초를 하나님과 제대로 보낼 수 있겠군 하는 생각에 이르자 요 근래 가라앉듯 지쳐가던 내 마음자락에 한 움큼의 위로가 그나마 들어앉는 것 같다. 정초에 있을 GP KOSTA를 준비하는 부담 때문에, 몇 달 전부터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보내려고 고대해왔던 겨울방학 계획도 결국은 취소하고 혼자 Ann Arbor에서 지내야했다. 그래서일까, 미시간의 우울한 연말을 내내 홀로 지내며 GP KOSTA를 준비하게 하신 이유가 있겠지 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실 남모를 은혜가 기대되기도 한다.


새해 아침에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갑니다



, 설날이지, ! 혼잣말까지 해가며 새벽에 벌떡 일어났다. 미시간은 지리적으로는 중부지만, 시간은 동부 time zone을 따르기에 환해야 할 아침이어도 어둑어둑한 날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흐린 날도 잦은 편이니 일찍 일어나 봤자 바깥이 캄캄하다는 걸 핑계삼아, 환할 때 기분 좋게 일어난다는 것이 그만 늦잠 자는 고약한(?) 버릇을 키워버렸다. 그러고 보니 새벽을 깨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내게 들려주실 하나님의 음성을 고대하며 새벽잠에서 스프링 튕겨나오듯 가뿐히 일어나곤 하던 시절도, 마치 늦잠 잘 때 꾸는 꿈인 양 여겨질 정도다. 이제는 몸을 비틀어가며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I love you, Lord, My strength (Psalm 18:1)–수 년 전 코스타에서 말씀을 전하신 이 동호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그때부터 목사님처럼 나도 이 구절을 하나님께 7 년 전부터 아침인사로 드려왔다를 외치듯 탄식하듯 하나님께 아침 인사를 하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곤 한다. 그래도 오늘은 어렵지 않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도 밖은 어두컴컴하지만 일찌감치 선발대로 여럿이 모여 함께 떠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 새해다. 새 날이 동터온다. 나도 덩달아 새로워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뜨거운 커피를 mug에 가득 담아 홀짝홀짝 마셔가며 하얗게 서리맞은 채 얼어있는 집 앞 파킹장에 나갔다. 어둑어둑하고 인적도 없는 새해 벽두부터, 하나 둘 모여든 차가 꼭 무슨 접선하러 나온 자들 같다. 설날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Gp kosta를 준비해온 우리들밖에 없을 거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새해 아침을 시작하고,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사실이, 코스타 막바지 준비로 밤을 꼬박 새서 피곤은 했어도 내심 뿌듯하다. , 출발!



새해 꼭두새벽부터 GP KOSTA로 모여드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덕분인지 화창한 햇볕을 하나님이 잔뜩 몰아다 주셨나보다. 미시간에서 오하이오까지 운전하고 가는 3시간 내내 주말에 여유부리며 드라이브 나온 것 마냥 운전하기에 너무나 쾌적하다. 안 그래도 근래 들어 독감이 극성인데다가 으레 있을 법한 폭설이나 강추위라도 오면 어쩌나해서 코스타를 준비하는 섬김이들이 기도들은 해왔지만, 정말 날씨가 이상스러울 만치 온화하다. 동요 노랫말대로 햇볕은 쨍쨍, 하이웨이는 반짝 할 만큼 눈부실 지경이었다. , 이제 좀 있으면 gp KOSTA가 시작된다지금 운전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바삐 돌아갈 집회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인 셈이다요 근래, 그동안 지고 있던 마음의 짐들에 눌려 도저히 혼자서는 덜어내지 못할 것만 같은 무력감에 지쳐있는 나를 보곤 한다. 이제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다 생각 덩어리들과 그동안 나의 심령을 할퀴던 예민한 감정들의 무게를,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내려주시고 벗겨 내주시기를 바라면서, 가만가만 짚어 가는 시간을 갖고 싶다.



영적 무력감이라고 해야 할까? 불감증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님의 코드를 읽어낼 때마다 살아 반응하는 세포의 호흡이 아니라 하나님께조차 경직되어 가는 내 심령의 세포에 내심 당혹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알고도 묵인한 사이에 내 영성에 달라붙기 시작한 군살과 그때그때 떼어내지 않은 게으름이 어느 새 굳은살이 되어 내 살이 되어버린 걸까? 왠지 내 자신이 버겁기까지 하다. 받아야 할 훈련을 게을리 해오던 군사 마냥 경건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영적 비만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노상 활기차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심드렁해졌지? 하며 내심 놀라는 척도 한다. 하긴 학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7년째로 들어서면서, 지겹다고까지 느끼고 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받아들 때마다 신기해하고 기뻐하며 필요한 양식을 제때에 기가 막히게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마음으로 드리던 감사가, 언제까지 이런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어야 하는지 물리는 양 싫증나기까지 한다. 다시 이전에 누리던 물질적으로도 여유 있고 넘보기에도 그럴듯하게 두려움과 걱정 없는 양 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더욱 이 생활이 불만스러워지기도 한다. 이 광야만 벗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아니 광야 이전보다도 더 풍요롭고 남부러워 할 만치 멋있게 살아갈텐데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은 조급해지는데, 광야의 끝은 과연 올까 아니 가나안은 정말 주어지는 걸까 싶어 두려워진다. 그렇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를 바라보며 충동을 받았을 이브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라고 이브를 편들어주고도 싶어진다. 나의 아버지 되어주시는 선하신 하나님 때문에 또 선배 이브의 실수와 그 이후 그녀가 톡톡히 치른 consequence를 알고 있는 부담감 때문에 차마 그 나무의 열매를 아직까지 따먹지는 못했어도, 때때로 아직도 그 앞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본다. 하나님께서 그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지만 이 나무를 만지는 거 갖고는 뭐라 안 하셨지? 하면서, 이 걸 먹어, 말아? ?? 신음소리까지 흘리며,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그 나무를 여전히 만지작거리고 있다. 차마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열매까지는 못 따먹는 나의 처지가 아쉬워 공연히 입맛까지 텁텁해지고 쓰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불순종을 두려워해야 하나 싶어 하나님께도 은근히 삐진다. 남들은 잘도 따먹는데, 따먹고는 좋아들 하는데



그리고 그 나무의 열매를 맛있게 따먹는 나무 주변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는 속상했더랬다.



수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재충전을 하기 위해서라며, 보아란 듯이 나의 20대의 매력적인 무대가 되어준 Washington DC Northern Virginia라는 대도시, 그리고 익숙한 일상과 정든 모든 인간 관계를 미련 없이 뒤로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스러운 학교 타운으로 떠나던 날이 기억난다. 더 이상 사회인이 아닌 홀가분한 풀타임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축하면서도 기대에 찬 설레임과 불러오는 긴장감을 수시로 드나들며 겨울비 내리던 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버지니아 대학으로 훌훌 떠나갔다. 운전하고 2시간을 내려가는데, 차밖에는 주룩 주룩 겨울비가 내리고 그 빗물 마냥 차안에서도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 없이는 드릴 수 없는 나의 신앙 고백을 전심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다 들어주시고 받아주시며, 조금의 빈틈도 없이 꾸역꾸역 짐을 싣고 University of Virginia (UVa)로 내려가는 내 좁디좁은 차안에 내내 동승해주셨다. 7년 전의 나는, 미국의 수준 있고 매력적인 대도시 환경에서 보통의 세상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양질의 삶과 능력 있는 싱글 라이프의 멋을 누릴 만큼 누려봤다는, 그래서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다는 그럴듯한 자족 감마저 갖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한테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여겨질 만큼, 어느 새 단조롭고 사소로와 보이기까지 하는 대학원생 생활에 너무 안주 해버린 듯 먼 옛날 얘기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당시에 갖고 있던 일종의 자족감 덕분에, 비록 닥칠 수 있는 두려운 순간들을 각오하고라도 수년 간 일궈온 안정된 테두리를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해서라도 시냇물을 찾는 목마른 사슴처럼 변화와 발전을 찾아 떠날 수 있었기에, 나 자신을 스스로 대견히 여기기도 했다. 그토록 원해서 자초한 환경의 변화는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생활의 pattern을 신년 금식기도 이후에 곧 있었던 개강과 함께 대학원 첫 학기부터 어렵지 않게 잡아갈 수 있었다. 점차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워가고, simple life를 스스로에게 되뇌어가며 사회인이었을 때와는 달리 물질이나 시간의 씀씀이도 소박하고 절제 있게 관리해 가는 훈련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덕분에 모처럼의 학생신분은 불만과 불안이 아닌, 내게는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이요 특권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원해오던 학업의 길을 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활짝 열어주신 하나님의 time table의 완벽한 섭리를 수시로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과 나를 UVa에 있게 하신 그분의 목적을 기대하며, 하나님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하나님과 친밀히 지낼 수 있는 단조로운 시간과 환경 속에 살아가는 것이 소중하기만 했다그렇게 하나님께 민감하게 살아있던 나였는데, UVa에서 또 다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붙들고, 10시간을 운전해서 앤아버의 미시간 대학까지 올 때만 해도, 아니 지난 몇 년간도 나의 임마누엘 하나님께 감격해서 뛰어다니며 호흡하던 내가, 어쩌다 숨을 쉬어도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는 가슴 답답증까지 느끼며 터벅터벅 신발을 끌듯 걷고 있는 걸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첫날 저녁에 주신 이 일형 권사님의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강의는 그동안 struggle해온 나의 갈등의 뿌리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은혜로운 단비 같았다. 말씀을 듣는 매초 매순간,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던 온 신경이 하나님께로 한 가닥 두 가닥 차례로 반응하며 살아 오르는 것 같았다. 살 떨리게 동감하며 속으로 울면서 하나님께 순간순간 기도로 응답한 저녁이기도 했다. 온전해져야 할 나의 영성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며 이를 향해 성큼 나아간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오라 하실 때까지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정돈해가지 않으면 금새 엉망이 되어버리고 어수선해지는 내면 세계를 위해 다시 열심히 청소해가고 대수롭지 않은 먼지라도 쌓이기 전에 털어 낼 용기를 얻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 23). 이제껏 살아오면서 대체로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감히 자부했던 나의 가치관의 영역에서도, 아직까지 덫에 발목이 잡힌 듯한 나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로 작정했다. 영의 세계의 회복 없이 타락하고 왜곡된 육의 세계에 갇혀 사는 자들과 달리, ??라는 자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식해 갈 수 있는 놀라운 영의 세계를 온전히 회복해 가는 자다. identity를 귀히 여기고, 따라서 육의 세계에만 거하는 자들이 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로마 8:5-6).



하나님, 썩어 없어질 밥그릇의 먹이를 두고 그들과 다투는 사람은 결코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실족케 할 선악과나무를 바라보게 될 때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더 먼저 더 많이 따먹기 위해 아옹거리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 나무 주변을 서성이고 열매를 만지작거리며 차마 먹지 못해 신음하는 제 모습으로 인해 스스로 정제하게 될 때마다, 그 나무 저편에서 저를 안타까이 바라보고 계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좀 도와주십시오. 거침없이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은 자들이 망해가기는 커녕,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저를 넘어뜨리려고 달려들거나 덤빌 때마다 너무 속상했었습니다. 기가 펄펄 살아있는 그들에게 두들겨 맞거나 악에 찬 비방까지 들어도 묵묵히 견뎌내고 걸어오는 싸움에 져줄지언정 응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integrity를 이뤄 가는 순종을 이루어가고 싶지만, 너무 힘들어 순종해가다가도 다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맥이 빠집니다. 불순종의 유혹과 위험도 어렵게 피하는데, 하물며 순종을 힘겹게 하는 저로서는 이런 나약한 저를 볼 때마다 자기연민까지 생겨 괴롭습니다…. 모양은 달리해도 결국 본질은 같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그럴듯한 열매들이 주변에 수시로 나타날 때마다 일일이 분별 해 내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과연 도처에 달린 듯한 열매를 따먹게 되는 불순종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어금니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아야 불순종에서 가까스로 돌이킬 수 있는 저로서는, 그렇게 힘들게 지켜 가는 순종의 결과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곧잘 회의와 실망과 분노에 이내 빠지기도 했었습니다.



오히려, 제게 악을 행한 자들이 당당하게 보이고 잘 풀려 가는 걸 볼 때마다 괴로웠었습니다. 하나님, 다 아시죠? 이로 인해 상한 제 맘을 좀 달래주십시오. 번번이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니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종종 있을 터인데,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위축되고 메말라가던 이제까지의 내 심령은 어느 새 터진 뜨거운 눈물샘으로 씻기어지고 있었다.



Gideon의 소수 정예 군사로 자원합니다.



나는 종종 출애굽 이후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민족들과 나를 동일시하곤 했다. 하루하루 일용한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이 내일도 모레도 만나를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썩어 없어질 만나를 쌓아두지 않는 훈련, 아직 내리지 않은 내일의 만나로 인해 오늘부터 혹은 어제부터 불안해하지 않는 훈련, 그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한 스텝 한 스텝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며 그분보다 앞서가지 않는 훈련, 나의 가나안 입성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time table의 진행속도를 답답히 여기지 않는 훈련을, 매일의 삶에서 체득해갔을 이스라엘 민족처럼 나도 내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가며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오곤 했다. 그러다, 불손과 불순종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게다가 그로 말미암아 벌까지 받아야 했던 그들의 미련함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악하고 어리석을 수 있을까 신기해하며 그들을 맘놓고 한심하게 보곤 했었다. 그들과 묵묵히 함께 걷는가 했던 순간들은 어느 새 걷혀지고 나는 그들과 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는 건너편에 서서 딱하게 그들의 추한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 당신들과는 달라. 나는 그런 속물이 아냐. 내게는 고상한 꿈이 있고 포기할 수 없는 선한 목적이 있어. 이렇게 선하고 깨끗해 보이는 나의 모습은 분명히 지저분한 그들과는 겉보기엔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출애굽 이후에 누리게 된 자유된 자의 감격과 갈라진 홍해를 건넜다는 기적을 몸소 체험한 그 흥분마저 어느 새 다 까먹고 광야 길을 지겨워하며 불평도 수시로 터뜨려 가며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무리들의 무표정 속에, 언젠가부터 나와 닮은 얼굴이 발견되는 때가 있었다. 부인하려 해도 문득 문득 내 눈에 굳이 띄는 그런 나의 모습은 처음엔 경악으로, 그 다음엔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으로, 그리고 이제는 무덤덤한 체념과 무표정으로 침몰해가듯 꺼져 가는 듯했다…. 그뿐인가! 그네들처럼, 공연히 나까지 미시간 땅에서 뻉뺑이 돌려지고 있는 거 아냐? 하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하나님을 흘낏 치켜보고 슬금슬금 째려도 보면서 불신하고 두려워하고 원망도 했었다….


I am the LORD your God; consecrate yourselves and be holy, because I am holy (Lev. 11:44) 그래요, 하나님! 하나님에게서 오는 만나와 메추라기 외에는 세상의 것들을 바라지 않는 순결함을, 거룩함을 주세요. 어떤 만나든, 나의 것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만나에 자족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 되기 원합니다. 어느 새 바람 난 여자 마냥, 하나님과 눈 마주치기 싫증난 듯 그럴듯한 선악과를 바라보며,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 아닌 다른 대안을 찾기까지 하려했던 나의 물리지도 않는 끝도 없는 듯한 가치관의 전쟁…. 그 상흔을 안고 갈급함과 무력감속에, 혼돈 아닌 혼란 속에 터벅터벅 올라왔었는데 아, 좋으신 하나님저는 요,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에 울고 웃는 인생이 아니라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당신을 신뢰하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진정 그리 되기 원합니다.



아침 조별모임 시간에 가진 QT 모임은, 말씀 본문에 담긴 생명력이 내 안에 성육신 할 수 있기에 충분할 만큼 깊이 있는 시간이 되었다. 코스탄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은혜로운 묵상과 나눔을 가질 수 있도록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QT 본문을 다뤄주신 황 지성 집사님의 영성과 지혜가 엿보인다. QT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5:25-34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아이를 살리러 급히 가시는 예수님의 일행과 예수님을 보러 나온 수많은 무리들, 이런 밀리는 인파 속에 묻혀서도 손을 뻗어 가까스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여인이 등장한다. 오랜 세월동안 혈우병에 시달리느라 있던 물질도 다 없애고 몸은 몸대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옆에 있어줘야 할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오랜 병을 앓는 그녀 곁을 지쳐 하나 둘씩 떠났다. 어디 몸뿐인가, 마음은 마음대로 얼마나 다쳤을까. 이런 여인이 예수님으로 인해 병 고침을 받고 온전하게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구하는 자의 절실한 모습이 상대적으로 예수를 구경하러 혹은 호기심에 만지러 나온 다른 숱한 이들과의 대조를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전심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하는 자를 위해, 예수님은 바삐 가시던 길을 멈추시면서 까지 애써 찾으시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시는 모습이 실감 있게 다가온다. 게다가, 그 현장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 오직 이 여인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예전에 분명히 읽었던 내용인데도 새로운 조명을 밝힌 방처럼 내 마음에 확연하게 들어선다. 예수님은 당신을 전적으로 trust하며 그분만을 전심으로 구하며,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의지할게 없는 한 여인을 찾으셨다는 얘기가 나의 마음을 울린다. 예수님도 당신을 전심으로 찾으시는 자를 애써 찾으시는구나.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and be healed of your affliction. (Mark 5:34)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돌아오는 길



GP KOSTA가 열리는 동안엔 운치 있게(?) 겨울비가 내리더니, 앤아버로 돌아오는 늦은 밤길은 짙은 비안개와 폭우의 연속이다. 그래도 코스타가 끝나는 다음날부터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진단다. 추위까지 잠시 내쫓아주신 하나님의 배려가 느껴진다. 설날 아침에, GP Kosta에 터벅터벅 올라가던 길은 무겁고 갑갑하기만 했었는데, GP Kosta에서 내려오는 길은 병 고침을 받은 여인 마냥 가볍고 매인 것에서 자유케 된 자의 잔잔한 감격마저 있다.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해 오던 내게, 이번 코스타는 이미 제자 되어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애쓰시는 귀한 분들과 가까이서 지내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깊이 사모한다는 자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진지한 말씀 연구와 철저한 준비, 깊은 묵상의 힘과 경건한 기도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간접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헌신되고 훈련된 예수님의 제자들 덕분에, 그들이 거하는 자리마다 주변의 지체들이 그들을 통해 은혜로운 영향과 도전을 받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예수님을 통해 오늘도, 2004년 정초에도 그분의 제자 되기 원하는 자들을 통해 여전히 쉬지 않고 세워져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 또한 크다. 생명을 살리고 transform시켜 예수의 또 다른 제자를 키워내는 사역을 사모하게 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몸은 무너지듯 피곤해도 감사한 맘뿐이다. 귀한 분들과 동역의 즐거움을 누린 지난 1달 반이었다. , 좋으신 하나님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