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양 자매님께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는 요한복음14:18절 말씀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고아같이 저를 버려 두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을 것이며 박해를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지난 몇 달간 하나님께서는 마음 깊은 곳까지 저를 위로하시고 제 안의 두려움을 몰아 내주셨습니다. …”

이후 “비밀스럽게 자라는 은혜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화종부 목사님께서 누가복음 13:18-21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설교의 일부를 아래에 올렸습니다.)

한국 교회는 요즘 가장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망해가는 것 처럼 보이는 이 최악의 시기에도 희망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복음의 진검승부만이 살 길 일때에 우리는 주 발 앞에 엎드려 은혜 아니면 일어설 수 없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고 손가락질 하든, 하나님을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 은혜의 단비를 허락하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해야합니다. 현실에 처절하게 고통받되, 그 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를 수치에 두지 않으실 중보자가 계심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면 우리의 답 없는 현실 외에 다른 것이 보입니다. 우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은 성장을 통해서만 갖출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눈을 맞추는 것, 그것이 성장을 의미합니다.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 아닌, 주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삶의 방법입니다.

말씀은 하나님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리던 하나님의 나라는 크고, 위대하고 누가 봐도 가고 싶을 그런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나라는, 가장 작은 것의 상징인 겨자씨, 즉 믿음의 눈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 나라로 왔다고 말씀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야하는 이 믿음의 나라는 그래서 믿음으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벼랑 끝에서 떨어질 각오로 한 걸음 씩 떼는 삶, 겨자씨 한알과 같은 믿음으로 보지않으면 안 보이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눈에 조차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 그 나라를 가지고 왔는데 말 구유에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어떤 누구도 상상하던 구주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구주는 랍비학교 출신이 아닙니다. 그 어떤 부분도 세상에서 보기에 그럴 듯한 것이 없습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선생의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세상에서 철저히 실패한 선생의 모습, 끝까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특별한 은총과 기적적인 역사를 꿈꾸던 제자들을 뒤로하고 처참히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이렇듯 교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12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생존이 불가능한 구조였습니다. 철저한 실패자들이 모인 겨자씨 한알과 같은 상태. 그러나 본래 겨자씨는 자라서 2-4미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무도 겨자씨 같은 하나님의 나라가 사마리아 그 땅끝까지 이르리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 생존불가 상태의 교회, 로마 대 제국에 핍박받던 그 교회가 훗날 로마의 국교가 되고, 유럽을 넘어 아시아 전역까지. 겨자씨 한알이 자라 나무가 되는 이것이 우리의 기독교입니다.

역사상, 하나님의 몸된 교회는 한번도 발전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쇠락의 길을 걷는 듯 보여도,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살리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이 시간과 아픔을 통해 복음의 진리는 거듭 퍼져나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복음이 들어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믿을 것 없는 환경에서도 말씀 언약 붙들고 자리에 서서 은혜가 물밀 듯 밀려들어올 그 날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잘 나갈 때 자신감이 넘칠 때만 우리를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좌절의 상황에 있을 때 하나님이 믿게 하시고, 그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으로 한 발 내딛으면 상상도 못했던 길이 열릴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변이 나를 낙심시켜도 믿음으로 서서 말씀과 성령으로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앞은 보이지 않을 지라도 싸워가다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일 것입니다. 그 분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속는 셈치고 한번 가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때가 될 때 까지만 참게 하시지 절대 실패시키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외면의 확장과 팽창이었다면 이제는 내면에 대해 말씀은 이야기 합니다. 누룩의 비유에서 적은 양의 보이지 않는 누룩은 서서히 스며들어 무려 세 말 (장정 100인의 식사)을 모두 부풀게 변화시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큰 아픔 중 하나는 자기자신이 더디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빠르고 기적적인 변화를 많이들 기대하지만 기독교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부름받은 삶은 세상의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저 스며드는 누룩과 같은, 포도원의 그 희생하는 주인처럼, 왕이 죽고 창조주가 구유가 오신 그 예수님처럼, 내가 먼저 낮아지고 종이 되고 손해 보고.. 당장보면 실패자 같고 안되는 거 같이 보여도 주님의 시간표까지 가보면 우리의 중심부터 스며들어 우리의 내면을 바꾸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제하지 않고 끝없이 기다리시고 인내하시며 우리를 바꾸어내십니다. 세상의 시간표 처럼 내면의 변화는 없는 무력에 의한 즉각적 반응은 아니지만 더딘 만큼 중심의 완전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완전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세상은 강해보이고 기독교는 작고 약해보여도 우리는 은혜의 단비를 허락하실 그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천천히 복음을 씨를 뿌리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하심을 바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수양회의 거의 마무리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주신 은혜를 되돌아보며 나의 헌신을 적어봅니다.

여러가지 형태로 헌신한 분들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결단이 우리 주님의 은혜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는 것을 기대합니다.

헌신과 기도를 뜨거운 찬양과 함께 올려드리는 아름다운 예배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