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1, 2001 | 코스타 사역/강사 코스탄과의 만남
eKOSTA 인터뷰
이승률 장로와의 대담
eKOSTA 이승률 회장님, 이사님으로도 알려지셨고, 장로님으로도 알려 지셨는데요, 어떤 호칭으로 불러드리는 것이 좋을지요 ?
이승률 이코스타 독자들이니까 아무래도 장로가 더 익숙하고 좋을 것 같네요.
eKOSTA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장로님 소개를 해 주시고, 더불어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셨으며 그 느낌은 어떠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
이승률 감사합니다. 저는 현재 서울에 반도환경개발주식회사라는 종합 건설업체에 회장으로 있습니다. 1990년도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 실업인으로서의 역할을 해 오다가 공식적으로 1992년도에 한국기독실업인회 내 서울영동기독실업인회의 커미티(committee)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만난 분이 김동호 목사님이셨고, 우리 커미티의 지도목사님이기도 하셨지요. 거기서 김 목사님으로부터 (성경)말씀 뿐만 아니라 또 코스타에 대한 여러 가지 소개를 듣고 나서는 코스타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고, 해외 유학생들에게 실제로 협력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 김동호 목사님을 따라서 코스타에 출입하기 시작했어요. 거의 2년에 한 번 정도 왔기 때문에 서너 번 정도 밖에는 못 왔지만 코스타가 발전하는 모습을 잘 보아왔고, 코스타의 리더가 되는 이동원, 홍정길, 오정현 목사님, 또 배후에서 돕고 있는 옥한흠, 하용조 목사님 같은 분들과의 교류 뿐만 아니라, 젊은 목회자 분들이나 일터의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을 이 코스타를 통해서 많이 만나면서 특별히 세계 선교라든지, 평신도 전문인 선교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지요.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것이, 1990년도부터 중국의 연변과학기술대학 재단이사로 참여를 하고 있고, 또한 겸임교수로서, 코스타를 통해서 우리 학교에 교수, 교직원으로 오실 분들을 리쿠르트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코스타와 좋은 인연을 맺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eKOSTA 코스타랑 연관을 맺은 지가 꽤 오래 되셨는데, 코스타가 혹은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를 하시는지요 ?
이승률 김동호 목사님께 들은 말씀인데요, 약 10년전, 그러니까 1980년대 후반에 이동원 목사님께서 대전의 대덕 연구단지에서 말씀하실 때, 코스타 출신들이 얼마나 되냐고 손을 들라고 했더니, 한 100여명 정도가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유학생 출신들 중에 특히 교수, 연구직 같은 지식계층에서 코스타 출신들이 점하고 있는 위치가 굉장히 높고, 또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친다고 알고 있어요. 우리 유학생 출신들이 이와 같이 지식 계층에서 많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들 뿐만 아니라 사실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관계라든가 여러 비즈니스 리더들 중에도 코스타 출신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나는 봐요. 그만큼 유학 기간동안에 열심히 공부하며 고생스러운 가운데서도 이 코스타를 통해 영적으로 다시 거듭나고 꿈을 새롭게 하고 자기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는 얘기죠. 뿐만 아니라 코스타를 통해 얻어진 더 큰 자부심이 하나의 비전이 되어 각자의 앞날을 새롭게 이끌어 주어서 각 계층에서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는데 코스타가 영적인 큰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eKOSTA 예, 그렇군요. 한편으로는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의 기득권 세력으로 들어가면서 코스타에서의 비전을 잊어버리고 그 기득권의 일부에 속하게 됨으로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별히 기업을 하고 계신 입장에서, 우리 코스타 출신들이 이곳에서 받은 은혜와 비전을 가지고 기득권 세력으로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좀 말씀해 주시지요.
이승률 이 문제는 코스타 뿐만 아니라 각 교회 목회 사역이라든가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선교 이후에 미칠 영향력이라든지 어떤 사역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라고 봐요. 하나의 현장에서 얻고 배우고 깨달은 열정이나 믿음의 진보가 생활 속에 즉 현실 속에 파고 들고 녹아지고 그것이 실제화되는 과정(process)이 참 중요한데, 우리 코스탄 출신들이 유학기간 동안에 가졌던 영적 체험을 자기의 현실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되겠죠. 코스타 출신들이 학자나 연구진으로 많이 나가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정·관계나 행정, 비즈니스에도 나가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리더십 교육이라는 것은, 즉 리더는 늘 새로운 환경에서 창조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정신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리더가 한 번 가졌던 생각을 기득권 형태로 누리려고 한다면 그때부터 리더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새롭게 창조적으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끌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리더쉽에 대한 문제를 우리 코스탄들이 좀 더 명확하게 깨닫고 자기의 현실 생활을 헤쳐나가 주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는 제3세계나 후진국,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결국 유학생들이 그 사회 지도층으로 부상이 됩니다. 그러니까 유학생들이 지도층이 된다는 함수관계를 통해서 자신에게는 현실 세계에 있는 한국을 개혁하고 이끌어 나가야 될 지도자적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깨어있길 바래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추기 위해 항상 자기자신의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그런 극기와 이타주의의 리더십에 관계된 것을 명확히 해서, 사명감과 현실 속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기능, 즉 전문성을 잘 접목하면 코스타를 통해서 얻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현실에 적용해 나가는데 많은 밑거름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eKOSTA 예, 아주 명쾌하게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우리 코스탄들이 앞으로 어떻게 리더십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영성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잘 조명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이승률 장로님께서 이번 코스타에 참석하신 구체적인 이유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이승률 구체적인 목적을 얘기하기 전에 아까 하던 얘기를 덧붙여 하고 싶군요. 우리 코스탄들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코스탄들은 유학생들이고 고학력, 지식층 인력이며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을 갖고 있기에 특히 지식층 신앙인들이 지식과 신앙, 투지와 기술 이런 양면성을 어떻게 잘 융합(fusion)하여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참 중요하다고 봐요. 여담으로 fusion이라는 말은 future vision이라고 할 수 있어요. fusion을 늘리면 future vision이고 future vision을 줄이면 fusion이 되죠. 하나의 선교적 삶의 현장에서 신앙적 열정과 그리고 자기의 전문 지식을 어떻게 잘 접목, 융합시켜서 제 3의 새로운 사역의 길로 신앙과 지식을 아름답게 표출해 나갈 것인가가 코스타와 코스탄들이 연구하고 개척해 나아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21세기의 진정한 리더십이 도출된다고 보거든요.
특히 코스탄들이 좀더 사명감을 갖고 지식과 신앙을 겸비한 일꾼으로 자라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 제 부탁이에요. 앨빈 토플러가 IT(Information Technology), BT(Bio Technology) 이런 분야를 잘 융합해서 제 3의 신기술 분야로 잘 발전시켜 나가는 하나의 조직적인 형태를 High Choice System이라고 표현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코스탄들이 전문 전공 지식의 “High Tech”한 능력과 신앙을 통한 열정, 비전 등의 “High Touch”한 부분을 잘 융합(fusion)시켜서 마침내 코스타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High Choice System”으로 발전했으면 하고, 이 믿음을 기초로 한 High Choice System이 곧 지속적인 발전개념의 신앙 공동체요, 또 새로운 개념의 21세기 교회운동(movement)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이것이 코스타가 진정으로 추구해 볼 만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리더십의 비전과 목표를 위해서 코스타에 와서 제가 늘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 중국연변과학기술대학을 위해서 필요한 교수 교직원 인력을 리쿠르트하고 상담하고 준비시키고 또 비전을 주고 하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임무이고, 특히 여기서 만난 분들의 여러 가지 애로 사항과 학습 전공 분야를 잘 파악하면서 학교의 커리큘럼이라든가 신설 학과 개설, 또 새로운 교수 인력들을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지 계획도 세우고 하는 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위한 비전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왔는데, 처음부터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제시해서 어떻게 준비한다기 보다는 하나의 뉴스를 전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이라는 큰길에 있어서 앞으로 북한사회를 위한 비전을 가지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동기(motivation)를 전하려고 왔습니다.
특히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연변과학기술대학과는 달리 “남북관계”라는 문제가 있고 국제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며 특히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또 중국, 일본 한국과의 국제 외교와 관련된 지정학적인 미묘한 관계같은 것들이 중첩되는 현실이 있어요. 평양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지식 산업 복합체 형태로 운영할 터인데, 그 점에서 우리가 평양 프로젝트를 어떠한 인력으로 어떻게 기획·준비하고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새로운 원동력으로 자리잡기 위해 여기에 참여하는 기업인이라든가 벤처 그리고 신기술 전문 집단들과 학문이 어떻게 잘 조화되어 나가야 할 것인지를 기획하고 모색하는 기초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뉴스로만 전하고 내년 17회 코스타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의 커리큘럼과 그에 따른 필요한 인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상담하고 리쿠르트할 작정입니다.
eKOSTA 아직 구체적인 전공이나 핵심분야 등은 계획이 안 나온 것인가요?
이승률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어떤 큰 하나의 계획으로서 전체 커리큘럼의 40% 정도로 IT 분야 학과개설을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BT 분야가 25 %, 그 다음에 MBA 분야가 25 %, 그리고 기타 부문을 10% 정도 계획하고 있구요. 기타라 함은 외국어 교육을 포함한 교양학과 개설입니다. 그래서 IT가 중심이 되면서 BT와 MBA를 겸하며 국제사회에 필요한 교양과 언어학습 능력을 길러 나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육 커리큘럼을 정할 거에요. 그리고 그에 따른 세부적인 전문학과나 학습 내용은 KAIST같은 연구 중심 대학을 하나의 모델로 해서 대학원 과정, 북한에서는 이것을 박사원 과정이라고 하는데, 이 박사원 과정을 먼저 신설해서 2003년 3월 학기에 1단계 개교를 할 예정이고, 이 박사원 과정과 함께 한국이나 미국, 혹은 유럽에 있는 신기술 기업과 벤처 기업들이 함께 합류(join)를 해서 지식 산업 복합체 형태로 운영을 함으로써 북한의 유수대학 출신의 청년 인력들을 동참시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산업활동을 경험하게 하고, 거기서 경영과 무역에 대한 부문, 국제 시장경제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출 수 있도록 돕고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에요. 초기에 우수 인력을 박사원 과정으로 유입을 해야 되는데, 여기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졸업생들과, 또는 KCC(조선컴퓨터센터), PIC(평양정보센터)에 있는 인력들을 먼저 리쿠르트 해서 초기 학생층을 이루고 후에 계속해서 박사원 과정을 진행하면서 학부를 신설하고 기초 인력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연구 중심 대학으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운영하려는 계획입니다.
eKOSTA 지금 현재의 계획에 의하면 연변 과학기술대학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연변과학기술대학은 학부 중심이고 “교수”(敎授, teaching) 중심인데 반하여,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정보-산업기술-대학원과정의 복합체로서의 시너지(synergy)를 예상하는 “연구”산업 중심의 학교라는 점에서 말이죠.
이승률 예, 맞아요. 산학협력 복합체 형태로 육성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고, 사실 그것이 북한 사회에 가장 긴요하고 절실히 필요한 부분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생산 수단이 되고 창조적인 사회구조의 기본을 이루는 생산 활동이 되기 때문에 북한을 변화시키는 좋은 모델이 되죠.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과 같은 지식 산업 복합체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에는 중국과 접한 신의주, 그리고 한국과 가까운 개성공단, 일본에 근접한 원산 공업단지, 또 러시아와 UNDP지역에 인접한 라진 선봉같은 특정 지역에 이와 같은 지식기술 복합단지가 형성이 되고, 창의성 있는 신기술 산업활동이 전개되면 그것이 곧 북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upgrade) 하면서 새로운 남북간 지식산업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길이 되지 않겠어요? 평양정보과기대가 이와 같은 한반도 지식산업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개척자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KOSTA 몇 년 전까지 라진과학기술대학을 세우려고 추진하며 그곳에 유치원 같은 것도 이미 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project)가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로 바뀐 건가요? 아니면 라진과학기술대학과 병행하는 독립적인 프로젝트인가요?
이승률 원래 96년도 말에 라진과학기술대학을 북한이 승인을 해 주었고, 한국정부도 97년도에 승인해 주어서 양국 정부가 공히 라진과학기술대학을 설립 허가를 했는데, 부득이한 상황의 변화로 2년 반 동안 유보되어 있다가, 지난 1월 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상해 포동 지구를 다녀와서 신기술 첨단 산업의 발전상을 보고, 북한도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각오 아래, 과거 96년도에 라진과학기술대학 설립을 허가했던 것을 근거로 하여 위치를 평양으로 옮겨서 연구중심의 과학기술대학을 세워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청이었어요. 연변과학기술대학은 학부교육부터 해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박사원 과정을 하면서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식-기술-산업” 복합체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겠다 하는 차원에서 성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과거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가 평양으로 옮겨진 것이 기정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도 나중에 필요가 있게 되면 그대로 부활을 시켜서 그 지역에도 과학기술대학을 중심으로 산업을 일으킬 계획으로, 지금 현재는 유보되어 있는 상태지요.
eKOSTA 내년에 구체적인 홍보와 교수임용 계획이 있겠지만 관심있는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전 작업 준비를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이승률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에 참여하고 싶은 우리 코스탄들은, 곧바로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공산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여러 가지 생활을 하는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고 나는 보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연변과학기술대학을 먼저 지원해서 그것을 통해 조선족 사회나, 사회주의 체제하의 상황이라든가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그 쪽 지역의 여러 가지 교육현황 등을 실질적으로 체험한 후에, 거기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에서 필요한 커리큘럼과 임용 계획에 따라 학교와 협의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하나의 방법이 되겠고, 또 한 가지 방법은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연변과학기술대학을 통해서 들어간다는 것은 좀 어리석은 것 같으니, 지식산업 복합체에 합당한 생산성을 바로 유발해 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의 교수(teaching)만을 하러 들어갈 것만이 아니라 기업체의 한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도 있겠죠. 그보다 더 특별한 전문성과 학력, 자격증(licence)을 갖추고 있다면 그런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나 외국인들도 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박사원 과정에 합당한 일꾼들은 나중에 지식산업 복합형태의 인력으로 학교와 산업, 컨설턴트(consultant)라든가, 여러 가지 조력자(assistant)로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가 연구하고 가르칠 분야의 현지 실정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되고, 또 장기적으로 혹은 단기적으로 갈 것인지의 스케줄(schedule) 문제도 있을 것이고, 가족과 함께인지, 아니면 개인만 들어갈 것인지 하는 가족생활계획의 문제도 매우 심각한 사안이 될 수 있으니까 이런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내년 코스타에서 구체적으로 사례를 제시할 것입니다.
참고로 금년말이나 내년초에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착공하고 나서 박사원 1단계 개교를 위한 교수임용계획을 구체화해 나가려고 하는데 그때 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상담을 하고, 관심을 갖고, 뉴스를 계속적으로 듣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따로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연변과학기술대학과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한 사무실이 서울에 있어요. 서울사무실의 전화는 (02)561-2445이고 fax는 (02)566-1450입니다. 미국 LA에도 후원회 사무실이 있는데 연락처는 909-843-6327∼8, fax는909-843-6527입니다. 그리고 중국연변과학기술대학 학교당국의 연락처도 있습니다. 웹주소는 www.yust.edu이고, 전화번호는 86-433-291-2500, fax는 86-433-291-2510입니다. 저 개인의 이메일도 있으니까 이 코스타에서 만난 분들은 ban1117@chollian.net으로 저에게 자기 정보나 자료를 보내주시면 그것을 잘 정리하여 문서화해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담 업무가 진행될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단계적으로 자신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준비를 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학교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코스탄들이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한반도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History Maker”가 되고 또한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제사회에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이 넘쳐나게 하는 “Peace Maker”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선한 일꾼들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KOSTA 예, 장로님, 바쁘신 중에도 우리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Nov 1, 2001 | 코스타 사역/강사 코스탄과의 만남
eKOSTA 인터뷰
장평훈 교수와의 대담
eKOSTA 장평훈 교수님은 코스타가 생성될 때부터 기여를 하신 코스탄의 원조이면서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코스타를 참석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코스타가 생성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코스타에서 받으신 일반적인 은혜들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제가 이해하기로는, 코스타가 처음에 시작되었던 계기는 이렇습니다. 그 당시, 미국 워싱턴 DC, 보스턴, 그리고 Triangle Area(North Carolina), 이렇게 세 지역의 성경공부 모임이 굉장히 좋고 효과적이었어요. 이 모임들을 직접, 간접적으로 가르치시던 홍정길 목사님과 이동원 목사님께서 지역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한 번 모아서 해 보자 해서 코스타가 출발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보스톤 지역에서 모였던 성경공부 모임이 Gate Bible Study이었고, 저도 그 모임에 속했던 지라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관여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 87년도에 졸업을 한 다음에 88년부터 강사로 오게 되었어요. 그 뒤부터는 가기 싫을 때는 홍 목사님에게 끌려서 오고 (웃음) 어떤 때는 제가 좋아서 오고, 아마 제 기억에는 한 해 빠지고 계속 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
코스타가 늘 6월말이나 7월초에 하게 되니까, 1학기 마칠 때쯤 되는데, 그 시기는 늘 할 일들이 많이 밀려 있고 해서 올 때마다 갈등하곤 합니다. 그래도 이기고 코스타에 오면, 늘 영적으로 풍성해지고 또 공급을 많이 받으니까, 그게 제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또 다가올 한 학기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참 중요한 도움이 되곤 했었지요. 그리고 학생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보람이 되고 그런 은혜 가운데서 이렇게 참석하게 되었어요.
eKOSTA 코스타를 첫 해부터 참석하셨는데요, 16년 동안 코스타가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코스타가 어떤 경향으로 발전되어 왔고, 그 변화 과정이 어떠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해나 사건이 있었다면 회상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벌써 16년이 되었군요(웃음). 출발할 때는 약 250명이 모였는데, 주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것 같아요. 정말 여러 가지로 찌드러진 상태에서 마음도 많이 상해 있어서, 그야말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셈이었지요. 그래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은혜가 참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코스타에 참석하는 강사님들도, 이 모임에서 물질적으로 뭐 얻을 것은 없고 오히려 퍼 줘야 되는 입장이었는지라, 오히려 정말 마음(Heart)이 있는 분들만 오실 수 있었지요. 그래서 강사님들과 학생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모임을 했던 것은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는 집회의 노우하우(know-how)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왔다 갔다 하며 엉성하기만 했지요. 그후에 세월이 지나고 횟수가 반복될 수록 계속해서 사람들이 늘고, 그 다음에 강사들도 많아지고, 더불어 세미나도 많아지는 등 내용이 풍성해졌는데, 그러다 보니까 어떤 모임이나 다 그렇듯이 초기의 ‘진함’이 희석이 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좀 있어요.
코스타가 크게 변화되었던 계기가 글쎄요, 노태우 대통령이 1987년 6.29 선언을 할 때 코스타가 바로 직전에 모였었습니다. 그때 조국을 위해 무척 기도했어요. 온통 울음 바다가 될 정도로 열심히 기도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했다고 저는 믿고 있지요.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민족과 국가를 하나님께 들어 올린다는 코스타의 정체성(identity)를 찾았던 그것이 기억에 새로와요. 나머지는 꾸준히 매년 주제를 달리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초기의 코스타 정신(Spirit)을 되찾는데 있어서 올해의 ‘낮아지신 그리스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가 참 적절한 것 같아요.
eKOSTA 코스타가 16년이나 되었는데,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십니까? 아직 가시적인 영향이 별로 없어서 인지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 대한 코스타의 영향이 없었다”고 까지 평가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교수님은 코스탄들의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대한 영향력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장평훈 제 생각에는 코스탄들이 코스탄이란 이름을 가지고 한국 사회와 교회에 무엇을 했던 것은 별로 없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코스타에 와서 많은 동기부여를 받고,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면, 그 만큼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여(contribution)를 하지 않겠느냐는 다소 막연한 기대는 가져 왔던 것 같아요. 그러나 솔직히 이 점에 대해서는 마음에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한 코스타가 정말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점이기도 합니다.
글쎄 어떻게 구현(implement)해야 될 지는 모르겠지만, 코스탄들이 이곳에서 동기부여를 받고 새롭게 도전(challenge) 받았던 일들을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는 네트워킹(networking)이라든지, 교제(fellowship)라든지, 이런 것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서 받은 충격(impact)이라는 것이 상당히 역동적(dynamic)이기 때문에, 한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좀 좋은 영적인 기반이 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여기서의 귀한 도전이 별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어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된다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코스타가 보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eKOSTA 그러한 일환으로 작년부터 eKOSTA와 tmKOSTA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좋은 동기로 시작되어졌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라서 자리 매김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데,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eKOSTA와 tmKOSTA의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과 자리 매김과, 그리고 한계나 주의할 점 등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아, eKOSTA참 좋아요, tmKOSTA도 그렇구요. 우리는 미주 코스타가 ‘7월초 시카고 휘튼’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7월초 시카고 휘튼에서 이루어지는 코스타는 코스타 lifestyle의 initiation 정도로 생각하고, 그 후에 eKOSTA나 tmKOSTA를 통해서 매일의 삶 속에서 코스타 집회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코스타 집회를 연중 내내 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가능해지도록 eKOSTA나 tmKOSTA는 ‘반드시'(definitely) 계속해서 활성화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피드백(feedback)을 하고 나눔(sharing)이 이루어지고 좋은 사람들이 발굴이 되기도 하고, 가상공간(cyberspace)이긴 하지만 거기서 교제(fellowship)가 이루어짐으로써, 코스타가 일회성 집회가 아니라 이제는 만남의 장이 되고 네트워킹(networking)이 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훌륭하잖아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싶구요. 또 하나 바램은 한국에도 이코스타가 더 잘 알려졌으면 하는 것인데, 현재 한국의 코스타 출신들은 eKOSTA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코스타 출신들에게 여기 있을 때부터 eKOSTA가 많이 알려지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늘 이곳을 확인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네트워킹(networking) 등 많은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이제는 화제를 좀 바꾸어서, 교수님께서는 신앙과 학문을 잘 조화시킨, 우리 유학생들로서는 귀한 본이 된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어떻게 기독 신자로서 또 동시에 연구와 학문을 하는 대학 교수로서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고 관련지어서 하고 계신가요?
장평훈 전공을 하면서 학문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하고 있는 전공이 좀 더 가시적으로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바램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를 하면서도, ‘나의 연구 분야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이 있어요. 마치 의사들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듯이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인 학문을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래서 최근에 하는 일은 수족을 못 쓰는 장애인들을 도와 주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고, 또 화재가 났을 때 사람을 구하고 화재 진압을 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등 인간 복지와 관련되는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또 ‘잘 찾아보면 학문과 관련된 일에 이런 것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지요.
eKOSTA 올해 코스타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장평훈 교수님이세요, 아니면 목사님이세요? 하며 질문할 정도로 너무도 귀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현재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교수 생활하기도 바쁜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목사님이나 사역자들도 하기 힘든 주제 성경공부를 어떻게 이렇게 삶의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충실한 주제 강의를 하실 수 있었는지,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그 비결을 좀 공개해 주시지요.
장평훈 우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된 것은 ‘모든 학문은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하는 일이나, 연구를 하는 일이나 다 통하는 것 같아요. 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면, 연구를 함으로써 성경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skill’을 정진시킬 수 있고, 또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시너지(synergy)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요. 이런 효과를 개인적으로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은혜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때가 많아요.
목사님들이 종종 신학을 했느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그런 말 듣기가 미안할 정도로 신학은 한 적이 없어요. 생각해 보건대, 아마 유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성경공부를 해 왔던 것들이 쌓인 결과라고 봅니다. 그냥, 함께 말씀 나누고 또 삶에 적용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또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신학 서적도 찾아본 것들이 나름 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평소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암송하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결국 하나님께서 베푸신 많은 은혜를 통하여 오늘 저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학생 때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삶에 잘 적용하면, 어느 시점에 충분히 자기 몫을 훌륭히 할 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자꾸 많이 나와 주어야 한다고 저는 바라고 있어요. 사실 그것이 코스타를 통한 저의 아주 간절한 바램입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 주제 성경말씀을 위해서 어느 정도 준비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장평훈 이렇게 주 강사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마음에 부담이 되었고, 특히 이번의 주제(theme)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큰 부담이 되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도전도 되기도 했구요. 그러면서 많이 기도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본문 자체는 늘 하던 대로여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었는데, 강해 설교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노력을 더 많이 기울였습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가 어떻게 보면 주제도 그렇고, 평신도나 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던 점에서 전환점의 한 계기나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코스타를 계기로 앞으로 코스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주의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장평훈 작년 코스타까지는 참석 인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해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코스타가 좋다니까 한 번 가보자’라고 마지막 순간에 충동적으로 결정해서 온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또 집회 분위기라든지 이런 것에 여러 가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코스타는 그런 사람들도 다 수용하고 포용해야겠지만, 그래도 준비된 마음이 있는 곳에 은혜가 크겠다 싶어, 좀 더 준비된 마음으로 왔으면 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어요.
어느 자매가 한 이야기처럼 이번 코스타가 여러 가지 면에서 거품이 빠졌다 하는 얘기가 정말로 맞는 것 같고, 그래서 준비된 사람들이 준비된 심령으로 왔던 것이 두드러진 것 같아요. 올해 주제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인 것 같아서, 이번 코스타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거품이 빠지고 생각도 다시 한 번 해 보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기 원하는가를 좀 민감(sensitive)하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eKOSTA 교수님께서 살아 오시면서 많이 영향력을 받은 사람들, 현재 살아 계신 분도 괜찮고, 과거의 역사적 인물도 괜찮으니 저희 독자들에게 나눠 주시죠.
장평훈 세 사람을 들고 싶은데 첫째는 홍정길 목사님인데, 그분이 하나님 사랑하는 자세, 그리고 자기의 의지를 쳐서 복종시키는 그 태도, 그 다음에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나한테는 좋은 귀감(role model)이 되었어요. 끊임 없이 좋은 교제를 가지면서 격려를 받았던 것이 오늘날 제가 서게 되는 데 큰 힘이 되었어요.
또 한 분은 김인수 장로님인데, 역시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표 안 나게 계속 신경 써 주시고, 또 평신도로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 가시는 모습이 많은 도전이 되었어요. 또 저와 같이 교직을 갖고 계시니까 계속 쳐다보게 되는데, 그 어른을 생각할 때마다 늘 그분에게 못 미친다고 생각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한편, 사표로서 바라볼 분이 주위에 계신다는 점이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또 한 분은 존 스토트 목사님인데요. 그분은 글을 통해서 나한테 스승이 되었어요. 그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한테는 굉장히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 분이 얘기했던 내용은 때때로 기억하지 못 할지라도, 그분이 주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태도는 많이 배운 것 같고, 그 다음에 객관성과 정확성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는 자세가 적지 않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eKOSTA 또한 교수님에게 영향력을 많이 끼친 책을 좀 소개해 주십시오.
장평훈 두 권의 책을 얘기하고 싶은데, 역시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뭐 그분 책은 뭐든지 다 좋은 것 같아요. 이를 테면 <기독교의 기본진리>(Basic Christianity), 그 다음에 이번 코스타에서도 소개된 <예수님의 십자가>(The Cross of Christ), 그 두 권, 아, 그리고 로마서 강해 이 세 권은 참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산상수훈> 그 책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그리고 자꾸 생각이 나는데….
eKOSTA 많이 소개해 주시면 더 좋죠.
장평훈 J.I. Packer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의 <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Spiritual Discipline) 등이지요. 그리고 꼭 권하고 싶은 책은 M. Adler의 <How to Read a Book>인데, 이 책이 없었다면 이번 본문 강해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성경본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책보다 더 도움이 되는 책을 아직 보지 못했어요.
eKOSTA 교수님은 원서로 읽으시나봐요.
장평훈 예 그렇습니다. 그때는 번역이 안 된 책도 있고 해서 영어로 읽기 시작했었는데, 그 때문에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신학서적의 영어가 만만치 않은데, 정말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읽다 보니까 영어가 늘더라구요.
eKOSTA 끝으로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유학 생활 선배로서 유학 생활에서 신앙과 학문을 함께 해 나가야 되는 점에서 학문을 하시는 신앙 선배로서 조언과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장평훈 역시 순수성과 그 다음에 균형성, 그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순수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삶의 문제에 있어서 불순물들, 즉 허영심, 자긍심, 탐심, 성적인 문제들을 발견하는 대로 빨리 빨리 제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다음에는 균형성인데, (신앙 공동체와 관련된)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가정 생활, 사회 생활, 그리고 학문도 열심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도 성서적인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정확성과 정직성, 그런 것이 학문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학문을 하는 데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나름 대로의 좋은 모델을 개발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Oct 1, 2001 | 코스타 사역/강사 코스탄과의 만남
eKOSTA 인터뷰
김동호 목사와의 대담
eKOSTA 김동호 목사님, 거의 매년 이렇게 코스타에 참석하시는데, 코스타 첫 참석의 계기와 당시의 느낌을 말씀해 주십시오.
김동호 제가 89년도에 한국에서 학원 복음화 협회를 만드는데 참여했었어요. 홍정길 목사님과 함께 참여했었는데, 89년말 첫 집회에서 그 당시 워싱턴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식사하면서 코스타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까지는 저는 구제같은 것에만 목회의 관심이 많았었는데 그때 당시 드는 생각이 구제만 해서는 안 되겠구나, 사람을 키워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목회를 할 때에 구제하는 만큼 사람 키우는 예산을 세우게 되었지요. 그래서 89년도에 코스타에 대해 처음으로 듣고 92년도부터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92년도 워싱턴하고 LA에서 할 때인데, 와서 보고 이것은 평생을 바쳐서 할 만한 사역이다 하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첫번에서부터 올해로 꼭 10년인데, 한번도 빠지지 않았어요. 제가 목회하는 목사로서 참 시간내기 어려운데, 당회에서 장로님들에게 일년에 한 달은 코스타를 위해서 쓰겠다고 해서 허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일년에 한달 정도는 코스타를 섬기고 있죠.
eKOSTA 목사님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이고 그것이 옳다고 느끼기만 하시면 곧바로 순종하시고 그 간증들은 정말로 늘 들어도 감동적인 것 같습니다. 두번째 드리고 싶은 질문은 코스타에서 늘 만남의 축복을 얘기하는데, 목사님도 다른 강사님들이나, 혹은 학생들과의 만남 중에서 특별한 기억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요.
김동호 아무래도 이동원 목사님, 홍정길 목사님 만난 것을 저는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10년을 같이 다녀보지만, 그분들이 어떻게 보면 이 코스타 창립자이시잖아요. 그런데 그분들 자신이 그 의식이 없어요. ‘내가 이런 것을 만들었는데’ 하는 오너쉽(Ownership)이 없어요. 그러니까 참 좋지요. 이동원 목사님 가만히 보니까 그 분 설교도 안 하시더라구요. 그냥 뒤에서만 다니시는 것을 보고 참 훌륭하시구나 하고 생각하지요. 홍목사님도 이제는 여기 오시지도 않는데, 남이 얘기하기는 쉽지만 그렇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구요. 그런 만남 참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여기 좋은 강사들이 많잖아요. 내가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고 그래서 참 좋습니다. 학생들은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관계가 유지되지는 않고, 가끔 한국에 가면, 제가 코스타에 참석했었습니다 하는 사람이 많고, 이번 캐나다 코스타에 갔었는데, 어떤 학생 부부가 ‘저희가 8년 전에 코스타에서 목사님 설교 듣고 예수님 영접해서 이렇게 예수 믿습니다’ 하더라구요.
eKOSTA 그럴 때 가장 기쁘시지요? 이제 코스타를 10년 동안 참석하셨는데요, 코스타에도 변화와 흐름이 있어 왔고, 이제 홍정길 목사님과 이동원 목사님도 오시지 않고 하는데, 앞으로 코스타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되는지, 그리고 어떤 리더쉽이 요구되어지는지 김동호 목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동호 코스타는 어디를 가던지 코스타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참 감사한 것이지요. 코스타의 기본 정신과 밑바탕이 있어서 두 목사님이 손을 떼시는데도 크게 흔들림이 없잖아요? 교회 같으면 담임목사가 빠지면 흔들리는데, 코스타는 그렇지 않아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제가 이제 인간이기 때문에 우려하고 기대하는 것이 있어요. 뭐냐하면 전에는 코스타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어요. 인간적으로 볼 때 말이지요. 그럴 때는 강사들이 많이 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제는 코스타 강사로 오는 일이 이제는 자기 경력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해졌어요. 이것은 위험한 때에요. 코스타에 한번 강사로 가는 것이 어떤 이력서에 드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다음에는 순수해지지 않을 수도 있단 얘깁니다. 그렇다고 코스타를 없앨 수도 줄일 수도 없고, 코스타는 계속 성장하면서도 어떻게 초기의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가 큰 숙제인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그러나 조심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제 개인적으로는 작년 코스타와 올해 코스타가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느꼈는데요. 좀 더 학생들이 많이 강단에 서기도 하며 좀더 순수해졌다고 해야하나요? 어쨌든 방향을 조금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간사들과 강사들이 많이 수고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코스타가 16회가 되었습니다. 코스타에서는 목사님 말씀처럼 기독 지성인들을 대상으로 고지를 점령하라는 고지론도 있었는데요, 코스타가 지금까지 한국 교회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목사님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요.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은 얼마나 되고, 아쉽거나 아직 부족한 부분은 어떤 부분인지요.
김동호 지금 우리가 아직 추적해 보지는 않았지만, 혹시 홍목사님이 더 잘 아실텐데요. 코스타 출신들이 정부 계통이나 학교 계통에 꽤 많이 퍼져 있어서 영향력을 꽤 끼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변 과기대, 참 귀한 사역이잖아요. 교수들 중 많은 분들이 코스타 출신입니다. 또 한국의 한동대학도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워진 학교인데, 학교가 좋다는 것은 학생이 좋고 교수가 좋다는 뜻인데, 한동대 자랑은 교수가 좋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코스타 출신들이 참 많습니다. 제가 한동대에서 한 일년 정도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는데, 코스타 출신 교수들이 한 10명 정도 학생들과 함께 제 강의를 들었어요. 그런 학교가 어디에 있어요.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는 학교가 말이예요. 그런 영향력들은 신선한 충격이고, 이제는 한국에 코스타 본부가 생겼고 그래서 코스타 출신들을 네트워킹(networking)을 좀 할려고 그래요. 그렇게 되면 점점 구체화 되겠지요.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려고 들지 않았기에 그냥 자연스럽게 있었지요. 세력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일년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옛날 코스타를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다시 헌신하고 다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KOSTA 최근에 일년에 한 번 하는 일회적이거나 단회적 부흥회적 성격을 극복하고자 작년부터 티엠코스타나 이코스타를 시작해서 하고 있는데, 그 방향성과 자리 매김을 좀 해 주시고 전반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부족한 점이나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김동호 글쎄, 하나님이 주신 참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힘을 규합하기 위해서 이런 것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이것만을 위한 풀타임(Full time) 전임 사역자가 나와야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일을 하면 인간적이 되어, 하나의 세력이 되고 또 어떤 특별한 권력이 생기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코스타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지요. 규합하기만 하면 힘이 엄청나요. 우리가 세속화되거나 타락하는 것을 막기만 하면 말이지요. 그렇다고 힘을 규합 안 할 수도 없고 말이지요. 조심하면서 해야지요.
eKOSTA 이제는 코스타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한 것은 여기서 마치고, 목사님 사역과 하시는 부분들에 대해 몇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한국에서 교회 개혁하면 이제는 김동호 목사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생사를 건 교회 개혁> 책을 보면서 참 좋은 교회인 동안 교회에서도 ‘생사를 건’이란 말을 써 가면서 교회 개혁을 했어야만 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좀 충격적이었었는데요, 현재의 교회 세습이나 교회의 타락을 보면 많이 안타깝습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 교회, 교회 개혁에 있어서의 문제점과 극복할 수 있는 방법과 더불어 전망을 좀 말씀해 주시지요.
김동호 똑같은 얘기인데, 힘이 생길 때 문제가 되기 쉬운데, 한국 교회는 지금 너무 부해지고 강해졌다는데 있습니다. 옛날에 가난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교회 안에 권력이 생기고 그 권력이 엄청나게 되고 돈이 많아지고 그러니까 이제 세습 문제까지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개혁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나 개인에게서 권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바로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기득권 층이랑 마찰이 생기게 되는데, 나는 그런 경우 싸워야 된다고 생각해요. 싸우지 않고는 절대 공짜로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싸움을 회피했기 때문에 40년 걸렸거든요? 나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싸움을 요구하시지, 싸움이 없는 거짓된 평화를 요구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내가 너희들에게 화평을 주러 왔는 줄 아느냐?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죠. 정말 참 평안을 얻으려면 검이 있어야 되요. 그래서 나는 편안한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있죠.
사람이 사는 곳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득권이 있기 때문에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싸움을 시작하고 보니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생사를 건’ 바로 그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내가 사탄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괜히 겁을 주는 거예요.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건데요. 조금 용기를 갖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고, 그런 것이 교회 안에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는 뭐든지 은혜 은혜 하면서 거짓된 화평을 은혜라고 하는데, 그것은 거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해 보니까 절망스러운 것도 많지만 희망이 많아요. 장로님들에게 몇 년 동안 수 천명, 많게는 만 명 가까이 제가 강의를 했거든요. 근데 장로님들이 받아줘요.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지만 실제로 그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상당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교회 개혁도 한국 교회가 잘 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제일 희망을 갖는 것은 청년들이에요. 청년들이 한국처럼 모이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어요. 이 코스타 모이는 것을 봐도 그렇구요. 몇일 전에 우리 한국 복음화 협회하고 부흥 컨써트팀 하고 함께 주최한 경희대학교의 집회에서 3만명이 모였어요. 그날 청년들을 보고 흥분되더라구요. 망할 나라가 아니구나. 정치, 경제, 교회 등을 보면 참 답답하고 곧 망할 나라 같지만, 이렇게 청년들이 모이는 것을 보면 망할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국 교회에 대해서 굉장히 희망을 가져요.
eKOSTA 덧붙여서 질문하고 싶은 것은 목사님께서 코스타에서 말씀하신 ‘고지론’에 관련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고지론이 몇 년 동안 코스타를 대표하는 표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요, 최근에 많은 사람이 엘리트 주의가 아닌가 하며, 또한 저지론과 미답지론도 나오며 비판되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고지론은 무엇이며, 또 한국 기독 지성인 혹은 엘리트들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한계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죠.
김동호 오래 주제가 ‘낮아지신 그리스도, 섬기는 그리스도인’인데, 제 설교가 고지를 점령하라는 그 설교에요. 그런데, 왜 내가 그걸 주장하냐 하면 – 이제는 고지론이라는 말이 생기기까지 했는데, 섬기기 위해서는 높아져야 한다는 거에요. 낮은 자는 낮은 자를 섬길 수 없어요. 예수님이 낮아지셨다고 하는데, 낮아지신 것과 낮은 예수는 다른 거예요. 실력이 없으면 낮은 예수 그리스도이고요, ‘낮아지신’이라는 말은 무얼 포함하고 있느냐 하면, 하늘에서 땅으로 낮아지신 거예요. 그렇다면 땅으로 낮아지신 근거는 하늘에 있는 거예요. 하늘에 있는 사람만이 내려올 수 있어요. 땅에 있는 사람은 내려올 수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궁극적인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이지요. 종이지요. 낮아지기 위해서 실력은 높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트 주의가 아니에요. 엘리트 주의는 높은데서 내려오지 않는 거예요. 엘리트가 되어서 내려올 때 힘이 생기지 않느냐? 그렇다면 섬김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전제가 높아짐이예요. 실력을 갖추어야 됩니다.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낮아지라고 하신 것이 자세지 실력이 아니지 않아요? 근데 사람들이 실력을 얻으려면 고생과 희생이 있어요. 그렇게 힘들면 나태해져서 낮아져요. 그걸 겸손이라고 합리화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어요. 그러면 안돼요.
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책임은 낮아지기 위해서 높아져야 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고지론은 내려오기 위한 거에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변화산으로 데려가셨어요. 거기서 신비한 체험을 했어요. 그것은 하늘에 올라간 거에요. 얼마나 좋았던지 세상의 왕궁보다 거기에 천막 치고 사는 것이 좋겠다 한 것이 그게 하늘에 올라간 거에요. 그런데 그게 필요해요. 그리고는 예수님이 내려가자고 했어요. 내려 갈거면 무엇하러 올라가냐고 할 수 있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과 밑에서 낮아진 것과는 다른 거에요. 그래서 기독교인은 변화산에 올라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늘을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이제 고지론이에요. 근데 고지론은 수단이고 목적은 낮아짐이에요. 섬김을 위한 거지요.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엘리트 주의가 되는 것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요. 거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소리를 우리는 들어야 돼요. 말인즉슨 낮아지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올라갔을 때 안 내려올 수 있는 가능성이 많으니까 나는 그런 비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내가 얘기하는데서 비판받을 것은 없어요. 그러나 조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eKOSTA 유학생들이 학위를 가지고 한국으로 가니까 지위가 있고 그렇게 되면 기득권 세력으로 들어가는데, 실력은 높지만 태도는 낮아져서 섬겨야 되는데, 태도까지 높아지고 자세까지 높아지고 그러니까 경계해야 된다는 말씀이군요.
김동호 고지론이 엘리트 주의는 아닌데, 고지론의 약점이 엘리트 주의로 갈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경계해야 되지요.
eKOSTA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이 동안교회 사임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하니까 그 이유와 과정을 좀 설명해 주시고, 더불어 어려웠던 점을 좀 말씀해 주세요.
김동호 첫째는 교회가 너무 커지기 시작했어요. 우리 교회 건물지은 지가 얼마 안 되고 꽤 큰 건물을 지었는데, 이제 그것이 부족해서 건물을 확장해야 되고 또 땅을 사야 될 처지가 되었어요. 그럴 바에야 교회를 분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어요. 출석 교인이 5천명 넘어가면 분립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몇 년 걸릴 줄 알았더니 올해 그것이 되게 생겼어요. 그래서 그것이 첫째 원인이고, 그 다음에 교회가 성장하는 일이 모든 사람들에게 분담된 역할에 의해 건강하게 성장하면, 난 만 명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영향력에 의해서 커지는 것이 많다면, 물론 꼭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주된 원인이 어떤 특별한 한 사람에 의해서라면 그것은 건강한 것이 아니예요. 동안교회가 그런 면에서 건강치 않은 성장이 시작되었다고 판단이 되어졌어요. 여러 가지 동안교회 약점이 있는데, 밖에는 좋은 점만 나타나기 시작했고, 현재는 출석 교인들이 천명씩 느는 일이 이년째 계속되고 있거든요. 그러면 이것이 가속이 붙게 되고 그렇다면 만 명 되는 것이 금방이지요. 그렇게 되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보니까 교역자들도 나태해지기 시작했어요. 가만히 있으면 되니까. 장로님들도 긴장 안하고, 교인들도 가만히 있고 기도 안 해도, 노력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좀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좀전에도 말한 것처럼 동안교회는 생사를 걸었다고 했는데, 정말로 10년을 하루 같이 싸웠어요. 갈등하면서 말이지요. 나는 그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그 싸움이 어느 정도 끝났어요. 인간적으로 보면 내가 승자에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승자가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갖춘 것이지요. 근데 내 나이가 자리에 앉아서 영감 노릇 할 나이는 아니다. 그래서 한번 더 일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것이 떠나는 이유에요.
그리고 아까 청년들 3만명 모였다고 했을 때 무엇을 생각했냐 하면 지금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아요. 무슨 생각을 하냐 하면 교회 할 사람은 많지 않나? 그런데 청년들을 보니까, 그때 부흥 콘서트 팀을 보니까, 나는 처음 알았는데, 한국 찬양 사역 중 최고인 것 같아요. 영적으로나 실력으로나, 그런데 그분 들이 다 마누라 덕에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생활이 되지 않잖아요. 완전히 목사나 똑같이 사역자인데, 저 사람들 생활을 하게 해 주어서 그것만 헌신하게 하면서 crusade를 조직하면, 설교하는 사람과 팀을 짜서 믿는 아이들 모아서 부흥 집회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청소년들을 모을 수 있는 전도 집회를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고 싶은 것이 그거에요. 내가 나가서 목회를 하면 나는 담임 목사는 더 이상 안 할 거예요. 목회는 설교하는 것만 빼고는 당회장이나 담임 목사를 세우고 이제 헌법으로 하면 나는 부목사 하는 수 밖에 없겠지요. 부목사가 되어도 좋으니까 나는 설교하고 주로 선교 사역하고, 그 생각을 실현해 보고 싶어서 그만 둔 거예요.
eKOSTA 목사님 창립 주일 사임 표명 하신 설교도 읽고, 뉴스앤죠이에서도 목사님의 글을 읽었는데, 오른손과 왼손의 비유를 들어서 늘 갈등을 건전하게 보시던데요. 한국교회에서는 특별히 저희 같은 평신도들이 무슨 얘기를 하면 건전한 것임에도 비판하지 말라고 하기에 토론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그러다 보니까 교회 세습 같은 일이 있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성도들이 세습을 더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평신도로서 건전한 건의와 비판을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목사님처럼 늘 포용하셔서 건전하고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참 적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동호 아까도 얘기했지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맞다고 생각해요. 내가 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 말이에요. 그 검을 통해서 생기는 것이 진짜 화평이거든요. 지금 한국 교회에 있는 화평은 거짓된 화평이에요. 거짓된 은혜, 그러니까 한국교회에서 은혜롭게 하자는 것은 적당히 하자는 거에요. 대충 대충 하자는 거에요. 그리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우민화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집권층들, 권력자들, 목사와 장로가 권력자들이지요. 자기들의 자리나 일을 편안하게 하려는 우민화이거든요. 그것이 교회처럼 많은 데도 없어요. 그렇게 되면 부패해요. 청년들이 웃기기 위해 하는 이야기지만, 김일성과 재벌총수와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똑 닮았다고 하는 것이 그냥 우스운 소리가 아니예요. 사실이거든요.
또 사람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쳐요. 오른손 잡이가 있으면 왼손 잡이가 있어요. 오른손은 오른손이지 바른손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바른손이라고 하거든요. 그럼 왼손은 틀린 손인가요? 그건 아니거든요. 왼손은 왼손이고 그것을 인정해 줘야 돼요. 그래야 건전하게 나아갈 수 있어요. 얼마 전에 외국인 노동자가 신문에 건의했는데, 살색이라는 것을 가지고 건의했어요. 우리는 이것(얼굴을 가르키며)을 살색이라고 하는데, 그럼 자기는 뭐냐는 거에요. 자기 주관이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살색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야 건전하고…. 제가 이제 철학책, 역사책을 공부하면서 한 가지 배웠어요. 역사는 좌로 치고, 우로 치면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나는 한쪽만 보기 때문에 늘 널뛰기를 하는구나.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에요. 균형 감각, 내가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얘기해 주면 내가 균형을 잡게 되잖아요. 내가 제일 듣고 싶어하는 말, 균형 감각. 그렇게 하려면 비판을 받고 수용을 해야 균형을 잡지요.
eKOSTA 목사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복잡한 것을 아주 단순화시켜서, 특별히 복음을 단순하게 공식화 시켜서 잘 설명하시는데, 그 비결이라도 있으신가요?
김동호 저 같은 경우 교육 전도사가 되었을 때,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설교를 했어야 되었어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말이죠. 설교를 해서 아이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되겠는데, 그게 거의 불가능해 보이더라구요. 기도 많이 했어요. 1학년 아이들도 은혜받게 해 달라구요. 밤낮 이 문제를 어떻게 설명하면 저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한번도 놓치지 않고 했던 씨름이었어요. 그러니까 애 쓰니까 되더라구요. 그런 전달 방법이 하도 애를 쓰니까 꿈에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메모지를 머리맡에 두고 자기도 했어요. 꿈에 생각나면 쓰려구요. 그렇게 꿈에서 생각난 것을 써서 설교를 하니까 1학년 아이들이 알아듣고 은혜를 받더란 말이죠. 그러니까 내 말은 쉽지요. 나는 십자가가 어떻게 구원하는가를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른들은 얼마나 더 잘 알아 들어요? 초등학교 아이들도 잘 알아 들으니까 말이지요. 난 정말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안 되면, 울고 소리 지르고 기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몇 년 그러니까 되더라구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헨리 포드가 그랬다 그러더라구요. 그 사람은 그림을 그려야 되니까, 손전등을 놓고 잤다고 하지만, 나는 손전등 필요 없이 글이니까 몇 자 적을 수 있는 연필과 메모지만 필요했지요. 어떤 사람들은 신비롭거나 영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 집착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eKOSTA 그 외에 존경하는 분이나 목사님께서 영향력을 많이 받은 분을 좀 소개해 주시죠.
김동호 제가 자라나던 교회의 목사님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고, 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받았지요. 여러분 계시지만 주선애 교수님 같은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eKOSTA 그리고 목사님께서 영향력을 많이 받은 책은 어떤 책들이 있는지요?
김동호 저는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저는 지금도 다독하려고 하지 않고 정독하려고 하고 있지요. 제가 역사책, 철학책 많이 읽었어요. 저는 기독교 교육을 공부했지만, 공부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를 들면 기독교 교육을 공부한다면 기독교 교육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역사를 잘 알아야 됩니다. 철학을 하면 철학사를 잘 알아야 되지요. 신학을 할려면 교리사같이 말이죠. 그런 식의 책들을 잘 알아야지요. 모든 것을 공부할 때에 역사를 공부하여 이것이 어디로 흘러가나, 어째서 그렇게 흘러가나 하는 흐름의 방향을 잘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덕경 열심히 읽었어요. 논어같은 것도 읽었지만 나는 도덕경을 참 좋아했어요.
eKOSTA 참 의외입니다. 목사님이 도덕경을 좋아하신다는 사실이요.
김동호 그것이 서양 철학보다 깊어요. 동양 사상이 치우침이 없는 것이지요. 즉 중용을 강조하죠. 나한테는 더 맞고 좋아해요. 도덕경은 참 절묘해요. 균형 감각에 참 좋아요.
eKOSTA 끝으로 이코스타 독자가 주로 유학생인데,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조언을 좀 해 주시죠.
김동호 제가 사탄에게 두 번 속으면 망한다고 늘 하는데, 사탄은 공부할 때 일하라고 하고 일할 때 공부하라고 해요. 두 번 속으면 인생 망해요. 그래서 공부할 때가 있고 일할 때가 있거든요. 나는 청년 때 한번 속았어요. 공부할 때 일하라는 속임에 속았어요. 그래서 나는 일은 참 잘하고 빨리 했어요. 공부할 때 일을 했기 때문에 막상 일할 때 힘들어지는 거에요.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교회 봉사도 참 중요하지만 봉사로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없어요. 전공으로 이루는 거예요. 나는 월급 받고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그래서 교회 봉사, 교회 봉사 하는데 봉사는 그냥 봉사에요. 봉사로 헌신하는게 아니에요. 전공으로 헌신하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공부 열심히 하라고 권합니다. 내가 한동대 가서 가르칠 때 너희들 공부하다 죽으면 순교다 했어요. 농담이 아니거든요? 하나님 위해 공부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공부할 때 딴 핑계 대지 말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하나님이 마음껏 쓰시게 공부 열심히 하세요.
eKOSTA 저 개인적으로는 봉사를 안 하거나 교제나 예배를 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많이 느끼거든요.
김동호 물론 그렇지요. 봉사를 전혀 안 하면 죽죠. 그렇지만 청년 때는 봉사가 지나쳐요. 보람이 있고 그래서 그러는데, 봉사하는데 절제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걸 무시하면 안 돼요. 봉사 안 하면 사람이 죽지요. 그러나 우선 순위가 늘 공부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요. 봉사가 지나쳐서 봉사하고 남은 시간에 공부하거든요. 그러면 공부가 안 되잖아요. 유학 생활이라는 것이 만만한게 아닌데.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은 월급 받고 봉사하고 우리들은 아무 것도 못 받고 봉사하니 우리가 더 순수한 것 아닙니까?” 하더라구요. 그래서 “장로님은 아마추어이고 나는 프로에요” 라고 맞받아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봉사할 때, 진정한 봉사는 전공으로 봉사하는 거에요. 월급 받으면서 말이지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프로라는 말이에요. 나는 목회에서 프로거든요. 목회는 누구한테 양보하거나 해서는 안 되고 내가 제일 잘 해야 돼요. 의사는 수술을 잘 해야 돼요. 그런데 의사가 수술을 잘 못 하고 교회 봉사만 열심히 하면 그것은 조연을 잘 하는 거에요. 주연 노릇을 잘 해야지요. 청년때 그것을 잘 깨달아야 되요. 청년 때는 봉사가 지나칠 때가 많아요. 또 교회가 그것을 요구하구요. 나는 그래서 청년들한테 무리하게 요구 안 해요.
eKOSTA 예, 이코스타 독자들이 학문과 신앙 사이에서 그리고 진로 문제 등에서 고민이 많은데 그런점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었을 줄 압니다. 바쁘신 중에서도 이렇게 장시간을 내어 인터뷰 해 주신 것 참 고맙습니다.
Sep 1, 2001 | 기독교적 세계관/세계관 대담
세계관 대담
VIEW 양승훈 교수와의 대담
eKOSTA 교수님께서는 언제 어떤 계기로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셨고, 첫 느낌은 어떠하셨는지요?
양승훈 1990년 7월 위스콘신 매디슨에서 과학사 석사 과정에 있을 때 메디슨 한인 장로교회 청년부원들과 함께 볼티모어에서 열린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라 자세한 기억은 없는데, 그 때 주 강사가 임영수 목사님(당시 영락교회 담임)이었고, 성경 강해가 참 좋았습니다. 그 때의 장소는 St.메리대학(Saint Mary College)던가 그랬는데 위튼대학(Wheaton College)와 비교해보면 시설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4번 정도 미국 코스타에 참석했으며 밴쿠버 코스타에 3번 참석했습니다. 밴쿠버 코스타는 3년 전에 시작했으며 사이몬 프레이져 대학(Simon Fraser University)과 제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Trinity Western University)에서 모이고 한 해는 역내 한인교회에서 Youth 코스타만 참석했습니다.
eKOSTA 코스타에서 많은 강사님과 학생들을 만났을 텐데, 특별히 기억이 나는 만남이 있거나 코스타 이후 지속된 만남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시죠.
양승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기쁨이 함께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었던 분들을 코스타에서 재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eKOSTA 코스타가 올해(2001년)로 16회가 되었는데, 코스탄들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끼친 영향력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양승훈 코스타가 현재 국내의 지도층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직은 가시적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횟수로 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길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학생 운동에는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생각됩니다. 그 예로 작년에 있었던 SM2000 같은 운동을 들 수 있겠지요. 그 외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공별 모임, 예를 들면 교사들 모임인 기독교사회 같은 모임도 코스타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대학 기독 단체도 영향을 받았고 또 많은 코스탄들이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장평훈, 박건식 교수님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지요. 학생이 교수가 되어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 또 객원교수 등으로 오셔서 코스타에 참석 후 변화되어 가신 분들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eKOSTA 아직까지는 한국 사회와 교회에 구체적인 힘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잠재된 힘으로서의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 있겠군요. 코스탄들이 한국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코스탄 출신들의 모임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한데 교수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양승훈 코스타가 지금까지는 일년에 한번씩 모이는 단회적인 모임이었기에 계속적인 관계(fellwoship)로 발전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eKOSTA, tmKOSTA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의견들(feedback)을 수렴하여 코스탄들 간의 관계가 강화되고, 그런 다음에야 어떤 사역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작년 코스타 이후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eKOSTA나, tmKOSTA 등의 코스타 사역들이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코스타의 감동을 일년 내내 누리면서 주어진 환경과 선교, 전공 분야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교수님이 보시기에 앞으로 eKOSTA와 tmKOSTA의 방향과 예상되는 한계가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양승훈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홈 페이지를 만드는 이 외에 이메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홈페이지를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이메일을 보냄으로서 관심을 능동적으로 유발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실제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내용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 중에서 좋은 내용들, 유용한 정보들이 있을 때, 자주 찾고 읽게 됩니다. 가치가 있어야 읽게 되거든요.
eKOSTA 고맙습니다. 지금까지는 전반적인 코스타에 대한 의견을 여쭈어 봤는데요, 이제는 화제를 바꾸어서 교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여쭙겠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양승훈 VIEW는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의 약자입니다. 대학원이라고 하니까 독자적인 건물과 기관을 가진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Trinity Western University(TWU)라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기독교대학의 신학대학원의 한 학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학위도 TWU 학위이며, ATS(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의 학위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잘 셋업된 기독교 대학의 신대원에 세계관 대학원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들어가서 VIEW에서 운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ATS 학위인정을 받는 대학원을 만들리면 하드웨어와 더불어 일정 수준의 도서관이나 교수진(faculty)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다고 해도 서양 사람들이 우리가 부족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 우리에게도 서양 사람들에게 부족한 장점이 있으니까, 우리가 서양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함께 일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리하고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기독교 세계관의 훈련,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성경적인 관점(perspective)에서 조망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독특한 교과과정(커리큘럼)을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과과정은 크게 (1) 신학적, 성경적 기초(조직신학, 성경신학, 역사신학, 리더십)를 다루는 필수과목(Core Course) 12학점, 또한 (2) 철학적, 인류학적 신학적인 측면에서 세계관의 기초(Worldview Foundation)를 다루는 12학점, 다음에는 (3) 인문/사회/예술 영역과 이학/공학/의학 영역 등 두 영역으로 나누어 각 영역에서 성경적인 조망의 훈련을 하는 선택 영역의 12학점, 그리고 (4)졸업 논문(3학점)와 도서관 및 연구 논문 작성 훈련(2학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과 과정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이 자기 분야에 대한 제사장적 소명과 훈련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eKOSTA 그러니까 이 기독교 세계관 과정은 사역이나 전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분야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하며 자기 전공을 성경적으로 더 깊이 연구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교육 과정이란 말씀이신가요?
양승훈 바로 그렇습니다. 세계관 공부를 하더라도 목회자들은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목회를 계속하고, 또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연구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자체가 어떤 자격증(licence)을 주는 학위라기보다도 성경적 조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니까 다른 학위와는 다릅니다. 기독교 대학원 교양교육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졸업 후 학생들의 대중적 사역을 도와주기 위해 세계관, 가정사역, 창조론 등의 영역에서 강사 자격증을 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세계관 훈련의 원래 목적은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가르치고 공부하고, 자기 직장 생활에서 일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있습니다.
eKOSTA VIEW의 모체가 되는 기독학술교육동역회(Disciples with Evangelical Worldview, 구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의 목적도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까?
양승훈 그렇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기독교대학을 만들기가 어려운 이유가 먼저 준비된 교수가 부족하고 실제로 가르칠 때 기독교 세계관으로 가르칠 수 있는 자료와 교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DEW에서는 교수나 교사들을 양육하고, 그들이 가르칠 수 있는 자료를 개발하는 작업을 해 온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통합 연구> 같은 학술 잡지를 만들고 CUP를 통해 책도 출판해 왔습니다. 1989년에 시작된 <통합 연구>는 지난 12년간 많은 내용이 축적되어서 이미 VIEW의 강의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을 때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기독교 대학이나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유치원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eKOSTA 그렇다면 VIEW가 기독교 대학인 한동대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양승훈 우선 VIEW는 대학원 과정이며 대학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기독교 대학을 운영하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저희 과정을 ‘교수 훈련’의 한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천덕 신부님 등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원래 DEW를 통해 기독교 대학을 설립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한동대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DEW에서는 현재 VIEW 사역, 즉 대학원 사역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한국에서도 VIEW와 같은 형태의 KIEW를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훌륭한 기독교 대학이 되려면 먼저 이들을 이끌고 갈 수 있는 훌륭한 교수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DEW에서는 아직 독자적으로 대학을 세울만한 역량이 안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세 번째는 현 상황에서는 VIEW가 한동대를 포함하여 훌륭한 기독교대학이 되려고 노력하는 한국의 여러 기독교 대학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교수들이나 소프트웨어와 더불어 훌륭한 기독교 대학을 설립, 운영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안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동대의 최근 어려움도 따지고 보면 재정적인 압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동대 규모의 학생수로는 현재 갖고 있는 부채를 제외하고, 대학 운영만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대학이 제대로 되려면 이 대학을 지원하는 한국 교계의 성숙이 있어야 됩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지원을 하지 못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아직은 한국 교회가 제대로 된 기독교대학 하나를 운영할 정도도 성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 상태로는 DEW가 또 다른 독자적인 학부를 만드는 것보다는 지금 세워진 한동대 등의 기독교 대학들을 열심히 돕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한국 교회의 외적 규모만을 본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기독교 대학이 열 개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DEW에서는 더 많은 훌륭한 기독교대학들이 생길 수 있도록 기독교 대학들을 위한 각종 자료와 책, 교과 과정, 운영 모델 등의 소프트 웨어들을 개발하고 교수들도 양성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동대 뿐 아니라 (물론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기독교 대학이라고 하는 곳이 한국에 서른 개가 넘습니다. 그런 대학과 교수들에도 도움을 주려는 것이지요. 실제로 저희가 발간하고 있는 학술지 <통합 연구>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신학교나 신학대학원에서 발간하는 신학 부문의 잡지는 많지만 일반 분야를 성경적 관점으로 조망하기 위한 잡지는 <통합 연구>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독교대학의 많은 교수들이 <통합연구>를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eKOSTA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하면 그 대상이 대부분 교사라든가 교수 같은 지성인들일 것입니다. 그럼 현재 한국 사회와 교계에 기독교 지성인의 역할과 사명은 무엇이며, 기독 지성인들이 가질 수 있는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승훈 정치인들은 권력이 있고 기업인들은 돈이 있지만 돈도, 조직도, 권력도 별로 가진 것이 없으면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지성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성인들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기성 세대화, 다시 말해 수구 세력화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의 기독 지성인들은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다시 말해 가진 것이 너무 많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군인이 전쟁을 잘 하려면 몸이 가벼워져야 됩니다.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F=ma)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같은 힘을 가지고도 큰 가속도가 나오려면 질량이 작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 지성인들이 너무 부자가 되어 몸집이 커지니까 잘 움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성인이 일반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강의나 책을 통해서 가르치는 것이지만,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버로 ‘자기가 본이 되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고 기독 지성인들도 그렇습니다. 일단 기독 지성인들이 기득권 세력화 되었다고 여겨지면 지성인으로서의 영향력은 사라집니다. 기독 지성인들이 이 땅에 영원히 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 지성인들이 너무 많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처럼 기독 지성인들의 영향력이 감소한 데는 스스로의 잘못도 있지만 외부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로부터 오는 한계입니다. 한국에서는 많은 자원(resource)을 교회가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거의 교회가 독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이 자원들이 교회라는 제도 바깥으로 나가기가 어렵게 되어있습니다. 자원은 유통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니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썩게 되어 해독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IMF 사태란 것도 결국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돌지를 않아서, 즉 유동성의 문제가 생겨서 일어난 것입니다. 인적, 물적 자원은 흘러가야만 하는 데 잘 흐르지를 않습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 재원과 인적 자원들이 아이디어와 만나 가동(activate)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6년 전에 저는 TWU의 ACTS에 VIEW를 세우기 위해 교과과정과 아이디어를 담은 종이 쪽지 몇 장을 들고 태평양을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ACTS 지도자들을 만나 이런 대학원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때 TWU와 ACTS에는 제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니 밴쿠버라는 도시 전체에 제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ACTS에서 VIEW 아이디어를 “출자”로 생각하고 이 제안을 수용해주었습니다 (물론 수많은 회의를 거친 후지만).
이것을 한국 상황에 적용해봅시다. 한국에서 학교 총장이나 재단 이사장도 아닌, 일개 교수가 종이 쪽지 몇 장 들고 이런 프로그램을 하자고 제안한다면 어느 대학이 그 제안을 받아주겠습니까? 좋은 게 있다면 ‘자기가 직접’ 하지요. 이것은 기독교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한국인의 공통적인 병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존중해 주지 않는 것은 우리의 큰 약점입니다.
그런데 유목민족들의 후예여서 그런지 서양인들은 그것을 인정해 줍니다. 하나도 아쉬운 것이 없고 잘 운영되고 있는 TWU에 태평양을 건너온, 영어도 시원찮은 외국인 교수가 종이 몇 장 들고 와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명하며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도움이 되고 그것을 위해 이렇게 준비해 왔다고 하니까 받아주었던 겁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대학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건물이나 돈처럼 귀중한 것으로 인정하고 함께 협력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계약사회 속에 살아온 서양인들의 무서운 점이며 대영제국을 가능하게 했던 자세입니다.
물론 VIEW는 ACTS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ACTS도 VIEW의 덕을 조금씩 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ATS는 북미주 신학대학의 학위 인정기관으로는 가장 권위 있는 기관입니다. 우리가 아는 프린스턴, 풀러, 트리니티, 웨스터민스터, 댈러스 등 중요한 신학교들이 이곳으로부터 학위인정을 받는데 VIEW의 기독교 세계관 문학석사 프로그램도 이곳으로부터 학위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ACTS가 ATS의 정례 심사를 받는 중에 ACTS 대표로 가신 교수님이 심사위원으로부터 VIEW 프로그램에 대해 “당신 학교에서 어떻게 이렇게 혁신적인(innovative)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답니다. 대표로 가신 교수님은 후에 학교 교수회의에서 보고를 하면서 이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솔직히 자기도 그것을 자세히 모르는데 저보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서양 사람들의 강점 중의 하나는 바로 아이디어를 “재산”으로 인정해 주고 사람을 보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보고, 다시 말해 계약 관계를 통해 일하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이디어가 참으로 많은데 (물론 개중에는 황당무개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자원과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를 못해서 “유동성의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물이 흘러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자원이 돌아야 생산도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아이디어가 없고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일이 되질 않는 겁니다. 물론 학계 뿐 아니라 목회자들 중에도 참신하고 뜻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아이디어들은 실현되어야 교회도 살고 사회도 밝아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 교회만을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평신도 한 명 한 명의 수준이 곧 교회의 수준이고 그 수준 속에서 그 정도의 지도자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해야 됩니다.
eKOSTA 정리를 하자면 기독 지성인이 권력과 부를 가지지 못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이 가져서 문제가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이번 2001년 코스타 주제인 ‘낮아지신 예수님, 섬기는 그리스도인”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개 교회 중심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군요.
양승훈 거기에 더해서 교회 지도자의 문제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신도와 목회자의 지도력이 부족한 문제인데 이를 위해 우리 지성인들이 해야 할 역할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교회의 자원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데 가장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eKOSTA 예, 아주 명쾌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교수님은 제가 알기로는 물리학 박사도 하시고 또 신학도 하시고 기독교 세계관도 공부하셨는데, 어떤 계기나 동기, 혹은 비전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또 그 여정은 어떠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양승훈 긴 얘기가 되겠지만 저를 학교에서 “쫓아내어” 밴쿠버로 오게 한 사람은 바로 Wesley Wentworth (한국이름 원이삼) 선교사님입니다. 그 분은 한국에 파송된 평신도 선교사로서 대천덕 신부님과 더불어 제가 스스로 멘토(mentor)라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한국 선교사로 36년을 섬기신 분인데 이 분의 사역은 보통 선교사들과는 다릅니다. 이 분은 주로 대학원생이나 교수 등 기독 지성인들을 찾아다니며 기독교 세계관 관련 자료를 공급하고 격려해주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30대 초반에 한국에 오셔서 결혼도 하지 않고 삼십 수년이란 긴 세월을 그것만을 위해서 헌신하신 분입니다. 그 분의 그물에 걸려들었던 여러 물고기 중의 한 마리가 바로 저입니다. 저는 1979년에 그 분을 처음 만났고, ’80 세계복음화대성회와 더불어 탄생한 한국창조과학회가 1981년 1월 31일에 창립 총회를 할 때를 즈음해서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저를 만날 때마다 영어로 된 논문이나 소책자 같은 많은 자료들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박사 과정 학생으로서 반도체 물리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도 다 못 읽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분이 돈도 받지 않고 그냥 갖다 주는 것이 많은 부담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새 자료를 갖다 줄 때마다 잊지도 않고 꼭 지난 번 자료들을 읽어 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늘 안 읽어 봤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죄송한 일이었습니다. 그 때는 복사비나 책값도 싸지 않았을 때였으니까요. 사실 그때 저는 그 분이 갖다주는 세계관 관련 자료들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1982년 12월에 제가 박사 학위 논문 디펜스를 마쳤는데, 어떻게 알고 그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는 마음에 부담도 되고 더 이상 핑계 댈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혜 갚을 요량으로 몇 사람과 함께 연구회를 하며 그 분이 준 자료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읽은 책은 네덜란드의 리센(Hendrik van Riessen) 교수가 쓴 <과학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이라는 소책자였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마치 저의 눈에 비늘이 벗겨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 때까지 과학에 대해서 제가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냥 저의 전공인 반도체 물리학을 열심히 공부하며, 주일에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만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할 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의 연구를 성경적으로 조망하는, 세계관적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이전에도 기독교 세계관 공부를 부분적으로 하기는 했지만 그 때서야 비로소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학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로서 단순히 연구만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가 공부한 과학을 성경적인 안목으로 조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과 젊은 교수들을 모아 연구회를 해 나가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제가 경북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인 1984년에는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현 DEW)라는 단체를 만들었으며 1988년도에는 <통합 연구>라는 학술잡지를 창간하게 되었고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 출판부(CUP)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시카고대학에서 한국과학재단 포스트닥을(1987년), 위스칸신대학에서 과학사 석사를(1991년), 위튼대학에서 신학 석사(1992년)를 하였고 이러한 해외에서의 훈련을 통해 저의 시야가 좀 더 넓어졌습니다.
이러한 넓어진 시야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은 1992년도였습니다. 저는 1992년도 8월에 2년간의 미국에서의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는데, 그 해 말에 기독대학설립동역회 실행위원회가 대덕에서 모였습니다. 그때 해외에서의 제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대학을 해외에서 설립해보자는 제안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설립할 경우 돈이 많이 들고 자원의 소스(source)가 한국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많은 실행위원들이 저의 의견에 공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회의에 미국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하시던 한 목사님이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하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고 미국에서 미국 사람이 시작해도 힘든 일을 한국 사람이 어떻게 하겠느냐는 식으로 반대를 하셨습니다. 미국에 수십 년 사신 분이 그런 얘기를 하시는 바람에 갑자기 실행위원회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추친하지 말고 좀 더 준비를 해서 하자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저는 좀 섭섭했지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도에 현재와 같은 VIEW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위한 제안서를 만들어 실행 위원회에 다시 상정하였습니다. 그전에는 해외에서 학부 대학을 하자는 제안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너무 많은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학원 중심의 학교를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것도 새로운 대학원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대학들 중에 좋은 파트너를 골라 그 학교 내에 기독교세계관 분야의 석사과정을 설립하자는, 훨씬 더 현실적인 방향으로 수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대부분의 실행위원들이 동의했습니다.
그 다음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 어느 학교와 더불어 일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제가 공부했던 미국 중서부(Midwest) 지역을 생각했습니다. 시카고 지역은 제가 아는 사람도 많았고, 영적 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한인 교포들도 많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강연 여행 명분으로 미국의 동부와 서부의 여러 지역(워싱톤DC,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을 두 차례에 걸쳐 돌았습니다.
두 차례 여행을 하면서 미국은 여러 가지 여건이 다 좋은데 비자 문제와 안전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대도시로 가면 자원은 많은데 안전하지가 않고 또한 물가가 비쌌습니다. 그래서 VIEW를 시작하기 위한 장소의 10여 가지 조건을 놓고 기도하고 있던 중에 마침 화천에서 아바 샬롬 공동체를 경영하시던 이윤식 목사님으로부터 미국만 생각하지 말고 캐나다도 고려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뿐 아니라 호주와 캐나다, 영국 등 영어권 전체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최종적으로 밴쿠버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밴쿠버는 일단 한국과 가깝고, 자연환경과 기후가 좋으며, 안전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시설이나 자원은 미국 수준이면서도 학비와 생활비가 싸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구가 200만 명으로 북미주에서는 적지 않은 도시이며, 한인들의 숫자도 3만 여명(지금은 5만 여명)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계통의 자원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곧 바로 밴쿠버가 있는 BC주정부에 편지를 하여 우리의 계획을 설명하고 BC주와 밴쿠버에 대한 정보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리전트대학과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리전트는 순수한 독립 신학교로서 일반 학문 분야에 대한 자체 교수 요원들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작은 건물에 6백 명 이상의 학생들이 재학하다보니 실제적인 공간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에 알려진 주요한 리전트 교수님들은 이미 대부분 연세가 많아 은퇴하였으며 밴쿠버를 떠나셨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결국 리전트와의 접촉은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리전트 옆에 있는 VST(Vancouver School of Theology)와 접촉을 하기도 했으나 VST는 우리가 수용하기에는 신학적으로 너무 리버럴하다는 문제가 있어서 역시 그만 두었습니다.
그 후 학교를 물색하던 중 밴쿠버 외곽에 있는 현재의 Trinity Western University(TWU)와 TWU의 신학대학원인 ACTS(Associated Canadian Theological Schools)를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Evangelical Free Church 소속의 TWU는 캐나다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기독교 대학일 뿐 아니라 복음주의적인 노선이 확실하였습니다. 그 후 TWU와 일을 하면서 이 학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전공”(specialties)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과 ‘크리스천 리더십’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VIEW 사역을 위한 맞춤 학교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실 TWU처럼 기독교 세계관에 헌신되어 있는 학교는 북미주에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리전트대학이나 제가 공부했던 위튼대학도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VIEW가 TWU의 ACTS에서 시작된 지 2년 반이 지났습니다. 1995년 말에 처음 제안서를 제출했고 이 프로그램을 ACTS에서 개설하기로 최종적인 협정을 맺은 것이 1998년 11월 3일, 첫 강의를 시작한 것이 1999년 7월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학교를 시작하는데 4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셈입니다. 이제 개강한지 2년이 지났고 VIEW의 교과 과정에 있는 모든 강의들을 개설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VIEW를 운영하면 할수록 TWU를 잘 선정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2년이 지나서 평가를 한 후 계속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만 이제 5년 동안 계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직 교과 과정 등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학생들의 배경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또 좋은 강사들과도 연결이 되면서 강의의 수준도 급속히 향상되고 있습니다. 현재 28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는데(2001년 8월 기준) 내년 봄학기가 되면 40여명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사실 단일 대학원의 한 프로그램(학과)으로서는, 그것도 불과 개강한지 2년이 갓 지난 대학원 프로그램으로서는 적지 않은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 대학원 프로그램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 훈련은 공부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들 중에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부실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VIEW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인들도 얼마나 알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외국인들과 동일한 많은 돈을 내면서 공부도,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고 놀다만 가서야 되겠습니까? 화장실에서도 못쓰는 종이 한 장 받아가기 위해 그 많은 돈을 갖다준다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세계관에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힘들지만 제대로 공부하고 훈련받고 제대로 준비되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저는 어떤 분으로부터 VIEW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섞여 있을 때 “확실히” 다르다는 얘기를 듣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세계관 대학원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인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기를 기대합니다. 현재 저희 프로그램에서는 캐나다인 교수들이 절반 정도, 한국인 교수들이 절반 정도의 강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인 교수들은 영어로, 한국인 교수들은 한국어로 강의합니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은 한국인들 중에는 영어 강의만이 아닌, 한국어 강의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어로 강의하면(영어는 늘지 않겠지만) 정보 전달이 몇 배나 효과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존감, 즉 영어 콤플렉스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언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신학과 역사 교육을 미국에서 받았습니다만 외국어로 강의를 듣고 논문을 작성하며 토론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전공에 대한 성경적 조망이라는 영역에서는 가장 강의를 잘 하는 분들을 한국이나 미국, 유럽 등지에서 모셔다가 강의를 하는데도 단순히 영어로 강의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낮은 자존감에서 나오는 큰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1999년 7월에 제1기로 입학한 학생들이 26명인데 현재 그들 중 4명이 졸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칙”을 고수하다보니 몇몇 학생들은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고 몇몇 학생들은 졸업이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VIEW의 운영이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VIEW는 전형적인 캐나다 사람들의 학교에서 개설하고 있는 한국인 프로그램입니다. 이것을 통해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 축적한 세계관 관련 내용들을 체계화하고 또한 서양 사람들로부터 세계관과 더불어 복음주의 신학과 생활, 그리고 나아가서 학교 경영의 노하우 등을 배우러 온 것입니다. 특히 좁은 나라에서 살아오면서 분열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들로는 세계 제국을 만든 이들로부터, 그리고 현재도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이민들을 잘 수용하면서 복합문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아이덴티티도 잘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양 사람들의 좋은 관습들과 기독교 문화, 그리고 이들이 서로 연계(networking)하며 협력하는 모습 등은 꼭 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서구인들의 강점에 한국인들의 강점을 접목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절대 사대주의가 아닙니다. 그래야 우리도 세계를 섬기는 민족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VIEW 프로그램을 통해 정말 소수라도 한국을 변화시키는 다음 세대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이 어렵지만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다음 세대 지도자 뿐 아니라 현재의 지도자에게도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토플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밴쿠버에서 4-8개월을 머물면서 집중적인 세계관 훈련을 받는 세계관 디플로마 프로그램이 그것입니다. 캐나다는 학생 신분(status)이 아니고는 의료보험이나 자녀교육 등의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안식년 등을 가족들과 더불어 캐나다에서 보내려고 하는 분들이 머물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년 여름부터 시작되는 디플로마 과정은 이런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말씀을 듣다 보니, 저도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막 드는데요.
양승훈 예, 정말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말이 좀 우습지만 저 자신도 이 프로그램을 매우 좋아합니다. 사실 제가 강의하는 것은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 창조론 등 3-4 과목 과목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계관의 여러 강좌들이나 사회과학, 가정사역, 신학 등의 여러 강의는 다른 분들이 강의하는데 대부분의 강의들은 녹음을 해서 제가 듣습니다. 강의에 대한 모니터링이나 평가, 강의 내용의 조정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저도 배운다는 목적이 큽니다. 이를 통해 저는 정말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원장으로서 누리는 특권이지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세계 곳곳에서 훌륭한 학자들이 와서 가르치는데 저는 그 축복의 가운데 서 있는 셈입니다.
eKOSTA 요즈음 인터넷의 발달로 인터넷 학교 등도 운영하고 있는데, 그런 쪽으로는 계획이 없으신지요?
양승훈 물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강의들이 더 안정되고 표준화되어야 합니다. 돈을 받고 온 세계를 상대로 상품을 팔려면 흠 없이 제대로 만들어야 하듯이 강의 내용에도 표준화와 질적인 제고가 있어야 합니다. VIEW의 강의들은 좀 더 실제적이고 삶에 근접한 우리의 전공, 직업, 가정과 사회와 교회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강의들을 새로 개발해야 합니다. 기존의 코어과목에 있는 몇몇 신학 강의들을 뺀 나머지 대부분의 강의들은 새로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의를 통해 교수들을 훈련시킨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수들이 강의계획서를 만들 때 “북미주 표준”에 맞추도록 엄격하게 몇 번씩 개정을 하게 합니다. 어느 교수가 가르치더라도 같은 강의는 큰 차이가 없도록 표준화된 강의, 수준 있는 강의가 될 수 있게 말입니다.
강의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도 합당한 것입니다. 저는 수준(quality)을 우상시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은사를 생각하면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최선의 강의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금까지 두 해에 걸쳐 이루어진 강의들의 강의계획서와 강의록을 조금 더 수정하게 되면 10여 개의 강의는 금명간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선배 유학생으로서 이제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신앙인으로서 타문화권에서 학문적인 성취 뿐 아니라 영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을 지 말씀해 주십시오.
양승훈 유학생은 배우러 온 사람입니다. 학교에서 논문 쓰면서 전공 공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일단은 그것을 위해서 유학 온 것이니까요. 이에 더해 북미주에 유학 온 유학생으로서는 앵글로 섹슨이 설립했던 나라, 문화 그리고 교회를 좀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느리고 둔하고 악착같지 않으면서도, 그리고 연간 휴가를 한 달 씩 찾아먹으면서도, 오후 네 시 반만 되면 주차장에 차가 남아있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선진국을 유지할 수 있을까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를 저들과 더불어 일하면서 저는 우리가 저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몇 가지 일하는 작업윤리를 본 받지 않고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도저히 저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밴쿠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일간지 <밴쿠버썬>지(誌)(The Vancouver Sun)에 커다란 제목으로 “South Koreans, the World’s Workholics”라는 기사가 실렸던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뉴욕의 어느 회사에서 낸 통계를 다룬 내용으로,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주간 노동 시간이 가장 많다는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주당 노동 시간이 약 55시간, 프랑스인은 가장 적은 약 40시간, 미국은 약 42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55시간을 일하는데도 삶의 질이 프랑스인들이나 미국인들보다 낮을까요? 저는 유학생활 하면서 이런 문제에 관해서 우리의 부족한 점과 서구인들의 강점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인들의 협력하고 연계하는 문화, 기록하고 남기는 문화, 그리고 저들의 합리성인 계획과 업무수행 등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에 관해서는 제가 호산나넷에 칼럼을 써 놓은 것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www.hosanna.net/new/society/의 ‘교육선교’ 칼럼에서 ‘협력과 기록 그리고 합리’라는 제목의 글.
eKOSTA 이제 마지막으로 특별히 학문과 신앙을 함께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저희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으신 책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양승훈 아무래도 한국말로 된 책이 읽기가 편할 것 같으므로 한국인이 쓰거나 한국어로 번역된 몇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우선 세계관 분야의 기초적인 책으로는 전광식 교수의 <학문의 숲길을 걷는 기쁨>(CUP), Middleton & Walsh의 <그리스도인의 비전>(IVP), 안점식 목사의 <세계관을 분별하라>(죠인선교회), 저의 책 <기독교적 세계관>(CUP)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다른 분야의 책들을 제가 많이 알지를 못하니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 성경적인 조망을 다룬 몇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R. Hooykaas 교수의 <근대과학의 발흥과 기독교>(정음사), Charles Hummel이 쓴 <갈릴레오 사건> (IVP), 몬스마 외, <책임있는 과학기술>(CUP)를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