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지도자의 삶의 목적

한번은 해마가 돈을 벌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천천히 헤엄쳐서 가고 있는데 그가 많이 가지 않아서 장어를 만났다. “여봐 친구야 어디 가냐?”하고 물었다. 해마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돈을 벌려고…” 장어는 말하기를 “너 참 행운아다 나를 만났으니. 여기 지느러미같이 생긴 발이 있는데 이것을 사용하면 훨씬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그것 참 좋은데…”하면서 해마는 돈을 지불하고 지느러미를 사서 발에 끼고 두 배나 빠른 속도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한참을 가다가 해면을 만났다. “어이 친구야 어디를 가냐?” 라고 물었다. 해마는 대답하기를 “돈을 벌려고 가는 중이야.” 해면이 말하기를 “너는 참 행운아다.” 내가 싸게 프로펠러 달린 스쿠터를 너에게 팔게. 네가 휠씬 빨리 갈 수 있을 거야.” 해마는 남은 돈으로 스쿠터를 사고는 이제는 다섯 배나 빠르게 달릴 수가 있었다. 그는 상어를 또 만났다. 상어가 “친구야 어디를 가니?”라고 물었다. 해마는 대답하기를”돈을 벌려고 가고 있어.” “상어가 대답하기를 “너 참 행운아다. 내가 지름길을 알려 줄께” 상어는 자기의 입을 가리키며 “이곳으로 가면 시간을 훨씬 절약할 수 있지.”라고 말하자 해마는 “고마워”하면서 상어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삼켜져 버렸다. 이 우화의 교훈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 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 이르게 되고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분명한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지 않을 때에 우리가 하는 일들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해 보면 분명한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논문을 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문의 목적을 정하는 일이다. 분명한 목적이 먼저 설정되어야 하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질문이 만들어지고 자료도 모아지고 연구도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분명한 목적을 설정하지도 않고 논문을 다 써오는 경우가 있다.아무리 좋은 말과 통찰력들이 들어있어서 하나의 목적으로 묶어지지 않은 것은 논문이라고 할 수가 없다. 분명한 목적이 없는 논문은 마치 대들보 없는 집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집을 세울 때에는 먼저 대들보는 든든히 세우고 그 대들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가야지 대들보가 없거나 부실하면 아무리 아름답게 집을 장식하여도 위험한 건물에 불과한 것이다.


지도자란 분명한 목적과 방향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조직체를 위한 목적을 바로 인식하고 그 목적의 방향으로 집중하여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지도자는 남들을 이끌기 이전에 자신의 삶에서부터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자기의 인생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이 우화에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인생을 살게 되고 그렇게 살고있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지도자에게 있어서 인격도 중요하고 또 기술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자기 삶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집중하여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은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되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의 관점에서 목적의식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이름 한다. 기독교인의 삶의 목적에는 모든 기독인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목적이 있고 우리 각 개인에게 독특하게 부여된 삶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들을 독특하게 지으셨고 독특한 사명을 부여하신 것이다.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삶의 목적을 바로 파악하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런 면에서 모범이 되신다. 우리 주님께서도 세상에 거하실 때에 많은 선한 일들을 하셨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셨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 예수님이 모든 병자를 다 고치셨는가? 우리 주님에서 가난한 자를 다 먹이셨는가? 유대인들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키셨는가? 아니다. 그는 당시의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했다는 의미로는 다 이루지 못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 이루셨다. 즉 세상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이루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고 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다하려고 덤벼드는 것보다는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고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삶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신 삶의 목적을 다 이루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주신 사명을 다 이루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한 눈 팔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삶의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 삶의 목적에 있어서 남의 것을 부러워 할 필요도 없고 나의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할 필요도 없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사명 즉 삶의 목적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자신의 집에 손님이 오면 자랑하는 세가지 물품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집의 현관에 있는 은으로 만든 풍향계이고 둘째는 집안에 거실에 있는 금으로 만든 온도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의 책상에 놓여있는 구리로 만든 나침반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그는 구리로 만들었지만 이 나침반을 가장 소중히 다루고 자랑하였다. 그래서 손님들이 왜 이 나침반을 소중히 여기는가 묻고는 하였는데 대답하기를 풍향계는 은으로 만들어졌지만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로 움직이고 온도계는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주면 환경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러나 나침반은 비록 구리로 만들어졌지만 어디에 어떻게 놓던지 한 방향을 향하여 바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을 이끄는데 있어서 나침판과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있다. 어디에 서있던지 주님을 향하고 또 주님이 주신 삶의 목적을 위하여 집중하여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명한 삶의 목적을 붙잡고 살아가는 지도자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