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은] 북한이탈주민, 그들은 어디에

안녕하세요. 두 번째 만남이네요. 오늘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느 곳에 얼마나 살고 계신지 서로 나누고자 합니다. 그 전에 9월 말에 저는 미국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함께 모이는 수련회에 다녀왔습니다. 그 수련회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Home coming day와도 같은 날입니다. 첫날 저녁 예배,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 자로 말하면 무엇인지 아십니까?”예배에 참여한 우리들은 대답하지 못한 채 두리번거렸습니다. 답은 “바로 ‘나’입니다. 그러면 두 자로 말하면 무엇인지 아십니까? ‘또 나’입니다. 세 자로 말하면 ‘역시 나’입니다.”북한이탈주민들의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목사님의 이 말 한마디에 그곳에 모인 북한이탈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 일순간에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북한이탈주민들은 한인 디아스포라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살고 계십니다. 
 
우선, 대한민국에 살고 계신 북한이탈주민들은 2011년 4월 까지 21,191명입니다(한국, 통일부, 2011년 10월 17일 검색, http://www.unikorea.go.kr). 분단 이후, 북한 주민은 매년 10명 내외로 남한에 입국하였습니다. 남한 입국에 성공한 북한이탈주민들은 1989년까지만 해도 600여명이었으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김일성 사망과 북한의 경제난 등 체제위기가 고조된 1990년대 이후 높은 증가세를 보여 현재 이만 명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별에 따른 현황을 살펴보면, 2001년까지 남성이 여성에 비하여 월등히 많았으나 2002년부터 여성이 급증하였습니다. 현재, 북한이탈여성들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림 1>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 현황 

북한이탈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월등히 많은 이유는 남성은 직장에 소속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이동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또한 인근 국가인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농촌총각 문제도 북한 여성을 유입하는 원인이었습니다. 2003년 유엔난민기구(UNHCR)의 자료에 의하면 중국내 북한이탈여성이 10만 여명이라고 발표된 것도 그 근거를 제시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입국 연령을 살펴보면, 30대가 32%, 20대는 27%로 가장 많습니다. 19세 이하 청소년층은 16%로 2001년 북한이탈여성이 증가하면서 가족 구성원이 점차 늘었습니다. 이에 남한 정부는 남성 위주의 정착지원에서 가족 중심 및 청소년•여성 정착 지원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 입국 증가와 더불어 2004년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통과하면서, 북한이탈주민의 다국적, 다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한인 디아스포라가 거주하는 많은 나라에 북한이탈주민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유엔난민기구(2010)는 북한 출신의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가 전 세계적으로 1천명여명이 넘는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국가

영국

네덜

란드

호주

미국

캐나다

노르

웨이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아일

랜드

스위스

키르기스스탄

이스

라엘

소계

인원

581

146

32

25

25

23

14

14

9

8

6

4

3

2

917

) 유엔난민기구. 2010. 자료

) 독일, 미국, 캐나다의 경우 영주권을 취득한 탈북자는 통계에서 제외됨. 한겨레신문 인용. www.hani.co.kr, 2010 9 12 검색

 

또한 제 3국에서 난민 지위자 및 망명 신청을 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또한 매년 그 숫자가 늘어나 2010년에는 1,194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표 2>. 

년도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인원

67

72

330

349

412

403

502

842

1,097

1,010

1,194

) 유엔난민최고대표사무소(UNHCR,
2010).
한겨레신문 인용.
www.hani.co.kr, 2010
9 12 검색

주변의 많은 분들은 제게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시며 어디에 얼마나 살고 계시는지 궁금해 하십니다. 돕고 싶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날 수 없어서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여러분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과 늘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마음에 두고 기도하면 눈앞에 선하듯이 말입니다.  

 
얼마 전, 시카고 수련회에서 만나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자매가 제게 전화 한 통화를 했습니다. 이틀 동안 같은 방에서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중보하지 못한 것 같아 헤어지면서, 그 자매에게 기도제목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는데 그 말을 마음에 두었나 봅니다. 그 자매는 남편의 형님이 북한을 탈북하기 위해 준비 중이며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생사를 위한 일에 기도로 동참할 수 있어서 감사했으며 이런 귀한 기도제목을 허물없이 나누어준 그 자매가 고마웠습니다.

 
새로운 터전에 정착하게 된 탈북 형제자매들은 참 자유와 정착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탈북 했으나 북한에서의 교육과 사상•문화에 매어 참 자유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새로운 땅에 정착하고 싶지만 사회문화적인 차이와 언어적 어려움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 이름도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기도하는 심령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 깊이 교제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통로입니다. 

유시은 자매는 연세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Johns Hopkins 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Post-doctor Fellow로 일하고 있다.

[유시은] 북한이탈주민,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만남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동역자로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거룩하고 축복된 영적 전쟁에 여러분을 초대하며 함께 동역하게 되어 반갑슴니다. 저는 북한이탈주민 덕분에 통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유시은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살고 계신지 모릅니다. 저 또한 10년 전에는 북한이탈주민이 제 주변에 살고 계신지 몰랐습니다. 저는 상담사에 대한 비젼을 품고 낮에는 대학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대학원에서 상담교육 석사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상담 연수를 마쳤을 때 한 지인의 소개로 통일부 하나원에 상담심리사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북한이탈주민과 북한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하나원이 고아원인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능력도 없으며 준비도 없으며 마음도 없었던 저를 하나원이라는 나무에 접붙이셔서 북한이탈주민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원 입사 직후 제 몸무게는 10kg 정도나 빠졌습니다. 하루 하루 어떻게 이들을 만나 상담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세상 경험이 없고 미혼이며 젊은 여성인 제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사선을 넘어 중국 땅에서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그 불모의 땅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북한이탈주민들의 눈에 저는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어려움도 겪지 않은 젊은 남한 여성에 불과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저와 개인 상담을 마칠 즈음 “제 얘기가 소설같겠지요.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릅니다.”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입국하기 전까지의 모진 여정을 제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갖은 역경 속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사람들이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의 순간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모르는 제게 이런 분들을 왜 주셨나요?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를 제발 다른 곳으로 옮겨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도무지 저를 하나원에 보내셔서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몰랐고 제게 환난을 주시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은 “네가 97년도에 북한을 위해 기도한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며칠 후 하나님은 제게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끝없는 해안가를 누군가 저를 엎고 걷고 있었으며 날카로운 화살이 계속 저희를 향해 날라 왔습니다. 그 화살은 제 살갗을 스치갈 때 아팠지만 제게 큰 상처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저를 엎고 계신 그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내 등에 업혀 있으니 다만 네게 스쳐지나갈 뿐이다. 모든 화살은 내가 다 맞을 것이다.’ 이 꿈이 있기 전까지 저 혼자 모든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원망했습니다. 기도를 하여도 하나님은 아무 대답도 없고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며 다만 저 혼자 모든 화살을 맞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저를 혼자 두지 않으셨습니다. 제게 북한이탈주민들이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편안하게 일하던 제게 상담이라는 비전을 주시고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게 하시면서 저는 민족을 품게 되었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긍휼함을 아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아니었더라면 하나님의 눈물과 심장 떨리는 아픔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들에게 각각의 부르심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람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제 부르심은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것이며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오늘도 저를 일깨우며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달려갑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북한에 대한 사랑을 여러분에게 품게 하시고 부르십니까. 그 부르심에 아멘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죽게 하셔서 새생명을 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북한 땅을 위해 여러분을 내어 드리십시오. 아멘으로 화답하셨습니까.북한과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기도는 북한 땅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북한 땅을 살리며 그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생명의 길입니다. 기도하고 계십니까. 마음과 물질로 헌신해주십시오. 북한과 북한이탈주민들은 여러분 가까이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시는 것처럼 여러분 또한 북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는 여러분들이 함께 중보하며 사랑을 나눌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디에 얼마나 살고 계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유시은 자매는 연세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Johns Hopkins 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Post-doctor Fellow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