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영적 지도자의 충성됨 (Faithfulness)
미켈란젤로는 유모의 젖을 빨 때부터 조각가의 끌과 망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천부적인 조각가로 태어났습니다. 조각가로 전성을 구가하던 그는 30대 초반에 로마 교황청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교황의 장엄한 무덤을 조각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로마에 도착하자 일이 뒤엉켰습니다. 조각 대신 그림을 그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바티칸의 작은 교회 천장에 열 두 명의 인물을 그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처음에 그 제안을 거절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어렸을 적에 그림을 배웠지만 그의 정열은 온통 조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그의 경쟁자들이 그를 곤란하게 하기 위하여 그런 교묘한 함정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 일을 거절한다면 그는 교황의 총애를 잃게 될 것이고 그 일을 한다고 해도 어설피 그림에 손을 대었다가 그의 명성에 먹칠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런 음모를 꾸몄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그 제안을 일단 수락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그 일에 자신의 온 정열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처음에 열 두 명의 사도를 그리려고 했던 계획은 확장되고 확장되어 창세기에 나오는 사 백명 이상의 인물들과 아홉 개의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놓은 위대한 천장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가 그린 시스턴 성당의 벽화는 너무 생생하고 사실적이어서 이후 화풍의 주류를 바꾸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 일은 사 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꼬박 천장에 매달려 누운 채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시력과 건강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 위대한 작업을 끝냈을 때에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례미아처럼 늙고 약해졌다. 37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 친구들조차 내가 왜 그렇게 늙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이 이야기 속에서 도전을 받은 것은 현재 맡겨진 일들 속에서 혹시 그것이 꼭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재 놓여진 자리가 때로는 그 이유를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꼭 필요하셔서 나를 이끌어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하듯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열정으로 일하고 있는가의 질문인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자질은 바로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지혜로운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일을 맡길 때에 처음부터 큰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작은 일을 시켜보고 그 일의 경중을 떠나서 충성을 할 때에 더욱 중요하고 큰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더욱 그러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0절을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지도자들을 개발하실 때에 어느날 하루 아침에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지도자들을 만들고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작은 일부터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들을 큰 일에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큰 일, 중요한 일에 욕심 내는 것보다는 일단 주어진 작은 일들에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풀러신학교의 클린톤 교수는 지도자들이 성숙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일련의 유형들을 발견하였는데 그가 발견한 유형들 중에 사역의 기초 단계에서 잠재적인 지도자들이 경험하는 “긍정적인 시험 유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유형은 세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첫째 단계에서 삶 속에서 주어진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격에 관한 시험을 제시하십니다. 둘째 단계에서 지도자가 그 사건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특별히 다루시기를 위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행동을 취하는 긍정적인 반응을 합니다. 셋째 단계에서 지도자의 긍정적인 반응에 대하여 지도자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 됨을 통하여 더욱 큰 일, 중요한 일들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형이 한 지도자의 삶 속에서 반복됨을 통하여 지도자는 그 영향력에 있어서 점점 더 증대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유형에 반하여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부정적 시험의 유형”으로 삶의 경험 속에서 주어진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격에 관한 시험을 주시는데 지도자가 그 사건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행동을 취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지도자를 동일한 혹은 유사한 이슈를 가지고 지도자들을 다시 시험하시고 그 교훈을 얻을 때까지 혹은 그 지도자를 바로 잡기까지 그 지도자의 개발을 제한하십니다. 작은 일에 불충함으로써 영향력에서의 확대를 경험하지 못하고 반복 훈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시험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우리가 지도자로써 빠르게 성숙해 가는 일도 있는가 하면 때로는 우리가 바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수정을 받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놓여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작은 일들에 대하여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긍정적인 반응 유형이 우리 삶 가운데 반복되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바르게 반응하지 못하였을 때에도 그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발견하시기를 원하시는 자질과 태도를 파악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험을 주실 때에 바르게 반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느혜미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이 어려움에 처하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자기 백성을 어려움에서 구해야 하는데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외국 땅에서 왕의 잔을 나르는 사람으로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한 부담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자신의 민족이 처한 상황도 슬펐지만 자신의 처지가 더욱 한탄스러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나를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도록 하셨는가? 지금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백성들을 섬겨야 하는데…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정확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느혜미아에서 선한 부담감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가장 적절한 곳으로 느혜미아를 이끌고 계신 것입니다. 느혜미아가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선한 부담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만일 그가 그냥 그 이스라엘에 남은 백성 가운데 하나였다면 그가 예루살렘을 회복할 수 있는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당시의 최강국인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잔을 나르는 사람으로 일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당시의 왕의 잔을 나르는 사람은 왕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왕의 음식에 독이 썩여 있는가를 검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이 일을 성실하게 감당함을 통하여 왕의 신임을 얻었고 또한 필요할 때에 당시의 최고의 왕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할 수 있는 모든 자원과 권한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느혜미아의 눈에는 그가 가진 선한 부담감을 이루기에는 가장 절망적인 상황으로 보였지만 사실상 하나님은 가장 적절하게 준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느혜미아의 태도입니다. 비록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고 멀리 떨어져있는 일이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히 임함을 통하여 왕의 인정을 받게 되고 그 결과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도 감당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주어진 일에 충성되게 섬김을 통하여 그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도자로써 다른 어떤 위대한 사명과 비젼을 말하기 이전에 느혜미아와 또 미켈란젤로와 같은 성실함을 가지고 있는가? 질문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