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웅]전하는 삶과 유학 생활

이코스타 2005년 2월호

본인은 지난 2001년 가을 메릴랜드로 유학 온 후 줄곧 워싱톤 DC 지역의 유학생 중심 캠퍼스 성경공부 모임인 한어 성경공부(Korean Bible Studies; KBS)에서 훈련받고 있으며 2002년 가을학기 이후 간사로 섬기고 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해야 했기에 결코 여유로운 시간만은 아니었지만 지난 3년여간을 되돌아볼 때 모든 순간, 과정들이 이전에 품고 바랬던 것들보다 훨씬 아름답고 풍요롭게 허락되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그 중 간사로서 말씀 전하는 사역을 통해 부족한 자에게 은혜로 깨닫게 하신 바들을 아래 3가지로 함께 나누려한다.


첫째로 ‘전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전하는 사역을 시작했던 2002년 가을학기는 참으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의 때가 아닌가 싶다. 1시간의 말씀 인도를 위해 주중에 10시간 이상의 묵상과 준비를 할 때 내 자신이 먼저 말씀을 깊이 배울 수 있었다. 매일 같은 본문을 반복하여 묵상함에 따라 전날의 의문들이 다음날 하나씩 풀려나갔다. 그렇기에 혹 깨달음이 없어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를 넘길 때에도 다음날 새롭게 인도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잘 만들어진 성경공부 교재들을 예습하여 나누는 것이 아닌, 내 스볜?말씀으로 하나님과 독대하며 고민하고 묵상하며 찾아감으로 얻게되는 이 배움의 기쁨은 내 삶에 점점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가치로 자리매김 되어갔다. 그렇기에 당시 박사 학위 종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간사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초대는 매주 말씀 인도를 위해 매일 일정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함에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전하는 자로의 배움과 준비 과정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 매일 말씀을 통해 말씀을 배우고 그것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는 ‘전하는 것이 곧 참된 깨달음을 얻게 한다’는 것이다.
전하는 자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묵상하고 동원할 수 있는 자료들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었다. 매주 정해진 한 장의 본문을 매일 연속하여 묵상했는데 성경공부 전날쯤 되어서는 거의 모든 구절이 머리 속에 외워지는 것이었다. 또한 한 본문을 한글과 영어의 다섯 개 번역본을 보며 단어나 문맥의 어려운 부분들을 서로 대조하며 풀어갔고 또한 귀납법적 관찰을 통해 그 구절이 문맥에서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보다 정확히 파악해갔다. 하지만 더욱 깊은 깨달음은 말씀을 나누는 시간에 전하는 자로 그리고 또한 듣는 자로 있을 때였다. 소그룹 성경공부가 일반 예배 설교에 비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라면 말씀을 놓고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눈다는 것이라 하겠는데, 매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순서를 따르며 서로 나누는 시간은 각자의 생각과 삶을 점차 말씀 가운데로 이끌어가는 것을 본인은 소그룹에서 직접 보고 경험했다. 이 때 전하는 자는 자신의 한 주간의 묵상과 연구한 것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며 검증하고 각인하며 더욱 깊은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물론 이러한 유익은 모두에게 상호 작용으로 나타나겠지만 그 중 단연 전하는 자의 깨달음이 가장 깊고 오래 지속되어 삶에 남게 된다는 것을 본인의 경험으로 또한 주변의 경우에서 확실히 검증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전하는 것이 곧 생명이다’는 것인데 이것이 가장 근본이요 중요하다 하겠다.
전하는 자는 그 전하는 바 말씀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복음서의 바리새인들은 그 교훈과 삶이 일치하지 못했다. 그들의 가르침들을 정작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신도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결코 그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언제나 진실됨으로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쳤으며 행함으로 본이 되었던 사도 바울조차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부족함과 여전히 말씀을 거스르는 자기 안의 죄성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괴로워했으니 말이다. 이렇듯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인데, 그렇다면 이러한 사정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전히 ‘온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말씀 앞에 끊임없이 삶을 돌아보며 습성과 소욕을 거부하고 주의 뜻대로 변화하며 나아가는 것, 그렇게 날마다 점점 더 주의 뜻을 분별하고 행하며 거할 때 우리는 점점 온전해지게 되는 것이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살아있어 그것의 공의의 의무를 이행한다. 즉 그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짐에, 순종에는 축복과 풍요함이 따르지만 불순종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말씀을 전하는 자는 그 말씀에 비추어 먼저 자신을 돌아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선생이다. 그렇기에 듣고 배우는 자들 앞에 본이 되어야하고 그것을 위해 부단히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변화를 이루어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믿는 자들이 살아가는 생명의 지속이라 생각한다. 죄로 인해 끊임없이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이 아닌, 의로 인해 그분께 나아가며 결국 말씀으로 변화된 자신의 삶을 전하고 나누는 것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 혼자 온전히 이 땅을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학문의 깊이가 더해갈수록, 대인 관계와 사회 생활이 넓어질수록, 또한 부족한 자에게 작은 일에 충성하라 맡겨주시는 은혜의 직무들이 하나씩 늘어날수록, 내 자신은 주 앞에 더욱 연약한 자요, 무능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자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깨달음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어라. 말씀을 전하는 자로 이 은혜에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내 자신을 버리고 말씀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가며, 그 진리의 말씀 위에 내 자신을 먼저 세워가고 나아가 다른 영혼들에게 참된 생명을 전하는 자로 삼으신다는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지금 당신은 유학생으로 있는가? 학업을 마치고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러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는가? 상관없이 지금 있는 그 곳에서 말씀을 전하는 삶을 시작하기 권면한다. 한 사람도 좋고 두세 명의 소그룹도 좋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실되게 자신을 돌아보며 은혜로 깨닫게 하시는 바들을 주변의 영혼들에게 전하고 나누어 주길 소원한다. 이것이 당신이 지금 그곳에 있어 참 생명을 이어가는 길이요, 목적이 될 것이다.


이 죄인을 그리스도의 존귀한 보혈로 값없이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지난 3년여 동안 특별히 전하는 자로 삼으시고 그 존귀함을 깨닫게 하사 점점 더 그 은혜로 참 생명 안에 거하며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일형]교회 청년부와 캠퍼스 사역의 조화 (2)

이코스타 2004년 2월호

제자양육에 대한 확신이 굳게 서 있다 할지라도 캠퍼스 선교와 교회 청년회 사역의 조화를 이루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도 캠퍼스 사역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인들의 시선과 비난을 견디기 힘듭니다. 그러나 모든 교인이 그 중요성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제도를 구상하고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혹시 참고가 될까하여 이런 제도를 도입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한 교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교회는 지난번에 잠시 소개 드린 것처럼 교회에서 청년사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자양육을 위하여 지역 캠퍼스 선교단체와 함께 손을 잡고 일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많은 청년들이 캠퍼스 선교단체에 간사 혹은 다른 직책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또 캠퍼스 선교단체는 캠퍼스에서 새로 믿게되는 많은 청년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예배에 참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 교회가 얼마 전부터 강조하고 있는 것은 쎌그룹 중심으로 제자 삼는 일 입니다. 물론 아직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많은 쎌목자들이 제자 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런 부족한 가운데서도 그 교회 청년부는 작년에 쎌 그룹으로 조직을 개편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직을 새로 개편하는데 직면했던 문제점은 과연 어떻게 캠퍼스 선교와 교회 내에서 쎌 그룹을 통하여 제자 삼는 일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청년들에게 선택권을 주어 교회 내에서 아니면 캠퍼스 선교단체를 통하여 제자양육을 받기 원하는지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어느 곳을 택하던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곳에서 이질감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인도자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어 한 곳을 선택하여 사역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인도자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여러 인도자들이 겸직하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 때 캠퍼스 간사를 선택하는 자들에게 교회에서는 캠퍼스에 파송하는 선교사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예배시간에 이들을 인정해 주는 순서와 기도해 주는 시간이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 내에서 쎌 목자로서 섬기는 인도자들은 캠퍼스에서와 같은 마음으로 교회 봉사보다는 양육에 초점을 맞추고 사역해야 합니다.



위 원칙에 의하여 교회내의 청년들의 쎌을 다음과 같이 4가지의 성격으로 나누어 모든 청년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사역의 현장



훈련의 필요


캠퍼스가 지정된 선교지


교회 안에서 활동


 



말씀가운데서 서로 격려



(신앙의 기본 훈련을 받은 자)


1. 캠퍼스에서 말씀을 선포, 돌봄, 및 양육을 하는 자들의 모임. 그러므로 쎌모임에서는 말씀으로 서로 격려하며 사역지의 문제들 및 자신들의 삶을 함께 나눈다.


2. 교회 안에서 쎌을 통하여 서로 격려하는 자들의 모임. 여러 사역들을 감당하며 말씀으로 서로 격려하며 서로의 문제들 및 자신들의 삶을 함께 나눈다.


 



말씀으로 양육



(초 신자)



 


3. 말씀으로 캠퍼스에서 양육 받으며 선교에 동참하는 자들의 모임. 쎌에서는 서로 말씀으로 격려하고 사역지의 문제들 및 자신들의 삶을 함께 나눈다.


4. 쎌을 통하여 말씀으로 양육 받기 위한 사람들의 모임. 서로 돌봄으로 신앙의 훈련하며 자신들의 삶을 나눈다.


모든 청년들의 쎌은 교회의 다른 쎌모임과 같이 교회 내에서 돌아가며 감당해야 하는 기본 사역에 동참합니다 (: 주차사역, 주방사역등).



이런 조직의 개편이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하여 몇 가지 필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1. 제자 삼는 사역이 무엇보다 앞서야 한다. 만약 캠퍼스 선교단체나 교회청년회가 수적 부흥에 관심이 치우쳐 있거나 재미 위주의 모임을 도모하면 세상적 단체의 운영체제의 모습을 띄게 된다. 이럴 때 순수성을 상실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떠나게 된다.



2. 담임목사님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담임목사님의 목회철학이 다르면 캠퍼스 선교단체는 지역교회와 동역하기가 불가능하며 계속 마찰만 생긴다. 이럴 때는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며 청년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확신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3. 캠퍼스 선교단체 리더십과 교회 청년회 리더십이 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교회 안이던지 밖이던지 한 영혼이 참 제자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어야 한다. 그 이상의 마음은 이기적인 마음이다.



4. 지역교회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하지만 제자양육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제자양육을 지역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성령님의 활동 영역을 인간의 잘못된 인식으로 제한하는 죄를 범하면 안 된다.



5. 모든 결정을 할 때 사랑하는 마음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목적이 있다 할지라도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힘들어 진다.



물론 이런 조건들이 다 만족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내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가운데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에 상황을 이끌어 가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가운데서 모든 인간의 관례와 습관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