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상] 요즘은 스피커 날라 줄 사람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이코스타 2005년 11월
오래 전에 이코스타에 ‘찬양을 이야기하자’는 타이틀로 잠시 글을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실 찬양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별로 말할 만한 지식도 사실 내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내게 밑천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사실은 과연 누가 이런 유의 글에 관심이나 가질까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요즘이다. 요 즘 우리 젊은 세대들이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보다는 ‘찬양’이라는 음악 을 듣고 ‘워십콘서트’라는 눈앞에 펼쳐지는 시각적인 즐거움을 얻는 것을 훠얼씬 더 좋아하는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청년 사역한다고 이들과 함께 어울린 날들이 꽤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만 드는 생각은 본인을 포함하는 우리 세대가 본질보다는 피상적인 겉모습에 점점 더 연연해 한다는 생각만 들어 한숨지을 때가 있다. 물 론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어떤 ‘공부의 문화’보다는 단지 앉아서 감상하기만 하면 되는 ‘누림의 문화’가 누구에게나 다 편한 상대일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누림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고 어떠한 사람으로 변화해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물어보면 남는 것은 의문부호뿐일 때가 많다. ‘WOW Worship’이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는 것처럼 정말 와우! 하고 한 번 외친 다음 그 예배에서 무엇을 얻었는데? 물어보면 답변을 듣기까지 꽤 오랜 적막이 흐른다. 예를 들어서 느낌이 무지하게 좋은 워십 콘서트- 말하자면 조명도 기가 막히고 콘셉트도 좋았고 안개효과에다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회중들이 함께한 워십 실황-를 함께 시청하고 나서 연이어 있는 어떤 행사에서 섬겨 줄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고 크게 목소리를 높여도 자원봉사자를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다들 선약이 있거나 개인적인 일들 이 어찌 그리 많은지 이들과 깊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은 서울 하늘에서 가끔 별 들을 보게 될 경우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기회가 되면 찬양팀에서 꼭 같이 싱어나 연주자로 무대를 장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시간을 위해 함께 스피커를 날라 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즘은 그냥 스피커만 날라줄 사람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배 부르고 등 따습게 되면 만사형통인 우리 인간 본연의 모습인가. 아니면 우리 세 대에 유난히 눈에 띄는 현상인가. 혼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했더니 이미 다른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 세대를 연구하고 있었다. 최근 연합 뉴스에 실렸던 글이다. “1990 년대 중반 ‘X세대’로 불리며 국내에서 세대 연구를 촉발시킨 2635세대(1970∼1979년생)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을까. 제일기획은 올 5월부터 7월까지 26∼35세 남녀 640명과 36∼45세 남녀 16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10년 전 X세대였던 2635세대의 특징을 담은 ‘우리 시대의 미드필더, 2635세대’ 보고서를 30일 냈다. 보고서는 현재의 2635세대가 △자기중심적(Individualized) △진보적(Innovative) △현실적(Into the reality) △ 유행 추구적(Inclined to fashion) △다양한 문화에 개방적(Inter-cultural)인 5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특징을 바탕으로 2635세대를 ‘5I세대’로 이름 지었다.” 아하! 바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네. 얼추 비슷하게 다 맞췄는데?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 국내 전체 인구의 17%, 경제활동인구의 24%를 차지하는 5I세대는 1970년대 경제성장기에 태어나 1990년대를 거쳤다. 정치적 안정(Integration) 정보화(Information Society) 다양화(Inter-nationalization) 외환위기(IMF) 자립(Independence) 등 ‘5I’의 시대경험을 공유한다. 해외여행이 자율화돼 ‘배낭여행 1세대 ’인 동시에 경제적 풍요 속에서 다양한 문화와 상품을 소비한 ‘문화 향유 1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념이 약화된 뒤 대학을 다녀 386세대와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집단 경험은 없다.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으로 방황하기도 했다.” 그 렇지 바로 그렇지 내가 두 눈 크게 뜨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8-90 년대의 일들이 쏜살 같이 지나간다. 그리고 나의 눈은 기사의 다음 구절에서 멈추고 만다. “자기중심적(Individualized) 가치관 = ‘우리’를 강조하는 386세대와 달리 2635세대는 ‘나’가 우선인 세대다.’사회규범보다 내가 원하는 바가 중요하다’는 질문에 54.2%가 긍정했으며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개성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물음에는 52.5%가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같은 질문에 대해 386세대는 각각 45%만이 그렇다고 답해 차이를 보였다. 또 2635세대와 386세대 중 자기개발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각 각 36.1%와 26.3%로 조사돼, 2635세대의 자기중심적 성향이 자기 개발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첫 번째 I에서 어느 정도 나의 고민에 대한 가닥이 잡혀가는 느낌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진보적(Innovative)인 이성관ㆍ결혼관, 현실적인 소비관(Into the reality), 유행에 민감한(Inclined to Fashion) 세대, 개방적인(Inter-cultural) 세대, 이 모든 현상들에 대한 풀이도 첫 번째 단추에서 다 호박 줄처럼 쑤욱 하고 연결이 되어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동의하는 마음으로 끄덕이게 된다. *기사 참조 중 요한 것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포기를?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제일기획도 포기하지 않는 2635세대를 왜 내가 포기하나? 누구말대로 포기는 김장할 때만 쓰는 용어가 아닌가? 찬양을 좋아하는 소비자로서의 회중은 많아도 예배를 목숨처럼 여기는 제자를 보는 것은 천연기념물을 보는 것처럼 어려운 이 시대에 2635세대를 바라보는 나에게 이러한 기사는 자연스레 기도문이 되고 만다. ” 하나님, 이 세대를 섬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림은 알아도 섬김은 구경하기 힘든 이 시대에 국내 전체 인구의 17%, 전체 경제활동 인구의 24%를 차지하는 조국의 젊은이들을 섬기는 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현실적이고 손해 보지 않으려 하고 개방적이면서 또한 자기에게는 보수적인 이 세대에게, 엄청난 희생이 따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하는 한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글은 2005년 11월, 여전히 찬양을 이야기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가 서있는 현재의 주소이다.
( http://news.empas.com/show.tsp/cp_yt/soc00/20051030n00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