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희] 사랑하며 죄를 보며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사람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발견하는 축복을
가져다준다. 동시에 사랑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자신의 죄성’에 당황하기도 한다. 결국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님 마음을
발견하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깊은 내면의 성찰도 가져다주어 우리를 성숙케 하는 것이다.
민수(가명)는 고아원에 있는 아이로 오랜 기간 우리 가정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음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명절을 같이 지내기도 했는데 그 아이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은 군대 간 아들 진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는데, 새벽녘에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침대에서 떨어졌어!” 아이의 방에 달려가 안아주며 “저런 놀랬지, 다친 곳은 없어?”라고 묻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주님! 고아들은 이런 때 누구를 부릅니까?’ 물론 박한 재정으로 고아원에 침대를 설치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들이 생각지도 않은 어려움과 놀램을 당할 때 과연 누구를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날 밤 마음의 아픔을
느끼면서 비로소 우리에게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고 부탁하신 주님의 심정을 조금 알 수 있었다. 후에 진호보다 1살 어린 민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민수를 만난 후 처음 맞이하게 된 어린이 날이었다. 무슨 선물을 할까 망설이다가 직접
물어 보았는데, “장난감이 가지고 싶어요!”라며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우리 네 식구는 가까운 백화점에 갔다. 마침 대목이라
장난감 코너에는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민수는 정신없이 이 물건 저 물건 만지고 있는데 점원 눈치가 보인
나는 그의 귀에다 살짝 “빨리 골라”라고 말했다. 그때 남편이 나의 손을 슬그머니 뒤로 당기며 “그냥 내버려둬. 지금 선택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거야. 언제 이런 일이 있었겠어? 모든 것이 다 자기 것 같은 기분일 텐데…” 드디어 골랐다.
그런데 3만 5천원! ‘주님, 너무 비싸요. 진호도 그렇게 비싼 것 안 사줬는데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
비싼 것 안다. 하지만 나는 내 아들 민수에게 그것을 선물해 주고 싶구나!’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주님께 참 감사했다.
민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민수는 내 눈에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보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와의 만남이 항상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숨겨 버리고
싶은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욕심, 이중성과 위선, 사람에 대한 편견, 희생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끊임없는 계산들이 주님
앞에 환히 드러나 수치심과 실망감에 몸서리쳐질 만큼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민수가 초등학생 때 일이다. 여름방학 중 며칠을 함께 집에서 보내는데, 어린 민수는
더위에 자기 몸 관리를 잘 하지 못해 온몸에 모기가 문 자국과 긁어서 흘러내린 진물로 얼룩져 있었다. 집에서 깨끗하게 샤워를
시킨 후 큰 수건으로 몸을 닦으려 하는데 어쩐지 우리 가족이 사용하는 수건을 그의 몸에 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별도리 없이
꺼림칙한 마음으로 닦아주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니 자꾸만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주님은 죄악으로 얼룩진 나를 위해 그
큰 희생을 감당하시며 그래도 사랑한다고 지금까지 나를 안고 보호해 주셨는데… 주님 앞에 엎드려 깊은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은혜를 모르는 교만하고 가증스러운 내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부끄럽게 하셔서라도 나를 겸손하고 성숙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인내가 감사할 뿐이었다.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 주님과 나 그리고
사랑해야 할 대상, 이 삼각관계 속에 부딪히고 깎이며 채워지고 누리는 사랑의 역동이다. 이 과정 속에 우리는 사랑을 보며 또
죄를 보게 된다. 그래서 더 큰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게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