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원] 유진 피터슨 읽기 (3) – 유진 피터슨과 번역

이 글은 지난 6월에 청어람에서 했던 유진 피터슨 읽기에 대한 강의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14년째 기독교 서적을 전문으로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 양혜원입니다. 제가 번역한 유진 피터슨의 책은 공역을 포함해서 총 8권입니다. 나열해 보면,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The Wisdom of Each Other),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Like Dew Your Youth-Growing up with your Teenager), 「현실, 하나님의 세계」(Christ Plays in Ten Thousand Places)(공역), 「이 책을 먹으라」(Eat This Book), 「그 길을 걸으라」(The Jesus Way), 「비유로 말하라」(Tell It Slant), 「부활을 살라」(Practise Resurrection)(공역), 그리고 가장 최근작으로 「유진 피터슨: 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The Pastor: A Memoir)입니다. 저는 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그냥 번역가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한 저자의 글을 자신의 모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각하게 되는 몇 가지의 것들을 번역가 입장에서 다루어 본 것입니다.

3. 유진 피터슨과 번역

아시다시피 유진 피터슨을 유명하게 해준 것은 ‘현대 미국어로 번역한’「메시지」성경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성경을 번역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번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번역은 목회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고대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본이 가지고 있는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의미를 우리 교인들이 평생을 사용해온 미국어의 어휘와 은유와 통사로 전달하기 위한 현장의 목회 활동”(「유진 피터슨」, 475쪽)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번역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메시지는 30년간의 목회 토양에서 자랐다.…나는 두 언어의 세계에서 살았다.성경 언어의 세계와 현대 언어의 세계다. 나는 언제나 그것이 같은 세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회중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그래서 나는 필요에 의해 ‘번역가’가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번역가라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날마다 두 언어의 경계에 서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치유하시고 축복하시고, 심판하시고 다스리시는 데 쓰시는 성경의 언어를, 우리가 잡담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길을 안내하고 사업을 하고, 노래를 하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데 쓰는 오늘의 언어로 번역했다.”(「유진 피터슨」, 476-477쪽)
여기에서 피터슨은 ‘오늘의 언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쓰는 일상 언어를 말하는 것입니다. 피터슨은 “진정한 번역은 그 쓰인 글, 전해진 말에 대해, 눈물과 웃음, 가슴과 영혼으로 전인을 참여시키는 이해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먹으

라」, 207쪽) 그렇게 눈물과 웃음, 가슴과 영혼으로 전인을 참여시키려면 듣는 사람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려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데에 쓰는 일상적인 언어를 써야 합니다. 피터슨은 「메시지」를 번역할 때,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하박국 2:2) 하기 위해서 번역했다고 합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으려면 말이 쉬워야 하고 바로바로 와 닿아야 합니다.

피터슨에게 일상 언어는 중요합니다. 아니, 기독교인에게 일상 언어는 중요합니다. ‘단절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그러한 삶을 살려면 우리의 언어도 일상과 유리되지 않은 언어여야 합니다. 성경도 일상의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우리는 언어를 ‘상향 모독’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상향 모독은 “언어가 추상적으로 부풀려지거나 레이스처럼 엮인 거미집처럼 비실체적인 것이 될 때 일어난다.”고 피터슨은 말합니다(「이 책을 먹으라」229쪽). 이것은 곧 언어를 인격적 관계와 구체적 맥락을 떠나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인데, 성경과 관련해서는 하향 모독 보다는 이러한 상향 모독의 위험이 큽니다. 왜냐하면 상향 모독이 간파하기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서 ‘빌어먹을 하나님!’(God dammit!)하고 내뱉는 말과 같은 공공연한 신성모독은, 예를 들어 떨리는 목소리로 ‘존귀하고 높으시며, 거룩하고 비길 데 없는 전능의 하나님…’이라고 읊조리는 아첨 떠는 경건보다 훨씬 더
이목을 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후자가 오히려 전자보다 더 심하게 언어를 모독하는 것일 수 있다.”(「이 책을 먹으라」, 230쪽)
설교할 때나 대표 기도를 할 때 그리고 교회 사람들과 대화할 때, 우리는 얼마든지 이러한 상향 모독의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거룩해 보일 거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터슨은 말합니다. 상향으로 부풀려진 말은 “마음에 뿌리를 두지 못한다. 인간의 일상성에 기초하지 못한다. 그런 말은 더 이상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데 유익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번역은 “상향 모독에 대항하는, 그러니까 우리의 평범한 삶을 표현하는 방식과 더 이상 맞지 않는 과정과 술책으로 언어가 부풀려지는 것에 대항하는 최우선 방어 중 하나다. 그리고 과장은 언제나‘ 틈을 노리며’ 언어의 문 앞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에 번역가들은 그들의 언어가 우리가 자녀들이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일상어의 울림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이 책을 먹으라」, 232-233쪽)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전하는 설교자들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과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해내는 하나님의 번역가들입니다. 따라서 부풀려지지 않고 일상어의 울림을 잃지 않는 번역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양혜원] 유진 피터슨 읽기 (2) – 유진 피터슨과 영성

이 글은 지난 6월에 청어람에서 했던 유진 피터슨 읽기에 대한 강의를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14년째 기독교 서적을 전문으로 번역하고 있는 번역가 양혜원입니다. 제가 번역한 유진 피터슨의 책은 공역을 포함해서 총 8권입니다. 나열해 보면, 「교회에 첫발을 디딘 내 친구에게」(The Wisdom of Each Other), 「거북한 십대 거룩한 십대」(Like Dew Your Youth-Growing up with your Teenager), 「현실, 하나님의 세계」(Christ Plays in Ten Thousand Places)(공역), 「이 책을 먹으라」(Eat This Book), 「그 길을 걸으라」(The Jesus Way), 「비유로 말하라」(Tell It Slant), 「부활을 살라」(Practise Resurrection)(공역), 그리고 가장 최근작으로 「유진 피터슨: 부르심을 따라 걸어온 나의 순례길」(The Pastor: A Memoir)입니다. 저는 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그냥 번역가일 뿐입니다. 따라서 이 글은 한 저자의 글을 자신의 모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각하게 되는 몇 가지의 것들을 번역가 입장에서 다루어 본 것입니다.

2. 유진 피터슨과 영성
 
지난 번 글에서도 말했지만,피터슨이라는 작가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는‘깊은 영성의 소유자’ 혹은 ‘영성의 대가’입니다. 그렇다면 피터슨이 말하는 영성은 무엇일까요? 우선 영성이라는 용어부터 좀 살펴보면, 영어로 ‘spirituality’는 기독교만의 용어가 아닙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자기를 넘어서는 어떤 대상을 찾는 모든 탐색과 추구와 과정들을 다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한국어로 ‘영성’이라는 단어는 주로 기독교 계통에서 씁니다. 불교에서는 영성이 깊은 사람을 ‘불심’(佛心)이 깊다고 하지 영성이 깊다고 하지는 않으니까요. 아마 영어로 하면 ‘불심’도 Buddhist ‘spirituality’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영성에 대한 관심을 피터슨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인간에겐 영속적이고 영원한 것에 대한 갈증과 갈망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받고 있고 공공연히 표현되고 있다. 자신의 삶이 직업 역할과 시험 등수로 축소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태도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영성을 스스로 만들어낼 것을 권유받고 있다는 점이다.”(「현실, 하나님의 세계」, 25쪽)

‘자신에게 맞는 영성을 스스로 만들어’내다보니 필연적으로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피터슨은 곰돌이 푸우의 이야기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북극(North Pole)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북극을 찾아 나선 곰돌이 푸우와 그 일당들. 그들은 한참을 우왕좌왕하다가 푸우가 들고 있는 막대기(pole)를 보고 드디어 북극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리더 격인 크리스토퍼 로빈이 선언합니다. “이제 탐험은 끝났어. 네가 북극을 찾을 거야!” 피터슨은 이 이야기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내가 ‘보았던’ 것은 모호하게 정의된 영성(북극)을 찾아다니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살고 있는,내가 속한 문화였다.이따금씩 그러한 인물들 중 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집어 들면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바로 저거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정말로 ‘저것’처럼 보인다. 그러고는 누군가가,대개는 영적 권위를 가진 어떤 인물(크리스토퍼 로빈)이 거기에다가 팻말을 단다. ‘영성’. 그리고 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 탐험이 제안될 때까지.”(「그 길을 걸으라」, 343쪽)

이러한 문화적인 분위기 속에서 피터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영성 신학’을 제안합니다. “문화에 의해 규정된 역할이나 기능을 넘어서는 삶을 살려는 열의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그러나 이러한 열의는 결국,문화가 정해놓은 한계들에 갇힌 영성을 낳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 때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산 경험과,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풍부한 이해와 실천을 다루려는 뚜렷한 기독교적 시도를 일컫는 말로서 ‘영성 신학’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현대 세계의 초점 없이 산만한 ‘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속에서 뚜렷한 기독교적 경험을 일컫는 말로서 말다.”(「현실, 하나님의 세계」, 25-26쪽)

그는 이어서 ‘영성’과 ‘신학’이라는 단어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학’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울이는 주의,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을 알고자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을 가리킨다. ‘영성’은,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해 계시하시는 모든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과 일터에서 살아낼 수 있는 것들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영성’은 ‘신학’이 하나님과 멀찍이 거리를 둔 채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으로 타락하지 않게끔 해준다. ‘신학’은 ‘영성’이 그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생각하고 말하고 쓰는 것이 되지 않게끔 해준다.이 두 단어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현실, 하나님의 세계」, 26쪽)

이러한 영성 신학이 삶에서 나타나면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형용사로, ‘seamless’를 꼽습니다. 피터슨은 자기 아내의 부모님, 즉 장인 장모를 묘사할 때 이 단어를 씁니다. “그분들의 기독교 신앙은 삶에 철저하게 통합되어 있었다.…어쩌면 기독교 신앙이 그분들의 삶에 통합된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삶이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에 통합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분들의 삶과 신앙은 서로 단절 없이 이어져(seamless) 그분들의 존재에 진정성을 더했다.”(「유진 피터슨」, 308쪽)
‘seam’은 아시다시피 솔기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에는 솔기가 있습니다. 옷의 앞판, 뒤판, 소매를 이은 자리입니다.솔기는 도로의 과속방지턱처럼 거치적거리는 부분입니다.매끄럽지가 않습니다.단절이 느껴집니다.그런데 그러한 솔기가 없는 매끄러운 옷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자신이 믿는 바와 아는 바가 하나 된 모습,존재와 행함에 아무런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피터슨이「현실,하나님의 세계」에서 제러드 맨리 홉킨스의 시를 빌어 말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표정으로, 사지의 움직임으로, 아름답게 나타나시는데, 그게 인위적이지 않고, 그 시에 등장한 물총새와 잠자리와 돌과 현악기와 종처럼,자신이 하는 일이 곧 자신인,그런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피터슨은 그러한 일치의 삶이 바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
면서 살고자 하는 삶의 모습이고,우리의 목적지라고 말합니다.

[이인엽]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가 하나님의 뜻?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0. 들어가며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913일 뉴욕에서 개막한 제 66회 유엔총회에서, 194번째 회원국으로 승인 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미국의 주도하에 여러 협상 시도가 있었지만, 1967년 이래 팔레스타인 인들이 살고 있는, 가자 지구(Gaza district)와 서안(West Bank)은 이스라엘 군에 의해 식민지에 가까운 점령상태로 남아있고, 팔레스타인의 테러공격과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이 계속 되어 왔는데, 예를 들어 2008년의 가자 공습에서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대부분이 비무장 민간인이었던 138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스라엘측 사망자 13),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유엔학교, 유엔 구호트럭, 비무장 국제 구호선까지 무차별 공격함으로서, 미국을 제외한 국제 여론의 심각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이스라엘은 분리장벽을 세우고 정착촌을 늘려나감으로서, 평화 협상은 최근 1년여간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 (좌), 오바마와 네탄야후 (우) 

결국,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진전이 없고, 미국이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은 유엔에 직접 독립국 승인을 요청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언제나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것을 확고히 했으나, 팔레스타인 측은 유엔 회원 192개국 가운데 140여 개국에서 독립을 지지한다는 지지를 얻어냈다고 밝힐 정도로, 대다수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안보리 거부권으로 독립국가 자격은 얻지 못하겠지만, 만일 유엔 안보리 15개 회원국 중 최소 9개국이 승인하고, 유엔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중 3분의2 찬성을 얻으면 팔레스타인은 `표결권 없는 비회원국 옵서버 단체(entity)’에서 `표결권 없는 비회원국 옵서버 국가(state)’ 지위로 승격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제형사재판소(ICC)와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등에 이스라엘 관련 문제를 제소할 권한을 갖게 되어 이스라엘에게 위협이 될 수 있고, 이렇게 팔레스타인 독립문제가 유엔에서 논의되고, 대다수의 국가들이 지지를 보내는 것 만으로도, 중동 정세에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i]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 5 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후, 19일에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대중동연설(Middle East Speech)과 이에 대한 반응입니다. 오바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해결과 평화 정착을 위해서 합의에 따른 일부 영토교환을 전제로 한 1967년 이전 경계(the 1967 lines with mutually agreed swaps)’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협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 했습니다. 사실 이 주장은 과거 조지 부시나 힐러리 클린턴 등 다른 정치인들도 언급한 바 있고,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울 것 없는 내용입니다. 사실 오바마의 개혁적 성향을 보고 뭔가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전을 위해 과감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기대했던 팔레스타인과 아랍국가들은, 내실없는 오바마의 발언에 큰 실망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연설이 끝나자마자, 미 공화당 의원들을 비롯한 보수 인사들은 오바마의 주장을 강력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차기 공화당 대선주자인 미트 롬니(Mitt Romney)오바마가 이스라엘을 달리는 버스 아래 던져 넣었다(President Obama has thrown Israel under the bus)’고 했고, 역시 대선주자인 미셸 바크만은 오바마는 또 한번 우리의 친구이자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배신했다(Once again, President Obama betrayed our friend and ally Isael)’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비난여론을 의식했는지, 오바마는22일에 유명한 이스라엘 로비단체인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를 방문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지지는 변함 없다며, 발언의 파장을 진화하기에 바빴습니다.[ii]

AIPAC을 방문하여 연설하고 있는 오바마

 

또한 미국을 방문한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바마 연설 바로 다음날인 20일 오바마와의 대담에서 거의 두시간 동안 이스라엘의 역사와 현실을 강의하듯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은 1967년 이전 경계로 돌아갈 수 없고 그것은 방어가 불가능하다(indepensible)’고 주장해, 그 전날 오바마의 발언을 대놓고 반박하기도 했으며, 오바마가 유럽을 방문중이었던 524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오바마의 발언을 거듭해서 비판했는데, 놀랍게도 공화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하원 의원들은 자신들의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는 네타냐후의 발언이 끝날때마다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31번이나 보내서, 마치 선채로 연설을 듣는 듯 보였고, 마치 네타냐후 지지집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결국 오바마의 발언으로 인한 파장은, 미국의 국내정치를 고려한 공화당의 오바마 때리기이기도 하지만, 전임자인 조지부시와 같이 이스라엘에 충성에 가까운 일방적 지지를 보내지 않으면 즉시 이스라엘에 대한 배신자로 비난을 받는 이상한 미국 정치 상황을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 상관없이, 미국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강한 어조로 오바마의 중동연설을 반박하는 네탄야후 


그렇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1967년 이전 경계’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또한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이길래, 그 총리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에게 두시간동안 훈계하듯 이야기 할 수 있고, 미국의 국회의원들 조차 자신들의 대통령이 아닌 이스라엘 총리의 편을 들고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게 만드는 것일까요? 미국의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지난 번 글에서는
, 빈 라덴의 죽음과 관련해 과거 미국의 대 중동정책의 문제점들을 소개했었는데, 글을 읽은 몇 분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하길래, 다른 중동국가들이나 이슬람 테러조직들이 언제나 그 문제로 미국을 비난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어오시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문제의 뿌리에는, 언제나 석유문제와 함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전폭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의 뒤에는, AIPAC으로 대표되는 미국내 유대인들의 로비가 있고, 또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보수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미국과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 상당수가, 팔레스타인의 역사나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글에서는 가능한 알기쉽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현실, 그리고 미국내 이스라엘의 로비와 그 문제점을 소개해 보고, 성경적 입장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슈를 생각하면, 먼저 기독인들은 우리에게 친근한 구약성경의 역사를 기억하고, 또한 홀로코스트와 같은 유대인 박해의 역사를 떠올립니다. 성경의 백성이라는 친근함, 그리고 안네프랑크의 일기나 쉰들러스리스트와 같은 영화를 통해 유대인들이 겪은 비참한 역사가 잘 알려져 있기에, 심정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과 그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의 역사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바마가 언급한 ‘1967년 이전 경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역사적 배경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iii]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중동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전쟁이 있었고, 그에 따라 영토와 경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붉은색은 이스라엘의 영토, 파란색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표시된 다음의 지도는 이스라엘 영토가 팔레스타인에서 지속적으로 확장되가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1948 5 14일 건국 되었는데, 이스라엘 건국 하면, 마치 빈 땅에 나라를 세운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거의 2천년 전에 로마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세계 각지에 흩어지게 되었고, 그 땅에서는 아랍인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은 1차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아랍인들의 군사협력이 필요했던 영국은 이들에게 맥마흔 선언을 통해 독립을 약속합니다. 동시에 전쟁을 위해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시오니스트들의 지지가 필요했던 영국은1917년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또 다른 약속을 한 바 있었습니다. 지킬 수 없는 두가지 약속을 한 셈이고, 한입으로 두 말을 한 것이지요. 이후 유럽과 러시아로 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하고, 결국 유엔은 1947 11월 팔레스타인의 약 56%를 유대 국가에, 43%를 아랍 국가에 할당하라고 결정했는데, 아랍인들은 분할안을 거부하고 유대인들은 받아들여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팔레스타인 인들은 영토의 대부분인 87.5%를 소유하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6.6%만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팔레스타인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56대43으로 땅을 나누라는 유엔의 결정은 팔레스타인들의 땅을 떼어 유대인들에게 주라는 것과 같았다는 점입니다.

2천년간 세계 각지에서 수난을 당한 유대인들이 구약성서의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 땅에는 이미 2천년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고,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살고 있던 자기들의 땅을 이스라엘과 나눠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지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갑자기 내일 일본이 임나일본부설(고대 한반도 남부를 일본이 정벌해 식민지를 세웠다는 주장)을 주장하면서 남한 영토의 절반을 요구하고 거기에 일본인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지금 고구려 역사를 근거로 중국에 만주땅을 요구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 인들에게 이러한 심각한 상황이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유엔의 결정에 분노한 주변의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해 이스라엘 건국 직후 1948년에 1차중동전쟁이 발생하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유엔에 의해서 할당된 영토보다도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의 78%를 장악하게 되고, 나머지 22%는 가자(Gaza)와 서안(West Bank)으로 나눠져서, 각각가자’는 이집트의 통치하에, ‘서안과 동 예루살렘’은 요르단의 통치하에 1967 64일까지 놓여있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양측에 이스라엘의 서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동예루살렘으로 분할됩니다. 결국, 이것이 바로 오바마가 언급한 ‘1967년 이전 경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가자와 서안(웨스트 뱅크)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가 궁금하셨다면 아래 지도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가자’지구는 우리가 잘 아는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의 배경이 된 성경의 ‘가사’이며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도 블레셋에서 기원합니다.
 

이 전쟁으로 약 75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전쟁을 패해 주변 아랍 국가들로 피신했는데, 이때 이스라엘은 부재자 재산법을 만들어 손쉽게 이들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고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할 수 없게 해버립니다. 동시에 귀환법을 만들어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은 모두 이스라엘로 돌아올 권리를 가지고 시민권을 받는다고 선포합니다. 결국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주민의 상당수는 토지와 재산을 잃고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고, 반대로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만 증명하면, 팔레스타인에서 시민권과 주거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그 결과로 2차중동전쟁이 발발하는데,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에 파병하고 이집트와 숙적이었던 이스라엘도 파병하는데, 이 결과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집트의 주도하에 아랍 국가들이 단결해, 다시 1967 3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6일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또다시 승리하여, 이제는 가자와 서안 모두가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결과 약 43만 명의 팔레스타인 인들이 추가로 쫓겨나고 남은 약 100만 명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하에 생활하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를 이스라엘이 통제하게 된 것이지요. 유명한 아라파트는 1969년 이후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결성하여 투쟁을 하는데, 큰 진전이 없자, 이제 팔레스타인 전체에서 이스라엘을 내어 쫓고 팔레스타인만의 독립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상은 완전히 포기하고, 1967년 이전 경계, 즉 가자와 서안에서만이라도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도록 해 줄것을1976년 유엔총회에서 요구합니다. 이것이1967년 이전 경계를 기반으로 독립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상호 인정하자는 두 국가건설 해법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것 마저도 거부합니다. 이것이 오바마가 언급한 ‘1967년 이전 경계이며 유엔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973년에는 욤 키푸르 전쟁이라 불르는 4차 중동전쟁이 터지는데, 욤 키푸르(속죄날)을 맞아 이스라엘 군이 금식 등으로 병력 동원에 어려움이 있으리라 에상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초반에 우세한 상황이 되는데, 위기에 몰린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겨우 아랍군을 몰아내게 됩니다. 나중에도 다루겠지만, 이스라엘은 굳건한 애국심과 단결력으로 수많은 아랍국가들에 맞서 승리를 거둬왔다고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승리에는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충격으로 이스라엘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중동의 상황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1978년 지미카터가 주도하고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서명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입니다. 이는 숙적이었던 이집트와 이스라엘 관계에 화해를 가져오고, 이집트는 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를 되돌려 받는 대신, 가자지구에 대한 개입을 중지하고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으며, 이스라엘은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권리와 독립을 인정하고 점령지역에서 철군하기로 약속을 합니다. 나세르와 그 후임자인 사다트 같은 아랍민족주의 지도자들 하에서, 이집트는 아랍의 반이스라엘 진영 지도자 역할을 했으나, 사다트는 캠프 데이비드를 통해 전격적으로 이스라엘과 화해하게 된 것입니다. 

캠프 데이비드협정에서 좌로부터 사다트, 지미카터, 베긴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의 두 리더였던 사다트와 베긴 모두, 협정이후 자국의 강경파에게 암살되고 말았으니 팔레스타인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잘 보여줍니다. 이후 이집트는 평화협상의 대가로 미국으로 부터 매년 20억 달러를 받게 되며, 사다트가 암살된 후 권좌에 오른 무바라크는 미국의 지지를 업고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자그만치 30년간 독재정치를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집트는 협상의 약속을 지켰으나, 이스라엘은 아직 점령지에서 철수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바라크는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묵인해,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의 통치를 인정한 셈이 되어 버렸고, 아랍국가들로 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결국 최근 민주혁명 초기에 무바라크가 축출 위기에 처했는데도, 미국이 쉽게 무바라크를 포기하지 못하고 민주시위를 지지하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렀던 전임자들(나세르와 사다트)과 달리, 그가 독재자이지만 이스라엘과 평화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독재자 무바라크를 필요로 했던 것이지요.

최근 무바라크가 시민혁명으로 무너진 후, 지난 9 9, 카이로 시민 수천명이 개혁 가속화 시위를 하다가 그중 수백명이 인근 이스라엘 대사관에 몰려가 방어벽을 부순 뒤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치외법권 지역인 대사관에 난입한 사건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아랍 시민들의 관점에서 같은 형제라고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무바라크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분노가 곪아터진 사건인 것이지요.

 

캠프데이비드와 유사하게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클린턴의 지원하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조약을 맺는데, 이 결과로 요르단이 서안을 사실상 이스라엘의 영토로 승인하는 대신, 미국은 요르단의 부채탕감과 군사원조 2억달러를 포함 매년 5억달러의 원조를 약속합니다. 요르단도 후세인 국왕이 통치하는 친미 독재왕정국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이 평화조약들은 미국의 주도하에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의 갈등을 어느 정도 방지하게 되었으나, 가자지구와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지상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PLO와 협상을 하는 동시에, 가자와 서안, 그리고 동예루살렘에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이주시켜 영토를 확대해 나갑니다.

 

1982년에는 5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레바논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스라엘은 민간인 정착촌을 미사일로 폭격한 레바논 거주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추격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하고, 그 결과 한달만에 2만명의 팔레스타인 인과 레바논 인들이 사망하게 됩니다. 특히, 82 9 16레바논의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서의 학살은 이 전쟁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으로 오랜 기간 내전을 겪어온 나라이고,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군부는 수도 베이루트를 점령해, 레바논의 기독교도 수장인 바시르 제미엘을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앉히려 했는데, 그가 이슬람측의 폭탄테러로 살해당합니다. 그러자 광분한 레바논의 기독교 팔랑헤 민병대 150여명은 이스라엘 군이 포위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로 기습해, 사흘동안 절반이 부녀자와 어린이였던 3천여명의 난민을 무참히 학살합니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이스라엘 출신 감독인 아리 폴만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2008)’입니다. 학살을 다룬 이 영화는 기독교 민병대들의 학살에 대한 이스라엘의 책임을 모호하게 다루었지만, 사실 그 배후에 이스라엘 군이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것이, 학살극이 벌어지는 동안 이스라엘 군은 샤론의 명령에 따라 난민촌을 탱크로 둘러싸고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 올려 학살을 방조하거나 도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비난이 급증하자 샤론은 국방장관에서 물러나지만 20년 후 2001년에 이스라엘 총리에 당선되어 다시 팔레스타인의 탄압에 앞장섭니다. 그리고 이 결과로 레바논에서는 반 이스라엘 투쟁이 중심인 헤즈볼라(Hezbollah)가 결성됩니다. 역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Hamas)와 함께 이스라엘과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비난해 마지않는 헤즈볼라가 레바논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는 배후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학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006년 여름에도 레바논은 34일 동안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겪으면서 1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iv]



영화바시르와 왈츠를’ 포스터 (좌), 실제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 장면 (우)
 

특히 1987년 말의 1차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의 참혹한 현실과 이스라엘의 억압정책을 폭로해,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1988 PLO의 부패와 무능에 신물이 난 팔레스타인 인들을 중심으로 보다 과격한 하마스가 창설되어 PLO와 경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92년 이후 PLO와 협상을 시작하는데, 8년여간의 협상기간 동안 예루살렘과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두 배 이상 증가해서 40만명이 넘게 됩니다. , 협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늘려나가는 이중적인 정책을 쓴 것이지요.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착촌 정책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결되었을 뿐 더러, 미국의 관료들조차 비판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들은척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2008년에는 제 6차 중동전쟁이라고도 불리는 가자전쟁(Gaza War) 발생했는데,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휴전이 종료되고 이스라엘 군이 하마스 무장대원 3명을 사살하자,  하마스가 그 보복으로 이스라엘 영토에 70발 이상의 로켓을 발사하고, 이스라엘은 다시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공습과 침공을 시작해 1380명이 사망하고 (이스라엘측 사망자 13),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유엔학교, 유엔 구호트럭, 비무장 국제 구호선까지 무차별 공격함으로서, 미국을 제외한 국제 여론의 심각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 지구 한편에서 문명국가 군대의 공격으로 민간인이 대부분인 천명 이상이 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믿기 힘든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많은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런 현실에 눈을 감거나, 알면서도 여전히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8년 가자전쟁의 참혹한 희생장면. 민간인이 대부분이었던 1380여명의 사상자 발생 

이스라엘 군의 한 티셔츠 디자인. 과녁안에 팔레스타인 임산부 그림이 있고 “총 한발로 두명 사살”이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다음의 지도는
, 녹색으로 표시된 팔레스타인 지역이 어떻게 축소되어 나가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첫번째 지도는 이스라엘 정착 초기, 두번째 지도는 유엔의 분할 결정안, 그리고 왼쪽에서 세번째 지도가 1967년 이전 경계이고, 현재는 서안의 상당 지역을 이스라엘 정착지가 침식해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40만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안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0
년 최종 협상에서 이스라엘은, 정착촌 제거, 1967년 경계 회복 등, 팔레스타인의 요구를 최종적으로 거부하여 협상을 실패하고, 자살폭탄테러를 동반한 팔레스타인의 2차 민중봉기가 발생합니다. 테러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서안 지역에 총 길이 800㎞이상 높이 8미터의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건설해,이스라엘 정착지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시켜 나가고,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분리시키며, 지역 전체에 검문소를 설치해, 팔레스타인 인들은 출근하기 위해서 매일 몇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분리장벽으로 인해 엄청난 거리를 돌아서 다녀야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설하고 있는 분리 장벽(좌), 서안 곳곳을 차단하고 있는 검문소 (우)

 

2004 7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는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인 동 예루살렘, 서안, 가자지역은 국제법을 위반한 점령지이며 이스라엘이 이들 지역에 건설한 정착촌과 분리장벽도 국제법 위반이이라고 판결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의 22% 1967년 이전 경계에 기반한 서안과 가자, 그리고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민족국가를 설립하겠다는 요구마저 이스라엘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고, 그것을 언급한 오바마의 연설조차 미국 내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팔레스타인은 결국 유엔에 독립국 승인을 신청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대로,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세계 여론을 생각할때, 대부분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해 가진 생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는 주장이 얼마나 역사나 현실에 무지하고 단순한 생각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결국 위에서 살펴본 역사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입장을 살펴 보았을 때, 누가 강자이고 약자이며, 누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천년간 팔레스타인에서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들은 이제 22%남은 땅에서 준 식민지 상태로 이스라엘 군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지역에서만이라도 독립국가를 인정해달라는 주장을 이스라엘은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1967년 라인마저도 인정할 수 없고,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세력이 테러공격을 해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기에완전 비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고, 하마스 같은 조직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미 1948년에 국가를 수립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중동 최고의 군사력을 갖추고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준 식민지 군사점령상태에서 독립국가수립도 못하고, 인구 상당수는 해외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게,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지 않으면 독립 승인은 물론 평화협상도 할 수 없다고 강요하는 현실입니다. 물론 하마스 같은 팔레스타인 강경파 중에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존재는 이미 기정사실이고, 협상 과정에서 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협상하기도 전에 그걸 인정하는건 미련하다고 밖에 말할수 없겠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먼저 그런 선결조건들에 굴복하지 않으면 협상은 불가능하고, 기본적으로 1967년 경계는 받아들일 없다고 말하며, 지속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불법적으로 이스라엘 정착지를 늘려나가 이스라엘 영토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안은 이해가 가지만, 양측의 갈등이 계속되고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사황에서 팔레스타인에게 일방적으로 완전 무장해제하지 않으면 독립은 없다라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결국,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정책을 살펴보면, 과연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하거나, 궁극적으로 독립을 승인할 생각이 있는가 심각한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강경파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국가는 없다라고 여러번 언급한 바 있고, 과거 PLO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던 시절에는 PLO를 테러조직이라고 협상을 거부해 오다가, 이제 PLO의 후신인 파타가 인기를 잃고 강경한 하마스가 등장하자,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비난하면서 협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생각해 볼 점은,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을 생각했을 때, 이들의 독립요구나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등장을 단순히 테러리즘으로만 비난 할 수 있냐는 점입니다. 테러리즘과 관련해, “당신의 테러리스트는 나의 자유 투사일 수 있다(Your terrorist is my freedom fight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제 식민지 시대 독립투쟁을 보아도, 안중근 의사가 잡혔을 때 그는 자신을 독립군 중장이라고 주장했고, 일제는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다는 것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잔혹한 식민지배에 대한 리비아 인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 사막의 라이온(Lion Of The Desert, 1981)’이나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저항을 다룬 영화 알제리 전투(La Battaglia Di Algeri, 1965)’에서 볼 수 있듯이, 식민지배국이 독립을 향한피 식민지배 국의 저항을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진압해온 것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훨씬 강력한 군대를 가진 점령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과 살인에는 테러리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군사작전같은 용어를 사용하지요. 그래서 국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협상하는 것은 미국에게 알카에다와 타협하라는 것과 같다며, 하마스의 테러리즘을 근거로 평화협상과 독립승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만, 하마스를 알카에다와 동일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먼저 알카에다는 특정국가와 상관없이 ‘반미와 이슬람 근본주의’를 목표로 하는 다국적 테러단체이지만, 하마스는 과격무장세력인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이기도 합니다. 특히 하마스는 선거에서 주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교육과 의료 등 사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서 민심을 얻어왔기 때문입니다.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 참여해 62.6%의 득표율로 총 132석 중 74석을 장악하며,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파타를 제치고 제 1당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제는 하마스조차도 현재 22%안에서의 독립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지향하고 있으며, 압바스의 유엔독립국지위 신청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구체적인 평화협상과정이 진행된다면, 하마스 마저도 보다 현실적인 타협에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빌미로 협상에 나오지 않고 정착촌건설만 지속하는 이스라엘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사력이나 사상자의 규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많은 언론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폭력을 중단해야한다는 언급을 함으로써, 마치 양측이 똑같이 공격을 하고 비슷한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이스라엘측 피해를 더 과장해서 묘사를 하는데 (예를 들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보도의 정확성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사례 연구”라는 논문을 보면, 어린이와 청소년 사망 관련 언론기사를 비교해 볼 때, 팔레스타인 보다 이스라엘 어린이 사망에 대한 보도기사가 30배 정도 많다고 함), 실제로 사상자의 비율을 보면 대부분 팔레스타인 측이 수십배에서 수백배까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동 최강의 군사력으로 최첨단의 전투기, 탱크를 갖춘 이스라엘과, 피지배 상태에서 기껏해야 총과 로켓으로 무장한 팔레스타인이 비교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예를 들어 하마스의 로켓 공격도 문제이지만 이로 인해 사망한 이스라엘인은 8년동안 20명에 불과한 반면, 이스라엘 전투기가 하루 공격으로 300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흔한일이라고 합니다.

테러리즘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 팔레스타인 같이 절망적 상황에서 독립투쟁이 극단화 되는 것은 쉬운 일이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빌미로 협상을 거부하고, 다시 막강한 군사력으로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노암 촘스키는 자신의 책 해적과 제왕에서, 똑같은 악랄한 살인과 약탈을 해도 그것을 배한척으로 소규모로 하면 해적이 되지만, 대함대를 거느리고 대규모로하면 제왕이자 영웅이이 되는상황을 지적하며, 한쪽만을 테러리즘으로 비난 하는 입장에 문제제기를 한 바가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강경파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과격파를 문제삼아 분열시키는 동시에, 평화협상을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독립을 무한정 지연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정착촌을 확대하고 팔레스타인들을 학살하거나 해외로 쫓아내서, 결국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를 이스라엘화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50만명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먹어들어가고 있고, 이들은 법적으로 무장할 권리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영장없이 체포할 권한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라 준 군사조직인 것이지요. 더불어 이스라엘은 분리장벽을 건설해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분리시키고, 이스라엘 정착촌들을 잇는 도로를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인들은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암 촘스키는, 자신의 책 숙명의 트라이앵글에서 이스라엘의 강경파는 PLO가 온건화 되고 평화협상에 나와서 이스라엘이 협상을 해야할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강경책을 써서 상대를 극렬화 하는 정책을 썼는데, 예를 들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여 팔레스타인 인들의 학살을 조장하여 갈등을 증폭시키고 피의 대결을 지속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PLO가 온건화하자, 1987년 이스라엘 정보부는 팔레스타인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해 종교적 색채가 강한 무슬림 형제단을 이끄는 야신을 지원했는데, 그가 창설한 단체가 바로 하마스입니다. 이스라엘이 현재 비난해 마지않는 테러단체 하마의 창설에 이스라엘이 어느정도 개입했다는 사실이지요.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제 지속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관련 유엔표결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으며, 이제 팔레스타인의 참상이나, 이스라엘의 정책으로 자행된 인권유린과 학살이 세계여론을 통해 잘 알려져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여론과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하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중동에서 독재정부를 지원하거나(사우디, 요르단, 쿠웨이트, 이집트 등등), 분열을 일으켜 약화시키는 방식(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이란에도 무기를 팔았음)으로 아랍국가들을 제어하고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해 왔으나, 이제 시민혁명의 확대와, 근본주의 이슬람의 발흥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이제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데 대한 결과가, 반미감정과 반 이스라엘 감정으로 폭발 직전에 이른 것이지요. 아래 표(출처: 매일경제 9월6일자 기사)에서 보듯이 중동은 이제 거대한 변화에 휩싸인 상태고 팔레스타인의 독립요구도 더이상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중동에서 확산되어 가는 민주화의 물결을 적어도 원칙상 지지하는 오바마가, 팔레스타인의 자결권과 독립권은 왜 인정할 수 없는가는 점점더 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굳건한 지지 세력이 되고 있는 이들이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인데, 이들이 말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는 주장이 얼마나 역사나 현실에 무지하고 단순할 뿐더러, 성경적 근거도 빈약한 주장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지난번에 연재한 두개의 글들에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그에 기반해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에,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을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1) 가나안 정복과 이집트 심판에 대한 오해
  

(2) 혈연 공동체 vs. 언약 공동체

 

현재 이스라엘의 폭압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급증하자, 오히려 보수 기독교인들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커녕,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고, 각국이 이스라엘을 대적한다는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 지고 있다며, 더욱 이스라엘 지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성경과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이, 얼마나 기독교인들을 바보로 만들 수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정의와 정반대에 서게 할 수 있는지, 처절하게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스라엘이 왜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인종주의 군사국가가 되었는가, 그리고 미국은 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가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i]연합뉴스 914일자 기사, “카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승인 노력 지지

[ii] 다음 링크를 보시면 공화당 정치인들의 자세한 발언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SINSuFQhxLk

[iii] 이 글에서 설명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역사는 다음 자료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홍미정,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코리아 연구원 현안진단 25

[iv] 김재명, 2008 12 4일자 씨네21기사, 좌우갈등 속 모호해진 목소리: 학살현장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을 다녀와서 본 <바시르와 왈츠를>

 

[이유정] 예배의 강력한 기대감, 굶주림

지금 세계는 유례없는 경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실물경제는 바닥을 경험한지 오래다. 노재현은 기성세대의 바닥을 이렇게 평했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Been there, done that’ 세대다. 현장을 가보았고 온 몸으로 겪어 보았다는 뜻이다. 식민지에, 전쟁에, 산업화 시대 일중독에, 민주화 열망에, 게다가 10년 전 혹독한 외환위기까지 현장마다 가 있었고 빠지지 않고 체험한 세대다. 만만치 않은 내공이 몸에 배어 있다. 문화재급 유물에서 시작해 첨단 제품까지 잘 적응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바닥도 두렵지 않다.”

바닥은 끝이다. 끝의 다른 의미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표현으로 이제 시작할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바닥을 경험한다는 것은 그래서 슬픈 일이 아니다.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이상 그런 실패는 겪지 않을 확률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하나님에 대한 굶주림은 영혼의 바닥에서 시작된다. 그곳에 간절함이 있고, 갈망이 있다. 이 굶주림이 예배의 강력한 기대감이다.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 63:1)

굶주림은 배고플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영적 굶주림은 영적 양식에 대한 갈급함이다. 성경은 회중예배가 세상에서 채워질 수 없는 하늘 양식이 채워지는 원색적인 현장임을 뒷받침 해준다. 바울은 헛된 것에서 만족을 찾던 영적 거지인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 된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예수의 충만을 채우신다고 증거한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 1:23) 여기에서 fills everything in every way라는 표현을 주시하라. 예수는 모든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도 채우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자신의 몸인 교회라는 유기적인 몸을 통해 채우신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몸은 예수의 충만(which is his body, the fullness of him)이다. 그러므로 회중예배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부요함이 깨어진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채워지고 회복되는 위대한 현장이다.

문제는 예배드리면서 나 자신이 깨어진 존재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다. 영적인 굶주림이 없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이다. 내 안의 죄, 상처, 아픔, 연약함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하나님께 나아가라. 남들보다 떨어지는 IQ, 배경, 재력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고, 학벌, 실력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차별 때문에 상처입고, 사춘기 자녀들이 무시해서 온통 썩어버린 가슴, 그 모든 ‘내 정직한 모습’을 쓸어안고 하나님께 그 모습 그대로 나아가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하나님께 활짝 열라.

“하나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욕심, 욕망, 야망, 비교의식, 경쟁의식을 제 의지로 다스릴 수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에 찌들은 저를 주의 형상으로 빚어 주옵소서.” 이것이 굶주림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기대감이다. 시편 42편은 이 굶주림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 42:1,2)

하나님을 갈망함으로 일주일을 집중해서 살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된다. 주일 예배를 향하는 발걸음에 간절한 기대감이 살아 있을 때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게 된다.

– 이유정(예배사역연구소 대표)

[이유정] 브라질 한류의 현장

지난 8월 초에 갓스이미지 디렉터 연례모임차 브라질을 방문했다. 주일에 리오 데자네이로에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리오에 한인교회는 유일하게 리오동양선교교회 하나 있다. 작고 아담한 교회이다. 이곳에서 1부 브라질 현지어 예배와 2부 한어예배를 찬양과 설교로 섬겼다. 6개월 넘게 담임목회자가 공석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교회 내부적으로는 일종의 부흥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부흥의 주체는 놀랍게도 브라질 현지인이다.

1부 예배는 고등학생 밴드가 현지어로 예배를 인도한다. 찬양인도자와 싱어, 드럼, 피아노 모두 여학생이다. 이들이 인도하는 찬양을 뜨겁게 따라 하는 현지 청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배 참석한 30여명의 반이 현지 청년들이다. 찬양과 말씀으로 메시지를 전할 때 한국에서 온지 2년 반밖에 안 된 고등학생이 통역을 하는데도 현지인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났다.

“오직 주 만이” 찬양의 작곡 배경에 관한 퀴즈를 냈는데 현지인 자매가 정답을 맞혔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현지 청년 몇 명이 다가와서 자신이 느낀 은혜를 표현했다. 내가 작곡한 찬양에 감동했단다. 브라질의 음악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이다. 그 땅의 젊은이들이 한국인이 만든 찬양과 멜로디에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언어를 초월한 성령의 역사이었음이 틀림없다.

예배 후 마당에서 식사를 함께 하는데 현지 청년의 대부분이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눈다. 특별히 전도를 하지 않아도 브라질 젊은이들이 교회에 몰려오는 이런 현상에 대해 당황해하고 있는 눈치이다.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한인 자녀들로 운영되고 있는 Gods Image가 브라질 교회에서 집회를 마치고 오디션에 200여명의 브라질 현지인 청소년들이 몰려왔단다. 이것이 최근 6개월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주말에는 박지웅 선교사가 섬기는 선교공동체 쿰에서 브라질 상파울로 현지인을 대상으로 프레쉬 페스티발이라는 음악잔치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한인 청소년들에게는 한국의 다양한 음악 문화를 소개하고 브라질 현지인과 타국 이민자들에게는 한류의 현장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제법 큰 규모의 행사였다. 브라질 God’s Image, 브라질 전국 댄싱경연대회에 전국에서 몰려든 1만여 팀을 제체고 준결승까지 올라 한류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힙합 댄스팀 리본(Reborn), 한국에서 온 크리스천 가수 별과 토니 안 등이 출연했다. 무대 앞 자리에서 진귀한 모습을 보았다. 상당수의 브라질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전 HOT 멤버였던 토니 안이 등장했을 때는 뛰면서 열광했다.

브라질에서 한류가 일어나고 있다. 때 맞춰서 한국의 대기업 지사들도 입성하고 있다. 삼성과 LG의 대형 간판들이 곳곳에 붙어있고, 한국 차, 한국 드라마, 케이팝(Korean Pop),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K팝 열풍이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다. 한류의 실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없지 않지만 전후 60년 만에 한국은 경제, 스포츠, 문화, 예술 등의 영역에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이 작은 나라에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 무시했던 선진국들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 60년 만에 이룬 한류를 주시하고 있다.

K-팝 가수들의 곡이 인터넷상에서 1억 회 유료 다운로드 되는 때가 올 것이라는 기사도 있다. 영어도 아닌 한국어 노래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한다는 사실… 과거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다. 인터넷과 SNS로 전 세계가 하나 된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문화적 코드의 주도권을 거머쥘 날이 다가오고 있다.

한류를 등에 업은 디아스포라 사역은 블루 오션이다. 그 선교적 잠재력이 대단하다.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언어적 장벽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안 통한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을 주목할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디아스포라 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