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기질에 따라 관심의 방향은 차이가 있지만 모두가 다 사람들의 관심을 원한다. 어린아이뿐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기에게 관심을 써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 이렇듯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복잡한 생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반면에 요즈음 사람들은 남의 간섭을 귀찮아한다. 특히 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사사로운 일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요즈음 아이들도 어른들의 간섭을 귀찮아한다.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할 때 자기의 삶을 지키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않는 것도 이웃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관심과 사람들이 귀찮아하는 간섭이 혼동될 때가 많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인관계의 갈등은 이 두 가지를 혼동하거나 둘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실천하는 것이 대인관계를 하는데 아주 중요하다. 우선 관심과 간섭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 리고 관심과 간섭의 균형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사랑의 관심을 가지면서 그것이 간섭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반대로 간섭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게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마도 크리스천의 이웃사랑은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부 부간에 서로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자. 그러나 아무리 부부라 할지라도 개인의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도록 하자. 자녀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자. 그러나 아무리 내 자식이라 할지라도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해서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도록 하자. 교회 성도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자. 혹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나 돌아보는 사랑의 관심을 갖자. 그러나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사람을 향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관심의 폭을 넓혀서 그들을 돕고 위해서 기도하자. 그렇지만 남의 사생활에 호기심을 가지고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사막의 수도사에 관한 책을 읽다가 이 둘 사이를 아주 잘 구별해놓은 글을 보았다. “관심과 간섭은 다르다. 관심은 남의 연약함과 상처를 치료하려는 마음에서 생긴 배려이지만 간섭은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배려에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간섭에는 아픈 상처와 갈등이 남겨진다. 수도사들은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간섭이 되지 않도록 특별히 경계하였다.” 이 정의에 따르면 관심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며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유익을 끼치는데 비해 간섭은 자기 욕심에서 나오며 결과적으로 상대방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 관심과 간섭은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은 비슷해 보이지만 동기나 결과가 정반대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때 항상 사랑으로 하는 것인지, 이것이 결과적으로 그에게 유익을 끼치게 될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원치 않는 간섭을 하지 않고 사랑의 관심을 가질 수 있다.